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라는 말이 ‘커피의 위세’를 실감나게 한다.
사실 커피의 교역량은 구리, 알루미늄, 밀, 설탕, 면 등보다 적다. 미국의 작가 마크 펜더그라스트Mark Pendergrast가 1999년 펴낸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Uncommon Grounds』에서 "커피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원자재로서는 지구에서 오일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가치가 있다"라고 한 것이 와전된 듯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라고 말하면서 커피에 대한 애정과 놀라움을 표현하는데, 이제는 바로잡는 게 좋겠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25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 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경쟁을 벌였다. 아프리카(에티오피아)냐 아라비아반도(예멘)냐, 그리스도 국가(에티오피아)냐, 이슬람 국가(예멘)냐의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기도 했다. 공방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절충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이 먼 옛날에는 같은 나라였다는 둥 언제 어떤 이야기들이 튀어나올지……. - <커피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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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의 기원이 아랍인들이 주장하듯, 인류사에서 커피를 처음 경작한 자신들의 땅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고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 고원에서는 재래종 커피나무가 속속 발견된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원종native variety이 있어야 설득력을 지닌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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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는 약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MenelikⅠ가 초대 황제가 되었다는 건국신화를 가진 그리스도 국가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염소를 잡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것은 16세기 이슬람교도에게 14년, 20세기 이탈리아에 5년뿐이다. 앞서 6세기쯤에는 당시 아비시니아Abyssinia(현재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남부 지역을 공격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되었을 것이란 게 에티오피아의 시각에서 본 커피의 역사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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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 자체에 대한 첫 기록은 안토니 파우스투스 나이론보다 770년 이상 앞선 기원후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Rhazes가 남겼다. 그는 커피를 ‘분첨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표현했다. 이어 1000년쯤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인 이븐 시나Ibn Sina는 커피나무와 생두를 ‘분Bunn’, 그 음료를 ‘분첨’이라고 구별해 적으면서 약리 효과도 기술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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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오래된 물증은 화석인데, 에티오피아의 하다르Hadar 계곡에서 발견된 320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뼈 화석이 그것이다. 발굴단이 당시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를 듣고 있다가 발견한 것이 인연이 되어 ‘루시Lucy’라는 이름을 얻은 이 화석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현재까지 인류의 기원으로 대접받는다. 루시가 발굴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으로 알려진 카파가 있다. 오늘날에는 짐마Djimmah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두 곳은 인접해 있을 뿐 같은 곳이 아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43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구약성서의 구절을 추적해도 커피나무의 고향이 예멘이라는 주장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구약성서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일로 내려오는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태초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설령 그곳이 자신들의 텃밭인 아라비아반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도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싶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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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을 훌쩍 넘는 긴 세월 동안 커피의 시원지는 예멘으로 알려졌다. 인류의 역사에서 커피나무를 처음으로 경작한 나라가 예멘이며, 커피나무가 이곳에서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거쳐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55

이런 점에서 칼디의 정체성을 따지는 것은 곧 예멘과 에티오피아의 기원은 물론 고대 종교들의 뿌리와 상호 연관성과 변화상을 성찰하는 멋진 실마리가 된다. 유대교와 다신교의 만남이 에티오피아를 잉태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신교는 구약성서에 눈을 떠 훗날 이슬람교를 내면화할 수 있는 경험을 한다. 이스라엘·예멘·에티오피아의 역사가 커피에서 만나 한데 어우러지고, 유대교·다신교·기독교·이슬람교가 구약성서를 토대로 교감을 나눈다는 사실은 커피 애호가로서는 가슴 벅찬 일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60

시바의 여왕이 이끈 아랍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인 셈어족Semitic Languages을 사용했다. 셈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 중 장남이다. 아랍인은 셈의 후손으로서 셈어족를 구사하는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셈족의 일부가 기원전 3500년쯤 북상해 나일강 인근에 살던 함족Hamite(함은 노아의 아들로 아프리카인의 조상이다)과 어우러지면서 이집트인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쯤 아라비아사막을 횡단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 셈족의 한 분파가 바빌로니아인의 조상이 되었다. 또 기원전 2500년쯤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란 고원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 정착한 셈족은 아무르인, 레바논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 무리들은 페니키아인이 되었다. 셈족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기원전 1400년쯤에는 시리아 남부 지역에 거처를 정해 아람인이 되었으며,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분파는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65

솔로몬 왕은 유대교를, 시바의 여왕은 다신교를 숭상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셈족이었다. 셈족끼리 낳은 자식은 마땅히 셈족이므로 이스라엘과 시바(예멘), 에티오피아는 같은 핏줄인 것이다. 메넬리크 1세가 황제에 오른 과정을 보면, 에티오피아의 초대 종교는 유대교였다. 22세의 청년으로 성장한 메넬리크 1세가 예루살렘을 찾아가 히브리 율법과 유대신앙을 공부하고 유대교식 세례를 받았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당시 메넬리크 1세가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솔로몬 왕의 뜻을 정중히 거절하고 에티오피아의 악숨Aksum으로 돌아와 솔로몬 혈통의 왕국을 이어갔다고 주장한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68

‘커피coffee’와 이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cafe’는 어원이 같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지명인 ‘카파Kaffa’에서 따왔다는 설, 기운을 북돋우는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 아랍어로 힘을 뜻하는 ‘카와kahw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리만족하는 통에 아랍어로 포도주wine를 의미하는 ‘카와qahwa’로 불리다가 발음이 변했다는 주장도 있다. 17세기 초 커피를 처음 접한 유럽인들은 ‘아라비아의 와인The Wine of Arabia’이라며 ‘카와’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650년쯤 영국에 전해졌을 때 헨리 블런트 경Sir Henry Blount이 ‘커피’라고 칭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카페는 커피를 즐기는 장소로 의미를 굳혀갔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79

영국 화가 존 프레더릭 루이스John Frederick Lewis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오스만 사람들의 숙소에서 본 모습을 목판의 유채화로 남겼다. <커피를 나르는 여인The Coffee Bearer>(1857년).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0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나일강 루트를 통해 이집트로, 또 하나는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전해졌다.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는 『의학 전범』에 "커피가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고 썼다. 이는 커피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기록이다. 그 당시 이미 예멘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나 이라크까지 커피 음용 문화가 전해졌다는 방증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4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중심으로 이슬람권에 커피를 널리 퍼뜨린 일등공신은 신비주의 수피교Sufism 수도승들이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카바 신전을 관장하던 수피들은 8~16세기에 걸쳐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동쪽으로 이라크와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더 멀리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4

이슬람 시아Shiah파의 한 분파인 수피Sufi는 적극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신을 만나려는 독특한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격렬하게 빙글빙글 도는 ‘수피 댄스sufi whirling’를 하면서 무아경에 빠져들었다. 수피는 ‘양의 털’을 뜻하는데, 초기 수도승들이 양모를 입고 금욕과 청빈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면적 각성을 강조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성’보다 ‘체험’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5

커피 역사에서 16세기 오스만제국이 등장하고 17세기 초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통해 커피가 유럽에 상륙한 이후의 사연은 많은 기록물 덕분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91

1600년대 들어 커피는 거의 1,000년 동안 갇혀 있던 아라비아반도를 벗어난다. 그 주역은 17세기 이슬람 학자이자 수피로 추앙받는 인도의 바바 부단Baba Budan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순례하고 예멘을 거쳐 귀국하면서 커피 씨앗 7개를 몸에 숨겨갔다. 바바 부단은 커피 씨앗을 카르나타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찬드라기리 언덕Chandragiri Hill에 심었다. 그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되었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를 대량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98

네덜란드는 1616년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나무를 빼돌려 인도와 실론Ceylon(현재의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 대대적으로 재배한다. 여러 나라가 커피 재배에 혈안이 된 건 바야흐로 유럽 시장이 열리면서 커피가 큰 부를 안겨주는 아이템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99

오스만제국은 16세기 초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커피를 들여왔다. 커피를 가늘게 갈아 체즈베에 세 차례 끓어오르게 해 마시는 특이한 방식은 ‘터키시 커피’로 불리며 독특한 음용법으로 뿌리를 내렸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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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20는 분명히 낭만주의 작가입니다. 사실 낭만주의는 원래 문학 용어이기 때문에 회화 분야에서는 좀처럼 정의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몇 가지 키워드로 회화에서의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그 특징을 들춰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동시대성’입니다. 성경, 신화, 역사 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실을 그리려는 것이 낭만주의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7

‘과거의 위인보다는 지금의 자신이 더 소중하다’라는 개인주의도 들어 있지요. 그와 관련해서 지식이나 논리보다는 감각이나 감정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낭만주의 문학에는 연애 지상주의적인 작품이 많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8

그에 비해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낭만주의 화가들은 연애 지상주의예요. 낭만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그다음 키워드는 약간 까다롭기는 하지만 ‘반체제적인 민족주의’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8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21라는 보들레르22의 시입니다. 보들레르는 낭만주의라기보다 상징주의 시인이지만, 들라크루아나 이어서 나오는 쿠르베를 힘껏 응원했던 사람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9

낭만주의 사람들은 대개 부르주아 출신이에요. 들라크루아도 그렇고, 보들레르도 그렇고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20

들라크루아는 17세 때 피에르나르시스 게랭26이라는 유명한 화가의 제자로 입문해서 선배인 테오도르 제리코27를 만납니다. 회화에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제리코에게, 들라크루아는 무척 심취했죠. 그리고 제리코를 따라 22세 때 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단테28의 작은 배〉였습니다. 이 작품은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라는 유명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27

사실 낭만주의자에게 그리스 독립 전쟁은 일종의 ‘성전’이었습니다. 낭만주의에서 존경하는 사람 가운데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31이 있는데, 이 사람은 "우리 서양 문화의 원천인 그리스를 구하라"라고 말하며 의용병으로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33

이렇듯 그리스 독립 전쟁은 낭만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신고전주의의 중진들은 〈단테의 작은 배〉는 허용할 수 있지만 〈키오스 섬의 학살〉은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죠.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34

적어도 19세기 초반까지의 서양 회화계에서는 ‘현재’를 그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표현이 너무 잔혹했어요. 앵그르와 달리 약동감이 있었거든요. 색채도 강렬했고요. 앵그르처럼 들라크루아도 처음부터 비판을 받으니 그다음 작품도 계속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34

빈곤한 모습이든, 추한 모습이든, 에로틱한 모습이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입니다. ‘렛잇고Let it go’40라고 할 수 있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53

낭만주의처럼 큰 사건을 극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노동자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그리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62

쿠르베는 만국박람회장 옆에 작은 방을 짓고 직접 전람회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개인전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71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수록된 시.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가 여학교를 만든 레스보스 섬은 여성 동성애의 상징이다. ‘레즈비언’은 원래 ‘레스보스 사람’을 의미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78

〈프루동과 그의 아이들, 1853년〉이라는 작품인데요, 프루동47은 무정부주의(아나키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상가입니다. 쿠르베는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에 이끌려 정부 따위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87

1871년에 일어난 파리 코뮌의 폭동48에도 참가했으니까요. 이것이 당시의 신문인데, 쿠르베가 무언가를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뭘까요? 파리에 방돔 광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현재 일류 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기둥이 서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전승 기념비인데, 쿠르베는 "그런 제국주의의 상징은 무너뜨려버려라!"라고 이전부터 주장했지요. 그리고 파리 코뮌 폭동 때 정말로 그 기둥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90

1871년에 탄생한 노동자 계급의 첫 사회주의 정권(3.18~5.28의 72일간). 프로이센군과 정부군에 의해 ‘피의 1주일’이라 불리는 대진압을 당하여 붕괴되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90

앵그르의 신고전주의부터 시작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와 쿠르베의 사실주의를 거쳐 마네의 인상파로 이어지는 것이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커다란 흐름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97

앵그르의 고전주의는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미를 그린 거예요.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도 고전주의와는 또 다른 부분에서 개인적인 이상을 좇는 것이지요. 하지만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이상을 좇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만 그리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01

서양 회화의 전통에서는 역사화나 종교화가 격이 높고, 동시대의 삶을 그리는 풍속화는 격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자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나 쿠르베의 사실주의처럼 동시대의 현실을 그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마네의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풍속을 그렸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1

근대 도시의 풍속을 재빠른 터치로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네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네의 신선함이 일약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2

라파엘로의 제자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8가 스승의 작품을 판화로 찍은 그림입니다. 라파엘로의 원작은 분실되었지만 판화는 남아 있습니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5

신화는 아니지만,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라는 꽤 유명한 작품입니다. 마네는 이런 고전을 답습해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그렸지만, 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네는 단순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고전을 어떻게든 현대에 되살리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7

서양 회화의 특징은 경계선이 없는 매끄러운 그러데이션과 원근법을 구사해서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회화의 특징은 확실한 윤곽과 평면성입니다. 서양 회화와 일본 회화는 방향성이 정반대인 셈이지요. 마네는 일본 미술의 영향으로 서양 회화의 기본인 원근법과 음영법을 부정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인상파를 앞장서서 이끌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의 색채에서는 스페인 회화의 영향도 느껴지지 않나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3

특히 검은색이 스페인다운 느낌을 자아내는데, 마네는 검은색을 자주 사용하는 작가입니다. 이 점이 인상파와는 크게 다른 부분이지요. 인상파는 반대로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4

그 바티뇰파의 화가들이 살롱에 작품을 출품해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전람회를 개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지요. 그래서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의 미술가들이 ‘공동 출자 회사’를 만들어서 1874년에 제1회 전람회를 개최했습니다. 그곳에 모네가 출품한 작품이 〈인상: 해돋이〉였고, 그 제목을 따서 그들을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7

마네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불리는 만년의 대작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마네가 줄곧 그려왔던 동시대 파리의 풍속을 우키요에 풍의 대담한 구도와 독자적인 재빠른 터치로 담아낸 작품인데, 이미 사진을 초월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8

원근법적인 사실성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화면을 구성한 것입니다. 이 점이야말로 마네의 새로운 면이고, 근대 회화로 향하는 위대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9

모네는 아카데미 쉬스17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피사로 등과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샤를 글레르18의 미술학교에서 르누아르, 드가, 시슬레와도 만났습니다. 이들이 모두 함께 술을 마시는 중에 "마네 선배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네의 아틀리에가 위치한 바티뇰 거리의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 바티뇰파라는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이 후에 인상파가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76

모네는 필촉분할(색채분할)이라는 기법을 확립했습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르누아르와 함께 파리 근교의 ‘라 그르누예르’라는 유원지에 가서 그린 작품입니다. 이미 필촉분할 기법을 엿볼 수 있지요. 여기서 필촉이란 붓놀림, 즉 붓의 터치를 뜻합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78

이전의 서양 회화는 터치를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매끄러운 음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터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색채 블록을 연속성 없이 늘어놓는 필촉분할은 서양 회화의 전통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79

필촉분할의 또 한 가지 혁명적인 요소는 물감을 섞지 않고 튜브에서 나온 그대로의 색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물감을 섞어서 색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뇌 속에서 색이 섞이는 ‘시각 혼합’을 이용한 것이지요. 오늘날의 4색 컬러 인쇄19와 같은 원리입니다. 물감을 섞지 않는 이유는 밝기 때문입니다. 물감은 섞으면 섞을수록 색이 탁해지고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인상파는 외부의 밝은 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옮겨가는 순간적인 빛의 변화를 포착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밝은 빛과 색채를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 필촉분할이라는 방법에 도달하게 된 것이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80

이전의 화가는 집 밖에서 스케치하는 경우는 있어도, 유화로 마무리하는 작업만큼은 아틀리에 안에서만 했거든요. 그런 점에서도 인상파는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런 혁신적인 바티뇰파의 화가들이 낡은 가치관에 얽매여 있는 살롱에 출품해봤자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전람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기념할 만한 제1회 전람회에 모네가 출품한 작품이 바로 〈인상: 해돋이〉입니다. 제목을 얼른 정하라는 재촉을 받은 모네가 "그럼 〈인상〉으로 하지요" 하는 가벼운 느낌으로 붙인 제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본 비평가가 "제목 그대로 인상밖에 전해지지 않는 졸작"이라는 혹평을 했고, 그때부터 바티뇰파의 화가들은 ‘인상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81

인상파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외부의 빛 아래에서 그리는 것이었는데, 드가는 인공조명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눈부심 병’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에 흥미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풍경화를 좀처럼 그리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인물화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드가는 개성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상파에 가세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현저해져서 인물의 개성을 의식적으로 없애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즉 드가는 인물의 개성이 아니라 익명성을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익명성은 ‘등을 좋아하는’ 드가의 또 한 가지 변태 포인트로 이어지므로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28

모네가 빛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하려고 수행을 거듭했다면, 드가는 인체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데 비정상적인 집념을 불태웠습니다. 게다가 방금 말한 ‘흐트러진 옷’처럼 파탄이 생겨나는 순간을 스냅 사진처럼 포착하려고 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28

그런 이색적인 인상파 드가가 독자적인 방향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대상이 바로 ‘무용수’였습니다. 인공조명 아래에서 이름 없는 익명의 무용수들이 옷을 흐트러뜨리면서 순간적인 움직임을 거듭하지요. 이는 실로 드가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그림 소재지요. 게다가 발레는 드가 시대에 급성장한 새로운 예술이었습니다. 발레에는 이전에 없던 근대적인 에로틱함이 들어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29

이 그림이 에로틱한 그림이 아니라, 사회파 저널리즘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무용수들의 급여가 너무 싸서 부자의 애인이 되지 않으면 생계를 이을 수 없다는 착취 사회의 현실을 폭로했다는 주장이지요. 드가는 사실주의인 쿠르베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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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를 중시하고 안정된 구도로 이지적으로 그리는’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와 달리,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는 ‘색채를 중시하고 역동적인 구도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두 방향성의 대립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사이가 나빴던 원인도 이와 비슷합니다. 역시 서로 자신에게 없는 것, 자신과 정반대의 것을 배제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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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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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낯선 작가, 이상욱의 소설집을 처음 접합니다. 교유서가에서 가제본으로 받아 읽는 것 입니다.  표제작인 <기린의 심장> 포함하여 9편의 중단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펼쳐 보는데, 첫 작품 <어느 시인의 죽음> 부터 몰입을 하게 됩니다.  


식인외계인들과 정치적으로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은 지구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낙오된 부류의 인간 중 희생자를 선정하여 식재료로 바칩니다. 그 식재료인 인간을 조달하는 일을 처음 맡은 (이혼남) 대수는 등록금을 필요로 하는 외동딸을 위해 한 고등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용천을 추천(?)받게 됩니다. 처음 맡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가운데, 딸과 동갑내기인 용천의 시를 읽어보면서 결국 (먼저 불치병으로 죽은 아내를 따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자신을 용천대신 식재료로 희생합니다. 여기까지는 SF 호러물 같은 소재를 담담하게 그립니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 반전이 있습니다. #3이라고 하는 치명적 바이러스를 스스로 주입하고 식인외계인들을 멸절시키는 영웅이 될뻔한(?) 대수는 몰랐습니다. 그건 외계인들이 그들의 식재료에게 어떤 고통을 가하는 지와 그걸 못느끼게 하려는 일종의 마취제였다는 것을...


두번째 작품 <라하이나 눈(Lahaina Noon)>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습니다. 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유일한 탈출구로 달리기를 시작한 주인공 나는 서로 다른 육체를 동기화 하는 기술이 비즈니스가 되는 세상에서 돈을 벌기위해 베타가 됩니다. 돈을 지불하는 알파와는 사이버자본주의사회에서 마치 주종관계 같습니다. 알파가 먹고 즐기는데 축적되는 칼로리를 없애기 위해 베타는 죽어라 달립니다.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같은 베타였던 성재라는 동생이 결국 과도한 베타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로 죽고, 그의 누이였던 성주와 결혼하게 됩니다. 왠지 불길할 예감이 결국 적중합니다. 불치병을 앓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에 대한 상실감에 희망을 잃고 더 이상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달리지 않습니다. 두달만에 체중이 배로 늡니다. 유골함에 든 성주를 데리고 그림자 없는 섬으로 떠나기로 하지만, 공항에서는 그 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실랑이 끝에 유골함을 깨지고 134kg 거구의 나는 넘어지고 얼굴에 유골이 덕지덕지 뭍습니다.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인적이 드문 길 위에 눕습니다. '조금 쉬어야겠다. 힘든 하루였으니까.' 그리고 인천공항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런데 역시 마지막에 반전이 있습니다. 그의 고객으로 그의 몸을 축냈던 알파와 그 두 아들의 '탈출한 돼지(나)' 시체에 대한 대화 장면은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교체되는 베타의 삶을 민낯으로 증언하는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기린의 심장>은 마치 중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계열의 소설 같습니다. 주인공인 작가 나가 실랑이 끝에 한 파출소에서 밤을 보내게 되면서 경찰관 K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액자소설(소설속 소설) 양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엄마를 위해 기린의 심장이 필요하다는 소녀, 그 소녀를 없애려는 동물원의 관리인 두 노인, 그리고 19번째 시험자인 젊은 경찰 K 가 주요등장인물의 다 입니다. 아, 물론 기린도 있군요. K는 시를 노래하고, 소녀와 장기를 두면서 가까와 집니다. 물론 그 이전의 18명의 마음이 지워진 시험자들처럼 함정에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하지만요. 비가 많이 오고 이번엔 K가 소녀를 구합니다. 관리인의 소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듣지 않고. 아 참 마지막 대목에 무명의 필 레이먼드라는 60년대 흑인 록 가수가 등장하는군요. 왠지 관리인으로 부터 동물원을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동물원 주인 같습니다. K는 소녀에게 비몽사몽간에 열두살때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헤어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K는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기린과 동물원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얼룩진 욕망과 좌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린(작은 관리자?)은 마침내 K의 총에 쓰러지고 농구공만한 '기린의 심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의 주목도 끌지 못합니다.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동물원이 이 세상 어딘가에 진짜로 있을 것만 같았다.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과 오래된 오두막이 있고, 마음이 지워진 이들이 작은 언덕에 묻힌힌다는, 그 동물원 말이다.'(119p)


낯익은 동네 경상북도 문경에 살던 서른넷 공시생이 예지력을 갖는다. 그것도 원전 차폐막에서 흘러나온 방사선을 맞고. 그럼 <마왕의 변> 환경소설인가? 싶었는데, 환타지 소설이네요. 그의 기묘한 꿈을 기록한 예언서 속의 주인공 '마왕'과 용사, 그리고 용사의 수행원 '철만'과 '가인'까지 등장인물들만 보면 마치 게임속 캐릭터들 같습니다. 

"단순히 눈을 떴다고 마왕이 되는 게 아니야. 스스로 자각을 갖고 악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마왕이 되지. 그런데 악이라는 건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거든. 물론 선도 마찬가지지. 차이가 있다면, '선'은 의식적이고 가역적이고, '악'은 충동적이고 비가역적이라는 점이야. 충동적이고 비가역적인 악행. 그게 뭐겠어?"(135p)

그런데, 역시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의 전개가 펼쳐집니다. 살인본능을 누르면서 강원도 시골에 부하들과 같이 농사를 짓고 책을 읽는 '마왕'의 모습이 오히려 '용사'와 그의 일행들 보다 더 인간적인 것은 왜일까요?

마지못해 용사 일행과 대적하던 마왕이 시공간의 문을 엽니다. 예전 마왕의 악행을 보여주다, 갑자기 '용사(심지)'의 과거를 보여줍니다. 거기서 소환되는 상규 삼촌과 아버지의 죽음.

"상규 삼촌과 네 아버지를 죽인 건 누구였지?" 마왕이 물었다.
"사람보다 돈을 아까워하던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 심지가 대답했다. (146p)

마왕은 심지에게 대적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자고 하나, 심지의 일행(가인)의 설득에 결국 마왕을 벤다. 

그것은 충동적이고 비가역적인 죽음이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심장에서 작은 얼음 조각이 깨어났다. (150p)

반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왕을 죽임으로서 심지가 마왕이 됩니다. 그리고 예언이 성취됩니다. 아이러니 같은 결말 입니다. 


처음 뱀이 된 건 열두 살 때였습니다.(155p)

<허물>의 화자는 죽음을 암시하는 유언을 남기면서 뱀으로 변신했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릴적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시골 외할머니댁에 맡겨졌을때의 동심속 이야기에서 이혼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와서 대학진학과 그와 비슷한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아들을 얻을 때까지 이야기는 평이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죽습니다. 그 아들의 친구들도 영안소에서 마주합니다. 7년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깊디 깊은 슬픔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내와 그 뒤를 따르려는 남자. 마침내 그도 아내를 따라 허물(육신)을 벗고 훌훌 털고 가려합니다.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따라 뱀의 길을 가려 합니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에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저도 아내를 따라 이 낡은 육신을 버리려 합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제 걱정은 마십시오.(176p)


전반부 네 작품에 비해 <허물>을 포함하여 후반부 다섯 편의 이야기는 그 결이 좀 달라 집니다. 유산과 이혼, 낙태를 무심히 다룬 <하얀 바다>, 아내의 죽음과 소원한 부녀관계속 고독이 드리운 <경계>, 왼손의 상실과 의도치 않은 죽음과 그 복수를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그린 <연극의 시작>, 마지막으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상실이 짙게 드리운 <25분>까지 읽다보면 그 건조한 문체가 상처같은 앙금처럼 남습니다. 

환타지와 리얼리즘을 넘나들면서 자본주의와 인간의 삶을 아이러니와 비판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반전의 작가, 이상욱님의 다음 이야기들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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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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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주인공은 마이너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고 극단적인 경험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죽음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렇지만 장르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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