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그토록 소속감을 강조하는가? 누군가에게 단체, 사회,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의 본질이 바로 소외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는가 생각해봅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자본주의의 급격한 발달과 더불어 종교개혁으로 인한 개인을 중시하게 된 관념은 사람들에게 소외와 고독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경제 공항 및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위기는 그러한 고독과 소외감을 극도로 높이게 되고 그들이 오랜 기간 투쟁으로 쟁취한 '적극적인 자유'로부터 도피를 하도록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고립된 개인의 불안에서 비롯된 도피의 메커니즘의 특징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권위주의
2. 파괴성
3. 자동인형적 순응
개인의 소외와 고독은 자신의 결여된 힘을 얻기 위해 개체적 자아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자기 이외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 그 자신의 자아를 융합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강력한 힘이나 소속에 의지하게 되죠. 자신의 존재보다도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거나 혹은 권위를 통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을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첫 번째 메커니즘으로 보았습니다. 파시즘 체제는 바로 이러한 권위주의가 바로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파괴성입니다. 소유하거나 소유 당하려고 하는 피학적-가학적 충동의 형태는 다른 존재가 반드시 있어 그것을 의지하려는 성향이라면 파괴성은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형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 자신과 비교해야 할 대상을 모조리 제거함으로써 무력감과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 또한 개인의 참을 수 없는 무력감과 외로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자동인형적 순응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고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는 책에서 실제로는 자신이 ① 행동하고 ② 생각하고 ③ 느끼는 것 역시 타인의 주입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비판적 사고란 무엇인가 고찰토록 합니다.
책을 읽던 도중 자동인형적 순응에 관한 인상 깊은 말이 있어 하단에 첨부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진술의 논리성을 판단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합리화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동기도 고려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적극적 생각의 결과인 사고는 항상 독창적이다. 독창적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이제껏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외부 세계에서나 내부 세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사고를 이용했다는 의미에서 독창적인 것이다. 합리화에는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발견과 폭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합리화는 단지 자신 속에 존재하는 감정적 편견을 확인해줄 뿐이다. 합리화는 현실을 통찰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기존의 현실과 조화시키려는 사후의 시도다."
때로는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를 비난하고 난 뒤의 이유가 어쩌면 타인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과정과 파시즘의 발생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적극적인 자유를 지키고 가꿔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시대의 발전 흐름과 개인의 심리 상태를 예로 들어 고찰하기도 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정독할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혼자서 참을성 있게 읽기란 더더욱 어렵죠. 그러나 혹시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게 권위주의나 파괴성, 혹은 자동적으로 타인의 의견에 순응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또 점검해보기 위해선 반드시 읽어보야할 고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