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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나무 ㅣ I LOVE 그림책
발린트 자코 지음 / 보물창고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이 없는 책을 힘들어한다. 차라리 시보다는 산문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활자 중독자다. 한편으로는 혼자 떠올리며 생각해야 하는 작업보다는 누가 떠먹여주는 게 더 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글자가 없기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아이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한편, 글자가 없기에 상상력이 덜 풍부한 어른은 읽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마음에 와닿는 대로 느끼고 그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봐도 좋다. 답은 없고, 내가 느끼고 보는 게 이 책이 주는 울림일 거라 생각한다. 그 울림은 이 책을 만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이, 내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느낀 토끼와 나무를 소개해 보고 싶다. 사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물론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소년에게 내어주었고, 나무는 지극히 소년을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인 위치였는데 비해, 토끼와 나무속나무는 그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닮았지만 토끼는 소년과는 달랐다. 적어도 토끼는 필요할 때마다 나무에 와서 나무의 것을 가져가기만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씨앗이 어느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씨앗은 땅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운다. 여러 계절이 흘렀고, 이제 씨앗이 아닌 큰 나무로 자라났다. 누가 봐도 울창하고 멋지고 큰 나무가 된 것이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날. 나무는 자신의 삶을 바꿔 줄 상황을 만나게 된다. 토끼 무리에서 살고 있던 양쪽 귀의 색이 다른 흰토끼가 늑대를 피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한 걸음만 지나면 늑대에게 잡아먹힐 상황이었다. 그때! 토끼를 보고 있던 나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커다란 늑대의 모습으로 잎사귀와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의 모습에 늑대는 그렇게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제 나무와 토끼만 남았다. 토끼는 나무를, 나무는 토끼를 바라본다. 토끼는 나무에 자신의 친구와 가족 토끼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나무는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운 토끼는 흩어진 토끼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나무를 두고 갈 수 없었다. 나무는 자신을 늑대로부터 구해준 또 다른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끼는 나무를 위해 바퀴가 달린 수레를 구해온다. 그리고 나무와 자신의 가족들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나무와 토끼는 토끼의 가족들을 찾아 길을 나선다. 때론 자동차가 되고, 때론 배가 되어 그렇게 토끼 가족을 찾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다 보니 한 새가 보였다. 새에게 다가간 토끼와 나무는 토끼 가족들을 봤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저기 높은 두 개의 산에서 토끼 가족들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산까지 가려면 비행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나무는 토끼를 위해 이번에는 비행기가 되어준다.

나무의 희생으로 결국 토끼를 가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토끼의 가족들은 요구하는 게 많았다. 당장 배가 고파 당근이 필요한 토끼 가족들. 과연 나무는 토끼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책의 상당수는 나무가 토끼를 위해 해 준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도대체 나무는 왜 토끼를 위해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토끼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더했다. 토끼들은 나무에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그때마다 나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토끼 가족들을 위해 해준다. 그런 나무에 과연 무엇이 돌아올까?
결국 토끼 가족들을 위한 노력들은 열매가 되어 다시 나무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렇게 나무도 자신만의 가족들을 갖게 된다. 사실 엄마가 되고 보니, 일방적인 희생에 익숙해지게 된다. 나 역시 내 엄마에게 참 많은 희생을 요구했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모든 희생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니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무는 토끼를 참 지극히 사랑했던 것 같다. 다행이라면, 토끼 역시 나무의 희생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이 그저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열매로 나무에 주어졌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내 아이를 위한 수고의 대가로 나는 아이의 행복 가득한 미소와 아이의 사랑한다는 말과 아이의 따뜻한 포옹을 받았다. 마치 토끼 가족들에게 거름을 받아 싹을 틔우고 그 싹을 통해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