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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솔로 - 유리의 지평선
라인홀드 메스너 지음, 김희상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7월
평점 :
에베레스트 솔로 _ 유리의 지평선
이 책은?
이 책 『에베레스트 솔로』는 에베레스트 산 등정기다.
저자는 라인홀트 메스너, <이탈리아 남티롤 출신의 산악인인 그는 1970년 낭가파르바트를 시작으로 16년간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1986년 로체 등반까지 성공,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완등한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 되었다. >
기록적인 기록 두 가지가 그의 이력에 첨가된다.
1978년 5월, 페터 하벨러와 함께 이루어낸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과 바로 이 책에 담긴 1980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반’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의 이력에 추가된 기적과도 같은 기록,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반’
기계로 잔뜩 무장하고, 텐트 등 기본적인 장비조차 남에게 맡긴 채 정상을 등정하는 것, 저자는 기피하고, 무산소에다 홀로 - ‘홀로’라는 말을 그냥 ‘혼자’라는 말로 듣지 않기를, 어디 뒷산에 홀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 -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다.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말 하니, 쉽다 어렵다는 말조차 너무 쉽게 해버린 듯하다.)
정상에 올라가는 순간의 저자 모습을 복기해 본다.
이제 갈수록 더 짧은 간격을 두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가다 서다의 반복, 피로감과 에너지 회복의 반복이 내 걷는 속도를 결정한다.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온몸의 힘을 쥐어짜야만 간신히 한 발자국씩 전진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등반은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다. (223쪽)
해발고도 7000 미터 이상은 모든 지점들이 위험하다. (241쪽)
해발고도 8000 미터에서 배낭을 메는 것은 쉴 때조차 고역이다. (250쪽)
고도를 1미터 올라갈 때마다 걷는 것과 쉬는 휴식 사이의 간격은 어쩔 수 없이 더 짧아진다.
정상을 오르는 그 1미터!
그 순간 순간에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오고 갔을까?
위를 올려다 보아서는 안 된다. 오로지 한 발자국씩 집중해 올라가야만 한다. (157쪽)
걷는 것은 이제 힘듦을 넘어서 최악의 고통이 된다. (252쪽)
그는 왜 산이 필요한가?
그는 상업적인 등반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기계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 손을 빌리고 다른 사람 발을 빌려 정상에 오른 다음, 사진을 남겨 상업적 이익을 꾀하는 무수한 등반가들, 그에겐 혐오의 대상이다. 그런 부류와는 다르게, 산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그에게 다가온다.
<기술과 시멘트 사막이 지배하는 시대, 무엇이든 공장에서 만들고 관리만 잘해주면 되는 시대에서 인간은 갈수록 소외를 겪는다. 이런 소외를 이겨낼 수 있는 대항마로 나는 산을 필요로 한다.> (40쪽)
<산에 오르며 인간은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진다고 한다. 아마도 그동안 살아온 기억들이 하나로 압축되어 그런 게 아닐까?> (193쪽)
<나는 등반을 할 때면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정한 리듬으로 걷는 것이 내 몸의 생리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221쪽)
그가 보여주는 에베레스트, 그래서 다르다.
<지평선의 높은 정상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워 보이지만, 이는 티베트에서 흔히 겪는 착각이다. 티베트 공기는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도 맑아 이런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129쪽)
<날씨가 아름답다, 초모룽마는 계곡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바람벽처럼 서 있다. 늘 그랬듯, 에베레스트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산으로 느껴지는 게 흥미롭기만 하다.> (142쪽)
몸은 홀로 가지만, 그는 연결된 끈이 있다.
홀로 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홀로 간다는 것은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 상실감, 느린 전진 속도와 함께 커져만 가는 고독과 맞물린다. 이제 마치 내가 나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만 같다. 행동하는 사람과 관찰자를 전제로 하는 이런 상상은 세상의 꼭대기 끝에서 겪는 극한의 상실감을 한때나마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의식분열을 일으킨다. 이 상상은 악몽과 공포를, 심지어 죽음의 공포를 막아준다.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나, 갖은 고통과 씨름하는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277쪽)
그래서 그는 무전기조차 거절한다. 베이스 캠프와의 교신조차 그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이스 캠프에 홀로- 이 역시 홀로 남아있다. - 남아있는 그의 여자친구 니나와의 소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다음은 그의 여자친구가 베이스 캠프에 남아있으면서 남긴 기록이다.
라인홀트는 홀로 산에 오르고 나는 홀로 이 아래에 남을 때 모험의 의미가 더 커진다. 물론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는 어려우리라. 아마도 그를 다시는 보기 못할까 두려움이 클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 ……… )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불안이 얼마나 큰지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참아내야 나 자신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내 감정은 말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라인홀트가 홀로 정상에 서서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가 나에게 품는 감정은 더욱 명확한 형태를 얻으리라. 나는 그게 우리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1쪽)
<해발 고도 7000미터가 보인다. 구름이 걷히고 있다. 바람이 불어와 내린 눈을 능선에서 다. 그가 내 외침을 듣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와 직접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내가 당신 곁에 있어!”> (263쪽)
정상에 오른 후에는?
우리의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무한함을 깨닫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248쪽)
도망가야만 한다. 움직여야만 한다. 나의 피로로부터, 내가 정상에 올랐다는 자부심으로부터 나는 도망가야 한다. (286쪽)
다시, 이 책은?
그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반기는 몇 권의 책을 읽고 살펴본 바가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철저하게 혼자, 홀로 산에 올라가면서 남긴 기록은 처음이다.
그의 행동은 그의 발을 통해 정상을 밟고, 그의 생각은 오롯이 그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다. 저자는 산악인이자, 심리학자다. 더하여 그를 형용하는 모든 단어마다 ‘훌륭한’,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우뚝 선다.
이런 기록, 훌륭하다. 산에 오르면서, 그를 사로잡았던 그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머릿속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상념이 어떤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리저리 맴돌던 상념은 어느 한 점으로 모아져 나로부터 독립한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는 내 것이기는 하지만, 내 마음대로 어쩔 수가 없는, 내 의지로 다스릴 수 없는 독자적인 생명체다.> (237쪽)
생각의 흐름을 냉철하게 포착한 기록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빛나는 아포리즘 또한 남긴다. 그러니 이 책 읽으면, 에베레스트 산길을 걸어보지 않았어도, 일상을 살아가며 걷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그 정도는 갈 수 있다.”
나는 자신만 들으라는 듯 작은 소리로 이렇게 다짐했다.
“오늘 네가 걷는 걸음은 내일을 더 오르지 않아도 돼.”
(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