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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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이런 수필집, 어디서 보셨나요?

 

이 책은 무명인 채 서둘러 세상을 떠난김인선의 수필집이다.

수필, 흔히 말하는 바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

지금껏 그렇게 쓴다는 수필을 여러 편 읽어봤지만, 이번 경우처럼 독창적인 글은 처음이다.

 

어느 글 하나, 구태의연한 게 없다. 적어도 상투성이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식상한 글에 질린 사람, 지금까지 읽으면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글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 여기 모여 이 책을 보시기를.

 

이 책 읽으면 금방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이런 글을 봤나! 이런 글, 본 적 없다, 는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글이 우선 재미있다. 떠들썩하게 소리치지 않고 글이 차분하면서도, 신나게 움직인다. 요란 떨지 않으면서 글 속에서는 성벽을 쌓는 듯,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지니. 이게 별 일이지 싶다.

 

저자의 글 솜씨에 반한다

 

, 성 쌓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책에서는 차안에서 만리장성을 쌓는 장면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23- 28)

 

빨간 티코가 한 대 서있었다.

( …… ) 앞창 유리 너머로 (……) 고전적인 자세가 틀림없었다. 저 옹색한 깡통 안에서 그 발랄함이 비할 데 없는 운동방식이 가능하단 말인가? ( ……)

(……)

(……)

 

사건은 23- 28쪽까지 무려 6쪽에 걸쳐 진행이 되고 있는데, 그게 말줄임표 몇  개로 커버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들은 그 앞뒤 문맥을 충분히 감안하여, 잘 이해할 줄로 믿는다.

 

그런 저자의 글 솜씨는 다른 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호흡이 길다, 그러나 단 숨에 읽힌다.

 

<아버지의 호통에 주눅이 든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명년부터는 꼭 우리 식구 먹을 것만 하겠노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셨지만, 이듬해가 되면 마을회관 뒤편 돌밭 긴 이랑은 또다시 오이로 가득 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잇단 사업실패 끝에 남태평양 소도로 망명한 큰아들이 거기서 부디 다시 일어나되 오이처럼 씩씩하고 활기차게 번창하기를 바라는 당신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를 당신도 모르게 오이밭에 담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 (123)

 

길고 긴 문장이지만, 쉼표 따라 쉬어가면서 읽을 수 있다. 숨 막히지 않고 문장 리듬을 타면서 읽을 수 있으니, 가급적 문장을 짧게 쓰라는 작문 교사의 가르침은 잠시 제쳐놓아도 될 것이다. 

 

저자의 관찰력에 박수를!

 

이런 문장 읽어보자.

 

<거미는 내 방에서 가장 조용하고 품위 있는 부족이다. 내가 거미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놈들의 거주에 최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놈들은 돈벌레처럼 나대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연민을 자아내지도 않으며, 나방처럼 수선스럽지도, 말벌처럼 음험하지도, 귀뚜라미처럼 뚱딴지같지도, 개미처럼 집요하지도, 노린재처럼 약빠르지도, 딱정벌레처럼 갑갑하지도, 흡혈모기처럼 표독하지도, 파리처럼 외설스럽지도 않다.>(82)

 

거미, 하루살이, 돈벌레, 나방, 말벌, 귀뚜라미, 개미, 노린재, 딱정벌레, 흡혈모기, 파리를 아는지? 본 적은 있는지? 그것들의 생김새, 또는 성격이나 성질머리를 아는지?

저자는 안다. 다 알고 있다. 해서 거미 한 마리를 설명하는데, 내가 모르는 벌레 수십 종을 들이댈 기세니이 문장 읽으면서 기가 죽지 않고 어쩌겠는가?

 

그래도 느낌이 오지 않으면 이렇게 문장을 재조립해서 읽어보자.

 

거미는 내 방에서 가장 조용하고 품위 있는 부족이다. 내가 거미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놈들의 거주에 최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놈들은 돈벌레처럼 나대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연민을 자아내지도 않으며,

나방처럼 수선스럽지도,

말벌처럼 음험하지도,

귀뚜라미처럼 뚱딴지같지도,

개미처럼 집요하지도,

노린재처럼 약빠르지도,

딱정벌레처럼 갑갑하지도,

흡혈모기처럼 표독하지도,

파리처럼 외설스럽지도 않다.

 

저 많은 벌레에 붙어있는 수식어를 보라. 어찌 그리 딱딱 들어맞는지.

 

읽다가 배꼽 빠질 뻔

 

<새 집주인은 개는 싫어하지만 개고기는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75)

 

닭백숙을 해먹는데 냄비 큰 게 없어서 헤매는 장면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빠뜨리고 엎어뜨리고 처박고 눌러봐도 완강하게 삐져나오는 두 다리 때문에 뚜껑이 닫히질 않는다. 죽어 자빠진 놈한테 다리 좀 오므려보라고 야단을 칠 수도 없다. >(114)

 

더 있다. 많이 있다. 더 소개한다는 것은 스포일러!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식물은 새벽녘과 해질녘에 잠깐 사람이 알아듣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내게는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성인聖人이고 성인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제가 들은 것처럼 그럴듯하게 거짓부렁을 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18)

 

<나는 의성어 교육에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획일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까마귀는 까악까악 또는 까르르까르르 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까록까록이나 쿨럭쿨럭으로 들리기도 한다. 개구리도 마찬가지. 보통 개구리가 개골개골 운다고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걀걀, 그갤그갤, 스웨웨웨웻, 스웨웨웻 하고 울기도 한다. 유아나 초등학생한테 의성어교육을 시킬 때, 아이들을 이미 정해진 의성어에 적응시키지 말고, 자신의 귀에 들리는 그대로 충실하게 듣도록, 기왕이면 자신만의 의성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해 전부터 해오고 있다. 이것이 자연을 깊이 이해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고 또 상상력이나 언어감각을 발달시키는 데도 무척 중요하지 않겠는가. 동물들이 내는 비분절음은 인간에게 굉장한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걸 미리 만들어놓은 기성 언어로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70)

 

<사람 말이라는 거, 복잡하기만 하지 내용이란 게 뭐 있나. 언어라는 게 자기 속을 숨기기 위해서 발명된 것이다.> (73)

 

다시, 이 책은?

 

대개 수필집은 한 번 보고는 서가 한 구석에 처박아 두는 법이다. 아니면 책꽂이도 아닌 서재 한구석에 쌓아두거나.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취급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수필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모범 사례로 여기 저기 불려 다녀야 한다이 페이지 저 페이지 펼쳐 보이며, 수필 쓰려는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책이다.

 

그래서 수필 쓰려는 독자 있거든, 이 책, 읽어야 한다,

이 책 읽고 수필 쓰는 법, 배워야 한다.

 

그런데 저자가 요절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진다.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것을, 사람들은 그 무슨 영화 보겠다고 그 악착을 떨어가며 살아간단 말인가. 저자 살아가는 모습 반만 닮아도 되지 않을까?

살아가는 모습, 그뿐만 아니라 글 쓰는 것 반에 반이라도 닮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혹시 마음이 굴뚝같다는 내 말 들으면 저자는 굴뚝새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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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
임상빈 지음 / 박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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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이정도의 책을 쓰려면, 대체 그 내공은 어느 정도일까?'

 

책장을 넘겨가면서, 매 페이지마다 드는 생각이다.

우선 저자의 내공에 놀랄 수밖에 없다는 점, 인정! 인정한다.

 

한 책에 다루고 있는 주제의 광범위함에 다시 놀란다.

이정도 다양한 주제를 한 책에서 다룬다는 것, 대단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다.

 

그 주제 한번 열거해 보자. (열거하기도 힘들다.)

기술, 과학, 예술, 사람. 이렇게 네 가지. 어디 그뿐인가, 그런 대주제 아래 소주제는 얼마나 또 많은지?

 

저자는 주제를 네 가지로 정한데 대하여, 이 네 가지를 새로운 시대, 누구나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영역이라는 생각한다고 말한다. (4)

 

다른 사람들은 위에 열거한 주제 가운데 하나만 잡고 써가기도 힘든데, 저자는 그 모든 것을 한 책에 담아놓는다.

 

또 주제의 다양함과는 별도로, 글 한 꼭지마다 저 네 가지 주제가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가 화가인만큼 그림 한 점씩은 꼭 들어가 있다.

 

그렇게 놀랄 수밖에 없는 이 책, 대체 저자는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썼을까?

저자의 저술 의도를 살펴보기로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세상만물을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맥락으로 파악하며, 여러 생각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의 맛을 내고, 나아가 우리들의 삶에 유의미한 통찰의 지점을 짚어보고자 했다. (6)

 

그렇게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 책을 읽은 나는 어느 정도 그런 목적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또한 저자는 이 책을 세상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3)이라 하는데, 확실히 세상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게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이 책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아니 절반이 뭐야? 반에 반도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하여튼, 저자의 박식, 해박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아쉽다. 저자가 들인 공력에 비해, 그것을 백퍼센트 흡수하지 못하는 독자, 나는 너무 부족하다. 부족함을 느낄 뿐이다.

 

그저 읽고, 읽고, 읽어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니 읽어도 감이 오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거다. 해서 저자가 의도하는 바, 그런 목적은 나에게 와서 그저 튕겨나갈 뿐, 흡수되지 못했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면?

이 책의 가치는 나의 수준을 넘는다는 것, 그래서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

지금껏 읽어본 책 중에 난이도가 가장 높은 책이라는 평가, 그 정도로 평가해 본다.

 

어렵고, 어렵다. 해서 아쉽다.

( 이 서평은 오늘 현재, 1차 분입니다. 추후 다시 읽고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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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티스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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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래곤 티스

 

마이클 크라이튼은 영화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하다.

모두 다 아는 것처럼 그 영화는 소설 <쥬라기 공원>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공룡을 우리 눈앞에 현실감 있게 살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영화가 된다.

각 장면 장면이 한 컷씩 이미지로 변환되어, 머릿속에서 활동사진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활동사진은 음향효과도 제대로요, 컬러도 총천연색.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일단 영화로 만들어지니, 글로 읽을 때조차 영화처럼 읽히는 것이다.

 

그의 유작인 드래곤 티스라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이에 인쇄된 글자는 어찌된 셈인지살아 움직이는 듯, 영화로 읽혀진다.

 

먼저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주인공으로 윌리엄 존슨, 예일 대학교 학생이다.

그리고 오스왈드 찰스 마시 교수, 예일 대학교 교수로 고고학자,

애드워드 드링커 코프 교수, 펜실베니아 대학교 교수로 역시 고고학자.

 

방학을 맞이하여 떠나는 마시 교수의 서부탐사대에 윌리엄 존슨이 참가하여 서부로 떠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부에 가서 공룡의 화석을 찾아오는 것이 탐사의 목적이다. 이야기는 마시 교수의 라이벌인 코프 교수가 펜실베니아 대학생들을 이끌고 역시 같은 지역으로 같은 목적으로 나타나는 데서 꼬이게 된다.

 

윌리엄이 마시 교수, 코프 교수 사이에서 물고 물리는 소동을 겪으며 발굴된 공룡 뼈를 무사히 가지고 오는 것, 그것을 주제로 하여 한 바탕 활극이 벌어진다.

 

시간은 미국에서 서부라는 지역에 아직 무법자들이 출몰하는 시대로, 1875년과 1876년이 시대 배경이다.

 

그런 활극을 먼저 서부극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광활한 서부를 배경으로 인디언과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화살이 주인공 다리를 관통하는 장면도 연출되고, 총잡이들이 등장하여 마을 공터에서 쏘고 죽이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니 서부극이다.

 

등장인물로 와이어트 어프가 등장하는 것도 서부극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한다.

어프가 보안관 자리를 목표로 하여 데드우드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이 소설은 또한 심리극으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사건을 이끌어가면서 무릎을 치게 하는 장면들을 배치해 두고 있는데, 이런 장면들은 영화화 되면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할 게 분명하다.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하여, 인디언의 추격을 따돌린다.

눈 좋다. 눈 내리면 수 족 전사들 우리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생각한다. 아침에 한두 시간 불 옆에서 몸 녹이며 기다린다.”

그 사이 우리는 죽어라 달아나는 거군요.”(244)

 

와이어트 어프가 윌리엄에게 뭔가 암시를 하는데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채지 못하는 읠리엄에게 에밀리가 넌지시 귀띔해주는 장면도 압권이다.

 

(와이어트 어프가 마시 교수와 공룡뼈 거래를 두고 길고 긴 상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와이어트 씨는 마음만 먹으면 5분 안에 거래를 끝낼 수도 있답니다.”

윌리엄은 그녀를 뻔히 보았다.

그 말은 …….”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와이어트씨는 자기가 마시 교수를 붙잡아두고 있는데 당신이 여기 앉아 있어서 답답해 하고 있을 거예요.”(379)

 

그제서야 윌리엄은 와이어트가 자기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상담을 길게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공룡뼈 반절(와이어프에게 주기로 한)을 가짜로 바꿔치는 것이다. 그후 바꿔친 가짜 뼈를 와이어프가 마시 교수에게 넘기는 장면, 통쾌한 복수다.

 

셰익스피어의 그림자도 보인다.

 

루시엔과 한 번 만난 윌리엄은  젊음의 피가 용솟음치는지라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윌리엄은 다음날 떠나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둘의 대화, 들어보자.

 

루시엔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바꿨다.

샤이엔에는 얼마나 있을건가요?”

안타깝게도 하룻밤만요. 내일 더 먼 서부로 떠납니다.”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달콤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루시엔은 서운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전 한 시간 뒤에 또 무대에 서야 해요. 그 후 한 시간 동안은 손님들과 있어야 하고요. 하지만 그 다음엔 한가해요.”

기다릴게요. 당신이 원한다면 밤새도록 기다릴게요.”

루시엔은 몸을 기울여 윌리엄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79)

 

윌리엄의 가슴에 밀려든 달콤한 고통’!

잠시동안의 헤어짐도 청춘남녀에게는 고통이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 고통은 달콤하다.

 

이런 경지는 이미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묘사한 바가 있다.

그 유명한 발코니 장면에서 둘이 헤어지는 순간, 로미오가 이렇게 말한다.

잘 자요, 잘 자! 이별은 달콤한 슬픔.” (로미오와 줄리엣, 22)

 

'달콤한 고통'과 '달콤한 슬픔', 굳이 비교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또 하나, 인디언 리틀 윈드는 추격전에서 총을 맞고 결국 죽게 된다.

그 시신을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으려 하는 윌리엄, 그에게 이런 어려움이 생긴다.

 

하지만 공동묘지에는 그 어떤 인디언도 묻을 수 없다네.”

왜 안 되는데요?‘

그런 윌리엄의 질문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인디언은 이교도니까.” (151)

 

이 장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오버랩된다.

오필리어가 죽어 장사 지낼 때, 묘를 파는 인부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자살 했으니 기독교식 장례는 안 된다는 발언이 떠오른다. (햄릿, 51)

 

다시, 이 책은?

 

그런데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 윌리엄 존슨은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가공의 인물이고, 마시 교수와 코프 교수는 실존인물이다. 실제 그 두 교수는 라이벌이었다는 것, 그게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의 서부에 인디언이 창과 화살을 쏘며 달리고 기병대가 나팔을 불며 나타나던 시대에, 공룡뼈를 찾아내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런 사실은 팩트다.

 

그런 과학적 탐험 이야기를 재미있게 또한 의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역시 스토리는 힘이 있다. 그것도 크라이튼이 만들었으니, 이야기의 힘,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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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마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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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허균

 

이 책을 펴드니, 허균이 떠오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이란 대사로 유명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 :1569 ~1618)

그가 요리에 관한 책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썼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도문대작1611, 유배를 간 허균이 보잘 것 없는 음식만 먹게 되자 전에 먹었던 좋은 음식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기록물이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요리에 관한 책을 썼다니.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있겠다. 다빈치가 쓴 요리책 이름은 코덱스 로마노프(Codex Romanoff), 그가 요리에 대하여 주석을 단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3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

2. 최후의 만찬

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1부와 2부는 간략하게 다 빈치의 일생을 그려놓았다, 물론 요리를 중심으로 한 기록이다.

지금까지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의 유명한 걸작을 그린 화가로만 알고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 마리 달팽이>라는 술집의 주방장이었다는 사실, 들어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나, 하고.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그는 주방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요리노트를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또한 나중에 그가 일하던 술집 자리에 새로 술집을 세우기도 했다.

술집 이름은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이후로도 다 빈치의 주방 경력은 계속된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 아니 짐작하고 있는 - 화가, 전업화가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그가 그림을 그린 것은, 물론 이 기록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모나리자> 밖에 없다.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의 미술 작품이 몇 점이나 되는지.

 

모나리자암굴의 성모(Virgin of the Rocks), 성모자와 성 안나(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가 있다. 그리고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그린 최후의 만찬(Last Supper)

 

최후의 만찬(Last Supper)에 얽힌 일화도 흥미를 자아낸다.

이 작품은 다 빈치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가 있었다. 바로 만찬요리.’

 

특히 그는 상 위에 놓일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2년여 동안을 상 위에 놓을 음식을 고르는데 사용하고, 상 위의 음식 선별작업이 끝나자 단 3개월 만에 작품을 끝낼 수 있었다.

 

이상이 1부와 2부의 내용이고, 3부에는 다 빈치가 기록한 요리노트가 펼쳐진다.

 

다시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그래서 요리에 필요한 재료 등도 자세하게 기록을 해 놓고 있다.

또한 주방기구 둥에도 그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발동되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구들 중 그가 아이디어를 낸 것도 많이 있다.

 

마늘을 빻는 기구(21), 후추를 가는 기구(28) 병마개 뽑이(50)

스파게티용 면발을 뽑는 기계 (64)

 

특히 스파게티는 그가 고안해 낸 음식이라 할 수 있고, 스파게티를 편하게 먹기 위한 이가 세 개 달린 포크또한 그가 발명한 것이다. 이제 스파게티 먹을 때마다 다 빈치를 떠올려야 할 듯하다.

 

이렇게 흥미있고, 알아두어서 유익한 내용이 이 책에는 많이 들어있거니와, 특히 다 빈치를 다만 화가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요리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게 된 것, 이 책의 특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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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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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을 위하여 

    - 밥하는 시간

 

이런 글 읽어보자.

 

이런 글 읽어보자. 이 책에 반한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압력밥솥 뚜껑을 열고 김이 막 오르는 밥을 나무주걱으로 살살 젓는다. 먹빛이 도는 자그마한 자기 그릇에 소복이 담는다. 현미잡곡밥에 들깨미역국, 두부구이, 김치, 식탁에 단정히 앉아 손을 모아 감사드린다.

한 입씩 먹는다. 현미밥은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밥이 다 넘어가면 국을 뜬다. 미역의 미끌한 느낌과 들깨의 고소한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현미유에 구은 따뜻한 두부의 말랑하면서도 쫄깃한 맛, 약간 신 김치의 톡 쏘는 알싸한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먹는다.> (178)

 

나는 이 글을 프린트해서 어딘가 붙여놓고 싶다. 특히 밥먹을 때 잘 보이는 곳에다가.

그래서 한 입 먹고, 이 글 한 번 읽고, 한 입 먹고 다시 읽고.

물론 이 글을 한 번 읽으면서 한 입 들어간 음식물을 천천히 씹는 거다.

 

프린트는 나중에 하기로 했기에, 식탁에 차려진 음식, 그 중에 밥을 한 입씩 넣고 씹어가면서 이 글을 떠올리며 먹어 보았다. 국물도 한 입 떠먹고, 반찬도 입에 넣고 음미하면서, 어느 반찬에서 어떤 느낌이 나며, 어떤 향으로 입안을 채우는지, 느껴보면서 먹어본다.

 

씹지 않고 허겁지겁 먹는 것은 저자가 말한 대로, ‘아마도 자동차에 연료를 넣는 의미 이상은 못될 것이다. 그렇게 먹고 사는 삶은 자동차나 기계가 되는 것이니까. (178)

 

모든 글이, 모든 페이지가 아포리즘이다.

 

저자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써놓은 기록들, 글자 한 자가, 한 단어가, 한 문장이 모두 아포리즘이다. 새기고 음미하고, 향기 맡으며 지니고 싶은 글들이다.

어떤 글은 맥락에 상관없이 새겨놓고 싶을 정도다.

 

헛살았다는 것은 알겠으나 제대로 사는 게 뭔지는 모호하기만 ....(22)

 

나는 삶의 의미를 나 밖의것에서 찾는데 익숙했다. 자기 존재감이 없으니 타자를 통해 그것을 얻으려고 했다.(80)

 

드러내는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이 있다. 자기 안의 샘물은 솟아나, 흘러야 한다. 그런데 샘물이 미처 차오르기도 전에 또는 샘물의 양보다 과도하게 자기를 드러낸다. 샘물의 바닥을 긁다가 안 되면 없는 샘물까지 상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욕망이 있는 것이다. (80)

 

많은 경우, 깨달음은 허망하다. 그 깨달음의 내용이 지극히 당연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151)

 

저 너머를 바라보다가 지금 여기, ‘이 세상으로 온 거다. 비로소 세상 속에서 터져나오는 기쁨이 보인다. 하찮게 여겨,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보인다. 작고 여린, 세세한 생명들이 보이고, 그것들이 작지 않은 생명임이 보인다. 봄의 터져나오는 기쁨에 온몸을 담글 수 있다. 나 또한 그 숱한 생명의 하나로 이 지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연대감에 깊이 안도할 수 있는 것이다. (249)

 

걷기에 대하여

 

큰돈을 들여 몇 박 며칠 히말라야 트래킹의 '심오한' 경험을 하고 와서도 여전히 일상을 걸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그저 소비다. (127)

 

페미니즘, 이런 발언 어디서나 듣는단다.

 

처음 마을에 드나들 때 사람들이 물었다.

뭐 하세요?”, “ 남편은, 애들은요?”

( ……)

처음 만나면 사람들이 내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이 뭐 하냐?”남편은?”이었다. (67)

 

이 글 어디선가 읽었던 듯 기시감이 든다.

바로 며칠전에 읽었던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다.

 

<몇년 전 버지나아 울프에 대해서 강연한 적이 있다. 강연 후 질문이 이어졌고,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은 울프가 아이를 낳아야 했을까 하는 질문을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듯 했다.> (14)

 

그렇게 여자가 혼자 있다 싶으면 사람들은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모양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은 밥하는 시간이다.

밥하는 시간이 갖는 의미, 그 시간이 주는 의미를 천착하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이 된다. 그런데 독자들이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에 한정해서 생각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러면 안되는데...

 

이 책은 밥을 넘어선 일상의 모든 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우리가 그냥 시간이 아깝다고 얼른 해버리고 지나가는 일들얼른 해치워버리고 다른 더 귀중한 일에 매진한다는 의미에서 하찮게 생각하는 일조차, 삶의 한 부분,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다. 그런 일조차 삶의 한 부분이 아닌 삶 자체인 것이다.

 

청소기를 돌리면, 청소기는 일을 하고, 나는 그 청소기를 사용함으로 남는 시간을 더 좋은데 사용할 수 있다, 는 차원에서 집안에 청소기를 들여놓고 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청소기를 사용한다면, 청소는 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들고 방을 쓸고 닦는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저자는 그런 시간을 이렇게 말한다.

<비로 쓸면 천천히 내 속도대로 일을 하게 된다. 내 몸을 느끼고, 방바닥을 느낀다. 청소와 청소하는 내 몸이 분리되지 않는다. 청소를 하면서 나 자신이 맑고 단단해진다. 단정해진 방에서 나 또한 단정해진다.>(132)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살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허물고 지어야 할 내 삶의 모습이 보인다. 인생 자체가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모습이 마치 남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그래서 나와는 별상관 없는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간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나의 삶인 줄도 모른 채.  나의 소중한 삶 자체인 것을 모르고 남의 일처럼 무심히 넘겨버린 것이다.

 

더 들어보자.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 이를테면 차를 마시거나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할 때, 청소를 하거나 마당의 풀을 뽑을 때 내 몸과 함께 있으면 일상의 순간순간이 빛난다. 지루한 일이 되기보다 깨어있는 순간들이 된다.

일상적 행위를 습관적으로 하는 것과 그 의미를 자각적으로 알고 하는 행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각적 앎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 일상 행위의 의미를 자각적으로 알고 하는 행위, 이것을 통한 자기 내면의 고양이 일상의 성화(聖化).>

 

바로 모든 순간에 집중하는 게, 심지어 밥을 먹는 시간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바로 일상의 성화인 것을. 이제 알게 된다.

 

해서 이제 앞으로나, ,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잘 바라보고, 내 것을 결코 흘려보내지 않고, 내 것으로 알고 잘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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