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세탁소 그림책 마을 33
준코 시부야 지음, 김세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너구리가 하는 세탁소라고?? 귀엽고 앙증맞은 그림체가 첫 페이지 가득하다.

귀여운 너구리 아저씨가 경영하는 세탁소를 만나러 가보자.

아침부터 너무나 바쁜 너구리 아저씨.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열심히 손빨래도 하고, 빨래도 널어놓고 하루를 준비한다.

그렇게 손님이 하나 둘 찾아온다.

근데 그 손님들이 참 하나같이 특별하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기에 너구리에게 세탁을 맡긴 것이다.

어쩌면 손님들이 맡긴 세탁물은 정체성(?)의 문제일 수 있다.

세탁물을 착용하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되기 때문이다.

메뚜기같이 보여서 인사를 했는데, 자신의 세탁물을 찾고 나니 나비였다.

햄스터같이 보여서 인사를 했는데, 세탁물을 착용하고 나니 토끼였다.

아이와 함께 세탁물을 찾기 전의 동물 그리고 동물이 찾는 세탁물과 착용 후 실제는 누구였는지를 함께 만나볼 수

있어서 그림책에서 뜻밖의 반전을 경험했다고 할까?

단지 깨끗한 옷이나 모습만을 위해 필요한 세탁소가 아니라, 잃어버렸던 혹은 잊혔던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교훈을 가득 담고 있다.

물론 세탁을 해준 너구리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각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준다.

(동물에게 소중한 것은 음식이니 말이다.)

하루 종일 빨래하고 손님들에게 세탁물을 찾아준 너구리 아저씨도 밤이 되면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하루 동안 일하며 벌었던 맛있는 음식들을 가지고 저녁을 먹는다.

스컹크에게 받은 향수와 나비에게 받은 꽃은 아내를 위한 선물이다.

(아... 너구리 아줌마는 3남매 독박맘...ㅠㅠ)

너구리 자녀들인데 왜 너구리가 아니지?!

역시 여기에도 반전이 숨겨져 있다. 출생의 비밀?? 이런 건 아니니 걱정 말기를... ㅋ

아이들의 책을 보면서 어른 책 보다 더한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어른의 고단함, 돈벌이(음식 마련)를 위한 노동과 보람, 그리고 고객 관리?

자신의 정체성이나 소중히 여기는 것을 다시 착용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동물들을 통해 가끔은 나도

내 피로와 피곤 등을 빨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글밥이 많지 않지만 여러 동물들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다.

귀여운 그림체와 함께 교훈은 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심이, 널 안아줄게 - 고민이 많은 세상 모든 영심이에게 하는 말
이지니 글 / 꿈공장 플러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초등학교 입학, 200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이다.

그 시대는 한국만화 붐이 불어서 조금은 촌스럽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만화들이 속속 등장했었다.

영심이도 그중 하나였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영심이의 주제곡이나 등장인물들이 한 번씩 떠오르는 걸 보면, 공감 가는 게 많았던 것 같다.

요 근래 옛 만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집을 자주 보게 된다.

둘리가 등장한 걸 보니, 내심 영심이나 하니를 주제로 한 만화는 없을까 기다리던 차에 만나게 된 영심이.

여전한 영심이의 얼굴을 보니 풋~웃음이 났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자라다 못해 이제는 늙어가고(?) 있는데, 만화 속 영심이는 여전히 14살이란다.

영심이를 따라다니지만, 무시만 당하는 경태도 여전하고 늘 영심이와 투닥되는 얌체 순심이도 그대로다.

그리고 얄밉기만 했던 구월숙까지...^^

영심이 만화를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맞아! 이런 내용이 있었지... 신기한 건, 내용은 떠오르는데 그 시절 그림을 보며 내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영심이는 그대로인데 나만 바뀐 것 같다. 아니 나는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영심이 큰언니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그때의 아이와 같은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 이지니의 글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는다. 아마 옆에 영심이가 있다면 저자의 글을 통해 또 다른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저자 역시 그때의 영심이를 바라보는 눈과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

당시에는 영심이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은 부모님이 답답했고, 영심이를 속이고 놀려먹는 구월숙이 때려주고 싶었다. 싫다는 데 자꾸 쫓아다니는 왕경태가 답답했고, 순심이가 얄미웠다.

지극히 영심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다시 만난 영심이 속에 인물들은 그 어린 시절 내가 봤던 인물들이 아니었다.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고, 자신의 부족과 결핍을 영심이를 통해

채웠던 구월숙이 보였고, 용기 있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던 왕경태가 보였고, 사실은 영심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순심이가 보였다.

그 시절 영심이를 다시 만나서 좋았다.

또 다른 영심이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아마 또 시간이 지나고 영심이를 만나면 그땐 어떤 영심이를 만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추억의 한 장이 겹쳐진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여전하다! 아니... 좀 더 격해졌다는 말이 어울리겠다.

전작인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으면서 사실 상당히 헉~했다.

제목을 포함해서 책에 가득한 내용들이 설마... 혹은 정말 그래도 될까? 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이다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 책의 제목은 무려! "희망 버리기 기술"이라고 한다.

아마 마크 맨슨의 전 작을 읽지 않았다면, 무슨 이런... 하면서 책을 덮었을 지도 모른다.(물론 반어법인가? 해서 궁금함에 책을 열었을 수는 있겠으나...) 하지만, 무려 마크 맨슨이기에 이번엔 어떤 내용으로 허를 찌르는 사이다를 줄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마크 맨슨이 정의하는 희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희망의 범주와 조금 다르다.

어쩌면 좀 더 좁고, 집중적이고, 간결할 수도 있겠다.

허무맹랑하고, 가능성이 없는 것,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무너뜨리는 그것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그 희망이 오히려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다. 희망고문이라는 의미와 어느 정도 상통한다고 할까?

또한 그는 우리의 뇌를 생각하는 뇌(생각 뇌)와 감정을 느끼는 뇌(감정 뇌)로 정의한다.

생각 뇌는 양심적이고 정확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이지만 느리며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면, 감정 뇌는 빠르고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만 과잉반응하고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물론 감정은 행동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자기통제의 모든 문제는 생각보다는 사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감정 뇌에 의해 일어나는 불필요한 희망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희망을 버리고, 고통을 인정하라. 어쩌면 단순히 이 문장만 읽으면 비관주의자의 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7장에 보면 고통은 보편상수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어떤 삶을 살 건 고통은 늘 존재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삶에는 늘 남이 모르는 자신만의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거부한다고, 모른 척한다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 자체를 인정하면 오히려 삶 속에서 또 다른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리송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기도, 이해가 되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희망을 버리라고 했지만, 사실 희망은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제목이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강한 부정이 긍정을 말하는 강조가 되었다고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삼관 매혈기의 위화 작가의 산문집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제목이었다.

아귀가 안 맞는 듯한 문학과 선율. 음악과 서술...

문학은 서술과, 음악은 선율과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선율이나 음악이라는 단어를 보고, 위화가 음악을 토대로 쓴 평론문(?)정도의 글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음악 관련된 글들이 있긴 하지만, 그의 머리말 서두에 나오는 대로 선율이나 화성에 해당하는 의미를 차용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개의 음이 어우러져서 화음을 만들고, 음악의 선율을 통해 한 곡의 음악이 만들어지듯이, 그의 글 또한 화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개개의 음과 같은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이야기가 된다는 그의 글이 제목과 잘 어울렸다.

산문이라는 형식으로 그가 쓴 글이 모여 있는 이 책에는, 타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혹은 떠오른 글이 위화만의 색으로 어우러져서 드러난다. 덕분에 위화의 글도, 그의 글을 통해 소화된 타인의 글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수필이라기도, 평론 글이라기도, 에세이라기도 애매한 성격을 띠고 있는지라 산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 말미에 이 글을 쓴 날짜가 들어있다. 대부분이 1990년대의 글이기에, 이 글이 책으로 묶여서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그럼에도 옛스럽거나, 지난 이야기 같지 않은 것은 변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작가이기 전에 위화라는 사람이 느낀 예술이나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뒤 쪽으로 갈수록 음악의 이야기가 많다.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인터뷰 글을 보면 위화가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그런 게 아닐까?^^;)

음악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하는 위화 작가의 모습이 부담스럽지 않게 드러난 글이었다.

누군가와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한 어느 작가가 떠올랐다.

책 띠지에 적힌 한 줄이-생(生)을 헐어 쓴 글의 힘 위화의 산문은 그의 다른 일가(一家)이다.-이 책을 읽는 내내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소설과 전혀 다르지만, 그렇다고 동떨어진 느낌이 아니었기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들어도 더운 입김이 세어 나온다.

개인적으로 자연재해를 그린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좋아한다. 쓰나미, 토네이도, 지진, 화산 폭발, 홍수...

물론 주인공들이 그 모든 역경을 디디고 살아남는 여정에 동참하는 것도 좋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할까..?

사실 물 부족 국가 혹은 식수 부족 현상은 이제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가뭄으로 인한 식수 부족으로 방송에서 소방차 같은 것을 이용해 식수를 나르거나 물병을 나눠주는 장면을 방송에서 종종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 비해 좀 극단적이긴 상황이긴 하지만 처음 접하는 가뭄(갈증? 물 부족? 갈증?) 등의 재난 소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가뭄이 계속되고, 그로 인해 물이 공식적으로 끊겼다. 물 부족 현상으로 애리조나를 비롯한 몇몇 주가 물길을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뉴스화되지 않는다. 뭔가 극적인 장면이 부족해서인지... 오히려 옆 주 허리케인 소식만 크게 보도될 뿐...

얼리사의 가족은 마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마트로 향하게 되고, 마트 안에 꽉 들어찬 사람들 속에서 생수를 얻을 수 없다. 그때 기지를 발휘하여 얼음을 카드 가득 담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화장실 욕조를 씻어서 거기에 사온 얼음을 보관하는 얼리사의 가족. 하지만 어렵게 얻은 물은 동생 개릿의 실수로 오염되고 만다.

하루 이틀... 물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워터 좀비...

반면, 이 모든 재난이 시작하기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며 살아왔던 켈턴 가족은 물을 확보하지만, 이웃들의 요구에 문을 걸어 잠그고 만다. 아이 분유 먹일 물을 요청하는 말레키가족을 박대하고 그 일로 켈턴의 엄마와 아빠는 싸움을 하게 된다.

설상가상 전기까지 끊기는 상황이 되고, 마을에서 긴급 전원 시설이 작동되는 유일한 집인 켈턴의 집으로 워터 좀비가 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평소 얼리사를 짝사랑했던 켈턴은 갑자기 없어진 개릿을 찾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는 요청에 응하게 되고, 물을 찾아 집을 떠난 얼리사의 부모를 찾는 일에 같이 동참하게 된다.

한편, 지하벙커로 이동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켈턴 가족을 대신해 얼리사는 집을 지키게 되고, 단수 대책 회의로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물을 가지고 갔던 얼리사로 인해 또 다른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물인지라, 물 부족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에 물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더 인간의 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 상대적 약자에 속하는 어린이, 청소년, 노인, 여성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사건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인 청소년들(얼리사, 켈턴, 개릿, 재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물론 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 그나마 물이 조금은 풍족한 상황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책을 읽어나간다면 또 다른 재미와 몰입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