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앤, 우리의 계절에게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다섯 계절에 담은 앤의 문장들
김은아 지음, 김희준 옮김 / 왓이프아이디어(What if, idea)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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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는 순간 무척 반가웠다. 내가 꾸준히(하지만 드문드문) 읽고 있는 앤 전집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선배가 소개해 준 책이 바로 그린게이블즈 앤 시리즈였다. 만화로 본 빨간 머리 앤이 무려 10권짜리 전집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만화 앤도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한다. 무슨 바람인 지 몇 년 전 그린게이블즈 앤 시리즈 전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니, 책장 가장 위 칸에 자리를 잡고 묵힌 책이 되어버렸다. 우연한 기회에 책장 속 책들이 콧바람을 쐬게 되었고, 그때부터 한 권씩 파먹기 시작해서, 조만간 4권을 읽을 차례이다. 책 안에는 원서 8권의 내용과 그곳을 방문했던 저자의 이야기들이 같이 녹아있다.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하는 저자여서 그런지, 원서 속 앤의 이야기와 저자의 방문기와 자신의 경험이 책 안에 같이 담겨있다. 앤과 비슷한 생각, 비슷한 감정, 비슷한 상황들이 어우러지니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특히 앤이 자신의 이름을 Ann이 아닌 Anne으로 불러달라는 대목이 나도 기억에 남는데, 저자의 이름과 내 친동생의 이름이 같아서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내 동생도 은아가 아닌 은하로 꽤 자주 불렸던 기억이 있어서다. 사촌 언니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는데, 내 이름은 제대로 쓰고, 동생 이름을 은하로 썼었어서 엄청 속상해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둘째 딸의 이름도 "아"가 아닌 "하"로 지었던 것은 내 그 경험 때문이었나 보다. 막상 우리 둘째의 이름을 지어준 친정 아빠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봉투에 "아"로 지어서 버럭 했던 건 안 비밀.

물론 10권 중 3권까지 읽긴 했지만(그리고 나는 원서가 아닌 번역본을 읽긴 했지만), 이 책 안에 담긴 앤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나 역시 3권의 그린게이블즈 앤을 읽으며, 와닿는 문장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앤에 이런 문장이?! 하면서 놀랐던 기억도 있는데 이제는 앤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친밀해져서 그런지, 고개가 자연히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아직 읽지 못한 앤 속의 문장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떠난 사람 뒤에는 끝을 맺지 못한 일이 남아 있게 마련이지.

하지만 그걸 마무리하는 누군가도 항상 있는 법이란다."

린드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온 나라가 슬픔에 싸여있다. 갑작스러운 큰 사고에 어제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해서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담겨있는 마지막과 죽음 등의 내용에 자꾸 눈이 가고 멈춰있게 된다. 책 속에 이 부분은 앤의 친구인 루비 길리스가 폐결핵으로 죽게 되는 장면에서 린드 부인이 힘들어하는 앤에게 건넨 말이다. 얼마 전 읽었던 부분이라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해당 장면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모두를 아프고, 당혹게 한다. 이 페이지에 저자 역시 자신의 지인들과의 이별을 담아놓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지라, 유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찾아오길 기도해 본다.

어느 날 밤, 윌터가 물었다.

"엄마, 바람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앤이 대답했다.

"그건 바람이 이 세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생겨난 모든 슬픔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앤은 길버트(학교에서 만난 첫날 빨강 머리라고 앤을 놀려 칠판으로 머리를 맞고 앤과 원수가 된 친구. 훗날 둘은 부부가 된다.)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윌터가 앤에게 물었던 말이다.(아직 책에서 만나지 못한 내용이었다.) 앤만큼이나 상상력이 풍부한 앤의 아이들은 이런 시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을 털어놓는다. 어찌 보면 무척 철학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을 거 같은데(바람과 행복이 같이 쓰일 수 있는 단어일까? 아주 더운 날 부는 바람이나, 몹시 추운 날 부는 바람이라면 몰라도... 뜬금없는 바람이라니;;;), 앤은 역시 특유의 상상력이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한 것 같다. 아들 윌터의 물음에 정말 시적으로 대답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앤은 긍정적인 아이였지만, 세상을 살면서 슬픔을 자주 목도하다 보니 조금씩 어른스러워진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초반의 앤과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아이의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 같다.

그린 게이블즈의 앤 원서와 저자의 경험 그리고 4계절이 어우러지니, 또 다른 앤이 완성되었다. 나라가 큰 아픔을 겪는 시점에 마주한 내용이라서 나 또한 더 감정이 이입되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꽤 흐르고, 다시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그땐 남은 7권을 완독하고 나서였길 바란다.)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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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말투 - 오해 없는 슬기로운 인간관계를 위한 말공부
김범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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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 될 것도 되지 않습니다.

나의 성장은 닥 그만큼에서 멈춥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우리를 세상은 품격 있게 바라보지도 않을 테고요.

우리 주변을 긍정어로 가득 채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나이가 들면 절로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은 막 10대를 벗어난 사람들만이 가지게 되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는 있지만, 어른은 누구나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살면 살수록 피부로 느낀다. 어른이 될수록 나를 돌아보고, 내 것을 버리고 꾸준히 변화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잔소리가 늘어나고, 경제적인 윤택함이 사라지기에 반대로 이야기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어름으로 살아야 할 때 필요한 스킬은 또 농담에서 배우게 된다. 이 책은 어른의 말투에 관한 책이다. 말투라는 것. 쉽지 않다. 오래도록 몸에 체득된 것이기에, 벗어나기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아니, 내가 무엇이 문제인 지 인식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해야겠다.

내 꿈은 여유로운 마음과 모습을 지닌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지닌 노인의 모습을 보고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도 그런 꿈을 지니게 된 이유다. 저자가 이 책에서 표현하는 어른의 말투 역시 여유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여유로움 안에 진심 그리고 감사가 더해질 때 상대에게 다름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뜬구름 잡는 이론만 가득하다면, 책을 읽을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각 상황에 맞는 어른의 말투 팁이 당연히 담겨있다. 상대를 설득할 때, 상대에게 조언할 때, 사과와 칭찬, 거절에도 어른의 말투가 필요하다. 어른의 말투 안에는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도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를 인간관계의 노하우라고 말해도 될까?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가 웃음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해서 상당히 공감이 갔다. 나이가 지긋하시고 나름 높은 위치에서 퇴직을 하신 분이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오는 웃음이 상당히 가벼웠다. 그분의 위치나 여러 가지로 볼 때 이미지를 상당히 깎아먹는 수준이었는데, 그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참 껄끄러웠다. 그저 그분을 거울삼아 내 웃음을 점검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는 같이 일하는 직원 중에서 같은 말을 해도, 유난히 기분 나쁘게 들리는 사람이 있었다. 근데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 또한 같은 경험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와 어는 다르다는 것. 같은 상황도 어떻게 표현하는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넘어 앞으로의 관계까지 결정이 된다는 사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 보자면, 그분은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낮추는 말투를 자주 사용했었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면서 상사들을 많이 거론했었다. 당연히 선임이 후임의 부족함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근거가 대표나 본부장처럼 윗 사람들이 너를 ~게 생각한다. 이 정도 밖에 못하면 안 되지?!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던 것이다. 그분께는 책 안에 담긴 습관 18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내 모습을 인식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객관화인데 저자 역시 그런 객관화를 통해 내 말투를 직접 마주해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회가 된다면 (양해를 구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내 목소리 톤은 어떻고, 말의 크기는 어떻고, 속도는 어떤지, 내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어떻고, 내 웃음소리는 어떤지를 직접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어른의 말투를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타인과 이야기할 때 내가 호감 가는 말투를 여럿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말투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놓았다. 진짜 어른다운 30가지의 언어습관을 통해 좀 더 여유롭고, 호감 가는 어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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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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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며 슬픔에 잠겨 있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발버둥 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과거에 비해 날이 갈수록 더 확고한 천재화가로의 명성이 쌓이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시절에만 해도, 전기 속에서 본 고흐는 뛰어난 능력은 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많이 그려졌던 것 같다. 아마 그중 가장 유력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랐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첫인상 덕분인지, 고흐에 대해 썩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참 고흐 붐이 일었을 때 구입했던 두 권의 편지글 또한 책꽂이에 여전히 꽂혀 있지만 소장만 하고 있던 중에, 꾸준히 읽고 있는 시리즈에서 다시금 고흐를 마주했다.

내 스스로 고흐에 관해 읽은 첫 번째 책이었던 그 책을 읽은 후, 고흐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다. 그가 가진 아픔(태어날 때부터 사산되어 태어난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형을 대신하는 존재로 키워진 것부터 해서)과 그럼에도 숨기지 못한 그림에 대한 폭발적인 갈급함, 기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린 성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고흐의 글과 그림이 합쳐져 있다. 비중으로 보자면, 고흐의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글과 그림을 같이 실었지만, 그림의 선명도가 조금 아쉽다. 아마 그래서 더 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안에는 고흐가 남긴 많은 글이 담겨있다. 각 글의 말미에는 글이 쓰인 날짜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 옮긴이가 엮은 주제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서인지 순서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고흐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고흐에 관한 이미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그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자, 예술가로 그의 글을 마주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의 깊은 인상이 섞이면서 어느 정도의 중간 과정을 겪어서 일까? 글 속에서 극단적이거나, 염세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삶에 대해 낙관하고,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서 긍정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게 또 다른 위로가 되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고흐가 폭발적으로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책 여기저기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더 많이, 더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그리고 싶다는 그의 글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토록 선명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대수학에서 음수끼리 곱하면 양수가 되듯이,

실패가 거듭되면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희망을 나는 여전히 품고 있다.

물론 고흐가 살았던 시대에도 돈이 중요했고, 돈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마음처럼 실제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림과 글로 남겨두었다는 게 또 다른 위로와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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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계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삶
조지 맥개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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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과학의 4영역 중 물리를 제외한 다른 과목에는 관심도 흥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과학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고 오히려 시집보다 과학 관련 서적을 더 자주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여러 생물군 중에서 곤충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된 책이다.

곤충 하면 으레 나오는 반응들처럼, 나 역시 곤충을 좋아하지 않는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곤충을 만지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림에는 상당히 미화되어 있지만, 나비도 멀리서 봐야 예쁘지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혐오감이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자주 잡던 메뚜기나 방아깨비, 잠자리를 비롯하여 요 몇 년 사이 여름이면 너무 자주 출몰하는 매미,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개미, 파리, 모기 등도 다 곤충군인걸 보면 생각보다 곤충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처럼 곤충을 비롯한 절지동물의 종 수가 800~1,200만 사이로 추정된다.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출현하여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곤충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여러 흥미로운 내용들 중 몇 개만 추려보자면, 현재 가장 큰 곤충과 가장 작은 곤충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사실 곤충 하면 작은 크기의 미니미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라 생각이 될 텐데, 곤충종 중 가장 큰 곤충은 동남아시아에 사는 대벌레로 길이가 32cm로 사람의 아래팔 길이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작은 곤충종은 무엇일까?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0.2mm에 불과한 기생성 말벌종으로 이름처럼 이 곤충은 다른 곤충의 알 속의 자신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곤충은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이렇게 작은 크기였을까? 석탄기 후기에 화석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 몸길이가 2m가 넘는 노래기부터, 6cm가량 되는 좀도 있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원시 잠자리의 날개폭만 75cm였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괴기 영화 속에 출연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노래기부터 좀, 잠자리는 지금도 현존하는 곤충종인데 왜 과거에 비해 몸이 이렇게 작아진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바로 대기 중 산소량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몸집이 클수록 산소를 더 많이 요구하는데, 석탄기에 비해 현재 산소량은 35%에서 21%로 줄었다. 살기 위해서 곤충종도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단다.

몇 년 전 꿀벌과 인류의 멸종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너무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안에도 뒤영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벌이 생태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벌이 없다면 꽃이나 열매가 맺기 힘들다. (실제 벌의 멸종은 생물 다양성 위기를 촉발해 육상생물 1/4의 생존 위기, 인류 1/6의 굶주림의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책 안에는 인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태계가 심각하게 망가진 사례를 무수히 마주할 수 있다. 단지, 연어를 많이 먹기 위한 인간의 무지가 결국 끔찍한 사태로 연결되는 사례뿐 아니라 진딧물을 없애기 위해 활용한 무당벌레(당연히 환경친화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는데)의 다수 출연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국 인간이라는 종은 생태계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인간의 이익을 위해 벌인 일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돌아온 여러 사례들을 통해 생태계를 위해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 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문서적임에도 어려운 용어들이 자주 보이지 않았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곤충들의 세계와 그들의 꾸준한 역할 덕분에 오늘도 지구 속 생태계는 꾸준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제 곤충을 마주할 때, 전보다는 덜 혐오스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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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이의 안데스 일기 -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며 쓰다
오주섭 지음 / 소소의책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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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책이 가진 반전을 충분히 맛보았다고 해야겠다. 소설도 아닌데 웬 반전이냐? 제목이자, 저자의 닉네임이 바로 반전이라 하겠다. 모질이 하면 떠오르는 건 모자라다는 것인데,(근데 이마저도 반전이다. 이 모질은 세월이 육신은 늙게 하지만 정신은 지혜로워진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耄耋) 깊이가 있어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이가 있다. 여행 에세이라 하지만, 철학 혹은 인문학 혹은 동양 고전 혹은 세계사 등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에 읽은 기분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진도가 훅훅 나가지 않는다. 역시 빽빽한 글자와 무게감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남미를 세 번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여행을 이 책으로 기록했다. 2013년 3월 인천을 출발하여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다시 인천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사진은 소심(그미, 소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본디 지니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란다. 素心) 이, 글은 모질이 썼다. 책 안에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등장하는 내용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기간으로 다지자면 한 달이 채 안 되는 28일간의 여정에서 이 책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여행 에세이를 좋아한다. 직접 가는 여행이 제일 좋지만, 몸과 마음이 편한 걸로 따지자면, 간접 여행이 최고가 아닌가?! 근데, 이렇게 다방면으로 서술이 길고 각종 곁가지가 많이 등장하는 책은 처음이다. 물론 주된 여행 여정과 연결되긴 하지만,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저자의 박식함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빠가 읽었던 태양의 아들 잉카라는 책의 제목이 내게 꽤 선명한 기억을 선사해 주었는데, 그 후로 잉카라는 단어는 꽤 오래 나를 사로잡았다. 한비야의 여행기에서도 만났고, 가수 3명이 여행한 프로그램에서도 다시 한번 만났다. 그리고 이 책에도 등장한다. 잉카 유적을 만나려면 꼭 가야 하는 쿠스코와 마추픽추가 초반에 등장한다. 당연히 고산지대이기에 고산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책 안은 물론 책 밖에도 등장할까? 여기까지 가서 빼놓으면 서운한 나스카 라인 이야기는 공포스럽지만, 웃겼다. 가이드의 말도, 엄청난 멀미를 유발하는 비행기도... 역시 간접 여행이 최고다 싶다. 잉카문명의 유적 안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곁들어있다. 세계사는 기본이고, 네루다의 시도 등장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윤동주의 시, 영화 미션, 장윤정의 초혼도 등장한다. 식견이 짧아서 저자가 어디라고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어디 등장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른 색으로 구분을 해준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만 이야기해본다.

또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우유니 사막이다. 책 안에도 정말 화질 좋은 사진들이 여럿 등장한다.(소심의 사진은 정말 책과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여행기들은 앞으로의 여행을 떠날 후배 여행가들을 위한 팁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생각의 뿌리들에 더 가깝다.

책을 읽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을 위해 공부 또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익히고 체화한 것들이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꽤 깊은 공부가 되었던 여행 에세이였던 것 같다. 현재의 역사의 순간들도 이 책 안에는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더 느끼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p. s 유식. 박식. 한자 이런 말에 부담을 느껴서 이 책 마주하기를 피하지는 않길... 중간중간 저자만의 위트가 더 많이 담겨있어서 꽤 흥미로운 여행 에세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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