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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 이재운 역사소설
이재운 지음 / 시그널북스 / 2020년 1월
평점 :
장영실
이 책은?
이 책 장영실』은 조선시대 과학자로 많은 공적을 세운 실제 인물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이재운, 소설가로 『소설 토정비결』이라는 역사소설을 발표한 후 많은 소설을 펴냈다.
이 책의 내용은?
<소설 장영실>은 최소한의 픽션만 넣고, 가능한 한 사실을 상상하며 정직하게 그렸다. 사료가 워낙 부족하여 자칫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을 기초로 하여 사실 관계를 따라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의 마지막 쪽에 저자가 덧붙여 놓은 글이다.
해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선왕조실록>을 참조하면서 읽었다.
장영실의 신분에 대하여,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고려의 충신 장성휘로 나온다. 그는 고려의 정 3품, 전서(全書)로 정몽주의 측근이었다.(9쪽) 조선 왕조 창건 과정에서 몰락하여 그 부인인 장영실의 어머니는 관기로, 그 아들인 장영실은 관노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버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행 사직(行司直) 장영실(蔣英實)은 그 아비가 본래 원(元)나라의 소주(蘇州)·항주(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9월 16일 을미 3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의 기록이다.
이 작품에서는 관노로 있다가 그 솜씨를 인정받아, 세종에게 불려 올라가는 것으로 나오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미 태종때에 인정받아 활동했던 것으로 나온다.
그런 후 많은 공적을 이루자, 세종은 그를 면천하는 것은 물론 벼슬을 내리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의론이 이루어진다. 조선의 상황을 알아두는 데 필요한 사료(史料)이니, 해당부분을 옮겨본다.
< (장영실을) 임인·계묘년 무렵에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를 시키고자 하여 이조 판서 허조와 병조 판서 조말생에게 의논하였더니, 허조는, ‘기생의 소생을 상의원에 임용할 수 없다. ’고 하고, 말생은 ‘이런 무리는 상의원에 더욱 적합하다. ’고 하여, 두 의논이 일치되지 아니하므로, 내가 굳이 하지 못하였다가
그 뒤에 다시 대신들에게 의논한즉, 유정현(柳廷顯) 등이 ‘상의원에 임명할 수 있다. ’고 하기에, 내가 그대로 따라서 별좌에 임명하였었다.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서, 매양 강무할 때에는 내 곁에 가까이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順帝)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그러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었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護軍)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
하니, 희 등이 아뢰기를, "김인(金忍)은 평양의 관노였사오나 날래고 용맹함이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호군을 특별히 제수하시었고, 그것만이 특례가 아니오라, 이 같은 무리들로 호군 이상의 관직을 받는 자가 매우 많사온데, 유독 영실에게만 어찌 불가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김인이라는 평양 관노가 벼슬을 받은 전례가 있어, 장영실도 벼슬을 받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그런 장면이 이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재현된다.
<사람을 시켜 왕실 전적을 살펴보니, 장영실은 본디 고려 조정에서 전서 자리에 있던 장성휘의 아들이라, 비록 아비의 죄를 입어 관노가 되었지만 그 재주가 비상하니 오직 나라를 위해 헌신하라는 뜻으로 그대에게 정5품직을 내리겠다.> (112쪽)
그의 마지막 행적
그간 궁금했었다. 그의 행적이 세종의 어가 사건을 끝으로 하여 사라졌다는데, 과연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되었는지? 먼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본다.
세종실록 96권, 세종 24년 4월 27일 정사 2번째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년 .
장영실에게 두 등급을, 임효돈과 김효남에게 한 등급을 감형하고 조순생은 처벌하지 않다.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대호군(大護軍) 장영실(蔣英實)이 안여(安輿)를 감독하여 제조함에 삼가 견고하게 만들지 아니하여 부러지고 부서지게 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1백 대를 쳐야 될 것이며, 선공 직장(繕工直長) 임효돈(任孝敦)과 녹사(錄事) 최효남(崔孝男)도 안여(安輿)를 감독하여 제조하면서 장식한 쇠가 또한 견고하게 하지 아니했으며, 대호군(大護軍) 조순생(趙順生)은 안여가 견고하지 않은 곳을 보고 장영실에게 이르기를, ‘반드시 부러지거나 부서지지 않을 것이오. ’라고 하였으니, 모두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80개를 쳐야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장영실에게는 두 등급을 감형(減刑)하고, 임효돈과 최효남에게는 한 등급을 감형하며, 조순생에게는 처벌하지 않도록 명하였다.
세종실록 96권, 세종 24년 5월 3일 임술 2번째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년.
박강·이순로·이하·장영실·임효돈·최효남을 불경죄로 다스리다.
임금이 박강(朴薑)·이순로(李順老)·이하(李夏)·장영실(蔣英實)·임효돈(任孝敦)·최효남(崔孝男)의 죄를 가지고 황희(黃喜)에게 의논하게 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람들의 죄는 불경(不敬)에 관계되니, 마땅히 직첩(職牒)을 회수하고 곤장을 집행하여 그 나머지 사람들을 징계해야 될 것입니다." 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 소설에서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임금이 타고가는 안여(安輿)를 감독하여 제조함에 삼가 견고하게 만들지 아니하여 부러지고 부서지게 하였으니,장영실은 의금부에 투옥되고, 삭탈관직 된 후에 장 80대의 형벌을 받게 된다. (274, 277쪽)
그 뒤로, 장영실은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조선 최고의 과학자,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인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것이 아쉬웠던지, 저자는 이런 덧붙임을 통해 장영실에 대한 세종의 사랑을 전한다.
<한참이 지나 그의 후견인을 자처해온 이천이 슬며시 귓속말로 저간의 사정을 전해주었다.
“장영실 대감, 주상 전하께서 자네에게 성심을 전하라더군.”
“무슨 성심이 따로 있으리까, 대감.”
“자네가 만든 연, 그거 명나라 황제의 연보다 더 화려하고 크고 감히 발가락 다섯 개짜리 용까지 그려 넣었다며?”
“그렇습니다. 마땅히 주상 전하가 타실 어가인데 아무려면 신이 소홀히 만들었겠습니까.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그게 문제였다네. 명나라 사신들이 마침 들어왔다가 함께 행차에 나서 따라갔는데, 그중에 누군가가 그걸 시비했다네. 명 황제에게 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걸 세자가 알아서 사태를 수습한 거라네. 일부러 연을 부수고, 자네들에게 벌을 내림으로써 명나라와의 갈등을 잠재운 것이니 그리 알게나.”
“다 짐작하고 저지른 일입니다.”
“내 잘못이기도 하네. 연을 보고 명나라 황제가 알면 문제를 크게 삼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던 거야. 물론 우리 주상 전하 성미로 버티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훈민정음 반포라는 전무후무한 대사건을 눈앞에 두고 계셨지 않았는가. 그 대사업도 실은 세자가 중간에서 몰래 주관했는데, 어가 문제로 자칫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가 심히 틀어지면 훈민정음을 놓고도 싸울까 봐 미리 손을 쓴 것이라네.”> (281-282쪽)
그런 아쉬움, 비단 세종의 아쉬움만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의 과학발전에 매진해온 과학자의 끝이 더 좋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다시. 이 책은?
그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다른 아쉬움이 있다.
바로 이 책이 소설이기에, 소설적인 전개가 너무 평이하다는 점이다.
소설이라면, 갈등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 해서 소설의 재미? 부족하다.
물론 저자가 밝히기를, <소설 장영실>은 최소한의 픽션만 넣고, 가능한 한 사실을 상상하며 정직하게 그렸다. 사료가 워낙 부족하여 자칫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을 기초로 하여 사실 관계를 따라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긴 했지만, 소설로서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끌어가는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이 책의 부제에서, <조선 최고의 과학자,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라고 했으니, 그 부분을 더욱 부각시키는 어떤 그 무엇을 기대했었는데, 그래서 어떤 색다른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그게 단지 세종의 성심으로 마무리를 짓는 게,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