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인 시그프리드André Siegfried는 프랑스 문화의 특성을 삼중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문화는 대서양적인 것과 대륙적인 것과 지중해적인 것이 삼중으로 중첩되어 있다. - P639

프랑스 사람이나 프랑스 국민은 있어도 프랑스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부와 동부의 주민은 게르만족이고 서부와 중앙 고원 지방의 주민은 켈트족이며 남부의 주민은 지중해인 즉 라틴족이다. - P640

따라서 프로테스탄트를 포함한 부르주아는 가톨릭의 울트라몬타니즘에 반대하고 교육과 결혼 문제를 가톨릭교회가 관장하려는 교권주의Clericalisme에 반대하였다. 교권주의는 교육과 결혼, 이혼 문제를 국가가 관장하는 세속화laïcisation에 반대하고 교회가 그것들을 도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P650

교권주의와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e의 싸움은, 위에서 말한 가톨릭교 안에서 일어난 울트라몬타니즘과 갈리카니슴의 싸움과 함께, 정치적·사상적으로 19세기 프랑스의 특이한 역사를 장식하게 될 것이었다. - P650

파리 조약은 프랑스의 국경을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당시의 것으로 환원하였다. - P664

그 헌장은,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재능에 따르는 취업의 자유, 재산에 비례하는 납세, 관권의 자의적인 억압과 체포로부터의 자유, 종교와 출판 및 언론의 자유, 소유권의 불가침성 등을 보장하였다. - P665

왜냐하면 유럽 정치 문화의 전통에서는 외국인을 왕으로 추대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듯이 영국 왕실은 독일 하노버 왕가의 조지 1세George I에서 시작했고, 영국의 명예혁명에 의해 군림한 오렌지 공 윌리엄 3세William Ⅲ of Orange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조지 1세나 윌리엄은 영어를 모르는 완전한 외국인으로서 국민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했지만 곧 쉽게 친근해질 수 있었다. - P673

나폴레옹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하여 벨기에에 주둔하고 있는 웰링턴 휘하의 영국군 9만 6,000명과 블뤼허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 휘하의 프로이센군 12만을 먼저 치기로 하였다. 그는 6월 6일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6월 18일 워털루에서 결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나폴레옹의 참패였다. 그는 두 빈 손을 내밀며 "쓰러진 용사들이여, 나는 패하고 내 제국은 유리처럼 깨졌다"고 소리질렀다. - P685

유배지에서 나폴레옹과 생활을 함께한 역사가 라스 카즈Emmanuel de Las Cases와 구르고Gaspard Gourgaud 장군 및 몽톨롱Charles Tristan de Montholon 장군이 남긴 나폴레옹 전기들은, 1815년 이후의 반동 체제에 대한 반발과 낭만주의의 안개 속에서 문학적인 나폴레옹 전설을 프랑스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죽지 않고 프랑스에 살아남았다. 약 100만의 생명을 군신에게 바친 나폴레옹에게 19세기의 프랑스인은 증오의 비碑를 세우지 않았다. - P687

그의 조카 샤를 루이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이념Des ideés napoléoniennes》(1839)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백부의 정치 이념만이 프랑스를 구제할 수 있다고 선전하더니, 드디어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 이어 제2제국의 황제가 되어, 전설적인 나폴레옹의 구현자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나파르티슴은 프랑스의 19세기 역사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 P688

복고 왕정의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프랑스 혁명을 승인하는 오를레앙 공을 새 왕으로 추대하는 7월혁명은 별 저항 없이 쉽게 성공하였다. 새 왕은 부르봉의 왕들과는 달리 "신의 은총에 의한 프랑스 왕 필리프 7세"가 아니라 "신의 은총과 국민의 의사에 의한 프랑스 국민의 왕 루이 필리프"였다. 필리프 7세가 아닌 루이 필리프라는 왕호는 그의 7월왕정이 자유주의적·시민적 왕국임을 분명히 말해 준 것이었다. 새 왕은 바로 국민의 왕이었다. 새 왕은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국민의 대표자로 추대된 것이다. 주권은 왕에게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67

7월왕정이 삼색기를 국기로 제정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색기는 어떠한 정치체제 아래에서도 계속 프랑스 국기로 남아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68

사실 7월혁명은 부르주아가 내세운 민권 사상의 승리였으며,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통하여 이미 수립된 바 있었던 부르주아의 정치적·사회적 우월권이 재확립된 사건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69

어쨌든 7월혁명을 정치혁명에서 그치게 하여 더 큰 변화를 막으려는 저항파parti de la résistance와 계속 더 전진시키려는 운동파parti de mouvement가 7월왕정에서 서로 대결하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3

더구나 7월왕정 시대는 프랑스의 산업 혁명기로서 근대 공업 노동자계급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들의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은 부르주아적 7월왕정에 불만을 품게 하고 공화국의 수립을 열망하게 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7

그러나 그는 1846년에 탈옥에 성공하여 영국으로 도망하였다. 1848년 2월에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서 국회의원에 선출되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 3년 후에는 쿠데타에 의해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폴레옹 3세라고 칭하게 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8

이렇게 하여 7월왕정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정치적·이념적으로 최소한 네 줄기가 뚜렷한 형태로 각축하기 시작하였다. 극우의 정통주의, 극좌에 공화주의, 그 중간에 입헌군주주의로서의 오를레앙주의, 그리고 현대 프랑스에 특이한 보나파르티슴. 이 넷은 1789년에 시작하여 나폴레옹이 실각할 때까지 이미 뚜렷한 형태로 나타난 일이 있었고, 프랑스 국민이 실컷 경험한 바였다. 그런데 프랑스 국민은 이제 1815년 이래 대혁명의 경험을 한 바퀴 더 되풀이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9

어떤 정치조직도 불신하는 프랑스 특유의 생디칼리슴Syndicalisme이라는 노동운동의 씨앗이 이때 배태하기 시작한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85

파리 폭동의 진압을 ‘트랑스노냉 가의 학살’이라고 부른다. 이 학살은 1848년 6월 폭동과 1871년 파리 코뮌의 선례가 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87

그러나 토크빌Alexis Tocqueville은 기조 시대의 프랑스 정치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주주들이 활동하는 주식회사 같다고 평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95

무릇 산업혁명은 산업자본주의를 급속히 발전시키고 산업자본주의의 발달은 산업자본가 계급을 크게 성장시키는 동시에 근대 공업 노동자계급을 급속히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이 산업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리고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새로 창조된 부의 불평등한 분배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00

미슐레Jules Michelet 《민중Le peuple》과 《프랑스 혁명사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라마르틴의 《지롱드당의 역사Histoire des Girondins》를 비롯하여 루이 블랑의 열두 권짜리 《프랑스 혁명사》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06

7월혁명에 의하여 양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는 2월혁명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다. 두 혁명은 사흘 동안의 시위와 소규모 시가전에 의해 민중의 힘으로 혁명을 실현한 점에서 외관상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혁명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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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프랑스의 만성적 적자 재정을 재건하여 재정과 통화의 안정을 실현하고, 상공업을 진흥시켜서 갓 출발한 프랑스의 산업 자본주의를 본궤도에 올려놓았는데, 그의 재정 정책의 요점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간접 세제였고 둘째는 정복 국가에 대한 배상과 강제 수탈이었고 셋째는 국유재산의 판매였다.
1803년 공화 11년, 제르미날 7일 순금 320밀리그램을 함유한 제르미날 프랑이라는 금화를 발행했는데, 이 화폐는 19세기를 거쳐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큰 인플레이션 시기까지 꾸준히 그 가치를 유지하였다. 그 덕택에 계속된 나폴레옹 전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경제는 안정된 재정하에서 번영을 구가하였다. - P536

나폴레옹은 토지 문제에 관한 한 혁명의 결과를 철저히 보호하는 데 세심하였다. 그만큼 농민은 나폴레옹에게 고마워했고, 또 그만큼 보수화하였다. 농민의 보수화야말로 보나파르티슴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었다. - P539

이상에서 보나파르티슴의 역사적 필연성이 무엇인가를 프랑스 혁명 후의 사회관계에서 찾아보았다.
결론은 한마디로, 당시 프랑스 자본주의는 아직 미성숙의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부르주아 혼자의 힘으로는 정치적 안정을 확립할 수 없었고, 결국 군사독재의 힘에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539

나폴레옹이 1806년 11월 21일 베를린에서 대륙 국가들과 영국의 무역을 일체 금지시킨 칙령을 대륙봉쇄령이라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대륙 체제Contrinental system였다. 나폴레옹의 대륙 지배는 1807년의 틸지트 조약으로 일단 완성되었다. - P558

대륙과 영국의 경제적 관계가 그만큼 뿌리 깊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륙봉쇄가 영국 경제를 멍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륙 국가들도 영국 못지않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은 수출품 시장을 새로 신대륙 특히 중남미에 개척하여 타격을 경감시킬 수 있었으나, 유럽 대륙의 나라들 특히 러시아 같은 나라는 농산물의 수출 시장을 찾지 못하여 고통이 매우 컸다. - P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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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구성원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이때 출발점은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하기 위한 기본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알라딘 eBook <두려움 없는 조직 : 심리적 안정감은 어떻게 조직의 학습,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가> (에이미 에드먼슨 지음, 최윤영 옮김) 중에서 - P95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업무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새로 짜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두려움 없는 조직 : 심리적 안정감은 어떻게 조직의 학습,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가> (에이미 에드먼슨 지음, 최윤영 옮김) 중에서 - P95

실패를 보고하기 두려워하는 문화는 심리적 안정감이 낮은 조직에서 발견되는 흔한 현상이다. 따라서 리더가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조직의 심리적 안정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알라딘 eBook <두려움 없는 조직 : 심리적 안정감은 어떻게 조직의 학습,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가> (에이미 에드먼슨 지음, 최윤영 옮김) 중에서 - P96

구글 X의 CEO이자 문샷 프로젝트의 수장인 아스트로 텔러는 "위험 요소가 많은 대형 프로젝트에 구성원을 참여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좋은 환경을 먼저 구축하는 것이다.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프로젝트에 몇 년씩 질질 끌며 돈을 퍼붓느니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중단시킨 직원에게 그만큼 보상을 해주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11 ]

-알라딘 eBook <두려움 없는 조직 : 심리적 안정감은 어떻게 조직의 학습,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가> (에이미 에드먼슨 지음, 최윤영 옮김) 중에서 - P98

다시 말해 리더가 적극적으로 나서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하지 않는 한 구성원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피하고자 도전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알라딘 eBook <두려움 없는 조직 : 심리적 안정감은 어떻게 조직의 학습,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가> (에이미 에드먼슨 지음, 최윤영 옮김) 중에서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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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민공회가 로베스피에르의 엄격한 권위에 따라 1793~1794년에 세운 자코뱅적 전통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P418

산악파는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철저한 민주적 공화국의 건설을 명확히 자각하여 중요한 3대 목표를 내세웠는데, 그 3대 목표란 조국의 방위와 혁명의 수호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이었다. - P418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이 저마다 소생산자인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자코뱅의 신념이었다.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기초를 인식하는 점에서만큼은 자코뱅의 판단은 정확하였다. - P421

자코뱅의 평등주의는 소유의 평등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사회적 토대를 세우기 위해 무산 시민을 없애고 소토지 생산자층을 형성하려는 평등주의였다. - P422

그러나 테르미도르파는 군주주의를 반대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도 반대하였다. 테르미도르파의 공화국은 자유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었으나 민주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세운 정책은 상퀼로트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물리치는 동시에 왕당파의 왕정복고도 거부하면서 부르주아적 규범 안에서 혁명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 P421

말을 바꾸면, 테르미도르파의 이상은 국왕 없는 입헌군주주의였다. 이 모순을 해결할 길을 제공한 것이 바로 보나파르티슴이었다. - P455

팡테옹 클럽에는 공화 3년 헌법을 비난하고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을 후회하고 1793년 헌법의 부활을 주장하는 좌익의 모든 세력이 모여들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끌고 또 총재정부가 가장 무서워한 그룹은 그라쿠스 바뵈프를 중심으로 하는 과격한 평등주의자들이었다.
바뵈프는 일찍이 1795년 11월에 기관지인 《인민 논단Le Tribun du peuple》에서 ‘프랑스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하에,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

 그것은 특권층과 민중, 부자와 빈자 사이의 전쟁이다. ……
민주주의란 넉넉히 소유한 자들이 넉넉지 못한 자들의 부족을 채워주는 의무이다. ……
거기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공동관리 제도를 세워 사유제를 폐지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재능을 자기 직업에서 발휘하게 하고, 거기서 나온 생산물을 공동으로 보관하게 하고, 분배를 공동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 P468

그 헌법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를 수립하여 지배를 강화한 것으로서 상퀼로트에 기반을 둔 1789년 헌법의 민주주의 정신을 짓밟고 거꾸로 1789년 혁명의 부르주아적 전통에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1789년의 혁명 이념은 공화주의가 아니라 입헌군주주의였다.
그런데 공화 3년에는 군주가 목이 잘려 없어진 지 이미 오래였다. 부득이 군주 없는 입헌군주주의 헌법으로 돌아간 것이 바로 공화 3년 헌법이었다.
공화 3년 헌법은 근본적으로 자가당착의 모순된 헌법이었다.
왕당파와 자코뱅파가 선거 때마다 진출하여 그 헌법을 위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동시에 헌법을 지키기 위하여 쿠데타가 연발한 이유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총재정부의 사회적 기반은 부르주아지와 함께 국유재산의 구입으로 토지 소유자가 된 농민이었는데, 이 농민층은 자기들의 새 소유에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는 앙시앵레짐의 부활을 극도로 두려워하였다.
요컨대 혁명으로 얻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할 때 농민은 앙시앵레짐을 타도한 부르주아지와 이익의 일치를 발견한 것이다.
농민층이 총재정부의 온건한 중도적 공화주의를 지지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총재정부가 바뵈프의 ‘평등주의자의 음모’의 위협을 받자 1796년 4월 "왕정의 재건이나 1793년 헌법의 재건을 선동하거나 …… 농지법의 이름 밑에 사유재산의 약탈과 분배를 선동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한다는 법령을 내린 것은 이들 총재정부의 본질에 완전히 적합한 것이었다. - P482

총재정부의 본질이 그러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익과 좌익의 공격 앞에 비틀거리면서 해마다 쿠데타 방식으로밖에는 헌법을 유지할 수 없었을 때, 이들을 지지하는 사회적 기반이었던 부르주아지와 농민은 초초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제 혁명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더 과격하지 않고 더 강력한 정부의 출현을 갈망하게 되었다. - P471

프레리알 쿠데타는 쿠데타라기보다는 일종의 의회 혁명으로서 전해에 일어난 플로레알 쿠데타의 우경화에 대한 보복이었다. - P472

헌법! 그것은 바로 당신들의 손에 의해 파기되지 않았소. 프뤽티도르 18일에, 그리고 플로레알 22일에 그리고 또 프레리알 30일에 헌법은 침범되었소. 헌법을 존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당신들에게 헌법을 말하는 바로 저 사람도 헌법이 파기되고 찢어져 없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 P471

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라고 한다. 지난 1792년에,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혁명은 결국 군인 독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10년간의 혁명은 이제 한 군사 모험가의 지배로 그 막을 내렸다. - P476

1799년 11월 9일 쿠데타가 일어났고, 12월 25일 나폴레옹을 통령으로 하는 통령정부가 창설되었다. - P474

나폴레옹 전쟁의 체험을 기초로 하여 《전쟁론Vom Kriege》을 저술한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였다. 권력을 유지하지 위하여 정치로 안 되면 전쟁을 일으킨다는 뜻이었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권력은 나의 명예에 유래하고 나의 명예는 나의 전승에 유래한다. 그러므로 나의 권력은 그 기반으로서의 새로운 명예와 새로운 전승을 계속하지 않으면 무너지리라. 정복이 나의 현재를 만들었고 정복만이 이 현재를 유지할 수 있다. - P488

그리하여 평화조약의 정식 조인은 6개월이 지난 뒤 1802년 3월 25일에 겨우 실현되었다. 이것이 아미앵 조약이다. 이 조약은 프랑스에 유리하였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의 왕자가 되었다. - P498

이 재산 문제를 종교 협약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나폴레옹의 첫째 동기였다. 둘째 동기는 현 체제를 부장하는 망명 귀족과 국내의 가톨릭 신도를 떼어놓으려는 것이었다. - P502

그는 스스로 역사상 프랑스인 최초의 군인 황제인 샤를마뉴Charlemagne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사당을 참배했을 뿐만 아니라 샤를마뉴처럼 가톨릭교회의 성별을 필요로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 P518

나폴레옹의 제위는 이중으로 성별되었다. 하나는 국민투표의 인민의 소리vox populi에 의하여 또 하나는 종교의식의 신의 소리vox Dei에 의하여. 피우스 7세가 나폴레옹에게 걸었던 기대는 하나밖에 실현된 것이 없었다. 그것은 혁명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다시 사용한 것이었다. 1806년 1월 1일부터 옛 역서가 다시 사용되었다. 이는 혁명의 종결을 알리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 P520

그 사회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봉건제도와 함께 봉건귀족의 권력 및 소유관계를 전복한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 제도와 함께 시민계급의 권력 및 소유 관계를 수립하였다. - P528

그러기에 나폴레옹의 역사적 필연성은 부르주아 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의 종결과 완성에 있었다. 브뤼메르 쿠데타 직후 "혁명은 그 당초의 원칙에 고정된다. 혁명은 끝났다"라고 선언한 총재정부의 선언은 그 쿠데타의 성격을 정확히 표현하였다. - P529

민법을 종교적 영향에서 해방시키고, 시민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혁명의 원리를 방어하고, 신분의 세습을 금지하고 상속과 소유에 관한 혁명적 입법의 일반적 원리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민법전은 가족 관계에서 가장의 우월적 지위와 여자의 종속적 지위를 규정하여 보나파르티슴의 권위주의적 색체를 반영하였다. - P532

요컨대 혁명 입법에 비하면 반동적이고 앙시앵레짐의 법률에 비하면 혁명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유럽의 어느 나라 민법보다도 가장 진보적이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가는 곳마다 민법이 미친 혁명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민법전은 근대 세계의 모든 나라에 프랑스 혁명의 사회적·정치적 이념을 전파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민법전은 로마법과 마찬가지로 가히 보편적·세계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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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위치한 안전지대 밖에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볼 때 종종 까먹곤 하는 이 질문을 떠올려보기를 권한다.
이런 총체적 혼란의 시기가 시작을 도모할 수 있는 큰 기회이다. - P23

황금조차 나이를 먹기 마련이다. 뉴리치는 은퇴 후로 삶을 집행 유예하는 걸 그만두고, 뉴리치만의 화폐인 시간과 기동성을 이용해 현시점에서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기술이자 과학이다. - P29

40년 동안 일한 후 은퇴해서 보상 받는 인생 계획 대신, 미리 이 보상을 맛보도록 미니 은퇴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 P38

셋째, 이 책은 당신의 ‘꿈의 직업’을 찾는 데 필요한 책이 아니다. 나는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완벽한 일자리란 가장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한한 성취감을 주는 일자리를 절대로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성취감을 목표로 하지 않겠다. 이 책의 목표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도 수입은 저절로 생기게 하는 것이다. - P41

협상 타결deal making이란 단어에서 영문자 DEAL은 또한 뉴리치의 멤버가 되는 과정을 첫 글자만 따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 P42

D단계 정의Definition의 첫 글자인 D 단계에서는 기존의 잘못된 상식들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과 목표를 알려 줄 것이다. - P43

E단계 제거Elimination의 첫 글자인 E 단계에서는 시간 관리에 관한 케케묵은 기존 관념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것이다. - P44

A단계 자동화Automation의 첫 글자인 A 단계에서는 환차익 거래, 아웃소싱, 무결정nondecision 규칙을 이용하여 현금을 자동적으로 창출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 P45

L단계 해방Liberation의 첫 글자인 L 단계는 세계화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기동성 선언문이라 할 수 있겠다. - P46

그러므로 직장인은 각 단계를 기업가적 마인드의 DEAL(정의-제거-자동화-해방) 순으로 읽어 나가되, 실행에 옮길 때는 DELA(정의-제거-해방-자동화)의 순서로 해야 한다. - P47

DEAL 과정은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J. B. Say가 1800년에 이 단어entrepreneur를 맨 처음 만들었을 때처럼 당신을 순수한 의미의 기업가가 되도록 변화시킬 것이다. 바로 경제적 자원을 생산성이 낮은 영역에서 생산성이 높은 영역으로 이전시키는 사람 말이다. - P48

일을 위한 일이 되지 않도록 하며,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일만 한다. (‘최소 유효 작업량’) - P56

회복기와 모험기(미니 은퇴기)를 인생 전반에 걸쳐 고르게 배치한다. 활동을 그만두는 게 목표가 아니란 걸, 당신을 흥분시키는 일을 하는 게 목표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56

관리자도 직원도 아닌 소유자가 된다. 기차를 소유하여 다른 사람이 정시에 운행하도록 한다. - P57

더 질 좋은 제품을 갖되 잡다한 것은 덜 소유한다. 물건을 사는 것 혹은 사려고 마음먹는 것과 같은 대부분의 물질적 욕망은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보내는 데 대한 정당화 말이다. - P58

생각은 크게 하되, 돈은 매일매일 들어오도록 한다. 현금이 들어오는 게 먼저고, 한탕은 나중이다. - P59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갖되, 일을 위한 일로 되돌아가지 않고 꿈을 추구할 자유와 결단력을 갖는다. - P59

유예자: 자신을 위해 일한다.

뉴리치 :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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