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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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생을 사는 목적이 뭘까라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기 시작하면서 고민을 해봤습니다.. 사실은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이유도 제 인생에 대한 일종의 우울감과 회의감과 허탈감에 대한 개인적 욕망이 작용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당연히 건강을 생각하거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금연은 이어가는게 맞고 그래야함에도 굳이 남들 태우는 담배 한개비 정도 태운다고 죽을 걱정을 할 것 까지는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하루에 한개비로 한정한 흡연을 시작했습니다.. 간혹 한개비 이상을 태울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기준을 지켜나가고는 있습니다.. 아마 10년이 넘게 제 블로그를 봐오신 몇몇분은 제 금연의 이유와 기간을 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의 금연의 이유는 저의 건강보다는 아이들의 건강과 가족에게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영향을 없애고자 했던 것이 큽니다.. 다른건 몰라도 담배만큼은 굳이 끊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저에게 가장 큰 결단의 이유였죠, 그렇게 십년이 흐르고 아이들은 어느정도 자랐습니다.. 다시 흡연을 시작하고 아이들이 꾸중을 합니다.. 매일같이 아빠의 담배연기가 자신이 아닌 아빠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럴때마다 아빠는 하루에 딱(!) 한 개비만 태울꺼야.. 그렇게 큰 건강상 문제는 없을것 같아라고 변명을 하지만 아이들은 듣질 않습니다.. 애초 저보다는 아이들의 건강과 삶을 이유로 금연을 했던 저이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아빠의 건강과 삶을 이유로 금연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다시 태우게 된 담배의 독한 연기의 매력을 다시 지우기가 쉽진 않으니까요, 하루 비록 한 개비일지라도,


    2.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요, 저에게 있어서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입죠, 대다수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와 중년의 어른들의 삶이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보다는 자신의 가족과 아이의 인생을 더 중시 여기는 것이죠, 동료들과 친구들은 그러지말라고 합니다.. 여태껏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데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 되지않고 그동안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 지 우울해질꺼라고 하길래 최소한의 자기 만족을 위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이어붙였지요, 어떻게보면 참 바보같은 일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큰 욕망덩어리를 제거한 느낌도 큽니다.. 물론 이제는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의 아빠의 골치덩어리가 하나 생긴 셈이지만요, 이렇듯 우리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내에서 삶의 행복과 아픔과 고통과 사랑과 불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장 중요한 인간의 존재의 이유이죠, 그런 의미에서 생존이나 종족의 보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은 당연한 것일겝니다.. 어린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은 태초부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생성되어 온 것들이니까요, 가족과 자식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혼란과 불안과 공포와 아픔과 슬픔과 상실과 부활과 공존이라는 의도로 집필된 야마시로 아사코의 단편소설집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은 매우 공감가는 감성적 호러의 세상으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3.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짧고 굵고 간단하게 각각의 단편을 쭈욱 넘겨봅시다.. 1편은 '세상에서 가장 짦은 소설'이라는 작품입니다.. 어느날 집에서 유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이죠, 갑자기 나타난 유령의 실체와 그 이유를 파헤치는 부부의 진실찾기 정도로 파악하시면 되시겠습니다.. 2편은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라는 작풍입니다.. 어린 초등학생의 아픈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아이가 시골로 전학을 가고 그곳에서 알게된 여학생이 가정폭력과 왕따를 당하는 것을 알게되고 여학생이 키우는 머리 없는 닭과 함께 행복을 알게되지만, 언듯 우리나라의 '소나기'가 떠오르더군요, 마음이 마이 아파, 3편은 '곤드레만드레 SF'라는 작품입니다.. 말그대로 술 취한 사이언스픽션정도로 생각하면 되시겠습니다.. 한 남성이 우연히 발견된 초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야기죠, 누군가가 술에 취해 꽐라가 되어 막 쏟아놓은 이야기속에 미래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죠, 그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은 이유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생각외의 반전이 보이고 나름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4편은 '이불 속의 우주'라는 작품입니다.. 대중적 인지도가 없는 무명의 작가가 오롭게 홀로 살게 되어 우연히 얻게 된 중고 이불을 통해 또다른 차원의 촉감과 실체를 느끼게 되면서 작가로서 그 감각을 표현하여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주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감성과 감각을 글로 표현해기 위해 이불속에서의 색다른 우주의 감각속으로 빠져드는 작가의 이야기이죠, 나쁘지 않습니다.. 일종의 기묘한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 정도의 느낌,


    4. 5편은 '아이의 얼굴'이라는 작품입니다.. 호러미스터리감성스릴러의 설정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단편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호러스러우면서도 감성적 느낌이 강한 작품이기도 하죠, 한 여성이 과거를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과거 자신이 알던 친구들의 아이들이 연이어 죽거나 죽음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죠, 그리고 그들중 한명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소환됩니다.. 아직 아이가 없는 그녀에게 그들과 같은 아픔과 고통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죠, 언제나 삶은 그 댓가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6편인 '무전기'는 후쿠시마 지진과 원전 사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입니다.. 가슴 시린 상처와 고통의 상실을 다룬 작품입니다.. 흔한 소재와 설정이지만 무전기를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과 아련한 그리움의 근원적 슬픔을 다룬 작품이죠, 읽는 내내 가슴이 뻐근해지는 묵직함이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한 남자의 애잔함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라서 좋았습니다.. 7편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이라는 작품의 대표제목이기도 한 작품이죠, 그러니만큼 작품적 매력이 상당합니다.. 이중적 인격을 가진 한 남성의 가족으로서 아내가 당하는 고통과 혼란과 슬픔과 허탈감을 다룬 작품이고 이를 힘겹게 이겨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다룰 정도의 묵직함이 있는 좋은 단편이라꼬 전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아이들아, 잘 자요'라는 작품인데요, 아무래도 이 작품은 우리의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고는 안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작품의 느낌은 판타지적인 상상력이 동원된 뭐랄까요, 상당히 편안하면서도 뭉클한 감동과 행복이 담긴 작품입니다만 내용이나 벌어지는 상황들이 주는 묵직함은 끊임없이 세월호의 아픔과 상실과 슬픔을 떠올리게 합디다.. 단편집의 좋은 마무리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5. '아마시로 아사코'라는 작가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읽고 나서 '오쓰이치'를 이야기하더군요, 야, 그러니까 얘가 쟤였던겁니다.. 제가 아는 '오쓰이치'는 섬뜩한 감성적 호러와 스릴러의 장르적 문체가 뛰어난 작가였죠, 읽다보면 좀 마이 찝찝한 문장이나 표현적 감성들이 있었죠, 그런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전반적인 감성적 성향은 '오쓰이치'의 강한 섬뜩함이 줄어든 반면 가족이나 인간의 삶과 관련된 근원적인 감성에 대한 가치적 영역을 아주 공감가게 이끌어내는 느낌이 다분하죠, 특히나 이 작품은 우리의 일상과 주변의 이야기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웃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비현실의 이야기입죠, 특히나 상실이라는 아픔과 슬픔을 전제로 한 소재들의 설정은 무척이나 감성적인 애잔함을 동반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억지로 이끌어내는 강한 자극성을 배제하고 어쩔 수 없이 누르고 감추고 숨기고 감내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슬픔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내는 인물들의 묘사가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흔한 설정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흔한 현실을 잔잔하게 오랫동안 감성적 여운을 남기고자한 듯 싶습니다.. 몇몇 작품은 그랬습니다..


    6. 편안하지만 애틋하고 슬프지만 행복한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을 바라보는 듯한 공감가는 단편집이라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죠, 전체적으로는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가족과 인간이 태생적으로 타고난 존재에 대한 사랑이 큽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의 본능을 상실한 아픔을 대단히 매력적인 설정과 흔한 주제로 다루고 있으니 독자로서는 그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이별과 상실이 주는 인간적 슬픔은 항상 공감하기 마련이니까요, 이 작품은 그런 이야기로 만들어졌습니다.. 각각의 단편들이 주는 매력은 흔하고 대중적이지만 그 내면의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을 그려낸 감성적 애잔함에 대한 표현과 문체만큼은 상당히 뛰어나다꼬 전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가족은 중요한 삶의 목적이고 이유이기 때문이죠, 작가 '야미시로 아사코'는 이러한 인간의 내면적 슬픔을 잘 이용해서 좋은 단편집을 만들어낸 듯 싶습니다.. 또다른 작가의 자아인 '오쓰이치'의 느낌과는 다른 감성의 편안함을 보여주었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그 의도에 대한 충격적 매력까지는 느껴보질 못했습니다.. 향후 또 다시 '야마시로 아사코'의 필명으로 작품이 이어진다면 챙겨봐야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애진한 현실적 두려움과 몽환적 비현실의 세상을 잘 표현해는 좋은 단편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예전부터 보아오던 '기묘한 이야기'와 같은 에피소드를 벗어나질 못할 뿐이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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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
마스다 타다노리 지음, 김은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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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이기적인 세상에서 이기적인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이기적인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속성은 항상 이기적일 수 밖에 없죠,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법칙은 인간들 각자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어 이루어지죠, 각각의 이기심들의 공통점들이 모여 하나의 무리적 공감이 되고 그 공감들이 대다수의 의견이자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하나의 군중적 소요등으로 옳든 그르든 상황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소수의 의견과 판단은 묵살당하고 버림 받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선과 악의 구분은 그동안 인간들이 각자의 생각과 의도속에서 대중적 기준선을 마련된 일종의 규범속에서 저울질되어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벌어지는 소수의 피해는 묵과하고 버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을 처절하게 대변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때도 우린 주변의 영향에 따라 소수의 입장의 공감보다는 다수의 판단의 배척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왜 바보같이, 왜 다른 사람들처럼, 왜 나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지 하며  보통의 대중이 선택하지 않은 충동적 판단과 자기 살해의 답답한 행위에 대해 뉴스를 보며 우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 않나 돌이켜봅니다.. 그렇게 죽음을 택할거면 혼자 죽지, 부모 때문에 죄없은 아이들의 억울한 생명까지 뺏아가는거냐고..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냐고.. 부모때문에 자식들이 왜, 그럼 이 부모들은 악한 존재인가요,


    2.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삶의 두려움이 많습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죠, 사회와 자본주의의 삶에서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인 우리 서민의 인생에서는 어쩔 수 없는 욕심이 생기고 어떻게해서든 나의 배부름과 가족의 허기짐을 달래는게 우선인 세상입니다.. 타인이야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나와 나의 가족과 내 주변의 행복이 우선된다면 타인이야 불행하든 고통받은 버림받든 전혀 고민하지 않습니다.. 배려는 있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나의 많은 부분을 타인의 아픔에 할애하는 박애주의자는 될 수가 없죠, 수많은 관계와 연결속에서 우리는 타인들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부딛치고 생채기를 낼 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상처가 없는 한 우린 금새 잊어버립니다.. 상처 받지 않을려고 아둥바둥 살아가야하니 미처 돌이켜보고 되짚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는 나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고 아픔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대중이 하는 사소한 잘못이 어느순간 나에게 닥쳐올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악몽같은 삶의 나락이 나에게 펼쳐지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없는거죠, 마스다 타다노리는 이러한 인간의 세상속에서의 부대낌에 대한 단편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총 네편의 단편이 담긴 "세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이라는 작품입니다,. 대단히 곤혹스럽고 짜증나는 사회적 진실과 딜레마을 담고 있는 수작입니다.. 읽는 내내 불쾌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질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모든 것에 감응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3. 세가지의 악몽이 우선 등장합니다.. 첫번째 작품은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이라는 작품입니다.. 내용인즉슨 사이키라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자신의 딸이 유괴되었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전달받습니다.. 그리곤 한 남자에게서 전화를 받죠, 사이키의 딸을 데리고 있다는 남자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면 딸을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매그놀리아 거리로 사이키를 불러 들입니다.. 유괴범이 지시한 곳에 도착한 사이키는 유괴범의 의도에 따라 얼마전 이 곳에서 벌어진 자살소동을 기억해냅니다.. 한 남성이 얼마전 빌딩의 옥상에서 자살소동을 벌일 때 사이키의 친구들과 모임을 하던 중 술 김에 대중들은 바보같이 어설픈 자살흉내를 내지말고 떨어져버리라고 부추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남성은 이들의 부추김인지는 모르지만 뛰어내리라는 외침과 함께 죽음을 선택해버리죠, 지금 유괴범은 그때 벌어진 사건을 똑같이 재현하며 사이키로 인해 그 남성이 죽음을 당했다고 대중이 선동한 죽음에 유괴범은 자신의 행위로 사회적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의도대로 하지 않으면 원한은 없지만 사이키의 딸은 어디에선가 죽음을 당한 체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데 대치하던 중 유괴범은 사이키에게 생각지도 못한 요구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돋는 내용이고 공감과 아픔과 고통이 짜증과 함께 물밀듯이 밀려드는 뛰어난 단편이라꼬 생각합니다..


    4. 두번째 작품 '밤에 깨어나'라는 작품은 주변인이 만들어가는 오해와 편견이 어떻게 변질되고 소수의 진실이 다수의 착각으로 위험속에 빠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일반적이고 모범적이 않다는 이유로 주변의 편견으로 인해 누명에 휩싸이고 그렇게 입에서 비롯된 소문은 어느듯 진실처럼 잠재적 범죄라로 낙인찍혀버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누군가의 묻지마 범죄의 용의자로 전혀 상관없는 자신을 지목한 이웃으로 한순간에 범죄자 취급을 받게된 주인공은 공권력을 가진 이나, 이웃이나, 상황만으로 판단한 주변인들 모두의 똘똘뭉친 편견속에서 어떻게해서든 진실이 밝혀질것이라 여기죠,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대중의 비이성적 의심은 그들만의 거짓 판결속에서 범죄자로 몰고 갑니다.. 그렇게 대중은 다수의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 결말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어느정도 결말을 판단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 이야기가 주는 대중적 공감과 답답한 불쾌감은 매우 뛰어납니다.. 분노가 마구마구 치밀죠.


  5. 세번째 작품 '복수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라는 작품은 한 평범한 남성의 가족에게 벌어지는 테러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가족에게 발생하는 사건으로 사와이는 자신이 누군가의 원한을 산 적이 있는가를 떠올리죠, 경찰에게 확실하지 않은 점을 꺼내진 못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아이에게 벌어진 일고 자신에게 가해진 위협으로 과거의 원한관계를 드러냅니다.. 과거 사와이는 친구의 부탁으로 왕따를 당하는 한 아이에게 절도죄를 씌우는 누명을 만들어내죠, 결국 누명을 벗게 되지만 왕따를 당하던 아이는 견디지못하고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삼촌은 아이를 죽음으로 이끈 이들에게 복수를 예고합니다.. 그가 선택한 복수는 자신이 당한 아픔을 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가지게 되면 똑같이 되갚아준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과거를 떠올린 사와이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 지 알게되지만 그에게 닥친 위험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벌어집니다.. 이 작품은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임에도 작품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연쇄적인 복수의 칼날과 관련된 작가의 스토리라인은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결말에서 펼쳐지는 반전 역시 아주 좋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처절한 복수를 할 필요까지 있을까하는 불쾌감이 드는 것 역시 무시할 순 없죠,


    6. 마지막 작품 "계단실의 여왕"은 계단실로 나가던 한 여성이 우연히 발견한 쓰러져있는 여성을 본 직후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단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공감이 이루어지는 작품입니다.. 이 여성은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쓰러진 여성에 대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녀가 이웃으로서 그녀를 적대시하고 무시하던 행위를 떠올리곤 자신이 굳이 이 여성을 위해 좋을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를 따져봅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판단임에도 그동안 그녀가 당했을 불쾌함과 거부감을 무시하진 못합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여성은 위에서 들려오는 계단실 발소리에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구급차를 부르는 것보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죠, 누군가는 쓰러진 여인을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러줄테니 굳이 밉쌍인 그녀를 위해 자신이 좋은 일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모냥입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지금 이 상화에서 그녀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 어서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되는데 위에서는 또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빌어먹을 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급하게 내려오는 발소리에 여성은 계단실을 벗어나 승강기를 탑니다.. 그리곤,,,, 역시 이 작품도 불쾌하기 그지없는 작품입니다.. 피해자의 입장, 가해자의 행동, 무엇보다 이 상황속에서 발생한 모든 정황들이 불쾌한 인간의 이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매우매우 짜증나는 상황이고 인간들임을 보여줍니다..


    7. 이 단편집은 아주 독자적 불쾌감이 가득한 뛰어난 장르적 매력이 좋습니다.. 극단적이고 딜레마적 상황들이 이끌어내는 인간의 극한적 내면을 작가는 아주 뛰어난 묘사와 심리적 표현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정말 평범하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파편들이 주는 고통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정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흔히 말하는 개짜증이 끝없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의 작품들입니다.. 괜히 억지스럽기도 하고 괜히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괜히 주작같이 소설이 너무 과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 모든 거부적 판단은 누구나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해서든 벌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자의적 수긍이 머리속에서 자꾸 반항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꼬 전 생각합니다.. 이 작품속의 범인들은 대단히 악의적이고 거부감 가득한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통과 아픔과 사회적 블만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을 택함으로서 자신들에게 닥친 고통을 평범한 대중에게 되풀이하죠,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대중으로서의 군중은 불안하고 극단적이 이들의 선택의 판단에 각자의 사연과 그들만의 이기적 선택을 택할 수 밖에 없음을 드러냅니다.. 선의와 악의는 한끝차이라는 것을 극단적 선악의 대비를 통해 애매모호하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중적 내면을 보여줍니다.. 이게 너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 너라면 이러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어, 너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어라는 물음을 전제로 이 소설은 매우 오랫동안 머리속에 그 극단적 딜레마에 대해 고민하고 찜찜함을 남겨두는 것이죠, 아주 즐겁고 재미지게 읽은 단편집입니다.. 작가가 이 단편속에서 독자들에게서 이끌어내는 개짜증의 감성적 능력은 대단합니다.. 읽으면서 계속 씨바씨바씨바견은 귀여워하면서 읽었다능,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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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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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행은 전적으로 있는 자를 위한 곳간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조금 삐딱한가요,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대출이니, 예금이니, 이자니 아무것도 모르고 안전빵이랍시고 서민들 코 묻고 때 묻은 푼돈을 우린 은행에 허구헌 날 있는 돈, 없는 돈 만들어서 예금하고 적금을 들고 합니다.. 공과금이니 온갖 사회 비용들도 은행에서 납부처리하곤 하죠, 사실 서민에게 있어서 은행이라는 자본의 매개는 없어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허나 이 은행은 서민을 위한 공간이되어야함에도 항상 사회 자본의 대규모 흐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죠, 푼돈 백날 예금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푼돈을 백명이든 천명이든 끊임없이 끌어모은다고 해봐야 대규모 기업의 큰거 한방이면 은행에서는 나쁘지 않죠, 어쩔 수 없는 천민 자본주의가 이렇게 꾸준하게 합법적으로 생성되어지는 것입니다.. 많이 삐딱한가요,​ 근데 이럴 수 밖에 없는게 이런 경험을 우린 당해보니까요, 개인적 푼돈은 그렇다치더라도 지역 사회의 기반과 지역의 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은행과 기업의 경우에도 은행은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업을 해보시고 자영업을 해보신 분들이시라면 어느정도 공감을 하시겠지만 있는 놈들에게는 굽신거리며 빌려주는 은행돈을 없는 인간에게는 의심하며 빌려주는 은행돈입니다.. 은행은 그냥 돈을 빌려주질 않습니다..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하죠, 특히나 없는 이들에게는 최대한 끌어모을 수 있는 배경을 확인하고 빌려줍디다.. 근사하게 등기부에 떡하니 빌려돈 돈의 120%를 설정을 잡죠, 하지만 위험성이 다분한 사업의 기준에 있어서 큰 기업과 중소 기업의 영역에서 똑같은 가능성이라면 은행은 중소기업을 외면하곤 합니다.. 왜일까요,


    2. 사업과 관련된 거대 자본을 지출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고 섬세한 설정 절차를 거쳐서 심의를 통과한 후 자금 운용이 집행됩니다.. 은행은 그렇죠, 몇몇 사람의 의견으로 그 절차나 방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거지는 허술한 대출의 운용과 방법들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자나 자영업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곤 합니다.. 은행의 기본적 가치가 천민 자본주의에 기인한다는 삐딱한 저의 편견을 여지없이 믿게 만들어주는거죠, 그러지 말았으면 하지만 여전히 이 나라의 은행들이 하는 짓거리란, 돌려받지도 못할 돈을 무너져가는 대기업이니, 공기업에 끊임없이 밀어넣고 애써 모은 서민들 코 묻고 떡진 머리기름 바른 돈, 먼지 가득한 돈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와 경제가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아기들 분유값에도 못미치는 이자를 지급한다고 생색내곤 하죠, 그리고 이런 서민들은 예금창구에서 월말에는 자기 차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이 삐딱하고 잘못된 시선이다라고 하시더라도 은행이 일반 서민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나 행태의 세상에서 제가 그들에게 좋은 소리는 못할 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리가 나오게끔 만들려고 노력하는 일본의 한 소설을 보면 우리도 저런 사람이 있을텐데라는 나름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한자와 나오키가 그런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정의와 불의에 대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깐깐한 시선, 조직이라는 유기체속에서 그들의 적이 되지만 그 조직을 먹여 살리는 세상에 있어서는 정의로운 사람인 한자와 나오키의 시리즈 3편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편은 읽질 못했지만, 대강 들어보니 오사카에서 지점에서의 불합리한 상황을 정의롭게 해결한 한자와가 도쿄 본점으로 전근가면서 벌어지는 일이 있었더군요, 그리고 3편에서는 또 다시 정의롭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눈밖에 나 자회사인 증권사 도코 센트럴 증권으로 발령받고 벌어지는 일입니다..


    3. 한자와 나오키는 도쿄중앙은행 본점의 조직내부의 파벌 싸움과 의도에 휘말려 또다시 내쳐지죠, 앞서 말씀드린 도쿄센트럴증권이라는 자회사의 영업부장으로 발령받습니다.. 일종의 좌천임에도 언제나 한자와는 늠름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부임과 함께 큰 자문 의뢰가 이루어집니다.. 잘나가는  IT기업인 전뇌잡기집단이 자신의 기업 확장을 목적으로 후발업체는 도쿄스파이럴이라는 IT기업을 M&A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도쿄센트럴증권과 거래를 하곤 있지만 아무런 실적이나 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뇌잡기집단의 대표이사의 방문과 함께 대규모의 사업관련 자문과 프로젝트가 계약과 함께 이루어지게 되자 한자와는 담당 차장인 모로타와 함께 제대로 진행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원 담당자였던 모리야마는 모로타의 의도로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그 자라에 미키라는 모로타의 심복이 차지합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어느날 전뇌잡기집단은 제대로된 자료수집 및 설명이 되지 않았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문사를 모회사인 도쿄중앙은행의 증권영업부로 옮겨버립니다.. 갑자기 프로젝트 일체를 빼앗겨버린 한자와는 이 사건에 어떠한 배후와 음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고 들던 중 M&A의 대상이었던 도쿄 스파이럴이라는 기업체가 가진 전망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죠, 그리고 그 기업의 대표인 세나가 과거 모리야마의 절친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또다시 한자와는 자신이 놓쳐버린 프로젝트의 진실과 불의에 대해 도쿄 스파이럴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젝드를 기획하고 자신의 업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고 무시하고 압박하는 도쿄중앙은행과의 일전을 벌이게 됩니다.. 


    4. 이번 작품은 은행이 할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영업적 영역을 다룬 작품입니다.. 제법 확장되고 전문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지죠, 조금은 사회의 경제적 흐름과 주식이나 기업합병과 관련된 지식이 있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게다가 시선과 중심이 은행과 증권사의 갑을의 전쟁처럼 느껴지죠, 그것도 모회사와 자회사의 개념속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어서 부모의 흠결을 끄집어내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잘못하는 것을 자식이 가르쳐주는 방식이죠, 부모라고 언제나 옳고 진실되고 확실한것은 아니니까요, 배울것은 배우고 알더라도 외면했던 것을 고집과 부모라는 이유로 핍박하고 거부하고 괄시하고 무시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자식들이 확실히 알려줍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케이도 준의 기본적 소설의 설정방식이이기도 하죠, 단순합니다.. 정의와 진실과 옳음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것이죠, 시리즈의 제목들이 주는 의도에서부터 우린 알 수 있습니다.. 1편에서는 약자라는 이유로 당한만큼 제대로 갚아준 이야기였습니다.. 2편은 읽질 않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진실에 대한 복수를 끝까지 버티고 지켜내는 자가 승리한다는 이야기일테고 이번 3편은 말그대로 기득권과 가진자들과 앞선 자들의 독선과 아집과 탐욕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으로 앞으로 살아갈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자리를 잡게 해주고자 하는 목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자와는 기득권과 앞선 자들에 편입되지않고 자신의 올바름과 가치를 펼쳐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존재의 가치죠, 그래서 이 작품은 재미집니다..


    5. 사실 이 시리즈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내용입니다.. 매우 바른 결말의 방식이고 그렇게 되어야함에서 우리의 사회는 쉽게 용납하지 않죠, 이런 류의 조직에서 눈밖에 난 정의로운 사람이 발 딛을 곳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죠, 세상은 끊임없이 불의와 음모와 배신과 따돌림으로 점철된 곳이니까요, 그러한 곳에서 힙겹게 싸우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누군가는 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온당히 받아야할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한없이 내쳐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흔히 말하는 줄을 잘 서야된다는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연줄의 방법에서 통용되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한자와 나오키라는 작품의 시리즈는 묵직합니다.. 대단히 진중한 인간의 사회적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 배경이 되는 곳이 은행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이 되는 전쟁터인 것이죠, 이들에게 있어서 은행은 긍지와 함께 권리의 영역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직이자 사회적 이익집단입니다.. 이 시스템과 조직속에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원칙을 추구하는 누군가가 가지는 교과서적인 진리는 대부분의 조직의 구성인들에게 고구마를 천개씩 선물한거나 진배없을겝니다.. 그들에게는 고구마의 달달함과 포만감보다는 목메임과 뜨거움만 가득할테니까요,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은 사회적 무게감을 아주 열혈적 복수의 쾌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이죠, 어디 하나 유쾌한 문장이나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상황과 인물들이 내보이는 경쾌함과 대중적 공감에 매우 만족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에 독자들은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런 작품이에요,


    6. 직선적인 작품이죠, 상황을 꼬이게 만들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닙니다.. 아주 어려울 수 있는 주식시장의 시장개념과 은행의 기업합병등의 전문적 영역을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만들어주는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중심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직적 대치가 있기 때문일겝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기업소설의 형식처럼 집필되지 않은 것이죠, 제목인 한자와 나오키라는 인물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으로 적용된 은행이라는 사회적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그릇된 시선과 행태를 한 인물 캐릭터를 통해 정의가 무엇인 지 또다른 정의로운 대중들과 그 진실을 이끌어내는 이야기입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회적 기업과 그 내면의 인간들의 탐욕을 드러내며 그들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진실과 올바름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니 재미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도 반복되면 조금은 지리해질 수도 있음에도 아직까지는 작가의 의도가 각각의 상황들이 주는 매력속에서 잘 살려져있어 매우 속도감 넘치고 매력적으로 읽힙니다.. 비유가 어떨 지 모르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월급쟁이 은행원 잭 리처라고 비유해도 될까 모리그씀돠.. 아님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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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스토리콜렉터 79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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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읽다 잠이 들었습니다.. 모두 잠든 시각이다보니 어중간하게 잠이 든 모냥입니다.. 가위가 눌렸죠, 간만에 눌린 가위다보니 한결 무서움이 강했습니다.. 반백살이 되어도 무서움은 어릴적과 다르지 않더군요, 잠이 들자마자 거실의 공기가 변한 것 같더라구요, 따뜻하고 편안한 조금 전의 상황과는 다른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한 느낌이 후욱하고 느껴지는 뭐 그런 상황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다가옵니다.. 서서히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죠, 숨이 막혀오고 답답함에도 눈조차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은 느껴집니다.. 악의가 가득하고 죽음이 바로 다가설 것 같은 두려움속에서 숨죽여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죠, 몸의 일부분이라도 움직이면 이런 빌어먹을 꿈에서 깨어날 수 있으리란걸 아니까 말이죠, 하지만 맘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습니다.. 그리곤 알수 없는 악의에 가득찬 무엇인가는 나를 지나쳐 옆자리에 잠든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그 순간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가위눌림의 고통과 공포와는 다른 두려움이 몸 전체에 가득찹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두려움이죠, 꿈속에서 악의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느낌에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그 감정적 두려움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곤 꿈에서 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아무도 없는 무저갱으로 끝없이 떨어져내리는 것이죠, 그 순간 이 세상에 살아남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에 극악한 슬픔이 닥칩니다.. 이미 아이들과 가족은 악의에 가득찬 형체의 어둠에게 먹혀버린 것을 인지한 체 슬픔과 고통의 무덤속으로 끝없이 떨어져내리는 것이죠, 그러다 잠이 깹니다.. 헉헉거리며 조금전까지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옆자리에서 잠이 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며시 체온을 느낍니다.. 그렇게 채 1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 저에겐 지옥보다 더한 두려움의 시간이었습니다..


    2. 공포물을 그렇게 싫어하진 않습니다.. 대중적 흥미를 자극하는 공포 장르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죠, 미디어나 소설적인 감성속의 공포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저에게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무서움을 많이 타는 성격임에도 이러한 장르의 재미를 거부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근래들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웬지 모르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진 않더군요, 조금은 과장되고 과한 설정의 공포물이 주는 거부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 그러려니했던 장치나 설정의 모양새가 이제는 오바스럽고 유치하고 자극적인 부분으로 너무 치우친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을 드러내는 그런 감성적 공포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국내의 몇몇 작품들이나 일본의 미쓰다 신조 작가의 민속신앙이나 토속적 공포의 감성을 꾸준히 드러내는 작가들의 작품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저의 입맛에 잘 맞습니다.. 특히나 미쓰다 신조의 공포의 집 시리즈는 어린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려내는 공포감을 내세워 그 감성이 무척이나 와닿습니다.. 누구나 어린시절 한번쯤은 경험한 비현실적 두려움에 대한 공포가 떠오르는 것이죠, 전작들인 '흉가'나 '화가'에서도 이러한 작가적 감성은 충분히 즐거웠습니다만 이번 작품 "마가"는 이러한 공포감과 더불어 색다른 반전의 매력이 담긴 재미가 가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읽다가 제가 가위까지 눌렸잖아요, 제법 느낌이 좋은 공포소설이라고 봐야죠, 저로서는


    3. 세토 유마는 소설가인 아버지와 엄마와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힘겹게 살아가던 엄마의 재혼으로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사를 옵니다.. 새아빠는 대기업의 임원으로 재직중인 부유한 사람이죠, 유마는 그렇게 도쿄의 대저택으로 이사를 오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정이 없는 새아빠와는 달리 유머스럽고 배려가 많은 새아빠의 동생인 삼촌으로 인해 나름 적응을 하며 살게 되죠, 그런 삼촌이 유마에겐 더 아빠같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아빠의 해외 주재와 관련하여 자신의 거주가 고민이 된 상황에서 삼촌과 함께 여름방학동안 지내기로 하면서 유마는 삼촌의 별장인 가미하큐쇼의 고무로 저택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삼촌에게 고무로 저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유마는 저택의 뒷편 사사 숲과 관련된 과거의 미스터리와 공포감에 사로잡히죠, 그리고 유마는 그동안 자신이 경험한 이계의 비현실적 체험을 기억해냅니다.. 어린 시절 현실속에서 순식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간으로 옮겨간 유마는 현실이 아닌 공간속에서의 미지의 형체에게 쫓기는 두려움을 경험한 바가 있죠, 그리곤 도착한 별장에서 느끼진 공포감과 두려움의 불안은 첫날 밤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데리고 온 삼촌은 그의 동겨녀인 사토미와 함께 유마를 두고 다시 사업으로 인해 도쿄로 돌아가버린 것이죠, 유마는 자신이 읮하는 삼촌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늦은 밤 요의를 느껴 깨어난 뒤 어둠속에서 고무로 저택의 공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유마는 알 수 없는 형체의 무엇인가를 인지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제대로 알 수 없죠, 그리고 침실로 돌아온 유마는 두려움속에서 잠이 들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저택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듣게 된 또다른 사사숲의 비밀은......


    4. 공포의 집 시리즈는 대단히 공감가는 공포감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어느정도 감성적 경험이 이루어진 어린 아이라는 점이 공감을 주는 주 요인이죠, 누구나 그 시절 - 보통은 초 5년 이상 - 에 한번 이상은 유령이나 미스터리한 두려움에 휩싸여본 적이 있을테니까요, 그러한 감성과 함께 집이라는 아주 아늑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 주는 이율배반적인 공포감을 이끌어내니 이 작품 시리즈의 재미는 기본 이상은 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불안감 외에 지역적 특생과 토속적 신앙의 호러적 감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어 공간적 두려움이 배가되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마가"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반부의 색다른 반전의 매력이 기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죠, 단순한 공포감을 넘어서는 스릴러적 감성까지 작품은 무척이나 즐거운 마무리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토속적 호러 괴담속에서 벌어지는 감성이 풍부한 신조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근래들어서 보다 현실적이고 대중적인 호러적 감성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선보여지는 집필작들의 재미가 개인적으로는 좋더군요, 특히나 작품속에서 어떠한 공포적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심리적 불안감을 표현하는 문장들이나 서스펜스적 묘사들이 주는 짜릿함은 작품속의 상황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합니다.. 집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공포적 상황들이 주는 몰입감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이죠, 이번 작품 '마가'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선보여집니다.. 특히나 비현실적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적 감성의 불안감을 공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죠, 덕분에 가위도 눌리고 말이죠


    5. 이런 일반적 공포의 감성이 가득한 작품이 주는 재미와는 달리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느껴지는 반복적 감성은 또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뭐랄까요, 읽는 동안 충분히 감응하는 두려움임에도 이전에도 느껴봤던 작가적 의도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뭐 그런 무난함같은 것 말이죠, 색다른 공포적 충격이나 극악한 공포감은 없는 편안한 두려움같은 뭐 그런 상황들이 이어지는 아쉬움이 들게 됩디다.. 그러니까 이 작품만의 특출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즐겁고 매력적인 호러가 가득하지만 그 뿐이라는 아쉬움, 전작들과 다른 점을 그렇게 느껴지지 않은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를 끜없이 재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자체의 이야기가 읽는 동안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하긴 했지만 조금 나은 이어짐이 보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종의 설정 자체가 다르지 않은 특성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안타까움이겠죠, 그런 이유로 시리즈의 다음편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뭔가 색다름을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후반부의 감성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서 느껴지는 반전은 생각보다 깊어서 역시 작가의 밑밥 작업은 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았어요, 비현실적인 상황의 연결들이 현실적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관계와 인간의 무서움까지 함께 드러낸다는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마지막 유마의 한마디는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전이 주는 무게감과 매력을 그 한마디가 뭉개버리는 듯 한 것이 굳이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껄, 아니면 상황의 전개와 대상을 바꾸었더라면 더 좋았을껄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었죠,


    6. 이 작품이 이 시리즈으 완결판의 형식인가 봅니다.. 그렇다고 보면 이 작품으로 세 작품은 끝을 맺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작품 "마가"가 주는 재미는 충분하다고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시리즈가 각각의 특성과 설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인 감성적 느낌은 대동소이한 면이 없지않았지만 마지막 '마가'가 보여준 것으로 전작들인 '흉가', '화가'의 매력까지 떠올리게 하는 장점도 있으니 삼부작으로의 마무리는 딱 좋다라고 생각듭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세 작품을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된 방식으로 이어나가셔도 충분히 즐거우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린 주인공의 입장에서 벌어지는 공포적 상황들의 공감들이 독자들에게는 그동안의 미쓰다 신조의 작품의 설정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현실적인 공포적 불안감을 선사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후반부의 상황적 반전의 매력도 충분히 즐거우니 독자의 입장에서 즐기며 만날 수 있는 편안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아닐가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어둠이 가득한 생소한 공간속에서 문득 섬짓함과 싸늘함이 느껴지면 그건 당신과 나의 주변에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죠, 미쓰다 신조는 이러한 대중이 가지는 공감적 두려움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뛰어난 공포소설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감성이 니나내나 우리나 모두들이 경험하고 겪는 것이라면 그게 과연 비현실이고 미신이고 비이성적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알지 못하는 실재함이 있는 미지의 존재는 아닐까요, 그게 아주 악의로 가득할 지, 아님 선의로 도움을 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론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우리들 인간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니 비현실이 오리혀 두려운것이겠죠, 암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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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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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떠한 경우라도 본인과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이야기의 진실은 모르는 것이죠, 하나의 범죄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쌍방의 객관적 판단을 가지는 경우 그 진실의 시작과 끝은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수많은 정황과 심증들이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아야 그 틀을 들고 당사자에게 진실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진실을 외면할 경우에는 법에 근거한 최소한의 기준에 맞는 진실의 아귀를 맞춰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실이 호도되고 꾸며져서는 안되는 일이죠, 악랄한 살인자가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확증할 수 있는 모든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보여지는 정황증거와 사실에 근거한 자료들로 죄인을 취급받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범죄를 다루는 판단의 중심이 되는 이들의 결정은 엄청난 권력과 권한과 의무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판단으로 인해 감춰진 악마의 진실을 밝혀낼 수도, 선한 인간에게 악을 덧씌울 수도 있는 것이죠, 사회의 시스템속에서 우린 그들에게 그러한 힘과 권한과 권력과 의무를 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개개인이 다룰 수 없는 부분을 사회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규범이라는 틀속에서 그 울타리를 단속하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이들에게 준 것이죠,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역할이 어느순간 권력으로 돌변하고 아집으로 변질되어버리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마련입니다.. 아니 몇몇의 이러한 문제를 가진 이들만 있다면 뭔 문제겠습니까, 이러한 인간들이 자신들이 꾸준히 만들어놓은 권력과 아집의 결정체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울타리속에 그들만의 또다른 성을 만들어버리는 것이 문제죠,


    2. 자연은 언제나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태생적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도 이러한 태생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이 균형과 틀이 무너지면 누군가는 어떤 것에서는 문제와 피해가 발생하고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니까요, 일개의 개인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지구의 모든 것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잘난것도 아는 것도 없는 놈이 너무 확장해서 멀리 가지맙시다.. 나와 가정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와 범죄와 세상의 삶만 바라봅시다..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부대끼고 마주치고 스쳐가고 이제는 익명과 가려진 선을 통해 소통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살아가긴 어려운 부분입죠, 저 역시 이러한 독후감 한 편이(물론 몇분 읽으시지도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거부감을, 또 누군가에게는 동질성을 줄 수 있을겝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소통과 부대낌과 함께함이 있을 지라도 진실의 끝에는 언제나 본인이 있죠, 보여지는 사실의 이야기 역시 가려진 진실의 끝인 숨겨진 본인에게 그 진실의 토로가 이어져야 합니다.. 허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린 수많은 거짓과 익명과 감춤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곤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그래야함 했다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거라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똑같이 했을거라고, 그리고 한쪽은 무너집니다.. 균형을 잃죠, 사회는 세상은 자연은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주는 이중성은 쉽게 자연스럽게 그 균형을 만들어내질 못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스스로에 대한 항상성을 가지니까요,, 그게 아주 악랄하고 극악한 범죄이든, 스스로의 진실을 끝까지 지켜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3. 말을 하다가 이상한대로 샛네요, 아니 처음부터 그럴려고 작정하고 샛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우리의 현실속의 사회의 모습이 15년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이라는 성속에 꼭꼭 숨은 체 끝없이 만족해오던 족속들이 변함없이 그 행우지를 하는걸 보느라니 참 힘듭니다.. 여전히 일부는 수긍하고 누군가는 거부하고 누군가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이 현실에 대한 환멸도 느껴지구요, 뭐 그러타는 이야깁니다.. 길게 하면 끝없는 주절거림이 될 터이니 작품 이야기를 해야되는데...... 이 작품은 니시자와 야스히코라는 일본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다양한 소재와 설정으로 만난 작가님이신데 이번에는 본격 추리의 설정을 들고 오셨군요, 제목은 "끝없는 살인"입니다.. 한 여성에 대한 살인 미수 사건과 관련하여 벌어진 범죄사실을 토대로 추리를 다루는 한 모임의 역할론이 지배적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입니다.. 바로 줄거리를 봅시다, '이치로이 고지에'라는 여성은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습격한 한 남성으로 인해 죽음을 당할 위기에 봉착합니다.. 그가 휘두른 덤벨에 머리를 다치고 그가 비닐 끈으로 목을 조르면서 바라보는 증오가 가득한 눈동자로 인해 자신의 죽음과 직면하죠, 하지만 우연히 자신의 옆에 놓인 덤벨을 들어 가해자를 치고 벗어나 급하게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곤 정신을 잃죠, 범인은 범행 과정에서 흘린 학생수첩을 그대로 둔 체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도착한 경찰들은 의식을 잃은 체 누워있는 고지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수거한 수첩에서 뜻밖의 진실이 드러나죠, 여성을 살해하려던 남성은 이전에 세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살인마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지에의 몽타쥬와  밝혀진 신상으로도 살인마를 잡지 못한 체 시간은 흐릅니다.. 그렇게 미결로 4년이 흐른 후 고지에는 살인마가 누구인 지, 자신을 살해하고자한 동기만이라도 알고 싶어서 담당 형사였던 나루토모에게 부탁을 하고 나루토모는 이 사건을 공식적이 아닌 추리와 미스터리에 정통한 작가들의 모임인 연미회에 의뢰를 해 새해가 다가오는 마지막날 그들의 모임에 고지에를 초대하여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그 살인마에 대한 추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추론한 정황과 추리적 연결들이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4. 단순한 설정과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했고 그 미수에서 살아남은 주인공과 증거로 가해자가 연쇄살인마임을 알게되고 그 살인마는 오랫동안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사건은 미결로 남겨지고 답답한 마음에 담당형사가 추리를 전문적으로 토의하고 취미로 탐정 역할론을 벌이는 모임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진실에 조금 다가가보자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건을 두고 모임의 회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면서 억측과 추측과 가정이 난무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죠, 이 작품은 단순한 사건의 사실과 근거에 줄기를 두고 각각의 가설을 주장하는 바가 큽니다.. 사실을 토대로 자신만의 가정을 진실을 만들어나가보려는 의도가 짙은 작품입니다.. 여는 탐정소설과는 다른 역할론과 의도가 이루어진 작품입죠, 본 작품속의 탐정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은 흔한 일반적 추론과 다를 바 없는 진행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하고 경찰조차 밝혀내지 못한 사실과 근거와 증거적 정황들이 들어나고 숨겨진 이야기의 이면을 조금씩 끌어내게 되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성이고 설정이고 방법론입니다.. 작가은 애초부터 마지막의 결론에 대한 스토리의 진행을 고민하고 결말에 연계된 반전의 진행방향을 고려하고 서사를 이어나갔겠지만 저로는 정황에 따른 가정과 추측이 난무하고 극단적인 상황적 증거의 반전들이 들어나는 것이 억지스러웠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자기만의 추리를 이어나가기 위한 다양한 상황적 논거들이 인물의 이어짐에 따라 드러났다 사그러지고 또 반전을 거듭하며 후반부에 이르게 되지만 솔직히 답답하고 어줍잖은 상황의 연결이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구마 몇천개의 추리적 역할론으로 인해 밝혀지는 결말의 진실의 충격을 아주 상당합니다.. 사실 이러한 결말의 반전적 충격을 이끌어내기 위해 끝없는 고구마의 살인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더군요,


    5. 어렵지 않는 범죄 사실의 근거가 상황과 정황과 추측과 가정으로 얼마나 다양한 진실의 틀로 이끌어내어지는 지 우린 이 작품을 통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억지와 주장이 예를 들어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판단과 잣대와 그들만의 권한으로 누군가를 옥죄여온다면 그 끝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을 지, 두려움마저 듭디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단순한 일반 모임이기에 망정이지 이러한 그들만의 가정과 추측들이 주는 거짓된 진실의 무게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 지 제대로 알게된 작품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러한 미스터리적 역할론으로 인해 밝혀지는 결론의 진실의 반전은 아주 큰 반향을 줍니다.. 짧은 순간 반전에 대한 또다른 반전의 끝맺음을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마지막이 살린 것이지요, 본격 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번쯤을 즐겨보셔도 좋을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너무 짜맞춰진 미스터리의 설정과 구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반전이 주는 충격 이면에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감이라는 대중적 판단의 이유로서도 이 작품은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받아들여지는 우리의 현실과 상황들이 주는 세상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감성적 측면에서는 조금 칭찬해주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들의 독창적 세계관과 특수한 설정과 관계를 그런 전작들이 조금 더 생각나더군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전과 또다른 반전의 마지막을 두고두고 추천해도 될 만큼 좋다는 점 하나는 끝없이 말씀드립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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