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독서』 모임에서 대담한 팟캐스트 방송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방송에서 인용한 책과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페이지입니다. 또한 하단의 링크에는 해당 팟캐스트와 아래의 내용을 PDF 로 정리하여 배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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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차 사적인 독서 1부 링크 - 『사적인 or 사소한 대화』 방송(팟빵) 링크 | 참고자료(PDF) 링크
— 당신이 읽은 한 주간의 책은?
— 책을 깊게 읽기 위한 방법.
사적인 독서 모임의 대담 내용의 송출을 위한 팟캐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녹음본의 공유는 참여자 모든 분들의 동의를 얻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녹음 송출의 목적은 참여한 분들에게는 논의한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참여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모임에서 나왔던 여러 이야기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대담의 주인공들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 가운데 여러 오류나 근거가 미비한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담 내용 가운데 오류나 추가 정보, 출처가 필요한 사항은 모임과 팟캐스트 게시글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모쪼록 모임과 더불어 팟캐스트와 관련된 비난보다는 이러한 수고를 통해 무언가 배움을 얻으려는 참여자들을 독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내용을 들으시고 관심이 있는 부분이 있으시면 가급적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심도 있게 찾아보시길 추천합니다.
과거 자료 링크
11차 사적인 독서 1부 - 『사적인 or 사소한 대화』 방송(팟빵) 링크 | 참고자료(PDF) 링크
11차 사적인 독서 2부 - 『S 라인_꼬마비 앙마비』 방송(팟빵) 링크 | 참고자료(PDF) 링크
11차 사적인 독서 3부 - 『흰_한강,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_김경욱』 방송(팟빵) 링크 | 참고자료(PDF) 링크
11차 사적인 독서 4부 - 『영화 이야기, 강남의 탄생_한종수, 강희용』 방송(팟빵) 링크 | 참고자료(PDF) 링크
10차 사적인 독서 1부 - 『사적인 or 사소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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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사적인 독서 1부 - 『미움받을 용기_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9차 사적인 독서 2부 - 『여덟 단어(박웅현)』
7차 사적인 모임 1부 - 『일의 기쁨과 슬픔(알랭 드 보통)』
7차 사적인 모임 2부 - 『위대한 설계(스티븐 호킹)』
6차 사적인 모임 1부 - 『향연(플라톤)』
6차 사적인 모임 2부 - 『빼앗긴 숨(안종주)』
5차 사적인 모임 - 『416 단원고 약전(다수), 미술관 옆 인문학(박홍순), 생각3.0(노경원) and 디자인씽킹(김수웅)』
4차 사적인 모임 - 『조화로운 삶(스콧 니어링), 세계 신화 여행(김남수 외 9명)』
3차 사적인 모임 - 『대지(펄 벅),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옥지윤, 함익병), 스토너(존 윌리엄스)』
2차 사적인 모임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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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사적인 독서
1부 사적인 대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1. 영국의 경제 주간지《The Economist》
1.1. 개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이다. 영국의 사업가 제임스 윌슨이 1843년 9월에 창간하여 무려 17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창간호에 게재되었던 설립 취지가 비범한데, "전진하는 지혜와, 우리의 전진을 방해하는, 못나고 소심한 무지의 격렬한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1843년 9월에 창간되었다."[1]가 그것이다. 이 설립 취지는 아직도 매 호의 첫 장에 실려 발간되고 있는데, 덕분에 이 잡지의 지향점이 무엇이고 주 독자층은 누구인지를 한 번에 알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인쇄판 4,594,866부, 디지털판 2,738,348부를 발행하고 있다. 영국 주간지이기는 하지만 전 세계에서 발행하며, 해외판매 비중이 훨씬 높다. 개중에는 북미 지역 비중이 약 60%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유럽, 아시아, 영국 순으로 독자가 많다. 각 지역별로 인쇄를 하기는 하지만, 광고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하다.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잡지답게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 헨리 키신저, 헬무트 슈미트 등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구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빌 게이츠는 매 주 한 쪽도 빠짐없이[2] 읽는다고 한다. 미국의 교수들 가운데에서는 이코노미스트를 읽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를 어떤 사람이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았는가의 척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스노브(snob)들이 읽지도 못하면서 괜히 구독만 하는 잡지라는 괴악한 이미지도 있다(…).
1.2. 역사
영국의 사업가 제임스 윌슨이 1843년 9월에 창간하였다.
2015년 1월에 172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재니 민톤 베도스가 편집장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 8월 대주주인 피어슨그룹이 주식을 이코노미스트 그룹과 Exor에 매각하였다.
1.3. 특징
주간조선의 이코노미스트에 대한 특집기사[3]
주 독자를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층으로 하며, 격조높은 논조와 문체로 유명하다. 내용의 전문성은 기사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단어나 필력 수준은 확실히 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단어와 문장의 사용이 탁월해서, 토플 공부를 한 사람들도 이코노미스트 기사 한 꼭지를 읽으면 모르는 표현이 족히 대여섯 개는 툭툭 튀어나올 정도. GRE 단어까지 마스터한 수준이라면 그 때부터는 읽으면서 사전을 찾아볼 일은 없는 수준이다. 즉,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라도 대학에서 언어+교양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이면 읽기 어려운 잡지이다. 시사에 관심이 있으면서 고급 영어를 배우고 싶다면 이코노미스트나 뉴욕 타임즈를 구독하는 것을 강추한다.[4]
내용의 질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름이 The Economist인지라 경제주간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경제나 비즈니스 기사 비중은 의외로 그렇게 크지 않으며, 오히려 국제정치와 세계 주요국가의 국내정치(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일본,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 각국 등[5])의 비중이 더 크다. 사실 잡지 초창기, 그러니까 영국이 곡물법(Corn Law)을 폐지하고 식민지 개척을 세계적으로 주도하던 시대에는 잡지 이름답게 자유무역과 규제완화, 금융시장의 육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경제지였으나, 이후 차츰 각국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분석을 늘려 나가면서 오늘날과 같은 종합 시사주간지가 되었다. 그래서 경제학이나 경영학 전공자들보다는 오히려 정치학 전공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
특정한 이슈들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한 special edition (보통 2~3주에 1회)이나 quarterly report (분기별 1회)도 잡지에 포함되어 나올 때가 있는데, 한국의 주간지와 비교해 보면 그 내용의 깊이가 놀라운 수준이다.
이외에도 과학, 기술, 문화, 예술, 신간서적에 대한 기사도 매 주 빼놓지 않고 실리는데, 특히 과학과 기술 섹션의 경우 해당 학문에 문외한인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저널리즘 정신에 입각한 기사를 쓰기 때문에 수준이 높으면서도 비전공자들이 비교적 읽기가 수월하다.
또한 굉장히 특이한 편집원칙이 있는데, 바로 개별 기사에 기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발행 전 집단토론을 통해 모든 기사가 일관된 관점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4. 논조
이코노미스트의 논조는 좌-우, 보수-진보의 축으로 놓고 봤을 때 딱히 성향을 확정하기 어려운 편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보수 쪽으로 살짝 기운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데, 자유무역과 세계화, 노동과 자본의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 시장금융경제 자본주의를 대안 없는 경제체제로써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리버럴하기 때문에 영미권에서 보수(Conservatives)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상당수와는 또 약간 견해가 다르다. 구체적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 간 이민의 확대, 마약 합법화,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 미국 내 총기규제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 등의 정치적 논조를 갖고 있는데, 이는 확실히 리버럴의 관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코노미스트의 논조는 정치적으로는 리버럴하고,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코노미스트의 논조와 견해가 딱 맞는 독자들, 즉 리버럴한 정치적 견해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시장경제원리와 자유무역의 효율성을 기본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국가가 개입하는 경제체제를 선호하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코노미스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확실히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나 확실히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코노미스트의 관점 중 일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코노미스트 특유의 중도적 성향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선거가 있을 때 확연히 드러나는데, 영국의 경우 이코노미스트는 2005년에는 고든 브라운의 노동당을, 2010년에는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실제로 이 두 당은 각각 선거에서 이겨 집권에 성공했다. 한편 미국의 경우는 2000년까지는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를 번갈아 가면서 지지했으나[6] 2004년부터는 쭉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2008년에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를 진심으로 지지한다는 강력한 논조의 사설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7]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변이 없는 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할 것이 예상되는데,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될 것이 확실해지자 거의 매 주 트럼프를 대놓고 까거나 돌려 까는 기사를 미국 섹션에 쉬지 않고 싣고 있다(…).[8]
1.5. 구성
섹션마다 마지막 기사로 칼럼이 있으며, 각 칼럼은 Lexington, Banyan 같은 고유의 이름이 있다.
이번 주 세계
The world this week. 해당 제호의 정치/비지니스 섹션의 팩트(fact)에 대한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 한 페이지씩 차지하며, 비지니스 페이지에는 KAL's cartoon이 있다. 유난히 바빠서 전체 잡지를 다 읽을 만한 시간이 없다 싶으면 이 부분만 읽고 지나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사설
Leaders. 이 주의 세계가 팩트에 대한 요약본이라면, 사설은 이 사건들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관점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주의 세계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한 세세한 해설과 평론이 곁들여진다.
독자들의 편지
Letters. 유명 잡지답게 각국의 정치/경제 관료나 석학들이 실명으로 투고한 내용이 소개된다.
브리핑
Briefing. 해당 호의 중심 기사와 그 평론이다. 주로 정치나 경제를 다루지만, 과학, 기술, 사회 현상이 선정되는 경우도 많다.
미국
United States. 칼럼은 Lexington.
아메리카
The Americas. 칼럼은 Bello.
아시아
Asia. 칼럼은 Banyan. 동아시아뿐 아니라 인도 등 남아시아의 소식도 여기에서 다룬다. 한국에 대한 기사가 2~3주에 한 번 꼴로 실리는 섹션이기도 하다.
중국
China. 중국은 아시아와 별도로 취급되어 매 주 상세한 기사가 실린다. 내용은 대략 중국정치가 절반,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의 사회변동과 경제 이슈가 절반 정도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Middle East and Africa.
유럽
Europe. 칼럼은 Charlemagne.
영국
Britain. 칼럼은 Bagehot. 이코노미스트의 본진답게 유럽과는 별도로 취급된다. 가디언이나 더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즈 등의 일간지를 구독하지 않는 이상, 영국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데에는 이코노미스트의 영국 섹션만한 매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국제
International. 어느 한 지역 섹션에서 다루기 어려운 국가 간 소식이나 초국가 단위의 소식을 다룬다. 읽는 재미는 앞부분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는 편.
비즈니스
Business. 경영 및 개별 기업/산업 뉴스. 칼럼은 Schumpeter.
금융과 경제
Finance and Economics. 각국의 경제 금융 정책 및 실물 경제의 흐름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공부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학과 기술
Science and Technology. 최신의 과학계 소식 및 이슈가 되는 기술에 대해 심층 접근하는 파트이다.
책과 예술
Books and Arts. 뉴욕 타임스 주말판 등에서 볼 수 있는 서평 및 예술 관련 지면과 비슷하다.
경제와 금융 지표
Economic and Financial indicator. 각국의 GDP, 소비자물가지수, 실업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이자율, 주요 국제통화의 환율, 각국 주식시장의 주요 지표가 소개된다. 경우에 따라 식품이나 전자제품, 원유 가격 등 특정 산업의 주요 상품 가격을 다루기도 한다.
부고
Obituary. 최근에 사망한 유명인의 주요 업적과 일대기를 아주 짤막한 평전 형식으로 다루는 부분이다. 단순한 사실 나열은 아니고, 해당 인물의 공과 과(정치인이나 기업인의 경우)에 대한 평가가 곁들여진다. 통상 한 주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실린다.
1.6. 비판
이코노미스트는 팬도 많지만 마뜩찮아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위에 서술한 정파적 관점으로부터의 비판을 제외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는다.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이 지나치게 하나로 모아짐
같은 영국의 진보적 일간지인 가디언은 "이코노미스트는 사유화(privatisation), 규제완화(deregulation), 자유화(liberalisation)만을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가디언도 반대편에서 비슷하지 않나 비판하였다. 실제로도 이코노미스트의 경제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기승전규제완화, 기승전사유화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이 그럴 듯한 진단일 때도 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다만 정부의 시장개입을 맹목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으며, 독과점, 환경오염으로 인한 외부효과, 건강보험, 사회 인프라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조정을 주문한다는 점에서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집의 익명성
이코노미스트가 논조의 일관성을 위해 유지하고 있는 익명성 원칙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기자의 이름을 표기한다고 해서 논조의 일관성이 깨지는 것이 아니며, 기자의 이름을 숨기는 것은 기자와 잡지의 의견을 객관적인 진실 혹은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설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고, 정론지라면 익명성 뒤로 숨기보다는 바이라인을 명기해서 비판과 토론에 임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익명성의 원칙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에는 명시적으로 포기하며,[9] 개별 기사를 누가 썼는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지만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편집진과 특파원의 명단을 모두 확인할 수 있으므로 특파원이 작성하는 기사의 경우는 사실상 바이라인이 공개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답하고 있다.
허세(…)
같은 저널리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가끔 나오는 비판. 불필요하게 단어를 꼬아서 쓰거나, 필요 이상으로 현학적이거나 냉소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는 점이 일차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또한 엘리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코노미스트의 경영전략, 즉 지적인 엘리트들에게 꼭 필요한 뉴스를 선별하여 평론과 함께 제공하며, 이코노미스트를 읽음으로써 당신의 지적인 수준도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식의 마케팅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10]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루이스는 이러한 이코노미스트의 현학적 측면 + 편집의 익명성 원칙에 대해서 새파란 젊은이들이 지면상으로 나이깨나 먹은 척 함으로써 자신의 어림(youth)과 경험부족(inexperience)을 감추기 위한 것이며, 이들이 얼마나 머리에 피도 안 말랐는지를 알게 되면 미국 독자들은 다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2010년대 현재에는 필진의 대부분이 저널리즘 및 정치/경제 업계에서 상당한 경험을 쌓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런 비판은 좀 덜한 편이다.
1.7. The Economist Espresso
2014년 11월부터 이코노미스트 사가 새롭게 시작한 일간 뉴스 서비스.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처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에 세계의 주요 뉴스 기사 5개(Today's agenda) + 세계의 짧은 뉴스를 한데 모아 놓은 기사 1개(The world in brief) + 각종 경제지표 모음 (Markets and currencies) = 총 7개의 짧은 기사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심도있고 긴 분석을 제공하는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에 비해, 이코노미스트 에스프레소는 매일 최신의 뉴스를 제공하며, 기사 하나의 분량 또한 스마트폰 스크롤바를 한 번 살짝 내리기만 하면 끝날 정도로 짧으므로 자투리 시간에 읽기 편리하다. 이렇게 스마트폰에 특화된 뉴스 요약 애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iOS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용 앱, 그리고 이메일까지 세 가지 방식으로만 제공된다.
이코노미스트 디지털판을 구독하는 독자는 무료로 에스프레소의 모든 기사를 읽을 수 있으며, 이코노미스트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도 앱을 다운받으면 매일 하나의 기사를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만일 이코노미스트를 구독하지 않으면서 이코노미스트 에스프레소만 구독하고자 한다면, 월 3.99달러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된다. 뉴스 버전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버전 간의 차이는 발행시간에 따라 The world in brief에 포함되는 뉴스가 약간씩 다를 수 있다는 점[11]과 주요 경제지표가 각 버전의 마감시간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없으며, 보는 사람이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 아시아 버전의 경우 대한민국 표준시로 월~토요일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발행된다.
1.8. 구독방법
한국에서는 일종의 구매대행사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해외직구를 할 수준의 영어도 안 되면서 이코노미스트를 읽으려고 하는 용자는 없을 것이므로(…) 그냥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독을 신청하는 것이 깔끔하다. 구독 옵션은 종이판, 디지털판, 종이+디지털판의 셋인데,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종이판은 구독을 신청하면 홍콩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의 아시아 지역 인쇄소에서 배송되는데, 배송에는 대략 2~3일이 걸린다. 보통 한국 시간으로 매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그 전 주 금요일에 공개된 새로운 제호를 받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디지털판의 경우 Windows, iOS, 안드로이드, 구글 크롬, 킨들 파이어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며, 그냥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에 로그인하고 웹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 시간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3시에서 4시 사이에 새로운 제호가 디지털판으로 공개된다. 앱의 인터페이스는 상당히 깔끔하며, 오디오 기능도 제공되기 때문에 기사를 들을 수도 있다. 다만 영국식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듣기는 쉽지 않은 편.
구독 신청은 간편한 데 비해, 구독 옵션/지불방법 변경, 해지 절차는 꽤 복잡한데,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할 수는 없고 항상 해당 지역의 서비스 센터에 메일을 보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한국어가 통할 리가 없기 때문에 영어로 메일을 작성해야 한다. 대신 응답속도나 일처리는 확실하다.
학생 할인가격도 있기 때문에 학생이라면(대학원생 포함) 더 싼 가격에 구독할 수 있다. 게다가 ISIC 국제학생증 소유자의 경우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디지털판 한정으로 1만5천원에 1년치를 구독할 수 있다. 국제학생증 발급비용 3만원에 추가해서 4만5천원으로 디지털판을 구독할 수 있다는것. 그냥 학생용 디지털판이 15만원인데 비해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구독할 수 있다. 참고로 레귤러 디지털+프린트판의 경우에는 1년에 41만5천원이다. 1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 되는지는 경험자의 추가 부탁. 물론 국제학생증도 1년 단위이므로 또 신청하면 될지도..
1.9. 트리비아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이름이 똑같긴 하지만 연관성은 전혀 없다. 즉, 중앙일보의 이코노미스트는 The Economist의 한국어판이 아니다.
영국 잡지답게 영국 영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는 Mr. Trump가 아닌 Mr Trump이며, 노동은 labor가 아니라 labour이다. 문체 또한 영국식에 가깝기 때문에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012년에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인 대니얼 튜더가 '한국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도 맛없다'라는 기사를 올려서 큰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대니얼 튜더는 이후 기자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서 수입 맥주를 파는 맥주집을 차렸는데 의외로 장사가 잘 되어서 이후엔 아예 더부스라는 이름의 크래프트 맥주 회사를 설립했다.
2. 한국에서 발행되는 경제 주간지
중앙일보에서 발간하고 있다. 바로 위의 그 유명한 The Economist 때문인지, 가끔 이 잡지를 The Economist의 번역판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1] First published in September 1843 to take part in "a severe contest between intelligence, which presses forward, and an unworthy, timid ignorance obstructing our progress."
[2] from cover to cover every week.
[3] 사실상 이코노미스트 광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4] 뉴요커는 진보적인 정치성향과,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에 대한 내용을 견딜 수 있다면 괜찮다.
[5] 영국은 아무래도 이코노미스트가 발행되는 곳이다 보니 미국과 비슷한 비중으로 기사가 실린다. 다만 미국정치와 비교하면 영국정치는 상대적으로 낯설기 때문에 읽기는 쉽지 않은 편.
[6] 1980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1992년에는 빌 클린턴, 1996년에는 밥 돌, 2000년에는 조지 워커 부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한편 1984년과 1988년에는 어느 후보에 대해서도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7] 버락 후세인 오바마 항목에 있는 It's Time 표지가 2008년 대선 직전 발행된 이코노미스트이다.
[8] 사실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더라도 메이저 미국 신문사들은 대체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트럼프와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버린 워싱턴 포스트나 리버럴한 논조의 뉴욕 타임즈, 북동부 엘리트 민주당 지지자의 총본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보스턴 글로브는 물론이고, 월스트리트 저널조차 트럼프보다는 힐러리로 기우는 추세.
[9] 외부필진이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하는 경우, special report, 서평 파트에서 익명성 원칙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10] 이런 점에서는 애플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비판과도 흡사한데, 실제로 이코노미스트가 2000년대 이후 잡지시장이 쇠락하는 가운데에서도 엘리트 마케팅과 디지털 시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로 홀로 승승장구하면서 잡지계의 애플이라고 불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미있다.
[11] 예컨대 아시아판이 발행되고 나서 아메리카판이 발행되기까지의 사이에 일어난 주요 사건은 아메리카판에 먼저 실릴 수 있다. 일례로 한국 시간으로 2016년 7월 9일 토요일 오전에 결정된 한국과 미국의 THAAD 도입은 7월 9일의 아시아판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같은 날짜로 발행된 아메리카판에는 실렸다.
《출처 : 나무 위키》
그 사람, 소크라테스_폴 존슨
원제 Socrates: A Man For Our Times (2011년)
모든 질문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적대시하고
사람마다 ‘나름의’ 답이 있음을 주장한,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야기
소크라테스는 영향력으로 보자면 모든 철학자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사고할 도구를 제공했다. 인본주의를 부르짖던 그리스인들은 세상과 저 멀리 하늘에 있는 존재가 만들어진 원리에 의문을 품었지만 정작 인간의 내면세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는 것을 즐겼다. 충동에 따라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에서 새로운 질문의 틀을 잡았다. 질문 속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육체와 영혼을 구별하고, 절대적 도덕성을 주장하고, 정의에 반대되는 복수주의를 부정하고, 남녀를 포함한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활기를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이유로 교실을 거절했고 편지 한 통 남기지 않았으며 소크라테스주의라고 할 만한 것도 만들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배울 수 있는 것은 크세노폰과 플라톤, 그 밖에 그를 연구한 원전들 덕분이다.
이 책은 오늘날 관료적인 서식 채우기와 ‘정답’만을 찾는 모든 수준의 교육 제도에 반기를 들었을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오롯이 소개하는 책이다. 또한 인간성을 잃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 이 책의 주요 내용
1장 살아 숨 쉬는 사람 대 복화술사의 인형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추구하고 전달한 전형적인 철학자이지만 아무것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그에 관해서는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놀라운 지적 능력을 동원해 소크라테스의 업적을 영원불멸의 지식으로 만들었지만, 놀랍게도 소크라테스를 복화술사의 인형처럼 만들어 스승의 사상이 아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게 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2장 행복을 찾아내는 재능을 가진 못생긴 조커 소크라테스는 자유롭고 진취적인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태어났고 이 도시를 사랑했다. 이 도시 사람들과 친구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며 육체적 안위에 대해 무심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소크라테스는 추남이었고 나이가 들면서 배도 나오고 안짱다리의 기미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외적 요인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행복해 했다.
3장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식 낙천주의의 절정 소크라테스가 원숙기를 보낸 페리클레스 치하는 낙관주의로 타올랐다. 도시와 제국이 번성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고, 아테네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때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시기에 예술과 음악, 음악적 윤리학 및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아테네에 유례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페리클레스는 물론 아테네를 다스렸던 뛰어난 인본주의자 그룹은 뿔뿔이 흩어졌다.
4장 철학의 천재, 소크라테스 이 시기 철학자들이 세상과 저 멀리 하늘에 관심을 가질 때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철학을 하는 방식은 질문이었다. 아테네 거리를 거닐고 광장을 얼쩡거리면서 충동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서 새로운 질문의 틀을 잡았다. 때로는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반어법을 구사했으나 이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질문의 목적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을 가르치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도덕적이었다.
5장 소크라테스와 정의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추상적인 의미의 정의가 아닌 실천할 수 있는 정의에 관심을 가졌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사람은 친구에게 선을 베풀고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도 선을 베풀어 적을 친구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또한 낮은 지위에 있는 여성을 끌어올리는 문제 역시 정의에 포함시켰다.
6장 아테네의 도덕적 타락과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 말년, 아테네는 페스트로 많은 인구를 잃었고 스파르타와 오랜 전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크리티아스를 수장으로 하는 30인 과두정은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온건파가 민주주의를 회복했을 때 아테네는 무질서했고 그 와중에 소크라테스는 크리티아스 등과의 친분 때문에 재판에 섰고 추방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7장 소크라테스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철학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사고할 도구를 제공했다. 육체와 영혼을 구별하고, 절대적 도덕성을 이야기하고, 정의에 반대되는 복수주의를 부정하고, 남녀를 포함한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철학을 하고 그 영양분으로 정신과 영혼의 만찬을 완성했다.
1장 | 살아 숨 쉬는 사람 대 복화술사의 인형
2장 | 행복을 찾아내는 재능을 가진 못생긴 조커
3장 |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식 낙천주의의 절정
4장 | 철학의 천재, 소크라테스
5장 | 소크라테스와 정의
6장 | 아테네의 도덕적 타락과 소크라테스의 죽음
7장 | 소크라테스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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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_ 폴 존슨
영국의 석학, 비판적 저널리스트, 역사학의 거장. 1928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스토니허스트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를 졸업했다. 1950년대에 저널리스트로서 처음 명성을 얻은 뒤 「레알리테」 부편집장과 「뉴 스테이츠먼」 편집장을 역임했다. 정통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입장에서 「더 스펙테이터」 「데일리 메일」 「데일리 텔레그래프」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내셔널 리뷰」 등에 정규 칼럼과 기사를 기고해왔다. 그 밖에 워싱턴 D.C.에 있는 공공 정책 미국기업연구소에서 커뮤니케이션 부분 초빙교수로 일했으며, 마거릿 대처 수상과 토니 블레어 수상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2006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저널리즘 부문)을 받았다. 학생, 기업가, 정치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강의 활동을 함으로써 대중과도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저술가로서 역사, 인문, 예술, 문화를 넘나들며 50여 권의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과 「내셔널 리뷰」 ‘20세기 100권의 책’에 선정된 『모던 타임스』를 비롯하여 박식함과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는 저술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이 책 『미국인의 역사』 외에 주요 저서로 『근대의 탄생』 『유대인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 『지식인의 두 얼굴』 『창조자들』 『폴 존슨의 예수 평전』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르네상스』 등이 있다.
《출처 : 알라딘》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말 한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오니아 학파의 탈레스가 한 것이 가장 유력하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서양철학의 아버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3]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직접 어떠한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제자 혹은 지인들, 대표적으로 플라톤이나 크세노폰, 소크라테스에게 비판적인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등이 남긴 저술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다.[4]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나 행적은 대부분이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 근거한 것이다.
2. 개인적인 삶
외모는 대머리에다가 못생겼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있던 당시 아테네에서 꽤 고생을 했다고 한다.[5][6]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 사이에서 알려진 것도, 그의 미남 제자가 아고라에서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면서부터였다 하니, 아테네의 외모지상주의나 소크라테스의 추모(醜貌)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략 짐작해 볼 만하다.[7]
그의 마누라였던 크산티페는 못생긴 악처(惡妻)였다고 전해지는데,[8] 사실 앞뒤 정황을 따져보면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오히려 현처(賢妻)였을 가능성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유명한 철학자였지만, 사실 아내 입장에선 돈도 없는 주제에 맨날 돈 많은 사람(대표적으로 플라톤)과 사색한답시고 수다나 떨러 다니는 남편으로, 집안 살림은 크산티페가 다 책임졌다. 소크라테스가 물려받았으나 운영 등에 무관심하여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했던 석공소도 크산티페가 직접 운영했다.
허나 이런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를 내쳤다는 기록은 없으며, 외려 소크라테스가 독배(毒杯)를 마시고 자결할 때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다혈질기가 있어서 홧김에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뿌리고 구박도 자주 했지만…. 아내의 잔소리에, 소크라테스는 이런 부인이 참을성을 길러준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크산티페가 악처라고 전해지는 것은 다툼이 많은 친구를 악우라고 하는 것처럼 단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며,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도 전해지는, "젊은이여, 결혼하라. 좋은 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라는 농담도 그 행간(行間)을 읽을 필요가 있다.[9]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대결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30대 후반에서 40대의 나이에 중장보병으로 종군하기도 했다. 당대 아테네 시민은 신체 및 정신에 장애가 있거나 만 50세를 넘지 않았다면 군복무 의무가 있었으므로, 소크라테스도 군인으로 참여한 것. 대표적인 참전 전투로는 델리온 전투가 있는데, 이때 아테네군이 패배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침착하게 후퇴하는 담대함을 보여주었으며, 그가 소속된 부대도 소크라테스의 침착한 대처 덕분에 무질서하게 패주하지 않고 무사히 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10][11] 무려 세 번이나 참전했다고.
《아테네의 변명》과 《소크라테스의 재판》이라는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삶과 당시 세계관이 잘 드러난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동안, 위에 서술된 것처럼 세 번 참전했던 것과, 딱 한 번 이스트모스에서 포세이돈을 위해 열리는 대축제였던 이스트미아 제전을 구경하러 간 것을 합쳐, 단 네 번밖에 아테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크리톤》에서 아테네의 법이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형식으로 자문자답한 《소크라테스의 독백》에 의하면, '우리(아테네의 법)와 우리의 도시(아테네)만으로도' 소크라테스에겐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3. 삶과 철학
우선 소크라테스의 삶은 가난했다. 일한다는 것 자체가 선비철학자의 삶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돈 벌어오라는 다혈질 아내의 구박을 많이 받았고, 이 때문에 상술했듯 티격태격 싸우는 게 일상다반사가 된 것.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하루는 제자들 중 한명이 "스승님, 결혼은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21세기 유부남들도 자주 하는 말이라는 데서 소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이렇게 가난했던 소크라테스가 일개 수병도 아니고 최소 중산층 이상은 돼야 군장(軍裝)을 마련할 수 있었던 중장보병으로 어떻게 참전할 수 있었느냐다.[12][13] 이에 역사가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석공소 주인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아버지 때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재개발 사업으로 단단히 한몫 잡았을 거라는 설, 소크라테스 대신 석공소를 운영했던 크산티페가 의외로 수완이 탁월한 경영자였고 남편에게 용돈을 안 줬을지도 모른다는 설, 알키비아데스 같은 소크라테스의 금수저 제자들이 스승님을 위해 대신 군장을 마련해 드렸을 것이라는 설 등. 그냥 대대로 군장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테네를 지극히 사랑했던 철학자로서,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아테네가 놀아나고 회의주의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이에 반발하여 보편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등장했다.
현재의 시선에서 보면 지극히 잉여로운 인물로, 하는 일도 없이 시장이나 광장을 돌면서 사람들을 붙잡고 묘한 철학적 질문을 해댄 것으로 유명하다.[14]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돈을 버는 소피스트들이 오히려 더 생산적으로 보일지도...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어느정도 배금주의를 전제한 것인만큼 별로 훌륭한 관점은 못된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것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공적인 모임에도 그다지 활발히 참여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다이몬에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바삐 돌아다니면서 사사로이 그렇게 충고를 하면서 부질없는 참견을 하지만, 공적인 모임에 나타나서 나라에 대해서는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을 아마 이상하게 생각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이미 여러분이 여러 번 여기저기서 내가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은 적이 있는 바로 그것, 즉 나에게 자주 나타나는 일종의 신의 알림이라든가, 신령스런 것인데...(중략)... 바로 그것이 내가 정치에 관여하기를 반대하고 있거니와, 그 반대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나하면 아테나이의 여러분, 내가 일찍이 어지러운 정치에 관여하려고 했더라면 틀림없이 벌써 몸을 망치고, 여러분이나 나 자신에게나 아무 이로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올재 번역본 중
조금 과격하게 설명하자면, 돈도 안 벌어오면서 딱히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장바닥이나 광장에서 말빨로 어그로를 끌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시장, 광장을 인터넷으로 바꾸면 훌륭한 인터넷 폐인이 탄생할 지경이다.
저술보다는 대화를 통해 철학활동을 하였고, 특히 상대방에게 계속 질문을 해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을 썼다. 이런 질문을 중심으로 하는 교수법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혹은 산파법(산파술)[15]이라고 부른다. 확고한 주장을 가지고 있던 피질문자가, 질문자의 문답법에 의하여 결국 자신의 주장을 자기 입으로 자연스럽게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유도심문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산파술을 통해 논쟁의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자세는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혹은 심문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상대보다 더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검토해 나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형사가 사용하는 유도심문과 같은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는' 단점을 지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덕 철학을 위해 기존에 있는 개념(가령 '경건함', '선함', '좋음' 따위의)을 명료하게 만드는 것에 주목했으므로, 이러한 지적은 핵심을 완전히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계속 산파술을 시전하고 다닌 끝에,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는 따라 하기는 쉽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심오한 말을 남겼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델포이 신전에 어떤 자[16]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가 있습니까?" 라고 묻자, 무녀는 평소에 늘 쓰던 질질 끄는 은유나 수사들을 생략[17]하고 단 한 마디로 "아니."[18]라는 신탁을 주었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여, 똑똑해 보이는 사람(정치인, 작가, 장인 등)들을 닥치는 대로 만나고 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시험해 봤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똑똑해 보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혹은 편견)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그제야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는 말을 남겼던 것과 비교해본다면 흥미로운 대목. 참고로 흔히 알려진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19]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플라톤은 그리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을 또 감명 깊게 받은 제자들 중 한 명이 바로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다. 서양 고대철학 3대장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고대 그리스 역사의 먼치킨인 알렉산드로스 3세이니, 따지고 보면 알렉산드로스는 소크라테스의 증손제자에 해당된다. 인류 역사상 손꼽힐만한 스승-제자 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플라톤 말고도 유명한 자들이 있다. 몇 차례 연급된 크세노폰 역시 그러하며,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가 그러하다. 또한 키레네 학파를 창시하게 되는 아리스티포스 역시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알려져 있다. 키니코스 학파의 창시자이자 유명한 디오게네스의 스승인 안티스테네스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알려져 있다. 메가라 학파의 창시자인 에우클레이데스 역시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알려져 있다.[20]
4. 죽음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직접적으로 위와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없다. 다만 비슷한 뉘앙스의 말은 한 적이 있다. 후술된 내용 참조.[21][22]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위가 신들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현혹하여 아테네의 전통을 해친다고 생각되어, 당대 아테네 상류층에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혔고,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에 위험인물들이 꽤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양쪽을 모두 몇 차례씩 배신한 배신자 알키비아데스와, 전쟁에서 이긴 스파르타의 힘을 업고 권력을 잡아 반대파는 (민주파 외 온건 과두파들까지) 죄다 죽여 버리고, 시민의 수는 3,000명으로 고정시키고선 나머지 인원들은 언제든지 즉결처분 시키고 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한 폭군 크리티아스[23]가 있다. 결국 참다못한 아테네인들은 8개월 만에 크리티아스를 축출했고, 그로부터 4년 후, 이러한 사태의 시발점으로 거론된 소크라테스는 고발당하고 재판을 거쳐 사형에 처해진다.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직접민주제가 타락하면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될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보게 된 이유들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24]
하지만 정작 소크라테스 본인은 자신을 따라다녔던 청년들의 과두정치(寡頭政治) 체제를 몹시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뿐 아니라, 과두정에서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자 그냥 쌩까고 집으로 돌아가는 등 반대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과두정이 조금만 오래 유지되었더라도, 그 일로 인해 소크라테스 본인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또한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플라톤의 사상이라는 중론이 있지만) 과두정치 체제를 상당히 하등하고 부정적인 체제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과두정치의 시발점이라는 혐의는 부당한 면이 적잖이 있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소크라테스의 기소 혐의는, 아테네가 믿는 신을 우습게보고, 새로운 우상을 섬기면서 젊은이를 타락시킨 죄였다.[25] 황당해 보이지만, 크리티아스를 처단하고 내전의 장기화를 우려한 아테네에선 민주정을 회복하는 대신, 그동안 상대방에게 했던 잘잘못은 따지지 않기로 하는 대대적인 사면령이 내려진다. 당연히 여기엔 아테네 시민인 소크라테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배신자 알키비아데스와 폭군 크리티아스라는 위험인물을 키웠다는 혐의를 적용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진짜 목적은 알카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의 정신적 스승을 처벌하려던 보복성 고발이었지만, 겉으로는 엉뚱한 걸 만들어 제시한 것이다.
사형 판결을 받은 재판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황당한 점이 많다. 참고로 소크라테스가 고소되었을 때의 죄목들은,
1. 소크라테스는 국가 공직의 추첨제를 비판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국가제도를 경시하게 했다.
2. 병에 걸리거나 소송을 당할 때 아버지나 친척은 도움이 안 되며, 의사나 법에 밝은 자가 보다 유용하다고 하여 부모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게 했다.
3. 호메로스의 시구를 악용하여 젊은이를 오도하게 했다.[26]
이 재판은 우선 투표(배심제)로 유죄/무죄를 가린 후, 유죄로 결정되면 다시 고발자가 제안하는 처벌과 피고 본인이 제안하는 처벌 중에서 투표를 하여 채택하는 방식이었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특정 당파에 소속되지 않았다고 변론하며, 최종적으로 281:220, 61표차로 유죄가 결정됐다. 표차가 생각보다 안 났다는 건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먹혔다는 걸 의미했기에, 이때까지는 소크라테스가 사형 판결을 받을 확률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고무된 소크라테스가 다시 특유의 어그로를 시전하며 자신은 무죄라며 사형은커녕 오히려 국가유공자급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장황하게 말한 후, 마지막에 "하지만 다른 사람이 벌금형을 제안하라고 권했으니 그렇게 하겠다" 라고 배심원들의 심기를 자극하는 안 좋은 수를 두고 만다.[27] 쉽게 말하면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피 본 사람들이, 그래도 소크라테스까지 죄를 묻는 건 옳지 않은 거 아닌가, 라며 편을 들어주고 있는데, 그렇게 쉴드 쳐주는 사람들 심기까지 건드리는 ‘나의 위대함을 알라’ 식으로 발언한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 자기변호 이후 361:14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사형 판결을 받고 만다. 말하자면 무죄 쪽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도, 소크라테스의 자기변호를 들은 후에는 사형 쪽에 표를 던지게 된 것.[28]
죽기 직전에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빚졌다며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으로서, 당시 아테네에서는 병에 걸렸다 나으면 이 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자신이 독약을 마시고 죽음으로써 모든 질병에서 해방되니 고맙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화를 상징적으로 해석해서, 삶 자체가 질병이고 죽음은 그 '삶'이라는 병의 치료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으나, 소크라테스의 평소 언행은 그런 허무주의와 관계가 없었으므로, 진실일 가능성은 낮다. 다른 각도의 해석으로는, 평소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쇠가죽만큼이나 두꺼운 아테네인들의 '무지의 가죽'을 가렵게 하는 '등에(쇠파리)'에 빗대었듯이, '아테네인들의 무지의 병을, 나 대신 치유해 달라'는, 철학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해달라는 부탁으로 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설(異說)들이 있다. 병으로 고생하다 나은 적이 있는데, 제물을 아직 올리지 않았기에 죽으면서 부탁을 남긴 것일 뿐이라거나, 또는 단지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이웃 사람에게 진짜로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었다거나, 심지어 그냥 농담이었다는 설까지 있다(…).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대체로 할 말을 직설적으로 했지 은유적으로 빙빙 돌려가면서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굳이 비유적인 표현으로 보고 의미를 해석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며, 직설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플라톤의 책 《파이돈》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독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파이돈》이라는 책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라는 사람에게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파이돈》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먹고 누운 상태로 몸이 굳어지다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차분한 죽음의 모습은 플라톤이 포장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플라톤은 이 시기의 소크라테스와 엮이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29]에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죽을 시기에는 소크라테스 곁에 없었다. 두 번째 이유로, 당시 그리스에서 널리 사용된 독약을 먹으면, 심한 구토 증세를 일으키면서 전신의 마비와 경련과 함께 사망한다. 플라톤의 묘사와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먹은 독약은 일명 독당근(Poison Hemlock, Conium Maculatum)으로 알려진 물건이다(알칼로이드계 독극물인 Coniine). 앞서 말한 구토 증세를 일으키는 독약은 중추신경계를 공격하는 독미나리이고,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당근은 심장에서 가장 먼 부위부터 말초신경계를 공격해 마비시키는 독약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오히려 플라톤의 서술과 같은 품위 있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어떻게 죽었냐가 아니라, '왜 그가 죽음을 선택했는가?'다. 소크라테스의 나이는 이때 이미 70세를 넘겼고, 남은 삶은 길어야 몇 년 되지 않을 나이였다. 일단 그는 재판장에서도 자기 신념을 꺾느니 죽겠다고 말한 데다가, 겉으로 공표한 것이야 어쨌든 속의 진짜 죄목은 매국노와 폭군의 정신적 스승으로 많은 아테네 시민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으니, 재판에서 타협의 여지는 없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이들을 대놓고 돕거나 한 게 아니라, 단지 정신적 스승일 뿐인데 사형은 너무하다는 평가가 아테네 내부에서도 꽤 많았으므로, 형벌을 벌금형 정도로 줄일 수가 있었는데 스스로 그것을 —어그로 끌며-- 내동댕이쳤다. 또한 감옥에서 탈옥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거부했다. 법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적용받고, 불리할 땐 피한다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던 논리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기에,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도 실천한다는 일관성을 위해서 탈옥하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독배를 든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사실 소크라테스는 《대화편》에서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사실 이 말은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 “두라 렉스, 세드 렉스(dura lex, sed lex, 법이 지독해도, 그래도 법이다)”를 번역한 말이다. 로마의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가 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역시 자기 책에 저 격언을 인용했을 뿐이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악법도 법이다'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크리톤》에서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법에 의한 판결을 (비록 그 판결이 부당해 보이더라도) 개개인의 판단으로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반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게. 가령 이곳에서 도망할 작정으로 있는 우리한테로, 이 짓을 어떻게든 일컫건 간에, 법률과 시민 공동체가 다가와서는 막아서고서 우리에게 묻는다고 말일세. “소크라테스여, 말해다오. 그대는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나? 그대는 그대가 하려는 이 일로써 우리 법률과 온 나라를, 그대와 관련되는 한, 망쳐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나? 혹시 그대가 생각하기엔 이런 나라가, 즉 나라에서 일단 내려진 판결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손상되었는데도,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서 여전히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크리톤, 우리는 이 물음들이나 또는 이와 같은 부류의 다른 물음에 대해서 뭐라 대답할 것인가?(50a~b)
이에 대해서, 그가 계약론적 사고를 가졌다는 해석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한 말을 보면, 아테네와 아테네의 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다른 폴리스로 떠날 자유가 있었는데도 평생 아테네를 떠나지 않고, 아테네가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살았다면, 이는 아테네의 법률을 지키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한다면, 그 계약을 어기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외국으로 피하길 원했다면, 애초에 재판정에서 영빈관에서 밥 사라고 어그로 끌지 않고 순순히 추방형을 제안했다면 충분히 받아들여졌을 텐데, 이제 와서 판결에 불복해 해외로 도피하겠다는 건 모순이라는 것도 소크라테스 스스로 지적한다. 이 계약론적 사고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강하게 신봉하는데, 결국 이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압축적으로 보면,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그 자신의 철학 때문인데, 그는 철학이 유일한 인생의 이유라고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Unexamined life for a man is not worth living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소크라테스는 인생의 이유는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는 신과의 계약이며, 영혼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사람이니,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포기하고 도피를 하면 아테네와의 계약은 지키더라도, 신과의 계약을 어기는 행위가 되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리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의 행동에 대한 설명으로, 처음부터 국가의 안정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켰다는 설명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 및 이후 벌어진 피바람의 원인에 대한 청산 의도를 갖고 추진된 재판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고, 제자들이 저지른 막장행위로 인해 벌어진 아테네의 혼란과 몰락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할 입장으로서 재판에 순응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정황을 통한 추측일 뿐, 소크라테스는 그런 의미를 암시하는 말조차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단순히 배신자, 폭군의 스승이라는 것만으로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를 미워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풍자극에서, 소크라테스를 교묘한 궤변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원수지간으로 만든 궤변론자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소크라테스도 그가 조롱했던 소피스트들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것. 모든 권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가 설파하는 '보편적 진리'가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거대한 권위로 변모할 것을 우려했고,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매도한 것이다.
5. 평가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책을 쓴 적도 없고, 자신만의 사상을 전개한 적도 없다. 중앙대 심리학과 이장주 교수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책이 기억력과 사고력을 감소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책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30]이런 사고방식은 고대 세계에서는 의외로 그리 드물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노장(老莊)사상과도 통하는 데가 있다.
참고로, 그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에 의해 날조된 인물로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만으로 실존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뿐만이 아닌, 다른 제자들이나 당대의 다른 소피스트들의 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문헌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특히 제자인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언행은 플라톤의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플라톤의 후기 작품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이름만 소크라테스일 뿐, 플라톤의 고유한 사상을 소크라테스라는 등장인물이 말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철학적 업적 자체는 적다고 생각하는 이가 더러 있는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통해 비로소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직접적으로 계승되어, 더 나아가서는 2,600년 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형상철학으로 이어지기 때문. 때문에 철학적 업적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비록 플라톤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철학적 업적과 영향력은 상당한 편. 그리고 더 나아가 인지도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최고[31]를 달리는데, 이에는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삶의 모습과 진리를 대하는 참된 자세, 그리고 죽음의 상징성[32]이 매우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듯. 고로 철학적 업적에 있어선 플라톤, 칸트 등이 많이 거론되나,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한, 가장 모범이 되는 철학자론 소크라테스가 많이 꼽히는 편이다.
또한, 사상 최강의 토론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사람이기도 하나, 그 기록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저작에서 비롯된다. 플라톤의 저작에서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포함한 14:1의 토론에서도 무쌍을 펼치나 플라톤의 저작에 대한 정의는 대화편이고, 이건 철학과 문학의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된다. 초기 《대화편》이 내용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잘 표현해주었을 수도 있으나, 이 안의 묘사는 어느 정도 문학으로 파악해야지 곧이곧대로 역사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건 당대 사람들이 읽으라고 쓴 글이며, 토론의 무간지옥인 고대 아테네 전성기에서 아가리 파이터로 유명했던 소크라테스가 토론에 대단히 뛰어났다는 것 정도는 사실일 것이나 그의 전적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다 하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에 속한다.
그리고 사실 멍청한 척하면서 산파술을 펼치는 모습은 주로 플라톤이 묘사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고, 크세노폰이 묘사하는 소크라테스는 그냥 나는 내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무지를 강조하기보다는, 박식하고 박력 있는 사나이의 모습이다. 뭐가 진실인가는 요즘도 학자들의 연구주제이긴 하다.(…)
《출처 : 나무위키》
반고흐의 삶과 작품
삶
어린 시절 (1853~1869)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쥔더르트에서 출생하였다.
청년 시절 (1869~1878)
1876년의 반 고흐
16살에 빈센트는 삼촌 빈센트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네 살 아래 동생이자 빈센트가 평생의 우애로 아꼈던 그의 동생 테오도 나중에 그 회사에 들어왔다. 이 우애는 그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엄청난 편지 모음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다. 이 편지들은 보존되어 오다가 1914년에 출판되었다. 그 편지들은 그 화가의 삶에 많은 통찰을 주었고, 그가 예민한 마음의 재능 있는 작가라는 것도 보여 주었으며, 무명화가로서의 고단한 삶에 대한 슬픔이 묘사되어 있다. 테오는 빈센트의 삶을 통틀어서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1873년에 그의 회사는 그를 런던으로, 다음에는 파리로 발령했다. 그는 점점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76년에 구필은 동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했는데, 이는 고흐가 가게에서 영업활동을 할 때, 손님들과 그림에 대한 관점 차이로 언쟁을 자주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잉글랜드 켄트 주의 감리교학교 램스게이트에서 견습교사가 된 다음 1877년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보리나주
1878년에 신학교를 그만둔 그는 보리나주로 알려진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다. 광산에서 설교활동을 하던 고흐는 고용주들의 착취를 받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을 매우 걱정했다. 결국 그는 6개월 후에 해고되었고 보수 없이 일을 계속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목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880년에, 빈센트는 동생 테오의 제안을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동안 빈센트는 헤이그에서 안톤 모브(Anton Mauve)[2]로부터 그림 수업을 받았다. 비록 빈센트와 안톤은 곧 예술적인 관점의 차이로 헤어졌지만, 헤이그 미술 학교의 영향은 그가 빛을 다루는 방식과 그의 붓 자국의 산만함에서 빈센트의 작품에 눈에 띄게 남아 있다. 그러나 어두운 색조를 선호하는 그의 색채 사용에서는 그의 스승과 차이를 두었다.
1881년 이후
1881년에 그는 과부인 사촌 케이 보스에게 그의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녀는 그를 거부했다. 나중에 그는 매춘부 신 호르닉과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이사하고 그녀와 결혼할 것을 생각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 관계에 엄격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그의 동생 테오도 그것에 반대하는 조언을 했다. 무엇보다도 신 호르닉과 고흐는 성격차이가 있었고 결국 그들은 나중에 헤어졌다.
1885년과 1886년 사이의 겨울에 반 고흐는 벨기에에 있는 안트베르펀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다. 이 일은 실망만 안겨주었는데, 그가 몇 달 후에 외젠 시베르트 교수에 의해 퇴학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 고흐는 그 기간 동안 일본화를 접하고 관련 작품을 열렬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화의 밝은 색채와 캔버스 공간의 사용, 그림에서 보인 선의 역할에 감탄했으며, 이러한 인상은 그에게 강하게 영향을 주어 일본풍으로 약간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또한 그가 그린 몇몇의 초상화도 일본화를 보여주는 배경을 설정해 놓고 그렸다. 고흐는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원색의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별이 빛나는 밤〉,〈해바라기〉등의 걸작들을 그렸다. [3]즉, 고흐의 그림속에는 정신적인 고통과 이를 극복하고자 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1888년 12월 23일에 그는 아를의 사창가에 있는 매춘부에게 자신의 왼쪽 귀 조각을 건넸다. 고흐는 매춘부의 신고를 받고 그의 집에 도착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아를의 주민들은 그를 ‘미친 네델란드 사내’라고 하며 그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그는 1889년 5월 8일, 생레미의 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사망
1890년 7월 27일, 빈센트 반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나간 뒤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그는 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 총상은 치명적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간 후, 심하게 앓고 난 이틀 뒤, 동생 테오가 바라보는 앞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동생 테오도 매독을 앓다가 죽었다. 두 형제의 시신은 나란히 묻혔다.
작품
홀란드 시기
반 고흐는 언급할만한 가치를 지닌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경탄해마지 않았던 옛 화가들의 그림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그 중의 몇 개의 작품들을 모사함으로써 미술에 대한 지식과 재주를 독학으로 익혔다. 그가 홀란드에서 보낸 1880년-1885년 사이에 17세기에 활동했던 두 명의 네덜란드 화가가 그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주었다.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로부터 그는 다양한 갈색조, 회색조, 흑색조의 색채를, 음영이 뚜렷한 회화 기법을, 눈에 그대로 보이는 거친 붓자국이 있는 진하게 칠한 채색 기법을, 그만큼 더 강렬한 전체 효과를 얻기 위해서 세부적인 묘사를 포기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옛 거장들이 그림들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주 경탄해마지 않았고, 반 고흐 자신도 평생 동안 이 원칙을 고수했다.
“ 옛 홀란드 그림들을 다시 볼 때 나를 당혹시키는 것은 그들이 대개의 경우 아주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한스, 렘브란트, 루이스달이나 다른 많은 화가들처럼 위대한 거장들이 가능한 한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린 다음에 더 이상 그 그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적으로 고흐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제, 즉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를 다루었다. 반 고흐는 '홀란드 시기'에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 그들의 가난한 오두막, 수공업자들을 그렸다. 정물화에서는 특이하게도 감자가 자주 발견된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그림에 진실될 것과 분위기, 감정 혹은 생각을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런 요구가 자신이 모범으로 생각하는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충족된 것으로 생각했다.
감자먹는 사람들
이 시기에 제작된 가장 야심차고 유명한 그림은 1885년에 그려진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그 그림에서는 소박한 식사를 하는 농부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반 고흐는 그 그림으로 시골 사람들이 땅과 맺고 있는 상태와 가혹한 삶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는 이 그림에 상당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집단으로 묘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빠듯한 생활비에도 불구하고 모델들을 고용했고, 여러 장의 습작을 그렸다. 〈감자먹는 사람들〉이후로 반 고흐는 더 이상 여러 인물들이 배치된 작품을 그리지 않았고, 단 하나의 그림에 그처럼 많은 노력을 쏟아붓지도 않았다.
발전의 시기: 안트베르펜과 파리 시장
안트베르펜에서의 3개월간의 체류 동안, 무엇보다도 1886-1888년에 걸친 파리 체류 기간 동안 반 고흐는 새롭고 다양한 인상들에 노출되었다. 그 자신의 작업에서 실험의 시기가 시작되었으며, 그 실험은 궁극적으로 그의 화법에 중대한 변화로 귀결되었다.
파리에서 그는 그 당시에 중요하게 간주되었던 인상주의와 대면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그는 인상주의를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양식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반 고흐는 인상주의의 여러 요소를 자신의 회화에 받아들였다. 그는 좀 더 밝고 순수한 색채를 사용했고, 가는 선으로 그은 듯한, 점 모양의 특징을 지닌 붓 놀림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그는 화면을 보색 관계를 이루는 색채로 구성했다. 외젠느 들라크루와의 그림과 만남으로써 좀 더 대담해진 색채 사용으로의 방향 전환이 강화되었다. 주제상으로 보자면 그는 파리적 소재에 관심을 기울였다. 파리 주변의 시골에서도 그는 자주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에 인상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봄날의 낚시〉,〈클리시 다리〉,〈아스니에르의 다리 모습〉,〈몽마르트르 언덕의 채소밭〉등이다.
몽마르트 언덕의 초상화, 1887년
하지만 그의 예술적 발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일본 판화와의 만남이었다. 1853년 일본은 국경을 개방했으며,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점점 더 판화를 찍은 종이가 유럽으로 전해졌다. 많은 미술가들이 전혀 새로운 미술에 열광을 했고, 반 고흐도 매혹되었다. 그는 일본 채색 판화를 모으기 시작했고, 몇 개의 소재를 유화 작품으로 옮겨 제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일본의 미술관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의 형상 원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실제적으로 그 이후부터 제작된 그의 그림에는 이런 저런 '일본적' 형상 원칙이 나타났다. 몸 때문에 생긴 그림자의 부재, 가는 선으로 테두리가 둘러쳐진 '얕게' 채색된 화면, 이례적인 원근법, 풍경 속에서 아주 작게 묘사된 인물들이 그런 원칙들이었다.
예술가의 방
〈예술가의 방〉이라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반 고흐는 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적어 보냈다.
“ 그림자가 제거되었고, 색채는 일본 목판화에서처럼 얕고 단순하게 칠해졌어. ”
1888년에 제작된 꽃이 만개한 과일나무 연작의 경우처럼 소재의 선택에서도 부분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아를(Arles) 시대
아를에서 반 고흐는 파리 시절에 이론적으로 발전시켰지만 지금까지는 일관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본질적으로 유지했던 이 화법은 우리가 오늘날 반 고흐에게서 '전형적' 이라고 느끼는 화법이다.
고흐는 남부 프랑스의 눈부신 색채에 대한 희망을 품고서 아를로 이주를 했다. 그는 편지에서 이주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사람들은 그곳에서 붉은색과 초록색, 푸른색과 오렌지색, 짙은 노랑색과 보라색의 아름다운 대조를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
실제로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전체적인 효과에서 상호상승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색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나란히 사용했던 순수하고, 강력한 색채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그는 '지방색', 다시 말하자면 대상의 자연적인 색을 넘어섰다. 종종 그는 색채를 과장하거나 그가 각각의 그림을 위해서 발전시킨 색채 체계에 적합하도록 사용했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는 초록색 하늘, 분홍색 구름, 짙은 청색의 길이 있다. 그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 적고 있다.
“ 나는 색채의 위치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자연으로부터 일련의 순서와 정확성을 받아들였어. 나는 무의미한 짓을 하지 않고,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을 세세하게 관찰하지. 내가 사용한 색이 내 그림에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이 사물의 색과 동일한 색인지하는 문제는 더 이상 내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
눈부신 색과 강렬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그림은 결코 야하거나 벽보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나머지 색을 약화시키거나 결합시키는 중간 색조를 사용함으로써 조화로운 전체 효과를 만들어낸다.
밤의 카페 풍경
그 이외에도 색채는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상징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밤의 카페 풍경〉(1888년)처럼 색채는 분위기를 표현해야만 한다고 한다.
“ 나는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무시무시한 인간의 정열을 표현하려고 했어. 공간은 푸르고 붉으며 생기없는 노란색이지. 가운데에 초록색 당구대가 놓여 있고, 오렌지색과 초록색의 둥근 불빛을 만들어내는 레몬처럼 노란 4개의 램프가 있지. ”
고흐는 재빠르게, 즉흥적으로 그리고 나중에 커다랗게 수정을 하지 않은 채로 그림을 그렸다. 신속하게 그리는 그의 화법은 한 편으로는 그의 창작욕에서 나오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 아주 의식적으로 그것을 표현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그림에 더 많은 생기와, 강렬함과 직접성을 부여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좀 더 커다란 전체 효과를 위해서 소재를 단순화했다. 비록 그가 재빠르게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충동적으로 그리거나 도취해서 그리지도 않았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는 머릿속으로 그려보거나 여러 장의 스케치를 통해서 준비를 했다.
거의 언제나 그는 소재를 눈 앞에 두고서 그림을 그렸다. 그가 기억이나 생각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눈으로 본 것을 종종 심하게 변행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연에 충실한 상태였고, 추상으로 통하는 경계선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고흐는 물감을 희석하지 않은 채 걸죽하게 칠했으며, 가끔씩 물감을 튜브에서 짜서 직접 화폭에 바르기도 했다.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것을 인해서 그의 붓자국이 입체적으로 보였고, 고흐 특유의 붓놀림을 통요시키는 것에 아주 적합했다. 매끄럽고, 윤곽선이 둘러쳐진 일본풍의 채색면 이외에도 반 고흐는 이미 파리 시절에 색을 짧은 선 모양으로 나란히 칠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자신의 그림을 좀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형상화하기 위해서 그는 생 레미 시절에는 이런 선을 율동적으로 구성하고, 물결 모양, 원 모양, 나선형 모양으로 배열하기 시작했다. 1889년에 제작된 자화상이나 1889년에 그려진 〈별이 빛나는 밤〉이 그것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반 고흐는 각각의 화법을 소재와 연관지어서 선택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것이 고흐의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재가 지닌 본질과 특성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외젠느 보쉬(Eugène Boch)의 초상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나는 이 그림에 내가 그에 대해서 느끼는 경탄을, 사랑을 담고 싶었어. 머릿속으로 나는 무한한 것을 그렸어. 나는 내가 지금까지 성취했던 것 중에서 가장 진한과 인상적인 파랑색으로 간단하게 배경을 그렸어. 그리고 이 간단한 구성을 퉁해서 빛나는 짙은 파란색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금발의 머리는 짙푸른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수수께끼와 같은 것을 지니게 되었어. ”
후기에 제작된 오베르의 풍경화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 흐른 하늘 아래 한 없이 넓은 밭이 있고, 나는 슬픔과 극단적인 고독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지. ”
화가는 형식과 색채를 변화시킴으로써 바라던 표현의 강렬함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형식의 경우에 고흐는 단순화를 향해 움직여 간 반면에 색채는 점점 강화시켰다.
그 밖에도 고흐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했다. 많은 그림에서 그는 언어를 통해서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전래된 상징 이외에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상징 언어를 사용했다. 그 상징 언어의 의미는 그의 생애, 사고와 감정 세계에 대한 앎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스케치 판, 파이프, 양파, 봉랍이 있는 정물화에서 그는 그에게 도움이 되었던 물건들을 배열했다. 건강 지침서와 그 책에서 불면증에 대해서 좋다고 권해준 양파, 그가 좋아하던 파이프와 담배통, 테오가 보낸 편지 한 통과 친구와의 밀접한 결합을 상징하는 봉랍, 삶의 불꽃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불타고 있는 촛대, 금주의 상징인 빈 포도주 병등이 그와 같은 대상들이었다.
〈달이 빛나는 밤의 산책〉(1890년)에서는 달이 솟아오를 때 올리브 정원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풍경을 산책하는 한 쌍의 사람이 보인다. 남자 인물은 붉은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화가 자신의 모습과 같은 특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그림은 여인과 함께 하는 '진실한' 삶과 그것의 대용인 자연과 자연을 표현하는 예술에 대한 반 고흐의 소원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반 고흐와 스케치
반 고흐의 유화에 쏠린 주의력 때문에 그가 훌륭하고 아주 생산적인 소묘 화가라는 사실이 쉽게 잊혀졌다. 소묘 작품은 미술가의 이력의 초기에서부터 존재했고,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제작되었다. 1888년 여름 몇 주 동안 고흐는 값비싼 유화 물감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전적으로 소묘만을 그렸다.
고흐는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소묘를 완벽하게 다룰 줄 알아야만 한다고 확신을 했다. 1880년, 선생이 없었기 때문에 교본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형상 묘사의 법칙을 소묘를 통해서 습득하기 시작했다. 홀란드 시대에 그는 무엇보다 평범한 농부와 풍경, 그 중에서도 그가 잠시 머물렀던 장소인 헤이그의 풍경을 표현했다. 그는 연필, 펜, 부분적으로는 백묵이나 흑연을 사용해서 대규모로 소묘 작품을 그렸다. 안톤 마우베가 1881년 말 고흐에게 수채화 기법을 알려준 이후로 그는 불투명한 그림 물감으로 채색한 그림을 완성했다. 파리 시절에는 유화에 비해서 소묘가 뒷전으로 물러났다. 1887년 이후부터 반 고흐는 다시 소묘를 점점 많이 그리게 되었다. 그 중에서 파리의 풍경을 채색한 소묘화도 있다.
아를에서 그는 아를에서 자란 갈대를 재료로 삼아서 직접 만든 펜을 도구로서 높이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새로운 표현 기술을 개발했다. 연필로 미리 그린 밑그림 위에 갈대펜을 사용해서 아주 다양한 선, 점, 곡선, 나선으로 소재가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 그려진 그의 소묘 중에서 많은 작품이 유화와 연관되어 있다. 소묘는 유화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용되었거나, 아니면 고흐가 나중에 그려진 그림의 소재를 소묘로 다시 완성하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 소묘 작품은 삼자에게 그림에 대한 인상을 주거나 회화로 그려진 작품에서 그가 본 특정한 실수를 교정하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출처 : 나무위키》
시간의 역사_스티븐 호킹
1988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후로 40개 국어로 무려 9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20세기의 전설적 고전이다.
이 책은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불과 200여 쪽의 적은 분량에 우주와 물질, 시간과 공간의 역사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간결한 형태로 담아내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도록 전달한 우주과학서이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인류가 세계와 우주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상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추적할 수 있다. 특히 금세기 초에 기존의 과학을 뿌리채 흔들어놓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및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비롯해서 소립자 물리학, 불랙홀, 초끈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의 줄기에 해당하는 중심적인 사상들을 한 권의 책 속에서 훌륭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증보판은 <시간의 역사> 초판의 출간 이후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양면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관찰 및 관측 결과들과 호킹 자신의 새로운 이론에 의해서 밝혀진 지식을 1988년판에 추가시켜 본문을 개정하기 위하여 출간되었다. 그중에는 우주배경복사 탐사위성(COBE)에 의한 새로운 발견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새롭게 본문이 확장된 이번 개정판을 위해서 호킹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서 그 가능성이 제기된 벌레구멍, 즉 시공의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시켜주는 가느다란 관과 그것을 통해서 은하를 빠른 속도로 여행하거나 심지어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로 여행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서, 호킹의 명료하고 기지 넘치는 서술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초판에서 파악하기 어려워했던 전문적이도 복잡한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번 증보판은 240점 이상의 원색 그림과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화면,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은 놀라운 기술적 진보에 의해서 가능해진 사진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얻은 3차원과 4차원 영상들을 책 전체적으로 고르게 곁들여서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내용적 이해도도 높여주었다.
1. 우리의 우주상
2. 시간과 공간
3. 팽창하는 우주
4. 불확정성 원리
5. 소립자와 자연의 힘들
6. 블랙홀
7.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8. 우주의 기원과 운명
9. 시간의 화살
10. 벌레구멍과 시간여행
11. 물리학의 통일
12. 결론
저자 소개 _ 스티븐 호킹
30년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루카스 석좌교수를 역임하다가 2009년에 퇴임했다. 2012년에 수상한 300만 달러 상금의 순수한 이론물리학의 업적에 주어지는 기초물리학상(Fundamental Physics Prize)을 비롯해서 수많은 상과 표창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서는 1천만 독자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현대의 고전이 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 그리고 다수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넣고 내용을 대폭 보강하여 『시간의 역사』를 개정한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The Illustrated A Brief History of Time)』, 에세이 모음집 『블랙홀과 아기 우주(Black Holes And Baby Universes And Other Essays)』, 『호두껍질 속의 우주(The Universe In a Nutshell)』,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와 공저한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A Briefer History of Time)』,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가 있다. 그는 1990년과 2000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한 바 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살고 있다.
《출처 : 알라딘》
코스모스_칼 세이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빅 히스토리 <코스모스>
1980년 7억 5천만이 시청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더 화려하게 부활한다!
<코스모스>는 진행자인 닐 타이슨 박사와 함께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닐 타이슨 박사는 원작에서도 등장했던 ‘상상의 우주선(SOTI, Ship of the imagination)’을 타고 자연의 법칙과 생명의 기원을 찾아 광대한 우주 공간과 137억년의 시간을 자유롭게 항해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기존 다큐멘터리를 뛰어넘는 지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영상미뿐만 아니라 우주의 신비로움을 표현한 그래픽, 역사 속 에피소드를 재현한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표현방식을 살펴보는 것도 큰 볼거리다.
13부작, 매주 토요일 밤 11시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방송 (2014년 3월 15일 첫방송)
우주를 다룬 대중 과학서의 걸작 <코스모스>가 2004년 새롭게 완역되었다. <콘택트>, <창백한 푸른 점> 등의 지은이 칼 세이건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 책은 우주, 별, 지구,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매혹과 탐구의 역사를 매끄러운 글과 멋진 사진으로 담아내어, 출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가장 읽을만한 교양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은 은하계 및 태양계의 모습과 별들의 삶과 죽음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사실들을 밝혀낸 과학자들의 노력, 즉 별자리와 천문학과 우주탐험과 외계와의 교신 연구 등을 소개한다. 또한 우리 우주에는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것인지, 우주의 미래는 어떨 것인지 등의 철학적 질문도 던진다.
6억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모은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1980년 이 책이 출간된 이래, 천문학과 우주탐험의 세계는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 과학자들은 토성의 위성에 탐사로봇을 착륙시키는가 하면 태양계 밖으로도 탐험위성을 내보냈다.
그런데도 아직 이 책이 독자들을 끄는 것은, <코스모스>가 그 모든 놀라운 일들을 예상하고 그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장 잘 설명한 최초의 책이자 최고의 책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종교적 질문에 마음을 활짝 열고자 하는 세이건의 글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울림을 갖는다.
머리말
Chapter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Chapter 2 우주 생명의 푸가
Chapter 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Chapter 4 천국과 지옥
Chapter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Chapter 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Chapter 7 밤하늘의 등뼈
Chapter 8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Chapter 9 별들의 삶과 죽음
Chapter 10 영원의 벼랑 끝
Chapter 11 미래로 띄운 편지
Chapter 12 은하 대백과사전
Chapter 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감사의 말
부록 1
부록 2
참고 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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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_ 칼 세이건
다양한 저술과 방송 활동을 통해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의 대중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세계적인 천문학자다. 그는 지금까지 출판된 과학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코스모스(Cosmos)』와 퓰리처상 수상작인 『에덴의 용(The Dragons of Eden)』을 비롯해 30권이 넘는 책을 남겼다.
코넬 대학교의 행성 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던컨 천문학 및 우주 과학 교수, 행성 협회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다. 행성 탐사의 난제 해결과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NASA 훈장, NASA 아폴로 공로상, 소련 우주 항공 연맹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훈장, 미국 천문 학회의 마수르스키 상, 미국 국립 과학원의 최고상인 공공복지 훈장 등을 받았다. 평생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구던 그는 1996년 12월 20일에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알라딘》
카오스_제임스 글릭
전 세계인에게 ‘나비 효과’를 각인시킨 <카오스>20주년 기념판 완역!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팔린 교양과학서의 전설적 베스트셀러!
<뉴 사이언티스트>세상을 바꾼 과학책 선정, <타임>명저 100선
서울대, KAIST, POSTECH,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필독서
첨단과학인 복잡계는 물론 경제경영, 정보이론, 네트워크, 생태학, 의학, 인문사회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사상적 폭풍을 일으킨 ‘카오스’를 최초로 다룬 최고의 교양과학서!
전 세계인에게 ‘나비 효과’를 각인시킨 <카오스> 20주년 기념판 완역
과학계의 환원주의에 대한 반격 그리고 과학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과학혁명’
카오스는 과학계에 만연한 환원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동이자, 과학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과학혁명’이었다. 거대과학 시대라 일컬어지는 20세기 과학연구 스타일은 입자가속기와 같은 거대 연구시설과 엄청난 자금, 수많은 과학 인력이 투여되어 쿼크나 글루온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을 연구했다. 이런 흐름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면서 등장한 카오스 이론가들은 소립자와 같은 추상적 연구대상이 아니라, 바로 주변 자연환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간단한 컴퓨터 설비를 가지고 연구했다. 날씨와 구름의 패턴에서부터 강의 흐름, 나뭇잎의 모양, 해안선, 난류, 고속도로의 교통흐름, 주식시장의 변동선과 소득분포와 같은 경제현상, 수도꼭지의 물방울과 색깔, 흔들리는 진자, 반딧불이의 깜박임, 혈관 심장과 같은 신체기관 등 현실을 사는 사람이라는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현상들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PC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구했던 것이다. 때문에 카오스 혁명을 지상으로 내려온 과학이라 표현할 수 있다.
무질서 속의 질서
카오스를 한마디로 하면, 바로 ‘무질서 속의 질서’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발견하는 질서 속에서 혼돈이 있으며, 혼돈 속에도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카오스 연구자들이 특히 연구에 몰두했던, 대류 흐름이나 흔들리는 진자, 난류와 같은 것들은 물리학에서는 너무 명백해서 이제는 더 이상 연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류나 진자의 운동, 난류에는 거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카오스 연구자들은 이렇듯 가장 단순한 진자의 운동이나 대류의 굴림 운동에도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무질서가 존재함을 발견한다. 이른바 선형성에 한정된 과학으로는 설명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현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무질서 속의 질서, 예측 불가능성, 비선형 과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들이 바로 이들에 의해서 고안된 나비 효과나 프랙탈, 이상한 끌개, 분기와 같은 개념들이다.
아웃사이더 과학자들의 반란
카오스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과학의 변방에서 나왔다. 심지어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웠다는 브누아 망델브로는 2000여 년간 기하학의 패러다임을 지배했던 유클리드 기하학을 뛰어넘는 프랙탈 기하학을 제시했으며,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과학이 아니라 경험이나 육감으로 하는 일이라 여겨졌던 기상 예측에서 ‘로렌츠 끌개’로 카오스과학의 물꼬를 텄으며, 보편성 이론을 만든 미첼 파이겐바움은 정통과학의 틀 안에서 정통적인 문제를 풀면서 안주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토머스 쿤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이들은 정상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단순히 기존 과학의 문제만 풀이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책에는 이렇듯 과학계의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상적 씨앗을 뿌렸으며, 기성 과학에서는 어떻게 반응을 보였는지 또 어떻게 과학계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는지를 극적으로 풀어낸다.
복잡계, 경제경영, 네트워크, 생태학, 의학, 인문사회과학, 예술에까지 일으킨 엄청난 사상적 폭풍
카오스 이론은 등장한 이래로 수없이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과학에서는 진자의 운동이나 유체의 흐름을 다루는 역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으며, 첨단과학인 복잡계 연구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 경영학, 의사결정, 주식시장, 정보이론, 네트워크 이론, 의학, 인문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카오스 이론의 무질서 속의 질서, 프랙탈, 초기조건의 민감성, 나비 효과, 이상한 끌개, 비선형성, 스메일의 편자 같은 개념의 세례를 받지 않은 분야가 없다. 이제는 대중들의 상투어가 되어버린 카오스 이론의 핵심 개념들을 가장 명쾌하고 대중적으로 소개한다.
<카오스>추천글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뉴욕타임스>
·<카오스>는 축제다. -<워싱턴포스트>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 불을 훤히 켠 것 같은 느낌이다. -더글러스 애덤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저자)
·글릭의 <카오스>는 아주 재미있고 정확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도록 낯설며, 기이하게 아름다운 생각들로 가득하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퓰리처상 수상작 <괴델, 에셔, 바흐> 저자)
·혼돈 속의 질서를 설명한 카오스 이론은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며 복잡계를 이해하는 초석이다. -강병남(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새롭고 낯선 과학인 카오스 이론의 훌륭한 소개서였던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고전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선형인 자연현상들이 오히려 예외임을, 그리고 우리 주변의 많은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의 한 꺼풀 바로 밑에 비선형성이 지배하는 아름다운 카오스가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범준(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카오스>는 미국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중과학 서적의 한 획을 그었다. 이보다 잘 쓰인 카오스 책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김상욱(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현대과학의 격랑 속에 방황하는 내 마음의 등대가 되었던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한 시대를 풍미한 명저의 감동은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과학혁명의 최전선을 누비는 개척가들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거대한 나비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김승환(POSTECH 물리학과 교수, 한국뇌연구협회장)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에 선정된 <카오스>는 기상학, 주식시장의 비주기적 변동, 전염병 확산이나 생태계의 변화·심장 박동 등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연구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김홍종(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제임스 글릭이 말하는 ‘카오스’는 당신의 세계관을 한꺼번에 바꿔놓을 것이다. -손동원(인하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전 복잡계 네트워크 학회 회장)
·<카오스>는 장차 미래를 이끌어갈 독자들에게 자연현상을 넘어 사회현상까지 아우르는 복잡계의 매혹적인 세계를 안내해줄 것이다. -이상욱(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카오스>는 대학 5년간 “나의 꿈은 천체물리학자다”라고 이야기했던 저를 한순간에 복잡계 물리학 분야로 이끈 책입니다. ‘이 분야에 뛰어들면 새로운 분야의 학문이 만들어지고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잘하면 내가 거기에 기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 이렇게 도전적이면서 좀 불확실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분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정재승(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과학사를 뒤흔든 카오스 이론은 21세기의 화두인 복잡계와 네트워크 과학의 뿌리가 되었다. -정하웅(KAIST 물리학과 교수)
·양자역학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결정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카오스 이론은 고전역학에서도 결정론적이지 않은 물리계가 있다는 충격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연구원 시절에 이 책을 우연히 찾아 빠져들며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최준곤(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출처 : 알라딘 》
인포메이션_제임스 글릭
정보, 통신, 수학, 암호, 언어, 심리, 철학, 유전, 진화, 컴퓨터, 양자역학, 구글, 스마트폰까지
클로드 섀넌, 앨런 튜링, 비트겐슈타인, 리처드 도킨스 등 다채로운 인물들,
“정보의 역사와 이론 그리고 정보 혁명의 함의까지 소개하는 야심 찬 책”
인터넷과 SNS, 메신저 등의 발달로 자신의 생각, 의견, 감정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통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는 일상이 되었다. 그 누구라도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든 실시간으로 정보 전달과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전기통신이 출현하기 전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북을 둥둥 쳐서 그 북소리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조선시대에는 파발이나 봉화로 적의 침입이나 긴급한 사안을 알리기도 했다. 서찰을 쓴 뒤 사람을 시켜 며칠을 걷게 해 직접 전달하는 방법도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에서 전신이 발명되면서 소통과 통신은 거대 전환점을 맞이했다. 전화, 팩스, 인터넷, 스마트폰 등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이 편리한 소통의 도구들은 어떻게 발명되고 발전하게 된 것일까?
이러한 인류의 소통과 정보 교환, 정보의 역사와 이론에 관해 자세하고도 치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인포메이션』이다. 이상욱 교수(한양대학교 철학과)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정보란 단순히 편지에 담긴 메시지나 컴퓨터가 처리하는 데이터가 아니라 우주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모습이다. 정보의 역사와 이론 그리고 정보 혁명의 함의까지 소개하는 야심 찬 목표를 훌륭하게 성취했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 『카오스』의 저자 제임스 글릭의 역작 『인포메이션』
정보화시대의 중심에 있는 ‘정보’에 대해 가장 해박하고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신간 『인포메이션: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원제: The Information: A History, A Theory, A Flood)의 저자는 교양과학 작가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이다. 그의 전작 『카오스』(동아시아, 2013)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양과학서’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인에게 ‘나비 효과’를 각인시키고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팔린 교양과학서의 전설적 베스트셀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널리 알려지며 ‘서울대학교 권장도서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글릭은 가장 대중적인 교양과학 작가 중 한 명이고, 그의 책은 전 세계 3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카오스』 출간 후 4년 만에 다시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인포메이션』이 출간된 것이다(2017년 1월 18일). 책은 정보이론, 정보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고 있다. 제임스 글릭 특유의 치밀하고 엄청난 양의 자료 조사를 통해 다양한 주제와 이론들을 흥미롭게 정리했다. 클로드 섀넌, 찰스 배비지, 노버트 위너, 러셀, 괴델, 앨런 튜링, 비트겐슈타인, 리처드 도킨스 등 유명한 학자 및 과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물론, 그들의 이론에 대해 다각도로 이야기하며 정보이론 분야에 대한 이해를 친절하게 돕는다. 또한 정보, 통신, 컴퓨터, 수학, 정보이론, 통신이론, 정보통신, 정보혁명, 암호, 언어, 심리, 철학, 유전, 진화, 과학사, 생물학, 물리학, 비트, 양자역학, 위키피디아, 구글 등등 ‘정보’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 방대한 분야와 해박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타임》 선정 올해의 책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PEN/에드워드 윌슨 과학저술상
“정말 어마어마하고, 명쾌하며, 이론적으로 섹시하다” _《뉴욕 타임스》
『인포메이션』이 영미권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수많은 해외 언론사들의 호평을 받았다. “정말 어마어마하고, 명쾌하며, 이론적으로 섹시하다”(《뉴욕 타임스》) / “이토록 장대한 이야기를 제임스 글릭만큼 잘 쓰는 사람은 없다. 역사적 이야기를 아주 잘 주무르고, 난해한 이론을 명쾌하게 설명하며, 대중적인 과학 글쓰기를 아주 잘하는 모든 것에 능한 달인이다.”(《월스트리트 저널》) / “이 책은 정보의 역사에 대한 강력하고 엄밀하면서도 때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이다.”(《타임》)
이 책은 2011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2011 《타임》 선정 올해의 책, 2011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2011 《LA 타임스》 올해의 책, 2011 《보스턴 글로브》 올해의 책, 2011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또한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Royal Society Winton Prize for Science Books, 2012), PEN/에드워드 윌슨 과학저술상(PEN/E. O. Wilson Literary Science Writing Award, 2012), 살롱 북 어워드(Salon Book Award, 2011), 헤셀-틸먼상(Hessell-Tiltman Prize, 2012)을 수상했으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파이널리스트(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finalist 2011)와 앤드루 카네기 메달 파이널리스트(Andrew Carnegie Medal for Excellence in Nonfiction, finalist 2012)에 올랐다.
이러한 화려한 수상내역과 해외 언론사들의 호평이 있지만, 무엇보다 번역서는 정확한 번역과 내용 전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카오스』를 감수한 이른바 ‘제임스 글릭 전문가’라 부를 수 있는 김상욱 교수(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가 이번에도 감수를 맡았다. 김상욱 교수는 <감수의 글>에서, “번역된 원고를 두 번 감수했고, 원서로 출간되었을 때 한 번 읽어,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되기 전까지 총 세 번이나 읽게 된 셈”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와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김상욱 교수가 『카오스』에 이어 이번에도 글릭과 국내 독자 사이의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미권에서는 ‘믿고 읽는 제임스 글릭’이지만 한국에서는 그 이름이 생소하거나 책의 내용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신작 『인포메이션』은 꼼꼼한 번역과 감수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책을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정보란 무엇인가? 또 왜 중요한가?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이만큼의 넓이로 쓴 책은 없다”
우리 시대를 규정짓는 ‘정보화시대’는 그 중심에 ‘정보’가 있다. 그리고 『인포메이션』에서도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언어로 표현내기는 쉽지 않다. 간략하게 “정보는 자료이며 데이터이고 상태이자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정보의 어떤 측면이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제임스 글릭은 ‘정보’를 ‘역사, 이론, 홍수’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다. 아프리카의 북소리에서 시작해 정보의 역사를 찾아 상형문자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자의 발명은 기록뿐만 아니라 범주화, 일반화, 논리 같은 사고체계 자체를 만들어냈다. 문자화된 언어는 진화했고 사전이 탄생했다. 사전의 발명으로 추상적 개념들이 분화되어 구체화되고, 지식이 체계화되었다. 인쇄술의 발명은 책을 만드는 속도를 향상시켰고, 정보의 광범위한 유통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견인하여 서구사회를 근본부터 변화시켰다.
전신의 발명 또한 정보의 전달속도를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책에서 글릭은 정보의 전달 매체보다 정보를 기호화하는 방법에 주목한다. 결국 모든 정보를 0과 1의 1차원 배열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보의 역사에서 분기점이 된다. 모든 정보는 수(數)로 표현 가능하다. 수는 문자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자 정보의 중요한 형태이다. 수를 다루는 학문을 수학이라 한다. 수학은 논리의 언어로서 철학의 가장 단단한 기반이기도 하다. 이제 수는 수학의 도구만이 아니라 정보를 표현하는 궁극의 기호가 되어, 수학 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낸다. 바로 수학적 공리체계 자체의 불완전함을 보여준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이다. 괴델, 튜링, 섀넌과 같은 정보과학의 대가들은 세상의 모든 사고와 논리는 정보처리에 불과하며, 정보는 수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사고와 논리는 계산이고, 계산은 알고리즘이다.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
정보는 ‘우주’이고,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이다
21세기 스마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책
글릭은 정보의 이론으로도 독자를 안내한다. 정보를 정량화하는 것은 정보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에 섀넌은 정보를 ‘엔트로피’로 정량화한다. 놀랍게도 섀넌의 엔트로피는 열역학을 다루는 통계물리학의 엔트로피와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열역학의 엔트로피는 엔진이 작동하거나 화학반응의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실제적인’ 물리량이다. 그렇기에 정보이론은 물리학이 된다. 정보물리학이 양자역학을 만나면 ‘양자정보’가 된다. 그러면 세상은 0과 1이 동시에 될 수도 있는 중첩 상태가 된다. 결국 롤프 란다우어의 “정보는 물리적이다”를 만나고, 존 아치볼드 휠러의 “비트에서 존재로(It form bit)”에 이른다. 우주는 정보가 된다.
정보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생물학적이다. 현대생물학은 DNA에서 시작되었고 생명의 핵심이 정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DNA는 네 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정보테이프이고, 생명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이다. 또한 유기물이 아니어도 정보를 전달하는 다른 ‘것’도 생명처럼 행동할 수 있다. 행운의 편지, 유행이나 종교 등 리처드 도킨스가 이야기하는 ‘밈’이다. 정보는 이렇게 생명을 넘어선 생명까지 포괄하게 된다.
21세기는 정보의 홍수시대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가 가장 빠른 속도로 전달되며, 세상이 가장 긴밀하게 얽힌다. 하지만 글릭은 미래에 대해 섣부른 예측은 삼가고, 정보의 관점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본다. 『인포메이션』을 통해 정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그리고 정보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21세기 스마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에서 존재로 _김상욱
프롤로그
제1장 말하는 북 ―코드가 아닌 코드
제2장 말의 지속성 ―마음에는 사전이 없다
제3장 두 개의 단어집 ―글의 불확실성, 철자의 비일관성
제4장 생각의 힘을 기어 장치에 ―보라, 황홀경에 빠진 산술가를!
제5장 지구의 신경계 ―몇 가닥 초라한 전선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6장 새로운 전선, 새로운 논리 ―다른 어떤 것도 이보다 미지에 싸인 것은 없다
제7장 정보이론 ―내가 추구하는 것은 평범한 두뇌일 뿐입니다
제8장 정보로의 전환 ―지성을 구축하는 기본 요소
제9장 엔트로피와 그 도깨비들 ―섞인 것을 휘저어 나눌 수 없어요
제10장 생명의 고유 코드 ―유기체의 완전한 설명서는 이미 알에 적혀 있습니다
제11장 밈 풀 속으로 ―당신은 나의 두뇌를 감염시킨다
제12장 무작위성의 감각 ―죄악의 상태에 빠져
제13장 정보는 물리적이다 ―비트에서 존재로
제14장 홍수 이후 ―바벨의 거대한 앨범
제15장 매일 새로운 뉴스 ―그리고 비슷한 뉴스
에필로그 ―의미의 귀환
감사의 글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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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_ 제임스 글릭
195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으며, 뉴욕 타임스에서 10여 년간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다. 과학자들의 생애와 과학에 대해 주로 글을 쓰는 글릭은 《뉴욕 타임스》에 미첼 파이겐바움, 스티븐 제이 굴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브누아 망델브로 등에 대해 썼고, 이 외에도 《뉴요커》, 《슬레이트》, 《워싱턴 포스트》에 글을 썼다. 또한 Best American Science Writing 시리즈의 초대 편집자를 지내기도 했다.
글릭은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교양과학서의 베스트셀러 『카오스』로 ‘나비 효과’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뛰어난 교양과학 작가이다. 그의 책은 전 세계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인포메이션』은 《타임》, 《뉴욕 타임스》, 《LA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PEN/에드워드 윌슨 과학저술상,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살롱 북 어워드, 헤셀-틸먼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인포메이션』, 『카오스』, 『타임 트래블Time Travel』(동아시아 근간),『리처드 파인만 평전Genius』(동아시아 근간), 『아이작 뉴턴』 등이 있다.
http://around.com
《출처 : 알라딘》
정보란 무엇인가
정보(情報, 영어: information, info, info.)는 특정 목적을 위하여 광(光) 또는 전자적 방식으로 처리되어 부호, 문자, 음성, 음향 및 영상 등으로 표현된 모든 종류의 자료 또는 지식을 말한다(국가정보화 기본법 제3조).
정보는 일상 용어에서 전문 용어까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언어, 화폐, 법률, 자연환경 속의 빛이나 소리, 신경, 호르몬 등의 생체 신호부터 비롯한 모든 것을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개념
요즘에는 컴퓨터의 정보 처리를 기반으로 한 정보(데이터)가 많이 대두된다. 정보의 원래 뜻에 따라, 정보와 자료(데이터)를 구별하고, 정보를 “뜻을 가지는 자료”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러한 분야에서는 전체적으로 정보의 뜻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경우는 별로 없으므로, 특별히 정보와 자료는 구별하지 않는다. 구분하자면, 데이터를 모아 둔 것이 자료라면 자료를 특정한 목적의 의사결정을 위해 가공한 형태를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훌륭한 정보는 목적적합성과 신뢰성 및 적시성을 유지해야 한다. 적시성이 매우 중요한 정보를 첩보로 따로 분류하기도 하며 가공을 통해 비교적 장기간 활용이 가능한 정보를 지식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정보는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그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개인이 하나의 정보를 선택하게 되면 변화에 의해서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고, 정보의 가치가 적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선택된 정보보다 선택되지 않은 정보가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불안감을 갖게 한다. 맥도너(A.M.McDonough)는 '정보란 사실 내지 자료에 지적인 처리를 가하여 얻어진 지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보는 자료에 특정 의미가 주어진 것으로서 직접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 모든 정보는 자료이나, 모든 자료는 모든 정보라고 할 수 없다. 포레스터(J.W.Forrester)는 '경영은 정보를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과정(Process)이다.'고 하였다. 이는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정보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1]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모든 자료가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자료는 정보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정보는 가치지향적이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어느 정도의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자료이어야 정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정보란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정리해 놓은 자료의 집합이며, 정보가 되기 위해서는 이용자, 즉 어떤 목적을 갖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자료가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보는 이용자를 위하여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재배열, 요약, 삭제하는 행위를 거쳐야 한다.
어원
프랑스어의 renseignement(안내, 정보)를 번역한 말로 사용된 것이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정보를 신식(信息)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첩보라는 뜻도 있다.
수학적 정의
정보는 상대방에게 사건을 알릴 때 전달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아들이 아버지에게 집에 불이 났는지 아닌지 알리는 것도 정보 전달의 한 예이다. 전달 형태가 불이 "났는지 또는 안 났는지"의 두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면 1 비트로 전달이 가능하다. 동전도 마찬가지다. 던진 동전이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알려 주면 되기 때문에 1 비트로 표현된다. 16가지의 경우가 나오는 회전 룰렛을 사용하여 경기를 한다면, 그 결과를 위해 4 비트를 할당해야 한다. 앞서 말한 3가지 사건에서 사건 요소인
는 불이 났는지, 앞면이 던져졌는지, 회전 룰렛에서 1번 칸이 선택되었는지에 해당한다. 각각의 확률을 생각해 보면, 각 사건의 경우의 수가 가지는 확률인
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순서대로 1/2, 1/2 그리고 1/16이 된다. 이때 비트 단위 정보량은

와 같이 구해지고 각각 값은 1, 1, 4가 된다. 물론 불이 날 확률은 불이 나지 않을 확률보다 높은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와 같아 이를 나타내는 정보량도
와 같다.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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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클로드 셰넌
클로드 엘우드 섀넌(영어: Claude Elwood Shannon, 1916년 4월 30일 ~ 2001년 2월 24일)은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이다. 정보 이론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그가 작성한 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 논문은 정보 이론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불 논리를 전기회로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하여, 디지털 회로 이론을 창시하였다.
학문적 기여
1916년 미시간에서 사업가 아버지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기계와 전자장치에 관심이 많아 1 km 가량 떨어진 친구 집에 무선 전신을 설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토머스 에디슨이 그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디지털 논리회로
1936년 미시간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전기공학 및 수학에서 두 개의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MIT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과정을 공부하며, 초기 아날로그 컴퓨터인 미분해석기를 연구하였다.
미분해석기의 논리 회로를 연구하면서, 섀넌은 불 논리가 논리 회로의 설계와 분석에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1937년 《계전기와 스위치로 이루어진 회로의 기호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1] 이 논문에서 섀넌은 전화 교환기에 사용되는 계전기와 스위치 만으로 불 논리 및 이진수의 사칙연산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이후 모든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이 업적을 인정받아 1940년에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초빙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헤르만 바일이나 존 폰 노이만 등의 수학자들과 같이 연구할 기회를 얻었고, 이후 정보 이론으로 발전하게 될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얻게 되었다.
전시 연구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섀넌은 벨 연구소에서 화기 제어 시스템과 암호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 무렵 영국에서 암호 해석가로 일하고 있던 앨런 튜링이 미국 암호 해석가들과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 중이었다. 섀넌은 이곳에서 앨런 튜링을 만나 그의 튜링 기계 이론을 접하고, 자신의 이론과의 깊은 연관성을 발견하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두 명의 공동 연구자와 함께 《화기 제어 시스템에서 데이터의 예측과 평활》이라는 논문을 제출한다. 이 논문은 자료와 소음을 분리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호 처리 분야를 창시한 논문으로 여겨진다.
또한,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 9월 벨 연구소에 《암호학의 수학적 기반》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 문서는 1949년 기밀이 해제되어 《보안 시스템의 통신에 관한 이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다. 또한, 벨 연구소에서 섀넌은 OTP(one-time pad)를 암호학적으로 해독할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
정보 이론
섀넌은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을 1948년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확률론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송하는 가장 효율적인 법방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 논문은 정보 엔트로피의 개념을 창안하여, 정보통신 이론의 기반이 된다. 섀넌은 이 이론을 자연어 처리까지 발전시켜, 영어 문장의 통계적 분석으로 영어 엔트로피의 최댓값과 최솟값을 계산하였다. 이 연구에서 그는 띄어쓰기가 실제로 문장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섀넌은 또한 샘플링 이론을 창안하여, 당시까지 아날로그로만 이루어지던 전자기 통신을 디지털 정보통신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기타 업적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
섀넌은 아직 인공지능 분야가 생겨나기도 전인 1950년 《체스를 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미니맥스 전략을 이용한 최초의 컴퓨터 체스 알고리즘이며, 이후 인공지능 체스 알고리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출처 : 위키 백과》
컨택트(Arrival, 2016)
테드 창의 SF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2014년에 영화화가 확정되었고 2016년에 개봉 예정인데, 감독은 드니 빌뇌브가 맡기로 했으며, 에이미 애덤스, 제러미 레너, 포리스트 휘터커가 출연할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도 제안을 받은적이 있는데 각색한 시나리오가 원작에 비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자기가 새로 각색하고 싶다고 했다가 결렬되었다고 한다.# 이 인터뷰에 따르면 7천만 달러(한화 약 700억 원) 정도 규모의 세트영화라고 했지만 5천만 달러로 수정된 상태이다.
확정된 제목은 Arrival (발음:어라이벌, 뜻:도착)인데 한국에서는 1997년 개봉한 영화 《콘택트》와 비슷한 제목인 '컨택트'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 문서의 제목도 '컨택트'이다.[1]
하단 문서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충분히 호평 받고 있으며 내용 자체도 훌륭한 영화인데 이전에 호평받았던 《콘택트》와 비슷한 제목을 차용함으로써 한국에서 《콘택트》의 성공에 기대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다만 내용상 '어라이벌'이나 '도착' 보다는 '접촉' 이라는 의미의 컨택트가 더 어울린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내용의 깊이 또한 콘택트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2]
한국판 포스터에 추가된 글이 너무 많고 난잡해서 일부에서 포스터에 대한 불만이 있다. 배급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어라이벌이라는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단어나 도착처럼 모호한 제목보단 친숙한 컨택트라는 제목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사정을 고려해 다른 제목으로 개봉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 일본에서는 '메시지(メッセージ)',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강림(降临)', 홍콩에서는 '천살이강(天煞異降)[3]', 중화민국에서는 '이성입경(異星入境)', 프랑스에서는 'Premier Contact'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다.
2. 출연진
에이미 애덤스 - 루이스 뱅크스 역
제러미 레너 - 이안 도널리 역
포리스트 휘터커 - G. T. 웨버 대령 역
마이클 스툴바그 - 데이비드 핼펀 요원 역
지 마 - 섕 장군 역
마크 오브라이언 - 마크스 대장 역
애비게일 프니오스키 - 한나(8세)
줄리아 스칼릿 댄 - 한나(12세)
제이딘 멀론 - 한나(6세)
콘택트(소설과 영화 Contact, 1997)
1. 칼 세이건의 SF 소설
저명한 천체물리학자로 천문학 대중화의 고전과도 같은 『코스모스』의 작가로도 유명한 칼 세이건이 1985년에 출판한 SF소설이다. 칼 세이건은 이 작품으로 로커스 상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상을 받았다.
1.1. 줄거리
외계인의 존재를 찾던 여성 전파천문학자 '앨리 애로웨이'가 주인공이다. SETI 프로젝트가 외계에서 온 신호를 수신하였고 해독해보니 5명이 탑승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장치의 설계도였다. 전세계가 모두 협력해서 외계인이 보내준 설계도에 따라서 장치를 제작하고 프로젝트를 위해서 5명을 선발한다. 각각 미국, 소련, 중국, 인도 그리고 이슬람과 흑인을 상징하는 나이지리아인 노벨상 수상자가 기계장치에 탑승해서 외계인과 접촉하는 데 성공하지만, 지구에서 관측할 때는 별다른 변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고, 전세계 각국이 접촉 사실을 숨긴 채로 프로젝트는 끝난다.
1.2. 트리비아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평생토록 무수히 많은 과학교양서적을 집필했지만, 소설은 오직 이 한 작품만 남겼다. SF소설가 젠트리 리[1]가 도움을 많이 주었다.
소설 속에서 시대적 배경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주인공 애로웨이는 1960년대 대학을 졸업하여 1990년대 초반 외계인의 신호를 잡는다. 실제 기계장치 제작은 외계인 신호를 수신하고 나서 몇년뒤라고 나오니 2000년대 초반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방대한 세월을 다루고 있는 셈이지만 이것이 여러 모로 가려져 있는 편.
미소 냉전이 한참이고 일본이 경제력으로 미국을 추월하네 마네 하던 1985년도에 나왔기 때문에 당시 국제 질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소련이 2000년대까지도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2][3]이고, 일본도 미/소에 버금가는 경제 강국으로 소설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4]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칼 세이건의 외계 문명에 대한 우호적 시각이 깔려있다. 칼 세이건은 우리보다 문명이 앞선 외계인이 있다면, 이미 앞서있기 때문에 지구 침략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과거에 군주가 죽으면 부하들까지 생매장하는 풍습이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우리보다 앞선 외계문명은 전쟁 따윈 하지 않을 만큼 "진보"해 있을 거라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 소설을 통해서 과학계에 만연한 성차별에 대해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묘사를 완성했다.
또 과학자와 기독교 목사들간의 대화를 통해서 과학과 종교의 공통점 그리고 차임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종교와 과학의 공통점을 '누미너스(신비)'라고 정의하면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화해를 주선한 감이 많다.
매우 비범하게 미국 대통령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2. 1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장르
미스테리, SF
러닝 타임
145분
개봉일
1997년 11월 15일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조디 포스터, 매튜 매커너히
국내등급
12세이상 관람가
주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죠"
"시인이 왔어야 했어.(They should have sent a poet.)"
본격 외계인 안 나오는 외계인 영화.[5]
위 항목의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하고 조디 포스터와 매튜 매커너히가 주연을 맡은 1997년작 영화이다. 배급은 워너 브라더스이며, 음악은 백 투 더 퓨처, 프레데터, 저지 드레드,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어벤저스 같은 영화음악을 맡아 이름을 날린 앨런 실베스트리.
1997년에 개봉하였으며, 90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하여 전세계 1억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본전치기에 살짝 못 미치는 흥행(1억 8천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우주에 대한 동경으로 커다란 감동을 안겨준 영화로 포스터를 봐도 알겠지만 액션 신이나 우주 활극 같은 건 없다(...). 그런 쪽으로 기대하면 절대 안된다.
원작자 칼 세이건이 영화 제작 도중인 1996년 향년 63세로 사망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 "칼에게 바침"이라는 추모 자막이 나온다. 칼 세이건은 생전에 이 영화 제작을 애타게 고대했다고 한다.
인터스텔라의 공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과 비교를 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와 딸이 관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요 매개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둘 다 매튜 매커너히가 나왔다 그러나 서사의 구조나 주제 측면에서는 상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2. 등장인물
엘리 애로웨이(Eleanor Arroway, 조디 포스터/윤소라(SBS)[6]/소연(KBS))
팔머 조스(Palmer Joss, 매튜 매커너히/안지환(SBS)/홍시호(KBS))
《출처 : 나무 위키》
이기적 유전자_리처드 도킨스
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2010년 전면개정판 출간!!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선정 / KBS ‘TV 책을 말하다’ 방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선정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현대 생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세계적인 석학 리처드의 도킨스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의 2010년 전면개정판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 책은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끌어내려 진화를 설명한다. 촘스키, 에코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뽑힌 도킨스는 일찍이 촉망받는 젊은 동물행동학자로 간결한 문체와 생생한 비유, 논리적인 전개를 갖춘 글로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도킨스는 자신의 동물행동학 연구를 유전자가 진화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에 대한 좀더 넓은 이론적 맥락과 연결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이기적 유전자』(초판 1976년, 개정판 1989년, 30주년 기념판 2006년)이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했다. 인간이“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먹고 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생물학계를 비롯해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곧 세기의 문제작이자 화제작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30년 동안 이어진 학계와 언론의 수많은 찬사와 혹평 속에 이 책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과학계의 고전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를 연장한 개념인 '밈'(문화 유전) 이론과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의 선구적인 개념도 제시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주요 쟁점(성의 진화, 이타주의의 본질, 협동의 진화, 적응의 범위, 무리의 발생, 가족계획, 혈연 선택 등)과 방대한 현대 연구 이론과 실험(게임 이론,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의 진화 실험, 죄수의 딜레마, 박쥐 실험, 꿀벌 실험 등)을 보여준다. 사회생물학의 논쟁이 되었던 유전적 요인과 환경 문화적 요인 가운데 인간의 본질을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홍영남 명예교수와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행동생태 및 진화를 연구하는 이상임 박사가 참여한 2010년 전면개정판은 내용의 정확성과 독자의 가독성을 모두 높였다.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문장을 간결하고 적확하게 가다듬어, 도킨스의 사상과 주장이 쉽게 전해지게 했다. 또한 이번 전면개정판에는 도킨스 특유의 재기와 통찰력이 돋보이는, 상세하고 방대한 분량의 주석을 덧붙여 생물학 분야에 관심 있는 전문가와 일반인도 이 책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독자들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 풍부한 참고문헌과, 주요 개념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찾아보기를 영어 원문과 함께 제공한다.
내용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이후로 인류는 다위니즘 또는 자연선택설과 같은 일종의 패러다임들을 접해 왔다. 실제로 다윈의 이 패러다임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은 계속 될 것이다. 이 책은 철저한 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선택을 기본 개념으로 독특한 발상과 놀라운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즉 기존의 진화 단위인 개체를 불멸의 존재인 유전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전자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본 사본을 만드는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고대 복제자의 운명은 어떠했는가? 그 복제자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기술의 명수가 됐다. 그러나 그 복제자는 오래 전에 자유로이 뽐내고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복제자들은 거대한 군체 속에 떼지어서 로봇 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다. 그것들은 원격 조정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룬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으며, 그것을 보존하는 것만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지은이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며, 그 기계의 목적은 자신을 창조한 주인인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자기와 비슷한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많이 지닌 생명체를 도와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행동은 바로 이기적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돕는 이타적 행동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경쟁자 사이의 공격에서뿐만 아니라 세대간, 그리고 암수간의 미묘한 싸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문화유전론-밈(Meme)
저자의 주장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유전의 영역을 생명의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 문화로까지 확장한 이른바 밈(Meme)이론, 즉 문화 유전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적 개념인 밈은 저자가 만든 새로운 용어로서 모방을 의미한다. 유전적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는 밈이 되는 것이다. 유전자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복제되지만, 밈은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복제된다. 결과적으로 밈은 유전적인 전달이 아니라 모방이라는 매개물로 전해지는 문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생명체가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통해 자신의 형질을 후세에 전달하는 것처럼 밈도 자기복제를 하여 널리 전파하고 진화한다. 그리하여 밈은 좁게는 한 사회의 유행이나 문화 전승을 가능하게 하고, 넓게는 인류의 다양하면서도 매우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
여전히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결정론적 생명관, 즉 유전자가 모든 생명 현상에 우선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의 자기복제 및 문화 유전론의 중심에 있는 인간만큼은 다른 생명체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생물과 확연히 구분되는 문화라는 요소를 갖고 있는 인간이 과연 맹목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은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에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여러 동물과 조류의 실제적인 실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도 이기적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한 것인지 논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더 나아가 생명체 복제기술이나 인간의 유전자 지도의 연구로 여러 가지 질병의 정복 가능성이 높아지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유전자의 영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지금,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학습이나 경험과 같은 후천적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 중 어느 것이 인간 본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옮긴이의 말
30주년 기념판 서문
개정판 서문
초판 권두사
초판 서문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진화-가장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집단 선택설
2. 자기 복제자
안정을 향하여
생명의 기원과 자기 복제자
3. 불멸의 코일
생존 기계
유전자는 개체의 특성을 정한다
자연 선택의 단위
노화이론
4. 유전자 기계
생존 기계의 시작
뉴런과 컴퓨터
유전자는 예측한다
시뮬레이션
의식의 진화
의사소통
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다른 생존 기계는 환경의 일부
게임 이론과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비대칭적 싸움
6. 유전자의 행동 방식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주의
혈연 선택
부모와 자식의 관계
7. 가족계획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
개체 수 조절과 인구 문제
가족계획 이론
8. 세대 간의 전쟁
가족 내부의 이해관계
갈등의 승자
9. 암수의 전쟁
짝 간의 갈등
성의 전략
이기적인 기계-누가 누구를 착취할 것인가?
가정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남성다운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핸디캡 원리
암수의 차이
인간에서의 성 선택
10.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집단 형성이 주는 이익
사회성 곤충
협력의 진화
11. 밈Meme-새로운 복제자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밈’과 그 진화
밈의 특성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마음씨 좋은 놈, 마음씨 나쁜 놈
죄수의 딜레마
영합 게임과 비영합 게임
13. 유전자의 긴 팔
유전자냐 개체냐
숙주와 기생자
유전자는 왜 집단을 형성했는가?
불멸의 자기 복제자
보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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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발췌문
저자 소개 _ 리처드 도킨스
1941년 케냐 나이로비 출생,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2008년 옥스퍼드 대학의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에서 은퇴했고, 이후에도 뉴 칼리지의 펠로로 남아 있다. 왕립학회 회원이자 왕립문학원 회원이다. 왕립문학원상(1987), 왕립학회 마이클 패러데이 상(1990), 인간과학에서의 업적에 수여하는 국제 코스모스 상(1997), 키슬러 상(2001), 셰익스피어 상(2005), 과학에 대한 저술에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2006), 영국 갤럭시 도서상 올해의 작가상(2007), 데슈너 상(2007),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위한 니렌버그 상(2009) 등 수많은 상과 명예학위를 받았다.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출간 이후 30년 넘게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세기의 문제작이며, 출간과 동시에 과학계와 종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몰고 온 ≪만들어진 신≫(2006)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 논증을 통해 증명하면서, 그동안 종교의 잘못된 논리가 세계사에 남긴 수많은 폐단을 지적한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 ≪확장된 표현형≫(1982), ≪눈먼 시계공≫(1993), ≪에덴의 강≫(1995),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1996), ≪무지개를 풀며≫(1999), ≪악마의 사도≫(2003), ≪조상 이야기≫(2004), ≪지상 최대의 쇼≫(2009),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2011) 등이 있다.
2012년, 스리랑카에서 물고기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도킨스가 진화과학의 대중적 이해에 공헌한 바를 기려 새로운 어류 속명을 ‘도킨시아’라고 지었다. 2013년에는 <프로스펙트>지가 전 세계 100여 개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세계 최고 지성을 뽑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출처 : 알라딘》
밈
밈(Meme)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한다. 밈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처음 등장한 용어이다. 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밈과 유전자의 연관성을 들어 밈이 생명의 진화 과정에 작용하는 자기복제자의 한 종류라고 말한다. 유전자가 자가복제를 통해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이, 밈은 모방을 거쳐 뇌에서 뇌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전달한다. 밈은 유전자와 동일하게 변이, 경쟁, 자연선택, 유전의 과정을 거쳐 수직적으로, 혹은 수평적으로 전달되면서 진화한다. 또한 가장 많이, 효율적으로 복제되는 밈이 숙주인 인간 입장에서 그 밈이 갖는 유용성과 관련없이 전파된다는 점에서 유전자의 이기적 측면과 유사한 특성을 밈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밈은 유전자의 뉴클레오타이드나 코돈처럼 고정된 단위를 갖지 않고, 유전자와 다른 방향으로 숙주의 행동을 조절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점에서 유전자와의 차별성을 갖는다.
밈을 연구하는 밈학은 1990년대에 밈을 다윈적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와 함께 등장하였다. 그러나 밈학이 학문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문화를 구분되는 단위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밈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밈은 현재 다양한 사회 현상과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인의 자아의 형성에서 종교, 인종차별까지 유전자만을 사용하여 순수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밈의 도입을 통해 설명된다. 또한 최근 신경심리학에서 대두된 거울 신경 세포를 설명하는 데에도 밈의 개념이 필요하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문자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 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의 운반체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 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수백만 번 전 세계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어 있지 않은가. [1]
역사
'밈' 이라는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베스트 셀러인 〈이기적 유전자〉(1976)에서 유래되었다. 밈은 복제된 것이라는 그리스 단어 'mimema'에서 나온 'mimeme'을, 유전자(gene)과 유사한 한 음절 단어로 만들어서 '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2] 밈이 등장하기 전에도 사회적 진화의 단위의 개념은 존재했는데, 역사적으로는 그 단어는 1904년 독일 라마르크파 생물학자 리하르트 제몬의 책 <밈(The mneme, 1904)>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보고 있다.[3] 이 책의 단어 'mneme'은 도킨스가 제시한 밈의 개념과 흡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4] 이처럼 도킨스 이전에도 문화의 전달 개념을 제시한 사람은 있었지만 도킨스처럼 개념을 체계화해서 가설로 정비한 사람은 없었다. 도킨스를 계기로 문화의 진화는 밈학에 의해 연구되게 되었으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사회적 진화의 단위는 밈이다.
개념과 의의
앞서 역사에서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를 유전자들 간의 경쟁으로 보아야 가장 잘 이해된다고 주장했다. 진화가 종의 이익으로 수렴된다는 기존의 견해와는 반대로, 도킨스는 진화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이기적 유전자 이론'라고 한다. 유전자들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제를 최우선 목표로 여기며 경쟁한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를 원한다는 뜻은, 복제를 성공시키는 성향이 강한 유전자는 전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표현으로 풀어서 말할 수 있다. 유전자는 복제자로서의 힘을 갖고, 사람을 포함한 유전자를 운반하는 개체들은 복제자인 유전자를 운반하는 운반자들이다. 도킨스는 유전자는 복제자의 한 종류일 뿐이며, 다양한 종류의 복제자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밈을 그 예로 제시한다. 밈은 문화를 복제시키는 복제자이다. 밈도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어떤 무엇보다 그 자신의 확산을 원한다. [5] 밈은 개인이나 집단의 뇌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뇌로 전달되면서 전 세계로 퍼진다. 도킨스는 밈이 전달하는 문화의 예로 노랫가락, 발상, 캐치프레이즈, 패션, 항아리를 만드는 방법, 아치 건설 등을 들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책을 읽으면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혹은 악수를 하면서도 밈을 전달하고 전달받는다. 종교나 내세에 생명이 있는 믿음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전달된 효율적인 밈이다. 밈은 책이나 발명품 등을 통해 뇌에 저장되고, 모방을 통해 전파된다. 유전자가 염색체에 코딩되어서 복제를 통해 퍼져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밈에 대한 논의는 인간이 어떻게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도의 지능과 의식, 큰 두뇌 크기 등을 들어 차별성을 주장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양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밈학의 권위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수잔 블랙모어는 인간과 동물의 차별성은 문화에 있으며, 문화가 인간에게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문화가 '밈'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6] 간혹 동물생리학의 연구결과를 보고 (주변의 집단에게서 노래를 배우는 새의 예 등) 모방은 동물에게서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물의 모방과 인간의 모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동물의 모방은 크게 고전적 조건화와 조작적 조건화로 나뉜다. 고전적 조건화는 어떤 직접적 자극에 대한 수동적 반응을 의미한다. 조작적 조건화는 동물들이 행동에 대한 자극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으로, 시행착오 학습이라고도 한다. 이는 고전적 조건화보다 능동적 개념이다. 그러나 동물의 학습은 단지 환경에 맞춰 본능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 뿐이고, 행동 그 자체를 배우는 인간의 모방과는 구분된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남을 모방한다는 것, 특히 부모나 유사 부모의 역할을 맡은 사람, 또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많이 모방한다는 것은 아주 친숙한 사실이다. (중략) 아이가 다른 언어가 아니라 제 모국어를 배우게 되는 것은 모방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의 부모가 아니라 제 부모의 말투를 더 닮는 것도 모방 때문이다. 지역마다 사투리가 존재하는 것, 그보다 더 긴 시간의 차원에서 별개의 언어들이 존재하는 것도 모방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전자가 세대를 따라 종적으로 전달되는 현상이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횡적으로 전달되는 현상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이 비유가 유용하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언어, 사상, 신념, 태도, 유행의 전달에서 유전자의 역할을 맡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개체라는 것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내가 1976년에 '밈' 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뒤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에 상응하는 그 가설적 개체를 밈이라고 부르고 있다. [7]
밈과 보편다윈주의
앞서 개념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킨스는 복제의 과정에 복제자와 운반자라는 두 개념을 도입했다. 복제자는 스스로 복사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하고, 복제자의 속성에 따라 복사의 가능성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능동적 복제자라고 불린다. 운반자는 복제자를 운반하며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복제자는 DNA고, DNA를 운반하는 운반자는 생물체와 생물체 집단으로 생체 외부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보편 다윈주의의 기본 개념은, 우주의 다른 어딘가에 생명이 존재한다면 그 생명들도 모두 복제하는 개체들의 차별적 생존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의가 DNA가 아닌 '복제하는 개체'를 말하고 있음을 유의하라. 복제하는 개체는 DNA가 될 수도, DNA가 아닌 다른 어떤 복제자가 될 수도 있다. 밈이론은 그 복제자 중 하나가 밈인 경우를 말한다. 새로운 복제자인 밈은 오래된 복제자인 DNA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수도, 정반대의 방향의 진화로 나아갈 수도 있다. 밈과 DNA는 모두 이기적인 복제자로 그 자신의 생존을 목표로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의 세 조건은 변이, 유전(복제 능력), 차별적 적응력이라고 주장했다.[8] 차별적 적응력을 선택으로 생각하면 이는 다윈이 제시한 진화의 세 조건과 유사하다. 유전자의 예에서 보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고 그 변이가 일어난 유전자들이 각각 유전될 경우, 두 유전자가 다른 적응능력을 가진다면 적응을 잘 한 유전자만 살아남고 다른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곧 사라질 것이다.
도킨스는 이 조건들이 갖춰지면 언제든 진화의 과정은 일어난다는 것과 진화는 유전자와 같은 유기적 원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도킨스는 밈도 진화에 필요한 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밈의 복제는 새롭게 적용된 유전적 진화가 아닌, 자연 선택의 법칙에 의한 또 다른 현상이다. 도킨스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달된 생각들이 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의 경쟁에 의해 강화되거나 약화되며, 간혹 그 경쟁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을 주시했다. 그 예로 한 특정한 문화는 그 문화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사용방법을 가진 도구에서 다른 문화와의 경쟁에서 이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현상들을 보편 다윈주의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재포장하려는 시도는 보편 다윈주의의 의도와 벗어난 것이다. 이를테면, 식민지를 개척하는 강대국들이 적자 생존에 의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 것이나, 오바마의 당선이 백인이 주류였던 미국 사회에서 오바마라는 변이가 적자로 선택되는 진화였다고 분석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개개인의 진화 심리는 설명하지 않고 그 현상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보편 다윈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예이다. [9]
유전자와 밈
유사점
유전자와 밈은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유전자와 밈의 밀접한 관계는 처음 밈의 개념을 제시한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와의 유사성에서 착안하여 밈의 이름을 지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10]
다윈주의적 진화
밈에 의한 인간 문화의 진화는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다윈주의적 과정으로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다윈의 진화 메커니즘에 적용시켜 보는 것은 밈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의 메커니즘은 변이, 선택, 보유 혹은 유전의 세 요소로 구성된다. 현대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자는 이 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자기복제자이다. 이러한 진화의 메커니즘을 밈에 적용시켜 생각해 보면, 밈 또한 자기복제자의 세 조건을 만족한다. 첫 번째로, 인간의 모방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밈은 조금씩 변화된 형태로 전달된다. 또한 성공적으로 많이 전파되는 밈과 그렇지 못한 밈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밈의 전파에도 선택이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밈을 전달받은 사람은 밈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보유하게 되고, 밈은 모방을 통해 더 전파되게 된다. 이처럼 밈은 자기복제자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는 면에서 유전자와 중요한 유사점을 갖는다.
차이점
하지만 유전자와 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와 전달 정보와 전달 방법, 그리고 연구 정도와 접근 방식의 차이이다.
전달 정보와 전달 방법
첫 번째로, 유전자가 생물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생물학적 유전의 단위인 반면에 밈은 문화적 정보를 전달하는 단위이다. 또한 유전자는 생물학적인 방법인 생식을 통해 수직적으로 전파되고 유전되는데 반하여 밈은 모방이라는 사회적 방법을 통하여 수평적으로 전달된다. 유전자가 생물을 진화시키는 메커니즘의 단위라고 한다면 밈은 문화와 사회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 정도와 접근 방식
다른 면에서 보면, 유전자는 19세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유전학을 통하여 생물학적으로 그 물리적 특성과 작동 메커니즘이 비교적 많이 규명되어 있는데 비하여 밈의 경우에는 심리, 사회학적인 접근이 우선시됨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물리적 특성이나 전달과 확산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하나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타성
이타성, 즉 자신을 희생하여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사회생물학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전통적으로 막연히 ‘인간에게 내재된 도덕적 본능’이라고 설명되던 이타성에 대하여 리처드 도킨스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겉으로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실제로는 유전자 수준에서의 이득을 꾀한다는 방법으로 인간의 이타성을 설명한 것이다.[11] 진화생물학자들은 W.D.해밀턴의 혈연 도태(kin selection) 이론과 인간의 이타성을 다시 상대로부터 보답을 받기 위한 상호적 이타성으로 한정하여 이타성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실제 이타적 행동을 들여다보면 유전자 수준에서나 상호적 이타성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타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타성 밈
밈의 개념을 적용하면 이러한 인간의 이타성을 더욱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며, 다른 사람들이 그 행동을 모방하게 되면서 그 밈을 전파시키게 된다. 곧, 이타적인 밈은 그렇지 않은 밈에 비하여 더 멀리, 더 많이 퍼지게 되기에 이타성은 밈의 이득을 취하는 메커니즘이다. 더욱이, 모방자에 대한 성선택의 압력이 가해진다면 이타적 행위는 밈적으로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멀리 확산될 수 있다.
밈과 문화
밈의 존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사회와 문화의 발전,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전자에 기초한 생물학적 아이디어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밈이라는 문화적 복제자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서 밈을 지나치게 생물학적으로, 유전자에 한정된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밈 개념을 사용하여 유전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사회 문화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밈>이라는 책을 쓴 수잔 블랙모어는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밈의 진화가 유전자의 진화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12] 그러므로 밈은 유전자와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기도 하지만 반대방향으로 진화하여 유전자의 진화와 반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와 밈의 공진화
밈은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250만 년쯤 전 모방이 고안된 시점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진화해왔다.
뇌와 언어의 진화
유전자와 밈이 같은 방향으로 진화한 대표적인 예가 큰 뇌와 언어를 가지게 된 인간의 진화이다. 인간의 뇌는 다른 어떤 동물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인체에서 큰 비율을 차지한다. 큰 뇌가 가지는 많은 이점들도 있지만, 몸무게의 2%에 불과한 뇌가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며 뇌를 발달시키고 유지시키는 막대한 비용을 생각하면 다른 동물들의 경우 인간처럼 큰 뇌를 가지도록 진화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밈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막대한 기회비용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큰 뇌를 가지게 된 이유를 밈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인간이 영장류 수준이었을 때부터 밈이 출현하여, 큰 뇌로 얻게 되는 이점이 비용보다 커졌다는 것이다. 밈을 전파시키는 모방 행동이 발달한 뇌와 언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출현한 밈이 큰 뇌와 언어의 발달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언어 역시 큰 뇌와 마찬가지로 다산성, 충실도, 긴 수명을 가졌기에 선택적 유전을 통해 살아남은 밈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유전자와 밈 진화의 상관관계
유전자와 밈의 공진화는 유전자와 밈이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며 진화해왔음을 시사한다. 자연선택을 통하여 유전자는 우세한 밈을 잘 퍼뜨리는 뇌를 선호하여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유전자를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진화는 밈이 더 빨리 퍼질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처럼 유전자와 밈이 서로 이득을 제공하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오늘날의 인간은 큰 뇌와 언어를 가지는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자와 밈의 대립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유전자와 밈이 상호 이득을 제공하면서 공진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유전자와 밈의 진화 방향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유전자와 밈의 대립 관계를 가정하면 유전자의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사회 문화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성문화
유전자와 밈이 대립하는 첫 번째 예가 번식에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 성(性)문화, 예컨대 동성애나 쾌락만을 위한 성행위,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다. 밈 이론을 적용하지 않고 순수한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정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뇌 중 번식과 상관없는 부분이 작용해서 생겨난 오류로 설명되며 자손을 남기는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그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러한 성문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현대의 추세와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하지만 밈의 개념을 적용하면, 현대 사회에서 눈에 띄게 발전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밈 이론에 따르면 현대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많은 이유는 독신이거나 자식이 없는 여성은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활발하고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 밈을 더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성들은 밈 분수, 즉 성공적인 밈 전달자로서 주된 모방 대상이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번식에 불리한 문화를 야기하는 밈이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밈의 전파와 확산이 매우 용이해진 현대의 환경도 이러한 밈의 빠른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입양
유전자와 밈이 대립하는 또 다른 예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남의 자식을 입양하는 것이다. 이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는 유전자의 개념에 한정시켜 볼 때에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양이라는 행위는 자신의 밈을 전파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입양의 개념이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밈의 개념을 적용하면 명쾌하게 설명된다.
권력욕
유전자의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유전자와 밈이 상반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설명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다. 권력은 자신의 밈을 퍼뜨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실제로 자신의 유전자를 전파하는 데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할지라도 권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는 것이다.
밈 개념의 적용
종교
종교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밈 중의 하나이다. 인간사회에서 종교는 대부분 진실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으나, 아주 보편적이며 몇몇 종교들은 인간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한 영향력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발생 과정
종교 밈이 발생한 이유로는 대니얼 데닛의 아이디어로 설명할 수 있다.[13]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같은 주변 환경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 아래 그것들을 인지하면 상황을 쉽게 파악하고 대처하여 살아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변환경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지향적 입장' 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갖는 본능적인 지향적 입장으로부터 신이나 종교에 대한 관념이 출현하게 되었다. 실제로 고대 종교들과 번성한 현대 종교들의 내용과 천구의 운동을 비교하여 본 결과, 많은 종교들은 서로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내용은 모두 천구의 운동을 은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즉 뇌에 의해 종교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뇌 연구가 진행될수록 종교의 발생과 발전에 대한 것들이 밝혀 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지향적 입장에 들어맞는 사실들을 무의식적으로 더 집중적으로 인지한다는 심리실험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측두엽이 불안정한 사람은 안정한 사람에 비해 신비주의적이거나 초자연적, 혹은 종교적인 체험을 더 자주 겪고 더 잘 믿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이러한 무의식적 면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심리, 더 알고 싶어하는 심리가 합쳐져 종교가 생겨났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의 발생 과정이다.
종교와 밈
종교 밈의 번성 이유는 생물학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종교는 진위 여부를 떠나 개인이나 집단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생존하고 사회를 성공시키고, 더 잘 번식하게 하는 데 유리하다는 설명이 생물학적인 이론에서의 종교의 번성 이유이다. 특히 사회를 성공시키는 데에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번성한 종교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줄어들게 하며 희망을 가지게 하는 등 여러 가지 기본적인 심리에 강하게 호소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자들은 이렇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만 설명하기에는 오늘날 몇몇 세계종교들이 문화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종교가 퍼지고 진화하는 것에 대해 밈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종교 밈들 역시도 다른 밈들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성공한 종교밈들은 인간사회에서 인기 있는 밈이 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갖는다.
그 여러 가지 특징들 중 하나는 밈이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기능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학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라 믿게 해 의심의 여지를 없게 해야 한다. 이로 인해 번성한 종교들은 다른 종교들과 서로 배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 종교밈이 절대적인 진리라 믿도록 미학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데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예술들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이타적인 내용들이 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종교에 의해 이타적인 행동을 두드러지게 하는 사람을 군중들이 존경하게 되면, 군중들은 그 사람의 이타적인 행동 자체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종교 또한 위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고 추종하게 된다. 또한 종교밈의 이타적인 내용들은 종교 밈을 미학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과 더불어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고 성공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기능도 한다. 또한 종교밈이 번성하려면 구성원들 간에 강한 결속력이 있게 해야 하고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소속감은 사람의 강한 본능 중 하나로 종교를 가지고 유지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번성한 세계의 종교들은 이런 특징들을 가지도록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밈 선택에 의해 점진적으로 진화했다고 보인다.[14] 이와 같이 종교밈이 번성하고, 진화하는 과정은 밈 이론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의 번성에 대해 유전자 측면의 생물학적인 설명과 밈이론적인 설명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들이 필요해 보인다. 밈 자체도 생물학적인 구조물인 뇌로 인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두 측면의 설명들을 통합할 수 있을 때 종교의 발생 과정을 더욱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종교 밈과 유전자의 공진화
종교밈과 유전자는 공진화 한다. 유전자와 종교밈의 공진화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다음의 메커니즘은 종교밈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 널리 퍼지고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모든 밈들에게 해당된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연역적 추리를 하게 만들어진 유전자가 종교밈을 탄생시켰다. 또한 밈은 인간 사회에 더욱 널리 퍼지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생겨나고 진화하여 널리 퍼진 종교밈의 영향에 따라 사회가 변화되었고, 종교밈에 맞게 변화된 사회에 맞는 유전자가 인간사회에 적응하여 생존하기에 더욱 유리해졌다. 결국 종교밈에 맞는 유전자가 자연선택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변화하는 밈과 종교
현대 사회에서는 밈의 전달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밈의 전달과 확산 속도는 매우 빨라졌고, 수직적 전달보다는 수평적 전달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밈의 전달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종교가 힘을 잃는다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하는 종교가 힘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이 더욱 큰 가능성을 가질 것이다.
인종차별
인종차별은 인종을 근거로 다른 이들을 차별하는 생각이다. 인간 사회에서 널리 퍼졌었고 지금은 쇠퇴하고 있는 밈 중 하나이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인간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밝혀진 심리인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우수하며 다른 집단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생겨난 것으로 생각된다. 인종차별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앞서 말한 자신의 집단에 대한 애착심과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 심리를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몇몇 경우 인종을 계속 차별하는 것이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노예 등으로 부리는 것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인종차별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에 배척당하고 있고, 점점 지구촌 사회가 되어가기 때문에 쇠퇴하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부분들이 지구에서 많이 보인다.
자아
자아는 밈들의 집합인 밈플렉스의 일종이다.[15] 자아에는 매우 방대한 양들의 밈들이 서로 이어져서 집단으로 존재한다. 뭉쳐서 자아가 되어있는 밈들은 자기조직적, 자기보호적이며 자기들에 맞는 밈들을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밈들을 배척한다. 따라서 자아가 마주치는 밈들이 많을수록 자아의 밈 복잡도는 증가한다. 그리고 여러 연구들의 결과 자아는 스스로 인식하는 것처럼 주체적이지 않으며 무의식적인 것들의 영향도 상당히 많이 받는다. 하지만 자아는 무의식에 대한 심리실험 같은 여러 증거들을 볼 때 같은 희귀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스스로의 주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아는 모든 외부환경들을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인식하며 형태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자아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이는 자아 자신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강하게 믿는 것과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돕는다. 자아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자아는 자신에게 속해있는 밈들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퍼뜨리기에 유리하다. 원래 밈은 어디에서든지 밈플렉스의 형태로 서로 견고하게 이어져 있을 때 잘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밈플렉스와 다르게 자아는 스스로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고 있든 자신에게 속한 밈들에 감정적인 애착을 가진다. 특히 감정이 많이 들어가는 신념과 같은 형태의 밈 일수록 더욱 더 애착을 갖는다. 자아는 자신에 속한 밈이 다른 밈들에 의해 부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논쟁들이 자아가 자신에게 속한 밈들을 보호하는 행동들의 한 예이다.
거울뉴런과의 연관성
거울신경세포는 인간이 본능적인 모방을 하게 하는 뉴런이다. 거울뉴런은 밈의 물리적 실체를 밝히고 밈이 전달되는데 중요한 한 과정인 모방에 대해서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되고 있다. 뇌는 다른 사람들이 특정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의 뇌의 발화된 부분과 같은 부위의 뉴런을 발화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 등을 볼 때 등장인물들에 공감을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의도 등을 표정 같은 것으로 순간적으로 파악해 내는 능력,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가볍고 일상적인 행동에 대한 모방의 시초가 될 것이라는 가설들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거울뉴런이 인간사회에서 보이는 다양한 모방들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거울뉴런은 주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순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판단을 할 때 큰 영향을 끼치지 추론이나 사고 과정 자체를 직접적으로 조율하지는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모방에 관한 실험들에서, 사람은 본인의 인식여부를 떠나 자신의 가볍고 일상적인 행동을 그대로 모방 하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좋아한다. 예를 들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과 같은 행동은 실험으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과 같은 언어습관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사람들을 선호하고, 실제로 서로 호감 있는 사람들끼리는 언어습관이 닮는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의 언어습관을 자기도 모르게 점점 모방하는 특성이 사람들 사이의 문법을 만들었을 것이고 밈의 시초가 되었을 거라는 예측들이 있다. 이처럼 여러 모방 현상들의 뇌에서 모방의 시초일 것이라고 판단되는 거울뉴런에 대해 밝혀짐으로써 밈의 물리적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밈학
밈학은 밈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1990년대에 밈을 다윈적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와 함께 등장하였다. 그러나 밈학이 학문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문화를 구분되는 단위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밈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밈은 현재 다양한 사회 현상과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인의 자아의 형성에서 종교, 인종차별까지 유전자만을 사용하여 순수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밈의 도입을 통해 설명된다.
밈 이론에 대한 비판
물리적 실체 규명의 어려움
밈의 물리적 실체를 규명하기는 힘들며 이 때문에 밈의 단위를 규정하는 것, 밈의 복제와 저장 메커니즘을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렵다. 어떠한 과학적인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의가 필요한데 밈 이론에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16] 이에 대해 밈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비판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의 없이도 밈의 개념 확립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여러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밈이 구체적인 단위를 정하기 힘들고 논리성이 부족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보편다윈주의로 문화에 대해 설명한 밈 이론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울뉴런 등 신경과학의 발전에 따라 밈의 물리적 실체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아직까지 밈 이론은 인간사회에서 갖가지 사상과 문화 등이 퍼지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방식으로는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과학적인 이론으로 정립하기에는 구체성과 논리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들이 있다.
라마르크식 진화
밈의 전달과 진화는 생물학적 유전과 같이 후천적 획득형질이 전달되지 않는 비라마르크식 방식이 아니라 후천적 획득형질이 전달되는 라마르크식 방식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 지적대로 밈의 진화에는 라마르크적인 면모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밈 이론의 옹호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밈의 전달은 언어적인 방식을 통한 비라마르크식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더 많으며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비라마르크적인 방식을 중심으로, 라마르크적이거나 비라마르크적인 두 가지의 방식이 복합적으로 섞인 방식을 통해 밈이 전달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애초에 밈의 전달이 라마르크식이건 라마르크식이 아니건 이런 비판은 밈을 유전자에 하나하나 철저하게 비유할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비유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밈 이론에서 밈의 작동원리가 반드시 유전자와 같아야 이론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밈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밈이 보편다윈주의를 기반으로 한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에 대한 비유에 너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밈 이론은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는 것이 옹호자들의 입장이다.
지향 방향에서 유전자와의 차별성
밈과 생물학적인 것들은 서로 약간의 영향은 있지만 별개이며 밈은 유전자의 번성하려는 특성에 맞지 않는 경우도 찾아 볼 수 있다는 밈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래서 순수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을 밈이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뒤에서 나오는 지향방향이라는 표현은 수전 블랙모어가 <밈>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유전자의 지향방향이란 유전자가 스스로를 널리 퍼뜨리고 오랫동안 보존시키려 한다는 특성을 표현한 것이고, 밈의 지향방향이란 밈 스스로를 널리 퍼뜨리고 오랫동안 보존되게 하려고 한다는 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 두 지향방향은 모두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온 것이다. 편의상 지향방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 유전자나 밈이 이러한 지향방향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무런 의도 없이 다양한 특성들을 가진 유전자와 밈들 중 오래 남고 번성하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것들이 오래 남고 번성하고, 아닌 것은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비판 중에는 그 둘의 이러한 지향방향은 서로 같으며 결국 밈도 문화에 대한 생물학적인 설명에 속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비판에서 물론 밈이 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차지하는 부분은 크며 문화의 전도에 대해 획기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은 수용하고 있다. 그 비판은 우선 문화를 만드는 주체인 생물과 문화가 서로 약간의 영향만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일단 밈이 생기려면 뇌가 있어야 하고, 그 뇌가 있기 위해서는 유전자 등 생물학적인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밈이 번성하려면 그 밈을 생산하거나 수용하는 생명체가 번성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유리한 밈이 결국 널리 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밈은 결국 생물학적인 설명과 같은 방향을 취하게 된다고 이 비판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 등을 제외한 밈은 근본적으로 본능이 기준이 되어 생겨나게 된다. 주관이 들어간 모든 밈들의 근원은 본능이다. 또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 같이 주관이 들어가지 않는 밈들은 알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인간의 뇌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고, 대개의 경우 그 밈들은 살아남는데 유용할수록 번성되어있다. 물론 유전자의 지향 방향과 반대되는 밈들이 우리사회에서 꽤나 존재한다.
유전자의 지향 방향과 반대되는 밈들의 대표적인 예는 성적인 쾌락은 추구하지만 자식은 추구하지 않는 밈이다. 하지만 유전자 자신도 유전자의 지향 방향과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유전자의 지향방향에 맞지 않는 유전자는 진화를 통해 도태되게 된다. 유전자의 지향 방향과 반대되는 밈도 결국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런 점들에 의해서 밈과 유전자를 포함한 생물학적인 것들은 별개가 아니다. 문화나 생물학적 형질 둘은 모두 결국 유전자와 환경의 관계에 의해 탄생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밈 이론에 관한 개념에서 이러한 비판도 앞으로 더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융합되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를 보아 밈과 이러한 비판들은 활발하게 연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 위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