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피 할로우 - 워싱턴 어빙의 기이한 이야기 아르볼 N클래식
워싱턴 어빙 지음, 달상 그림, 천미나 옮김 / 아르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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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

 

립 밴 윙클, 찾고 찾았다.

대학 때 원서 강독에선가 립 밴 윙클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후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국 번역판을 찾았는데 그게 표제작이 아니었는지, 찾지 못하고 그냥 지냈었다.

그러다가 이 책 슬리피 할로우목차를 보니, 립 밴 윙클이 들어있지 않은가. 해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슬리피 할로우에는 표제작 슬리피 할로우를 비롯하여 모두 6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악마와 톰 워커

독일인 학생의 모험

립 밴 윙클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책 만드는 기술

유령 신랑

 

이 책은 부제에서 말하는 것처럼 <워싱톤 어빙의 기이한 이야기> 들이다.

그런 기이한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원래 워싱톤 어빙의 스케치북에 실린 것들이다.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스케치북1819년부터 1820년까지 영국에 체류하며 집필하여 출간한 것인데, 수필과 기행문을 비롯해 영국의 전통과 미국의 전설을 담은 수십 편의 단편을 실었다.

 

그러니까. ‘기이한 이야기라 하는 것은 영국의 전통과 미국의 전설들을 수집, 각색해 놓은 이야기인 것이다.

 

예컨대, 립 밴 윙클같은 경우, ‘세상을 떠난 디드리히 니커보커 씨가 남긴 서류들 가운데서 발견’(49)한 것이라는 식으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고, 어빙이 작품소재를 어디선가 수집해서 각색을 했다는 것을 소설식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Nice to meet you, 립 밴 윙클!

  

하여튼. 립 밴 윙클, 몇 십 년전에 읽었던지라, 그 줄거리조차 희미해져, 다만 립 밴 윙클이 뒷산에 올라가다, 술통을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술 몇잔을 마시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20년이 흘렀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립은 여러 사람을 마주쳤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조금 놀랐다. 이 인근에는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차림새 또한 눈에 익은 옷들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에게 시선을 던질 때면 예외 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러한 행동이 자꾸 되풀이되자 립은 자기도 모르게 똑같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자신의 턱수염이 30센티미터도 넘게 자라나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66)

 

잠에서 깨어나 마을에 돌아올 때 립 밴 윙클의 모습이다. 하루 동안이라 생각했는데, 그 동안에 턱수염이 30센티가 넘게 자랐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 아닌가?

 

그렇게 돌아온 립 밴 윙클, 후일담이 무척 궁금했다. 산에서 내려온 후 어떻게 살았는지?

 

이렇게 살았다.

<립은 이제 예전에 하던 행동이나 버릇대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 모습은 시간이 흘러 예전과 달리 많이 상하긴 했어도, 곧 옛 친구들을 여럿 찾아냈다. 그러면서도 신세대와 어울리는 일을 더 좋아했는데, 그들도 차츰 립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77)

 

브라보!!, 몇 십년간 찾고 찾았던 립 밴 윙클의 인생이, 알고 보니 이렇게 잘 풀렸다니. 잘 됐지 뭔가! 그전에는 엄처시하에, 공처가로 꼼짝 못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워싱톤 어빙은 이런 말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주변 공처가들이 삶이 고달플 때 품게 되는 공통된 소망은 립 밴 윙클이 마셨던 그 술을 한잔 쭉 들이켰으면 하는 것이다.>(78)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결말이다.

이런 결말은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령 신랑같은 작품도, 어디선가 그런 전설이 내려오는 것을 수집해 놓은 것이겠지만, 단지 유령의 출현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아니라 결말은 사랑의 개가를 그려놓고 있으니, 해피 엔딩이다. 그런 유령은 몇 명 만나도 좋을 것 같다.

 

이 시대에 새겨볼 작품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의미있게 읽히는 것은 책 만드는 기술이다.

그 작품을 요즘 한창 책쓰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여러 가지 책을 대충 띄엄띄엄 읽고는, 원고를 휘리릭 넘겨가며 이 책에서 조금, 저 책에서 조금씩 갖다 붙였다. 다시 말해, 한 줄에 한 줄을 더하고, 격언에 격언을 더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다 쓰는 식이었다. 그가 완성한 책의 내용은 맥베스에 나오는 마녀의 가마솥에 들어가는 재료처럼 마구잡이로 뒤섞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 손가락 하나, 저기에서 엄지 하나를 가져다 넣고, 개구리 발가락과 발 없는 도마뱀의 독침을 섞어 만든 잡탕을 걸쭉하고 맛있게 만들겠다며 자기 자신의 잡답을 개코원숭이의 피처럼 마냥 들이붓는 식이었다.> (137)

 

이런 식으로 책을 찍어내는지, 어떤 사람은 수십 권 책을 펴냈다고 자랑질을 하던데, 그런 말을 들으면, 고개를 저절로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책 만드는 기술」이란 작품 읽어보니, 워싱톤 어빙도 분명 그런 책 찍어내기에는 갸우뚱 고갯짓을 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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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과학이야기 - 과학으로 세상읽기, 최신 개정판
권기균 지음 / 종이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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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과학이야기

 

하나라도 알면, 이제 더 보이나니

 

책을 읽으면서, 한 걸음 더 깊숙한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바로 며칠 전, 생각을 빼앗긴 세계(프랭클린 포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구글의 회사명은 0100개나 붙는 숫자 구골(googol)에서 따왔다. 구골은 수학자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숫자를 간략히 줄여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11)

 

구글이라는 회사 이름이 구골에서 왔다는 것, 그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사실이었는데, 이 책 세상을 바꾼 과학이야기에서 더 깊숙한 글을 만난다.

 

<어린이들은 느낌을 그대로 표현한다. 10100제곱을 이르는 구골은 어린이가 만든 단어다. 1938년 미국의 수학자 에드워드 캐스너가 10100제곱을 뭐라고 부를까 생각하다 9살 난 조카딸 밀턴 시로타에게 묻자 밀턴은 구골이라고 했다. 1940년 캐스너는 제임스 뉴먼과 함께 쓴 수학과 상상이라는 책에서 구골을 소개했다.> (213)

 

그러니 구글에서 구골을 알게 되고, 이제 구골의 연원을 알게 된 것이니, 한 걸음 더 깊게 알게 된 것이다. 아마 그 책에서 구글의 회사 이름이 구골에서 온 것을 읽어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 책에서 구골의 유래도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별 관심 없이.

 

그러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실학자 유한쥰 선생의 말이 그대로 맞다는 것,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정도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에 유머 하나가 소개되고 있다. (213)

어린아이가 TV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프로그램을 보더니, 이렇게 물었단다.

미스 코리아 있잖아요. ‘가 아름다울 미인 건 알겠는데, ‘스 코리아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우스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가진 과학관련 지식이 그렇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가진 과학 지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과학으로  ‘과도 그렇고 ‘학도 모른다는 말.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온통 새로운 배움으로 가득하다.

 

민물고기과 바닷물고기의 차이는?

그런 차이점 생각해 볼 생각, 해본 적이 없다.

이 책에서 둘 사이의 차이점을 알고,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민물고기과 바닷물고기는 몸의 기능이 다르다.

민물고기는 몸 속 소금 농도가 민물보다 높아 삼투압 현상 때문에 물이 고기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수분이 많아지면 콩팥이 흡수해 오줌으로 배설한다. 그러다 정 목이 마르면 아가미를 통해 외부의 수분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바닷물고기는 어떨까?

바닷물고기는 물고기 몸속보다 바닷물의 소금 농도가 높아서 배추가 소금에 절 듯이 몸에 있는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것을 조절하려고 바닷물을 입으로 마신 뒤 아마미가 물은 흡수하고 염분은 걸러낸다. (140)

 

신기하지 않은가?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의 몸이 서로 다르다니!

이런 내용, 다른데서 듣지 못했다. 물론 관심이 없었으니 들어도 그냥 지나쳤을 게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엔 그렇게 신기한 기능들이 그득하다>고 말하는 저자 말처럼 이 책엔 신기한 내용들이 그득하다.

 

또 하나 특징은 저자가 과학을 인문학적 차원에서 접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소개된 책들, 몇 권만 인용한다.

 

쥘 베른, 20세기 파리(21)

레이 브레드버리 화씨 451(41)

허버트 조지 웰스 타임 머신(104)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121)

시오노 나나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143)

토마스 쿤 과학 혁명의 구조(155)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191)

추구집(推句集)(201)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207)

조지 오웰 1984(209) 등등 .

 

이런 이야기 들어봤는지?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스웨덴 국왕이 수상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

그 질문에 수상자, 얼떨결에 대답한다.

다음 번 시상식엔 꼭 같이 오겠다.”

 

그런데 얼떨결에 한 그 대답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존 바딘의 이야기다. 그는 1972년에 다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55)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참으로 다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해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분야가 얼마나 넓고 넓은지, 독자들의 시야를 넓게 해줄 것이다.

 

생물, 미생물, 식물, 동물, 곤충,

우주, 하늘, , 바다.

우주선, 자동차,

현미경, 망원경, 온도계,

지퍼, 나일론, 등등

하여간, 이곳저곳으로 독자들을 마치 신대륙을 보여주는 것처럼 안내해 주고 있다.

 

아 참, 구글 이야기 미처 다 하지 못했다.

구글, 회사 이름을 등록하려고 할 때, 처음에는 회사 이름을 구골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인터넷 도메인을 등록하려다가 입력하는 친구가 구골을 구글로 잘 못 입력했다. 그런데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google.com 이 되었다.(214)

 

저자는 그렇게 뭐 하나를 거론하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끝까지 추적하여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런 저자의 과학자 습성과 태도가 독자들에게는 복이다. 이야기 거리가 더욱 풍성하게 되니까.

 

변하고 있는 세상 물정을 과학도 알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우물안 개구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과학도 알아야 세상을 바로 읽을 수 있다. 이 책, 그렇게 세상을 조금더 넓고 깊게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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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빼앗긴 세계 - 거대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반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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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빼앗긴 세계 - 또다른 형태의 디스토피아

 

원숭이의 꽃신

 

이 책을 읽으니, <원숭이의 꽃신> 이란 동화가 떠오른다.

맨발로 다니던 원숭이, 어느 날 여우가 가져다 준 꽃신을 신어보고 그 푹신한 느낌에 혹해 꽃신을 신기 시작했다. 처음 꽃신을 권할 때 여우는 그저 공짜로 신어보라더니 신던 꽃신이 헤져 다시 꽃신을 신겠다 하자, 이번에는 값을 달라고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점차로 값을 올린다는 이야기. 맨발로 걷던 원숭이 발은 이제 꽃신 없이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우리가 그런 원숭이 신세가 된 것 아닌가.

이제 핸드폰 없이는 전화 한 통도 못한다.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질 않으니!

그전에는 전화번호 수십개는 쉽게 외우던 머리가 이젠 자기 전화번호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게 다 테크기업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맨발로 걷던 원숭이, 꽃신을 신고 다니니 발은 부드럽게 편해졌는지 몰라도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많다. 여우 손에 꽉 잡혀 지내야 한다.

 

그것처럼 테크기업 덕분(?)에 우리 일상은 너무나 편리해졌다. 그런데 그 편해진만큼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

 

그래서 결론을 미리 말하면, 저자는 이들의 독점이 빚어낸 결과를 꼼꼼히 따져보고 우리 역할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 읽어보자. 충격이다.

<우리는 이미 일정부분 사이보그가 되었다. 우리의 폰은 기억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고, 기초적인 두뇌활동을 알고리즘에 위탁했으며, 자신만의 비밀을 외부 서버에 저장해서 컴퓨터로 정보를 캐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20)

 

우리는 알게 모르게, 테크기업의 손 안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저자가 갈파한 것처럼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가 되어서, 원격조정을 받고 사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테크기업에서 우리의 식성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 우리의 거처도 알고 있으니, 근처 마트로 가서 이러저러한 식품을 사라고 문자를 보내준다. 마트에서 보내주는 할인행사 안내문도 수시로 받아본다. 그런 문자에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겨 정신차리고 보니, 이게 웬일?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단순히 기계와 한 몸이 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기계를 운영하는 기업들과 한 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고(思考)의 외주화 - 알고리즘에 맡겨버린 결정과정

(역자는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를 알고리듬으로 번역하여 놓았지만, 요즈음 거의 모든 용례가 알고리즘이라 하기에 여기서도 알고리즘이라 표기하였음.)

 

<알고리즘은 사고를 자동화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인간의 손에서 내려놓기 위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88) 것이다.

 

그렇게 개발된 알고리즘을, 아무 생각없이 정확하게 단계를 따르다보면 실패없이 매번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에, 이제 모든 의사 결정과정에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알고리즘은 누군가 그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기기에 장착해 놓은 사람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에,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누군가의 손에 자기 의사결정권을 맡겨 놓은 셈이 되었다.

 

이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문제는 우리가 사고를 기계에 아웃소싱하면, 사실은 그 기계를 운영하는 기업에게 아웃소싱하는 거라는 점이다.> (98)

 

사고의 외주화, 흔히 매스컴에서 듣는 '사고(事故)의 외주화'가 아니라, '사고(思考)의 외주화'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내가 삽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 삽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지식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113)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주의력은 결핍된다.(117)

( 이 부분은 우리가 인터넷 서핑을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기에 길더라도 인용해 둔다.)

공짜 콘텐츠의 범람은 새로운 형태의 결핍을 낳았다. 읽고 보고 들을 것이 넘쳐나고, 링크를 따라가다보면 끝도 없이 사이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오디언스의 주의를 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를 총체적인 소음이라 한다. 총체적인 소음 속에서 우리는 집중력이 떨어진 채로 인터넷의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글을 읽게 되었다. (……) 따라서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주의력은 결핍된다.

 

다시 이 책은? - 우리 곁에 와있는 테크 기업

 

데이터를 축적하면 당신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그들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38)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파괴해서 (그들만의) 제국을 건설했다. (240)

 

괄호 안에 그들을, 그들만의를 집어넣은 것은 이 책의 결론을 말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미 그들이 만든 제국의 백성이 되었다. 세상 편해졌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태평성대를 구가한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를, 우리의 손발은 어느새 그들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끝낸다.

( ……………………… ), 우리 자신에 대한 주체성을 장악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사색하는 생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298)

 

( ……………………… )은 일부러 비워놓았다. 저자가 말한 것도 좋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사색하는 생활이 가능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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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불러낸 사람들 - 플라톤에서 몬드리안까지 안그라픽스 V 시리즈 1
문은배 지음 / 안그라픽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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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불러낸 사람들 

 

 

글쓰는 엄마의 이탈리아 여행법(김춘희/ 더블엔)을 읽다가 이런 글을 만났다.

 

<베니스의 집, 그리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불린의 집들이 저마다 예쁜 색깔의 대문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늦게 귀가하는 남편들 때문이다. 술에 취해 늦게 돌아오는 남편들이 집을 헷갈려 다른 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바람에 곤란한 일이 자주 생기자, 그걸 막기 위해 대문의 색을 다르게 칠했다는 것.> (146)

 

그렇게 일단 색은 달라야 한다. 그래야 서로 구분이 된다.

색깔이 달라 구분이 되니집들이 저마다 예쁜 색깔의 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색의 쓰임새가 다양한 것,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새롭게 듣는 이야기가 많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다양한 내용들이 펼쳐져서 색에 관한 이야기가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을 보면, 단순하게 색에 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색을 불러낸 사람들이니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어떤 사람들?

색을 연구한 사람들이다.

색이라 함은 그저 우리가 떠올리는 크레파스 색깔 차원의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 먼저 짚고 가자.

 

색에 대한 그 정도의 인식을 넘어선, 색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또한 색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세상에, 색깔을 이야기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다니. 의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헌, 하나 이야기 해보자.

그는 어느 날 대리석 사이를 거닐다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한다.

색이 없는 빛이 노란 유리와 파란 유리를 동시에 통과해서 대리석 벽에 비치니 녹색으로 보였다. 그래서 녹색은 노랑과 파랑의 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녹색의 정체를 노랑과 파랑의 합성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18)

 

우리가 미술시간에 배웠던 녹색 = 노랑 + 파랑의 공식,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것이란다.

이런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또 있다. 괴테와 뉴턴의 공통점이 있는데, 무엇일까?

뜻밖에도 그 두 사람은 색채 심리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했다는 점이 같다. (32)

 

또 하나, 그간 우리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 바로 잡아보자.

<우리는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물감의 삼원색은 빨강, 노랑, 파랑이고 이 세가지 색을 다 섞으면 검정이 된다고 배웠다.>(47)

 

그게 사실일까?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빨강, 노랑, 파랑을 섞으면 절대 검정이 되지 않는다. 섞을수록 어두워지지도 않는다.>

 

, 이런 사실을 이제야, 이 책으로 알게 되다니! 그동안 나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잘못된 지식하나 바로 잡는다. 다행이다. 감사한 일이다.

 

정리하자, 물감은 섞을수록 중간색이 나오는 중간혼색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빛은 또 다르다. 빛은 더할수록 밝아진다. 이게 올바른 내용이다.

 

그렇게 하나씩, 한명씩 소환하여 그들이 주장한 바를 읽다보니, 이제 색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니 애초에 색은 감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감정의 색에 감정을 넣어 채색을 하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알타미라 동굴에 그림을 그린 시대부터다.

 

<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전하지만 정보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온통 붉게 칠해진 곳을 보면 위험하다고 느끼는가 하면, 녹색으로 표시된 녹십자를 보면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색은 지역과 언어를 초월한 표시의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부터 이런 색채의 기능을 연구하고 개발하였을까?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도 있지만 확실한 색채 규범을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를 지낸 파버 비렌이다.> (97)

 

그렇게 색깔에 의미를 부여한 결과, 색깔이 이제 만국공통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파버 비렌이 오렌지 색을 위험을 알리는 장치로 설계해, 사고를 줄이는데 기여했다는 점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가들의 이야기, 화가들이 화폭을 채우는 다양한 방법들. 색깔과 화가들에 얽힌 일화들, 읽다보면 상식도 겸하여 풍부해진다.

 

이 책 덕분에 색깔을 그저 눈에 보이는 색깔로만 인식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색 속에 색이 있고, 색 넘어 색이 있다는 것, 그렇게 색의 무궁한 의미와 역할 알게 되니 이제야 진짜 색이 제대로 보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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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 노회찬이 꿈꾸는 정치와 세상
노회찬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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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이 책은 이제는 고인이 된 노회찬을 향한 그리움을 담뿍 담아놓았다.

제목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는 한 문장으로 노회찬 의원을 표현하는 말이 된다.

 

이 책은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노회찬 의원과의 인터뷰한 것을 실어놓고 있다.

2장은 노회찬을 알던 지인들이 쓴 헌사.

3장은 노회찬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먼저 이런 글 읽어보자.

 

<매일 국어사전을 읽는 사람이 있다. 아니, 있었다. 오래전부터 국어대사전을 탐독해왔다는 그는 읽을수록 한국어의 깊이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간혹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는 경우에도 국어사전만은 꼭 읽고 잠들었다.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이 특이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은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세상 사람들은 노회찬의 촌철살인·유머가 그저 타고난 재능이겠거니 했다. 그가 한국어를 얼마나 갈고닦았는지는 모르고 있다. 보통 정치인과 달리 그가 적확한 용어와 단어로 상황을 정의하고, 적절한 분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어에 대한 오랜 집착의 결과다.> (227 ~ 228 )

 

그런 노력을 하길래, 다음과 같은 발언이 나왔겠다 싶다.

 

그의 어록

 

정치는 회를 써는 것이지 생선을 해부하는 게 아닙니다. 생선을 해부하듯 회를 썰면 해부는 했을지 몰라도 먹기는 곤란합니다. 이런 일이 진보진영에서 왕왕 생겼습니다. (82)

 

인권을 소금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소금은 많이 넣으면 소금국이 되지만 인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86)

 

얘기가 쉽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재미 속에 내용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들은 뒤 머릿속에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132)

 

세상을 진보시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진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136)

 

50 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서 구워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립니다. 이제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137)

 

이런 말을 읽으면서 새삼 그를 생각하게 된다.

많은 정치인들이 말들을 쏟아놓는데, 노회찬처럼 격조 있는 그리고 전체를 아우르는 발언을 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재미있는 화술은 현란한 기교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적인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86)고 말한 노회찬, 많이 생각이 날 거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상처가 깊은만큼 물음도 깊어진다. (68)

 

당장 굶는다고 라면을 미화하는 것은 끼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74)

 

우리는 우정과 낙관, 유머로 서로를 북돋울 것이며,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 (151) - 국제 녹색당 헌장

 

문명이 발전되는데 가장 큰 원동력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다. (167)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다시, 이 책은?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하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 먹먹하다가 노회찬 의원을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먹먹한 기분으로, 책을 덮으려는데 이런 말이 보인다.

 

영화 <동사서독> 애서 장만옥은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장국영을 그리며 말한다.

내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습니다.” (229)

 

그 말을 읽으니 가슴이 더 먹먹하다.

이제,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와도 그는 없다.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 먹먹하다.

 

아쉬운 점 한 가지

 

노회찬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늦게나마.

그래서 이 책도 열심히 읽을 것이다.

이 책은 노회찬이 대담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또 지인들이 노회찬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도 있으며, 노회찬의 육성이 들어 있는 글도 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대담은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 또 노회찬의 육성은 언제, 어디에서 행한 연설인지 알려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사항들을 알고 글을 읽으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훨씬 빨리,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을, 전혀 그런 보충설명이 없으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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