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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평점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이 책은?
이 책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소설이다.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김훈. 저자 김훈에 대하여는 굳이 소개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인류 역사가 시작될 즈음이다. 저자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어 놓은 단서가 몇 개 있는데, 첫째는 『시원기(始原記)』와 『단사』라는 책의 존재이며, 다음은 ‘맨 처음 말 잔등에 올라탄 사람은 추(芻)였다’(51쪽)는 기록이다. 사람이 말 등에 처음 올랐을 때가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인 것이다.
지리적 배경은 초나라, 단나라 두 나라가 있다.
사이에 나하(奈河)라는 강을 두고, 두 나라가 대치하고 있다.
이 소설의 시작은 인류의 시작점이다.
『시원기』와 『단사』, 저자는 인류의 처음 즈음에 있던 두 나라 이야기를 전해준다.
초, 단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시원기』와 『단사』가 전해주고 있는데, 거기에 기록되지 않은 게 있어, 화자가 전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식이다. 표와 연은 초나라의 왕과 아우, 즉 왕제다.
표와 연의 대화 내용은 『시원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표와 연 사이에서 말을 옮긴 무녀가 그 내용을 부락민들에게 전했는데, 그 파편이 후세에 전한다.
표가 말했고, 무녀가 표의 말을 연에게 옮겼다.
- 나와 함께 초원으로 말을 달리고 싶었다. 너는 요즘 말을 타느냐?
- (생략) (199쪽)
그러니 『시원기』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화자가 들어 옮기는 것이다.
화자의 전지적 시점
화자는 인간의 생각과 말을 옮기기도 하고, 때로는 말(馬)들의 생각과 말(言)을 전해주기도 한다. 화자의 시점이 사람과 말이 섞여 진행되는 것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런 영화 말이다.
전쟁터에서 말을 탄 군사들이 양편으로 갈라 싸우는데, 전열이 흩여져 서로 섞이는 모습. 거기에 말까지 섞여 들어, 시점이 제각각이다. 카메라는 때로 말의 눈이 되기도 하고, 때로 사람의 눈이 되기도 하는 그런 영화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사람과 말(馬)의 생각까지, 글로 잡아내고 있으니, 문장은 간결하되, 그 품은 것은 많아서 읽다 보면 저절로 이게 바로 김훈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 김훈이다.
김훈하면, 글 내용도 대단하지만, 문장 아닌가?
김훈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 책 또한 문장이 정말 문장이다.
군더더기는 약에 쓸래도 찾아볼 수 없으니, 도처에 따라하고 싶은 글들 지천이다.
김훈의 글은, 눈으로 읽어도 어느새 입으로 읽어지게 된다.
어디 한번 눈으로만 읽어보자. 입 꼭 다물고 읽어보자.
색의 바다는 노랑에서 파랑으로 건너갔는데 바람이 불면 노랑과 파랑이 섞여서 흔들렸다. (205쪽)
입은 다물었으되, 뇌에서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게 되는 문장, 그래서 김훈이다.
줄거리 몇 마디
이게 말(馬)들의 이야기에 사람이 섞여 있는지, 사람의 이야기에 말들이 섞이게 되는지?
그게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맨처음 잔등에 사람을 태운 푸른 말이라는 뜻을 지닌 말 '총총'으로부터, 단나라의 '야백', 초나라의 '토하'. 그밖에도 이름 지어주지 않은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말들을 사이에 두고, 초나라와 단나라의 싸움, 그리고.....
말들의 이야기
소설가에게는 얼마만큼의 관찰력이 필요한가?
이 소설에서 저자의 관찰력으로 해서, 말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
재갈에 관하여, 재갈은 이빨과 이빨 사이의 빈자리에 가로 물려 있었다, 혀로 밀어 올리면 재갈은 들썩거렸으나 빠지지는 않았다. (58쪽)
말들은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이빨이 돋아나지 않는 빈자리가 있다. 말은 머리가 길고 입안이 넓어서 잇몸에 이빨을 모두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빈자리가 생긴 것이다. (81쪽)

* 인터넷에서 빌려온 자료 그림이다. 말의 구강과 재갈, 잘 보여준다.
말이 태어나는 순간을 기록한 부분, 읽어보자.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야백은 내 다리로 섰다. 네 다리가 땅을 디딜 때, 야백은 그 다리에 와 닿는 느낌으로 땅의 든든함을 알았다. ( …… ) 야백은 땅을 딛는 다리의 힘이 신기해서 열 걸음을 걸어가고 나서 누웠다. 어미가 다가와서 야백을 핥았다. (68쪽)
야백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 격인 말(馬)인데, 그 말이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이 문장 읽다보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쉬울 정도다. 태어나는 순간 두 다리로 서서 땅을 디뎌볼 수 없다니. 땅을 감히 느껴볼 수 없는 게 사람이라니! 태어나 바로 걸었다는 석가라면 혹시 모를까?
저녁 이슬에 몸이 젖어서 토하는 한기를 느꼈다. 토하는 몸을 흔들어서 이슬을 털어냈다. (237쪽)
바람 한줄기가 토하의 콧구멍으로 들어와서 창자를 훑고 내려갔다. 토하는 헉헉대며 바람을 마셨다. (238쪽)
아침에 토하의 입속 양쪽에서 재갈이 걸리던 이가 빠졌다. (240쪽)
다시 이 책은?
줄거리 계속. 말 두 마리, 서로 잠깐 만났던 야백과 토하는 다시 만난다.
그러니 이 소설은 말이 주연이다. 두 마리 말은 재갈이 풀린 다음에 서로 만난다.
같이 만나, 같이 생을 마감한다. 해서 이 소설 말 이야기다.
제목도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다.
달을 향해 말들은 달리곤 했었다. 이 책 초반부에 나오는 것이다.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
한 마리가 달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모든 말이 소리를 토해내며 달려갔다. (48쪽)
물론 재갈이 물리기 전의 얘기다. 재갈이 물린 다음부턴 말의 향방은 재갈 물린 자가 정했다.
그런 말 중의 두 마리, 재갈 때문에 늘 함께 있지 못하던 야백과 토하는 재갈이 풀린 다음에 다시 만나, ‘달 너머로’ 달려 간 것이다.
김훈은 말 입속에 물린 재갈 이야기를, 재갈이 풀리기를 소원한 말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