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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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영화의 장르 중 자연재해처럼 인간이 손쓸 수 없는 상황이 주가 되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인간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장엄함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지구과학에 대한 관심이 성인이 돼서도 지속되고 있다. 처음의 지구는 모든 대륙이 하나의 덩어리로 붙어있다는 이론인 판게아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판게아라는 용어가 떠오르지는 않아도, 해당 내용에 대한 기억은 있을 것이다. 그런 지구가 현재처럼 나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판구조론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것은 지구도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었다. 마치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계속 분열을 거듭하면서 세포가 생성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지구도 다양한 물질들의 운동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결국 그 움직임의 결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20억 년 후에도 지구는 현재처럼 5대륙 6대양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바로 이 책에는 그 이야기가 등장한다.

늘 자연재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혹은 미스터리물의 소재가 되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가라앉고 있는 일본을 비롯한 섬들, 불의 고리나 과거 내가 봤던 영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저 영화 속 장면에서 움직이는 정도만 보였던 이야기들이 그동안의 연구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특히 섭입(대륙을 구성하는 두 판의 충돌로 인해 한 판의 아래로 다른 판이 들어가는 현상)과 (진극)배회(지구의 단단한 껍질-지각과 맨틀-이 맨틀 아래에 있는 액체 외핵 주위를 전체적으로 회전하는 것) 라는 용어를 통해 서로 맞물리는 판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게 되는 다양한 지구의 변화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고 있는데, 섭 입을 통해 있던 바다가 사라지고 없던 산맥이 등장하는 내용은 한편의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초대륙은 과연 무슨 뜻일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한 덩이의 대륙이 나누어지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이 대륙들이 다시 붙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대륙이 다시 연결되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 중에는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꽤 매력적이다. 물론 이 또한 100%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과연 다음의 지구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정말 이 책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하나의 큰 땅덩이로 연결될까? 읽을수록 궁금함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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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편의점 2 : 없는 돈을 만들어 내는 은행 자본주의 편의점 2
정지은.이효선 지음, 김미연 그림, 이성환 감수 / 가나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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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폐나 동전 말고도 돈의 요정들처럼 안 보이는 돈이 있었어.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자본주의 편의점은 1편의 심화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1권에서는 신용이나 카드 등에 대해 배웠다면, 2권에서는 은행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현상들을 중심으로 경제 지식을 늘릴 수 있다. 사실 어린이 경제교육 동화라고 하지만 2권에서 다루는 경제 상식은 생각보다 깊이가 있다. 1권을 흥미롭게 따라왔더라도, 2권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마 성인들 중에도 2권에서 다루는 은행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제생활 속에서 뺄 수 없는 게 바로 은행이다. 은행의 역사가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한 축이 될 정도로 경제학에서 꼭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1권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편의점에 왔을 때 실제 해당 지식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자본주의 편의점의 주인인 조지 워싱턴 할아버지와 신상의 유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금리와 금리의 동생인 고이득, 금리의 친구인 오동동이 등장한다. 또한 금리의 친구들인 제수찬과 정하라라는 아이들을 통해 이들이 경험하는 상황들이 경제 지식으로 등장한다. 


요즘은 워낙 경제교육이 빠른 편이라서, 통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상당할 것이다. 나 역시 두 아이들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이들의 통장을 개설했고, 명절 때 받는 세뱃돈이나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보육수당 등도 아이들의 통장으로 직접 입금되도록 해두었다. 물론 아직 은행에 가서 직접 거래를 할 정도는 아니기에, 거의 내가 처리를 해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된다면 스스로 통장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리가 은행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는데, 은행은 돈을 맡기고(저금) 이자를 받는 정도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뱅크런으로 인해 은행이 망하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는 본 적이 있다. 또한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어느 법의 적용을 받느냐에 따라 1,2,3 금융으로 나뉜다는 사실도 설명해 준다. 지급준비율이나 신용창출을 통한 돈이 불어나는 모습도 마주할 수 있다. 사실 그림과 함께 그려져서 그렇지, 해당 상식은 성인들을 위한 경제학 책에서도 그대로 사용되는 내용이기에 꽤 난이도가 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돈의 요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조금 더 은행 시스템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내용이 참 마음에 든다. 자본주의 편의점에서 구입한 안경을 쓰고 나니 금리의 눈에 돈의 요정들이 나뉘고 불어나는 것이 보인다. 100만 원이 은행에 맡겨졌을 때, 어떻게 또 다른 돈의 요정들로 나뉘는지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니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은행과 관련된 용어를 비롯하여 은행의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은행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만나볼 수 있고, 은행에 대한 지식을 통해 앞으로의 금융관리와 거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현재 예금자 보호법에 의해 은행에 맡긴 돈은 5,000만 원까지 보호된다고 알고 있는데, 책을 통해 2025년 중으로 1억까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당 내용을 찾아보니 확정은 아니지만, 9월 중으로 시행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재학 시절의 내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도 한 은행에 내 세뱃돈을 비롯한 용돈을 꼬박꼬박 저금하고 있었는데, 통장 정리를 할 때마다 이자가 불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물론 오래지 않아 은행이 부도가 났고, 금액 자체가 크지 않아서 원금은 보장되었지만 과연 이자까지 다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그때 내가 경제 지식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해당 내용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책을 보면서 계속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늦지 않게 경제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경제교육을 원한다면, 자본주의 편의점의 도움을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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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해방 - 세계적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담대한 제언 아포리아 6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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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십수 년 전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는 미얀마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는데, 우리의 교육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을 통해 미얀마의 근현대사와 세계사에 대한 강의를 통해 들은 내용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지내며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느 곳이든지 적은 돈이라도 꼭 기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몇몇의 후원처를 정해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유엔 인권자문 위원인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읽으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적잖은 시간이 지났고, 이번에 만나게 된 빈곤 해방 역시 내게 또 다른 면의 충격을 선사한 책이었다. 책의 초반에 들었던 충격은 과거에 비해 빈곤층의 수치가 많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던진 세 가지의 질문 모두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물론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 또한 인정한다.

1. 지난 20년 동안, 세계의 극빈층 인구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2. 오늘날 전 세계 1세 미만 유아 가운데 80%가 백신 접종을 받는다.

3. 세계 인구의 과반수는 중간소득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 물음에서 진하게 표시한 부분이 답이었는데, 나는 세계 극빈층이 두 배 이상 늘었고, 백신 접종률은 20%, 세계 인구의 과반수가 저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나와 같은 답을 한 사람이 20명 중 19명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왜 이런 물음을 던졌을까? 바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후원의 결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기존의 빈곤에 대한 사회비평의 책과 결이 좀 달랐다. 빈곤은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대신 그를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냉철하게(때론 과민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이야기한다. 수십억 원짜리 슈퍼카를 타고, 세계의 몇 안 되는 요트를 소유하며, 자신이 번 돈의 상당수를 여러 소비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저자는 우려를 표한다. 물론 그들의 벌이나 씀씀이는 그들이 그동안 노력한 노동의 결과임은 틀림없지만, 과연 빈곤층들은 그들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는 것일까? 그보다 더한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사회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라는 사실과 함께, 내가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수는 내가 그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잣대에 대해서 저자는 다른 견해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예민하다.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기부한 액수가 드러나는 것이 공치사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 기부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렇게 드러나기에(드러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기부한다면, 오히려 당장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자이지 도덕학자가 아니다. 옳고 그름보다 당장 절대적인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책에 어디를 펴도 마주할 수 있다. 많은 기부로 잘난 척을 해도 좋다. 오히려 다 많은 기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당장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책을 통해 빈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고, 그동안 했던 기부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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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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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에 마음이 답답해서 집에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임의로 타고 거의 종점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 여주인공이 택시를 타고 뒷좌석에 앉아 하염없이 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차마 요금의 부담 때문에 택시는 못 타고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버스였다. 그때 탔던 버스가 160번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놀란 것이 매 정류장이 유적지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날의 일탈은 3시간여(그것도 이동시간만 2시간 반)로 끝났지만, 매주말마다 정류장 속 역사의 현장을 다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몇몇 곳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큰 아이와 둘러보기도 했고, 얼마 전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서울에 살고 있기에,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던 곳들을 어렵지 않게 다녀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자주 안 다니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천에 있지만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 버스에 앉아서 정류장의 이름을 보며 받았던 충격과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게 이름조차 생경했던 우리의 역사의 장소들로 이끄는 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곳을 더 이상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사실 장소도 장소지만, 처음 주하는 내용들도 여럿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이 새문안교회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가 정동에 고아원을 세웠는데, 그 고아원 출신 중에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선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고아원은 구세 학당(경신학교)으로 발전했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안창호 선생이 있었다.

특히 얼마 전까지 내가 근무하던 지역을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한 달만 빨리 이 책을 마주했더라도 점심 먹고 한 바퀴 돌면서 책 속에 장소를 내 발로 밟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행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명동에서 남산을 넘어 돌다가 만난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근데 그곳에서 기억의 타고 쓰인 돌을 보고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보니 그곳이 통감관저터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봤다면 이해가 되었을 텐데, 그저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아직 마음만 먹는다면 한 시간 내외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청계천을 비롯하여 한국은행 등 다양한 유적지가 모여있는 중구와 종로구는 정말 하루 종일 돌아도 될 정도로 많은 역사의 장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책을 통해 마주했던 유적을 직접 걸어본다면 좀 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고, 아이와 함께 산 교육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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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나무 I LOVE 그림책
발린트 자코 지음 / 보물창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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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이 없는 책을 힘들어한다. 차라리 시보다는 산문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활자 중독자다. 한편으로는 혼자 떠올리며 생각해야 하는 작업보다는 누가 떠먹여주는 게 더 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글자가 없기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아이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한편, 글자가 없기에 상상력이 덜 풍부한 어른은 읽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마음에 와닿는 대로 느끼고 그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봐도 좋다. 답은 없고, 내가 느끼고 보는 게 이 책이 주는 울림일 거라 생각한다. 그 울림은 이 책을 만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이, 내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느낀 토끼와 나무를 소개해 보고 싶다. 사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물론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소년에게 내어주었고, 나무는 지극히 소년을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인 위치였는데 비해, 토끼와 나무속나무는 그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닮았지만 토끼는 소년과는 달랐다. 적어도 토끼는 필요할 때마다 나무에 와서 나무의 것을 가져가기만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씨앗이 어느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씨앗은 땅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운다. 여러 계절이 흘렀고, 이제 씨앗이 아닌 큰 나무로 자라났다. 누가 봐도 울창하고 멋지고 큰 나무가 된 것이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날. 나무는 자신의 삶을 바꿔 줄 상황을 만나게 된다. 토끼 무리에서 살고 있던 양쪽 귀의 색이 다른 흰토끼가 늑대를 피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한 걸음만 지나면 늑대에게 잡아먹힐 상황이었다. 그때! 토끼를 보고 있던 나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커다란 늑대의 모습으로 잎사귀와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의 모습에 늑대는 그렇게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제 나무와 토끼만 남았다. 토끼는 나무를, 나무는 토끼를 바라본다. 토끼는 나무에 자신의 친구와 가족 토끼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나무는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운 토끼는 흩어진 토끼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나무를 두고 갈 수 없었다. 나무는 자신을 늑대로부터 구해준 또 다른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끼는 나무를 위해 바퀴가 달린 수레를 구해온다. 그리고 나무와 자신의 가족들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나무와 토끼는 토끼의 가족들을 찾아 길을 나선다. 때론 자동차가 되고, 때론 배가 되어 그렇게 토끼 가족을 찾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다 보니 한 새가 보였다. 새에게 다가간 토끼와 나무는 토끼 가족들을 봤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저기 높은 두 개의 산에서 토끼 가족들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산까지 가려면 비행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나무는 토끼를 위해 이번에는 비행기가 되어준다.




나무의 희생으로 결국 토끼를 가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토끼의 가족들은 요구하는 게 많았다. 당장 배가 고파 당근이 필요한 토끼 가족들. 과연 나무는 토끼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책의 상당수는 나무가 토끼를 위해 해 준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도대체 나무는 왜 토끼를 위해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토끼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더했다. 토끼들은 나무에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그때마다 나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토끼 가족들을 위해 해준다. 그런 나무에 과연 무엇이 돌아올까?

결국 토끼 가족들을 위한 노력들은 열매가 되어 다시 나무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렇게 나무도 자신만의 가족들을 갖게 된다. 사실 엄마가 되고 보니, 일방적인 희생에 익숙해지게 된다. 나 역시 내 엄마에게 참 많은 희생을 요구했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모든 희생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니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무는 토끼를 참 지극히 사랑했던 것 같다. 다행이라면, 토끼 역시 나무의 희생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이 그저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열매로 나무에 주어졌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내 아이를 위한 수고의 대가로 나는 아이의 행복 가득한 미소와 아이의 사랑한다는 말과 아이의 따뜻한 포옹을 받았다. 마치 토끼 가족들에게 거름을 받아 싹을 틔우고 그 싹을 통해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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