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춤추게 하는
『춤추는 세계』
뭐 언제 춤을 추어봤어야지,
춤이라곤 어깨춤이나
추어봤을까?
그래서 이 책 나 자신도 의외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의외의 길도
가봐야지!
생전 경험하지도 않은,
또 해볼 생각조차 안했던 그
분야,
그런 것 알기 위해 책은 읽는
것이니까.
그런 거창한 명분하에 이 책을 펼쳐들었다.
『춤추는 세계』
아차,
남이 춤추는 건
봤구나.
공연을 눈앞에서 본 건 아니지만
TV
같은데서 보기는
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춤은
‘그리스인 조르바’가 추는 춤. 또 하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도약하는 발레 슈즈.
이 책의 저자는 허유미.
저자는 다양한 단체에서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 책은,
여행기 형식을 취하여 세계 곳곳의
춤을 소개하는 책으로 다음과 같은 춤들을 소개하고 있다.
1.
알바니아,
발랴 -
춤도,
역사도,
누구의 것도
아닌
2.
인도,
바라타나티얌
-
세상 모든 움직임이
춤이다
3.
발리의
전통춤 -
먹고,
춤추고,
사랑을
꿈꾸다
4.
고성,
고성오광대 -
춤을 수확하는
사람들
5.
아일랜드,
아이리시 댄스
-
정서는 형식의 씨앗이 되지
않는다
6.
중국,
프로파간다 발레
-
정치 제도는 춤의 형식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7.
서울,
종묘제례악 -
권력의 기호가
움직인다
8.
조지아,
국립무용단 수키쉬빌리
-
제도가 아니라면
자연이었을까
9.
로잔,
모리스 베자르
-
삶의 여정이 끝나도 쇼는
계속된다
10.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
나는 누구의 춤을 추고
있는가
11.
일본,
부토 -
나와 춤의
교차점
종묘제례일무
-
『논어』의
<팔일(八佾)>
그렇게 각국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서울 종묘제례악이다.
<종묘제례는 조선시대에 공식적으로 일 년에 다섯 차례
이루어진 국가 최고의 행사로서,
선대왕들에게 감사를 올리고 국가의
화합을 다지는 길례였다.
사당의 문을 열어 음식과 술을
올리고 신을 보내는 과정 사이사이에 종묘제례악을 공연한다.>(139쪽)
그렇게 읽어가다가 『논어』의 <팔일(八佾)편>에 나오는 구절 하나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구절은 논어를 공부하면서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두었던 것인데 뜻밖의 책에서 뜻밖의 경로를 통해,
다시 공부를 하게
되고,
충분히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 기쁨을 다음과 같은 글로
남겼다.
팔일(八佾)
편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孔子謂季氏 八佾 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위계씨 팔일 무어정 시가인야
숙불가인야)
해석은 다음의 두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공자님이 계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하다니,
이 자를 참고 보아 넘길 수
있다면,
그 누구를 참고 보아 넘길 수가
없겠는가?”
(『논어』,
김학주 역주,
서울대
출판원,
37쪽)
공자가 계씨를 비판하기를.
“8열 64명의 무용수에게 뜰에서 춤추게 하니,
이런 일을 감히 한다면 어느
짓인들 못하리오.”
(『주희가 집주한 논어』,
정후수 역,
장락,
71쪽)
그런 팔일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자 팔일무를 보시고,
화를 내시다.
[1]
http://blog.yes24.com/document/11531897
공자 팔일무를 보시고,
화를 내시다.
[2]
http://blog.yes24.com/document/11532771
공자 팔일무를 보시고,
화를 내시다.
[3]
http://blog.yes24.com/document/11534229
공자 팔일무를 보시고,
화를 내시다.
[4]
http://blog.yes24.com/document/11535951
공자 팔일무를 보시고,
화를 내시다.
[5]
http://blog.yes24.com/document/11536049

저자가 이 사진에 붙인 설명- <당일 팔일무에
참여한 내가 어딘가에 있다.>
인문학과 춤을
접목시키다
그렇게 뜻밖의 기쁨을 맛보게 한 이 책,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모리스 베자르,
프랑스의
무용가.
그는 전문 춤꾼으로 활동하면서도 항상
인문학저,
예술적 소양을 넓히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이다.(178쪽)
저자는 그에 대하여 다각도로 묘사를 해
놓았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확실히 동시대 안무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저 몸들이 움직이는 아름다운
장면이 아닌,
생의 심오한 깊이를 품은 시를
보는 느낌이다.>
(180쪽)
<베자르의 작품에 「루미」가 있다.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탄생 8백 주년을 맞아 헌정되었다.
신비주의와 수피즘을 추구한 루미의
시가 추상적인 몸짓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
인간존재를 여인숙에
빗대어,
여러 감정이라는 손님들이 이곳에
오가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 「여인숙」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189쪽)
「여인숙」은 읽어본 적이 있어 나에게도
친숙한데,
여기
소개해본다.
인간이란
여인숙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초라함
몇 가지 순간적인 깨달음이
뜻밖의 손님으로 찾아온다.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하라
그들이 한 무리의
슬픔이라서
그대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
가구들을 다 없애더라도
여전히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여
대접하라
아마도 그는 새로운 상쾌함을
위해
그대를 청소해주는 것일
테니
암울한 생각,
수치심,
못된
마음
그들도 문에서 웃으며
맞이하라
그리고 안으로 초대해
들이라
그 누가 오든지
감사하라
각자의 손님은
안내자로서
저 위로부터 보내졌을 테니
다시,
이
책은?
그렇게 저자 뒤를 따라 여러 나라를 다니며 춤을 구경하는 사이 책을 다
읽었다.
신기 그 자체다.
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이렇게 재미나게 읽다니!
그냥 구경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 같이 춤도 춘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 그리고
재미,
의미를 함께 느끼고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논어 구절 하나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어 기뻤다.
그 기쁨,
생각하니 그럴 때 사람들은 춤을
추었겠다 싶다.
나야 춤엔 통나무이니까 뻣뻣하게 위아래로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출까?
그것도 춤이라면 춤일까?
아,
있다,
저자가 이런 춤도 소개하고
있다.
아일랜드 춤이다.
아일랜드 춤은
‘상체를 수직으로 세우고 현란하게 발을 움직이며 팔동작을
거의 하지 않는다.’(102쪽)
그런 춤은 발동작 빼고 출 수
있겠다.
그렇게 춤을 추게 하는 책읽기의 기쁨,
저절로 어깨춤이
나온다.
이래서 사람들은 기쁨을 만끽하느라
춤을 추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