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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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과 며칠을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 영원으로부터 잠깐 시간을 빌려와서 말이야.

너와 내가 차마 나누지 못한 말들을 함께 얘기하고 들어보기 위해서......."

남자친구 아담과의 결혼을 며칠 앞둔 크리에이터 줄리아는 저렴한 가격에 세일하는 드레스를 구매하기 위해 절친 스탠리와 함께 가게에 있다. 부자 아빠를 두고도 이런 행동을 하는 스탠리는 줄리아가 안타깝고 또 한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스탠리의 추천으로 겨우 드레스를 고르고 사이즈 수선을 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줄리아는 유일한 가족인 아빠가 또 바쁜 일정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아빠의 비서의 전화일 거라 생각한다. 비서인 왈라스가 한 전화는 맞지만, 내용은 달랐다. 줄리아의 아버지 안토니 왈슈가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고, 비행기 편으로 시신을 운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장례 일정에 따라, 장례식은 바로 줄리아와 아담이 결혼하기로 한 그날이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끔찍한 상황이 펼쳐진다.

몇 년 전 오래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줄리아. 줄리아의 시간 속에 아빠 안토니는 늘 부재중이었다. 사업 때문에 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줄리아는 동요하기는커녕 아무런 생각이 없을 지경이다. 이래저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그 와중에도 수습되지 않는 회사 일 때문에 다시 출근을 해서 일을 하던 중, 사이가 좋지 않은 1층 신발가게 주인의 전화를 받는다. 줄리아 앞으로 온 큰 택배가 가게를 가려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데, 줄리아가 직접 받지 않으면 안 된단다. 결국 집안으로 들어온 큰 소포는 2미터를 넘는 상자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열어야 하나? 우여곡절 끝에 열린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을 보고 당황하는 줄리아. 자신의 아빠 안토니를 쏙 빼닮은 인형이다. 행커치프 대신 주머니에 들어있는 리모컨을 조작하자 인사를 건네는 안토니. 세상에나...! 생전 목소리와 말투까지 쏙 빼닮은 인형을 보고 줄리아는 화가 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보낸 걸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버지 장례 다음 날 말이다. 사망 전 주주로 있던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던 제품인데, 갑작스러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잠깐의 시간 동안(6일)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용도라고 한다. 그렇게 줄리아는 갑작스럽게 AI로 만들어진 아빠 안토니와 반강제적인 시간을 갖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취소된 신혼여행지 버몬트로 떠나게 된 둘. 그리고 베를린으로 떠난 날, 그곳에서 보게 된 그림 속에서 줄리아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게 되고... 그 기억은 그녀의 삶을 또 다른 곳으로 이끄게 되는데...

사실 6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안토니와 줄리아는 극적으로 사이가 좋아지거나 상처를 보듬는 등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토니가 그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또한 과거의 일로 상처를 줬던 줄리아를 위해 준비한 여행은 줄리아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아빠가 그립고 필요했을 때 부재중이었던 안토니의 행동이 과연 이 일로 완전히 해소되고 용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결혼을 도둑맞은(?) 아담 또한 또 한 명의 피해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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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몸 - 가장 인간적인 몸을 향한 놀라운 여정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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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에 띄었다. 사피엔스의 몸이라... 사실 기대 없이 읽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연상시키는 제목 덕분에 겁을 먹기도 했다. 겁을 먹었던 탓일까? 읽는 내내 재미있기도 했고, 흥미롭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인간의 "몸"과 그를 둘러싼 "생각"과 "선입견" 등 다양한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제시한 "인간의 발가락은 항상 3개 이상이 함께 움직인다."를 읽으며 학생들(저자는 대학교수다.)처럼 나 또한 움직여보며 놀랐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실행해 보지 않은 내용이었기에 관심을 유도하는 데 아주 탁월했던 것 같다. 총 13개의 주제를 놓고 보자면 실제적이고 생물학적인 우리 몸(뼈의 각 부분이나 장기 같은)에 대한 내용은 한정적이다. 대부분 인간을 둘러싼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각종 사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비롯한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질병과 노화, 그리고 쾌락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한번 즈음 생각해 볼 만한 주제였지만, 막상 그 이상으로 깊이 있게 마주하지는 않았던 내용들이 담겨있어서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각 장의 말미에는 생각해 볼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기에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며 토론을 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13장 모두 흥미로웠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2장에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욕망에 대한 부분과 7장 강렬한 쾌락의 탐닉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은 임신 때를 제외하고는 죽을 때까지 다이어트를 생각하거나 시도한다는 말에 대해 나 역시 인정한다. 요즘은 배우가 아니더라도, 임신했을 때 역시 D 라인을 뽐내는 경우가 많기에 임신시기도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다산의 상징이라 일컫던 풍만한 몸매는 요즘에는 관리 안 한 몸매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아름다워지기 위해, 하얀 피부를 갖기 위해 수은까지 발라서 결국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신체 비율에 대한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단지 아름다워지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은 뒤로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지극히 보이는 "미"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누구나 그런 몸을 선망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고유영역이기에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것 같다.

7장에서는 동물적 감각이라 할 수 있는 쾌락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가 인간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인데, 바로 그런 금기를 깨고(옷을 벗고) 동물적 감각으로 돌아가는 관계가 바로 성의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것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오르가슴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변태적 성 의식과 관련하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지킬 앤 하이드가 비교되며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인간을 설명하는 단어인 호모사피엔스 앞에는 상당히 긴 용어가 붙는데, 인간의 생태와 생김새 등을 설명하기에 이렇게 많은 용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몸은 긴 시간을 거쳐오며 지금의 가치와 생각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에는 옳지 못한 가치도 상당수 있다. 사피엔스의 몸을 통해 몸을 넘어선 가치에 대해서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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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견디는 힘, 루쉰 인문학 - 어둠과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인문학 강의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8
이욱연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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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루쉰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쳤다. 아Q정전 역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읽어본 적은 없던 터라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다. 근데 첫 장에 루쉰이 아닌 노신이라는 이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신은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자 그대로 읽었지만, 몇 년 전부터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현해 주기 시작함에 따라 노신의 중국어 발음 루쉰으로 표현이 되었기 때문에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구나! 싶었다. 아쉽게도 루쉰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터라, '이해가 될까?'하는 생각일 들었는데 기우였다. 루쉰의 전 작품을 마주한 것은 아니지만, 키워드와 줄거리, 중요한 이야기를 토대로 루쉰의 생각과 시대상을 함께 마주하니 한결 이해도 빠르고 나도 모르게 루쉰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쉰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에는 허삼관 매혈기, 인생 등의 저자 위화를 비롯하여 공자의 논어, 모옌의 붉은 수수밭, 라오서의 낙타샹즈 그리고 이광수의 무정 등 다양한 책이 함께 언급된다.

루쉰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아Q정전이다. 주인공 아Q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인데, 이 아Q를 통해 중국인 특유의 근성을 비꼬는 내용이 담겨있다. 중화주의는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오랑캐 취급하는 특유의 자만감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좋지만,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판단 없이 그저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생각하고 실수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데 있다. 자아도취에 빠진 상황에서 아Q는 늘 동네 사람들에게 맞고 놀림을 당하고, 괴로움을 겪지만 정신에서는 자신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킨다. 적당한 자존감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는 자존감은 오히려 자만심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눈이 필요하다.

패배에서 배우지 않으면 패배는 반복되고, 결국 더 큰 패배로 비극적 종말을 맞을 수 있습니다.

정신승리법의 대가 아Q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루쉰은 생각의 관습에 얽매여 끌려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언젠가 코드인사라는 말이 뜨거운 감자가 된 적이 있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시너지가 날 수 있긴 하지만, 과연 옳다고 볼 수 있을까? 그저 친목모임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루쉰의 광인일기를 토대로 저자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화합과 조화 그리고 같음은 같은 의미일까? 광인일기뿐 아니라 이에는 공자의 논어를 통해서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공자의 논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같음(同)과 조화(咊)는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내용이다. 앞에서 말한 코드인사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코드인사는 조화보다는 같음에 방점이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한 가지 의견 외에는 나올 수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소위 소수의견이라 불리는 또 다른 생각들이 껴들을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때론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수결은 어떨까?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 근데 다수의 의견이 늘 정답은 아니다. 특히 과거의 관습을 따를 경우도 위험하다.

옛날부터 쭉 그래왔다는 생각의 관습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합니다.

집단적인 생각의 관습을 의심하면서,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또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 때, 나다움을 찾는 사람이 많을 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한다고 루쉰은 말합니다.

이것이 루쉰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길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지도자가 바뀌어도 사회가 바뀌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루쉰의 작품을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시 한번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의 문제다. 청년세대, 기성세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루쉰의 작품을 통해 현재의 우리의 삶을 제대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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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골드러시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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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주한 고호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도 유쾌했다.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한 상황이 보는 내내 가슴을 졸이게도 했다. 혹시나 몰라 책 첫 장에 정부의 허가 없이 임의로 하는 북한 여행은 불법이라는 내용을 토대로 역시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 김사끝 여사의 보살핌을 받은 최인찬, 최인지 남매. 인찬은 현직 경찰이고 인지는 직장인이다. 할머니는 한 번씩 남매에게 북한에 두고 온 금괴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평양에서 막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던 지주. 지금의 재벌집 외동딸이었다고 한다. 위로 세 명의 오빠(일억, 이억, 삼억)가 있지만, 남아선호사상이 짙었던 지라 딸은 그만이라는 뜻으로 사끝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할머니. 있는 집안인지라 아버지는 첩을 계속 들였다. 점점 어려지는 첩을 보면서 막내 사끝은 첩이 가지고 온 화장대를 박살 내놓기도 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김부자 집의 머슴이었지만 배려로 해방된 부부의 아들 리삼태는 인민위원장 완장을 차고 나타난다. 그렇게 증조부는 나무에 달려 매를 맞다 유명을 달리하고, 할머니의 두 오빠 역시 살해당한다. 증조모 역시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홀로 도망을 쳐 온 할머니는 남한에서 그렇게 고난을 겪으며 아들 내외마저 앞세우고 힘든 생을 사셨던 것이다. 집 주소조차 가물가물한 평양. 증조부가 땅에 금괴를 묻는 걸 봤던 할머니는 꼭 금괴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이 입고 온 한복을 수의로 입혀달라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 인찬은 저고리를 살피다가 저고리 목 부분에서 이상한 걸 발견한다. 바로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리 4통 7반 외양간 옆. 바로 할머니의 집 주소였던 것이다.

할머니의 장례를 마친 후, 두 남매는 평양으로 가서 숨겨진 금괴를 찾기 위한 행동을 개시한다. 브로커 원 씨를 만나 평양으로 잠입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고, 기치를 발휘한 꽃제비 애꾸 덕분에 마침내 마주한 할머니 집.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던 그곳은 학교 부지로 공사 중이었다. 과연 인찬 남매는 할머니의 금괴를 찾을 수 있을까?

인찬 남매와 별개로 청봉악단의 가수 리손향의 이야기 또한 펼쳐진다. 손향의 할아버지가 과거 김일성과 함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손향은 소위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덕분에 당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녀 역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타고난 외모와 목소리로 그녀는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다. 남한 공연을 위해 삼지연관현악단에 소속된 손향은 그날 이후로 모든 공연 자리에서 이름이 빠진다. 급기야 아버지가 붙잡혀 가고 엄마와 손향도 쫓겨나게 된다. 과연 손향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처음에는 관계없어 보였던 두 이야기가 연결고리를 통해 이어진다. 그 연결고리에는 과거의 인연이자 악연이 맞물려 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평양 골드러시. 현 시가로 100억이 넘는 금괴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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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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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상도의 작가로 알려진 최인호 작가가 타계한 지 벌써 10주기가 되었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이 책은 2007년 꽃밭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에세이집을 10주기를 맞아 새로운 표지를 입혀 재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그동안 마주했던 소설가 최인호의 뒤편에 인간 최인호, 남편 최인호, 천주교인 최인호, 친구 최인호 그리고 다시금 작가 최인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이 책에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와 천주교인으로 겪은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아내인 황정숙 여사가 궁금해진다. 작품 속에서 만난 작가는 왠지 무뚝뚝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다정다감하다. 대학교 때 만났다니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람일 텐데, 그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도 여전히 애정 어린 눈으로 아내를 바라볼 수 있다니 같은 여성으로 부럽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황 여사의 내조가 탁월했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부분도 있지만, 아내를 알고 있는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됨됨이를 적어내린 글을 마주하자면 두 부부가 참 따뜻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황 여사에 관한 글 중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불친절한 사람과 상대할 때에는 더욱더 친절해져요.

그러면 어느 틈엔가 상대방도 변화되어 친절하게 된다고요."

친절하지 않은 점원을 마주했을 때, 나 역시 친절하게 굴고 싶지 않아진다. 때론 화가 나기도 한다. 특히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막 들어선 참인데도 화를 내거나 퉁명스럽게 대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근데, 황 여사의 반응은 달랐다. 오히려 자신의 친절함으로 상대를 친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치 해와 바람 중 나그네의 옷을 벗겼던 것이 해 인 것처럼, 그녀의 선한 영향력은 상대도 선하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등장한다. 정치나 경제, 교육과 문화계 곳곳의 이야기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반목하고 서로 와해된 정치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아, 광복은 왔으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전쟁은 끝났으나 평화 역시 오지 않았다.

구속에서 풀려났으나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식민에서 벗어났으나 독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학자도, 사회문화학자도 아니지만 그는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눈을 지녔다. 그래서 그의 부재에 가슴이 아프다. 그때로부터 10년 넘게 흘렀음에도 우리 사회는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총을 겨누고 있는 현실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드러난 그의 인간관과 정체성은 따뜻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안다. 무조건 곧지만도 않다. 때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아량도 담겨있다. 가족들과의 이야기,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며 쓴 글, 학창 시절과 민단계 선배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 속에 자신만의 색과 애정을 담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최인호라는 작가의 다른 면을 마주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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