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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평점 :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모두 의미가 있지만, 이 책은 더더욱 그렇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한 말, 그 말 그대로다.
<작은 단어 안에 든 큰 세계>, 그런 큰 세계를 보고,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미국을 거쳐, 현재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타국에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언어가 다르고, 그 다른 언어가 주변 사물을 달리 보게 만들게 했던 거다. 그 다름, 그것을 저자는 포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먼저, 이런 점 적어두자.
저자는 독일에 살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한다,
그런 질문에 저자의 답변은 이거다.
삶의 여유, 독일에 살면서 격렬히 누워 지낼 수 있어 몹시 기쁘다는 것이다,
실제 저자가 누워지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저자가 와불을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기 시간이 많아져 충분하게 쉴 수 있고, 해서 삶이 전반적으로 건강해진다는 것, 그것이다.
그렇게 살기에, 글에서 여유가, 단어를 다른 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리라,
또하나, 저자 독일에서 사는 것을 경계에 사는 삶이라 정의하는데, 그런 삶의 유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언어‘들’ 사이에서만 거둘 수 있는 것이 있다. 경계에서 사는 삶은 고단하지만, 경계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낯선 언어가 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철학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고단한 경계인이 얻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나누고 싶었다. (10쪽)
날짜 쓰는 법, 시간 읽는 법이 달라서
우리는 큰 덩어리부터 말한다. 즉 2024년 9월 21일 하는 식인데 반하여 독일은 정반대로 일월년으로 쓴다. 그렇게 다르게 읽고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자면, 우리는 큰 것을 먼저 두고 그 안에서 작은 것의 위치를 잡는다.
독일에서는 나를 먼저 두고 주변부는 뒤로 간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면, 이런 분석도 가능해진다.
서양인은 명사를 사용하고, 동양인은 동사를 사용한다.
서양인은 개체를 중요시하는 데 비해 동양인은 관계를 중시해서 그렇다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상대방에게 차를 권할 때 이렇게 다르다.
영어로는 “More tea?”라고 하는데 우리는 “더 마실래?”하는 식이다.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학창 시절에 제 2 외국어로 독일어 공부를 하면서 Arbeit라는 단어를 배웠다. 아르바이트.
일하다, 라는 뜻이다.
그런 단어가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저자도 그걸 지적한다.
본래의 일이 아니라 임시로 하는 부업, 시간제 근무나 단기로 돈을 버는 일등을 가르키는데, 이는 원래 일본에서 그렇게 쓰기 시작한 것이란다. 그걸 우리도 따라 쓰면서 독일 단어를 오염시켜 버린 것이다.
원래 Arbeit 는 엄밀하게 구별하자면, 노동하는 쪽에 가까운 단어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작업처럼 사람들이 왠지 좀 더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일에는 아르바이트 대신 베르크(Werk)를 쓴다. (67쪽)
저자가 포착한 이런 다름, 기억하고 싶다.
저자는 독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독일의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다름도 포착했다.
학생들이 발표를 하는 모습에서, 독일과 우리는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멜덴(melden)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독일 교육을 대표하는 말로 바로 멜덴을 꼽고 있다. (154쪽)
멜덴은 발표에 관한 규칙이다. 하지만 멜덴을 잘한다는 것은 발표를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 교실에서 발표를 잘한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감 있고 똘똘하게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말이지만, 독일 교실에서 멜덴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남을 배려하고 규칙을 잘 지킨다는 말이다. (160~161쪽)
답을 안다고 해서 불쑥 말해버리거나 다른 친구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손을 들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릴 줄 아는 것. 손을 든 아이들이 골고루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있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 그 모습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다시, 이 책은? - 단어에 들어있는 이야기, 끝이 없다.
저자가 화두로 삼아, 우리에게 들려주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덕분에 독일어 단어들도 새겨보게 된다.
Feierabend: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
Servus!: 종이나 노예를 뜻하는 라틴어 slave, servant에서 온 말, 인사말로 쓰면?
gefallen: 무엇이 마음에 든다,는 뜻.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Arbeit: 아르바이트, 이 단어는 독일에서는 이런 뜻?
Prost!: 건배할 때 쓰는 말.
Gift: 독일어 기프트는 결코 선물이 아니다.
Kindergarten: 글자 그대로 읽어보자. 아이들을 위한 정원이다.
Rauswurf: 유치원에서 아이를 졸업시키면서, 밖으로 내던지다니!
innere Schweinehund: 뭔가 하려면 내면의 돼지개들이 속삭여, 그만 두라고.
melden: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라고 위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aufwecken: 다른 사람 깨우기.
Stolperstein: 걸림돌, 걸려 넘어진다는 것
Weltschmerz: 이 세상의 파도에 맞서야 하는 내 마음의 아픔, 통증이라니?
Sicherheit: 독일을 독일답게 하는 단어, 안전하고 견고하고 믿을 수 있는 그것.
Habseligkeiten: 이 단어를 실제 느끼려면, 그건 인생의 큰 변화가 있어야!
덕분에 독일어 단어들도 새겨보게 된다.
그저 새기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 첨언해둔다.
그래서 이 글 첫머리에도 썼다.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다고.
물론 다른 책들도 모두 의미가 있지만, 이 책은 더더욱 그렇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한 말, 그 말 그대로다.
<작은 단어 안에 든 큰 세계>, 그런 큰 세계를 보고,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