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우리가 주어진 텍스트에서 일견 모순적 언명이나 취지를 마주쳤을 때 고려해볼 만한 대표적인 쟁점들이다. 그런데 모순적 어법 아니고는 도저히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진실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논리적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은, 일견 모순적 언어 혹은 시적 언어를 통해서 비로소 제대로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을 생각해보자. 필멸의 존재로서 인간은,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이고 죽어가는 것이 곧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 살았다.
는 것은 오늘 하루 죽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게 곧 죽어가는 것이고, 죽어가는 게 곧 살아가는 것이기에, 인간의삶을 표현함에 있어 살아간다는 말과 죽어간다는 말이공존할 수밖에 없다. - P49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소통과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소통과 해석의 질은 곧 정치의 질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이 거칠어진 나머지, 구호와 폭력만이 만연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곧 정치적 타락의 지표가 된다. 그것은 공자가 개탄했던 당대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논어』 속의 공자는 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다. - P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의 죄를 자주 드러내지 마라.
자신의 몸과 입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남의 죄를 자꾸 들추는 자가 있다면 곧 상대방은 ‘당신이나 잘하라’고 대꾸할 것이다 - 사분율 -

-알라딘 eBook <마음을 맑게 하는 부처님 말씀 108> (선묵혜자 엮음) 중에서 - P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희가 냉장고에서 오늘 웰시코기의 보호자가 선물한 오렌지 주스 두 병을 꺼냈다. 산책을 좋아하는 녀석인데 일주일 전에 산책하다가 깨진 병 조각에 찔려 발바닥이 찢겼다.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도착해 발을 봉합하고 붕대로 싸맨 그 녀석에게는 안타깝게도 산책 금지령이 내려졌다.

"인간들이 못됐어요. 바닥에 유리병을 왜 버려요? 그런 거 법으로 막을 수 없나."

속상함에 투덜거리는 보호자에게 복희는 웃으며 말했다.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요. 인간도 맨발로 다니면 돼요. 그럼 거리는 실내처럼 깨끗해질걸요."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238

하지만 콜리는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도리어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대화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보경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던 사람이 오래도록 비워둔 자리를 뜻하지 않은 것이 채웠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의 해석이 옳든, 텍스트의 의미는 그 텍스트의 저자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떤 텍스트가 저자의 입과 손을 떠나 공적인 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의미는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저자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침묵이 다른 것에 대한 발화로 해석되기도 하고, 다른 것에 대한 발화가 어떤 것에 대한 침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엄혹한 나치즘의 시대를 살았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한적이 있다. "나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세상에 널린 끔찍한 짓에 대한 침묵이므로 거의 죄악이라면/그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후손들에게」 중에서)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논어』에서 공자孔子(기원전 551~479)는 말하거나 혹은 침묵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나아가 명시적으로 자신은 특정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자함을 표명한다.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子欲無言, 『논어』 ‘양화陽貨 편)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논어』 텍스트 전체는 발화한 것, 침묵한 것, 침묵하겠다고 발화한 것, 이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를 염두에 두고, 독해자는 의도된 침묵마저 읽어낼 자세를 가지고 『논어』를 탐사해 나가야 한다. - P29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고자 한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은 무엇을 좇는단 말입니까?" 선생님께서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한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子日, 子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 子日,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