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뻔히 보이는데 피할 수 없는 펀치도 있는 법이다. 인간이란 판단력이 없어서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없어서 재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래서 또 책의 프롤로그를 쓰기 시작한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

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 온갖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며 ‘엄선한 양서’ 읽기를 강요하는 건 ‘읽기’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꾸만 책을 신비화하며 공포 마케팅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 게 되지도 않는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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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주 좋아하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아주 개성 강한 ‘헤비 리더heavy reader’가 주인공인 만화입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독서중독자들은 워낙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다보니, 책을 고르는 데 아주 뚜렷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있어요. 이들은 공통적으로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72

자꾸 책을 읽으면서 자기 취향을 깨닫게 된다면 자기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예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73

베스트 드레서는 단골집이 있다고 해요. 그 단골집은 일종의 편집숍이지요. 자신의 취향과 주인의 취향이 딱 맞아떨어지는 편집숍을 알아두고 그 집에서 옷을 사면 실패할 확률은 정말 낮습니다. 서점은 일종의 편집숍입니다. 서점에 전시되어 있는 책은 세상의 모든 책이 아니에요. 세상의 모든 책은 국회도서관 같은 데 있죠. 니은서점도 편집숍입니다. 니은서점은 북텐더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가게니까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75

니은서점에 오셨는데, ‘어랏, 여기 내 취향이네’ 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여러분은 니은서점의 친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베스트 드레서에게 잘 어울리는 편집숍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독서계의 베스트 드레서가 되려면 좋은 편집 서점이 도움이 될 거예요. 니은서점이 여러분에게 그런 서점이면 참 좋겠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76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던 20퍼센트에 속한 당신이라는 사람, 서점을 방문한 사람 중에서 책을 구입한 20퍼센트에 속한 당신이라는 사람, 책을 구입한 사람 중에서도 통신비보다 더 많은 돈을 책 구입에 지출한 20퍼센트에 속한 당신이라는 사람, 그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마니아’입니다. 두 집 건너 한 집이 카페인 대한민국에서 마니아 업종인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과, 독자이자 서점 방문객이자 책을 구매하는 마니아는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를 알아봅니다. 우리는 특별하니까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82

니은서점의 단골손님을 분류해보자면, 첫번째로 멀리서 오시는 손님과 동네손님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서점에서 가장 먼 거리에 사시는 단골손님은 전남 목포 분이었는데, 제주도 애월에서 오신 분에 의해 이 기록이 깨졌습니다. 이젠 서귀포에서 오실 손님을 기다립니다.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지구로 범위를 넓히면, 가장 먼 곳에서 오시는 단골손님은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이 손님은 서울에 자주 오시는데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 빈 배낭을 메고 나타나세요. 그리고 책을 ‘한 배낭’ 사십니다. 오실 때는 빈 배낭, 하지만 가실 때는 꽉 찬 배낭의 주인공이 혹시 작가나 연구자가 아닐까 예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이분은 소프라노 가수예요. 주넬 권Junelle Kwon이라는 이름을 유튜브에서 검색해보시면 니은서점 단골손님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83

거울을 들어 저를 비춰봤어요. 그리고 지난 세월을 돌이켜봤죠. 아, 분명 저 역시 예전만큼은 책을 읽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인터넷이 없었죠. 그런데 제가 20대에 접어들 무렵 인터넷이 생겼고, 급기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제 삶도 아주 변했어요. 남들만 그런 게 아니라, 저조차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시간보다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요. 예전에는 장시간 여행을 하게 되면 비행기를 타기 전에 반드시 책을 챙겼는데, 요즘은 비행기에서 볼 넷플릭스 동영상을 미리 다운 받는 것으로 여행 준비가 바뀌었죠. 책을 읽겠다고 책상에 앉았는데, 불과 몇십 분 후 내가 왜 책상에 앉았는지 완전히 잊은 채 인터넷 서핑을 하는 제 모습은 아마 평균적인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책은 집중해야 거기에 담긴 내용을 소화해낼 수 있는 미디어입니다. 반면 인터넷은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키는 미디어입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88

분명 인터넷에 접속한 것은 제 의지이고, 책을 읽다가 모르는 정보가 있어서 처음에는 위키피디아에 그 항목을 검색하기 시작한 것도 저의 자유로운 의지로 인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서퍼가 된 저는 점점 알고리즘의 물결을 따라 움직입니다. 저는 세르반테스의 이력이 궁금해서 자유의지에 따라 위키피디아에 세르반테스를 검색했고, 그 후에 페이스북에 들어갔을 뿐인데요. 페이스북은 스페인에 가면 묵을 수 있는 호텔 정보를 제게 제공하기 시작했고, 그 호텔 가격을 체크하고 다시 구글로 돌아왔더니 비행기 회사 광고가 저를 유혹하고, 너무나 좋은 할인 이벤트가 눈에 띄어서 비행기 표를 검색했더니, 여행에 필요한 트렁크 광고가 보여서 트렁크를 검색하다가, 최종적으로 속옷을 주문하고 결제한 후 저는 완전히 망각합니다. 제가 읽던 책의 내용은 기억에서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89

그런 채로 디지털 스캐닝의 태도를 갖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독서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을 수가 없어요. 왜 책은 인터넷 기사처럼 결론이 빨리 등장하지 않는 건가요! 자꾸 화가 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냐고! 왜 속시원하게 말하지 않아!’ 조금만 재미없으면 다른 정보로 건너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에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지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노파를 죽일지 말지를 수십 페이지째 고민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그냥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만 보입니다. 10명이 모여 10일 동안 100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데카메론》은 유튜브 동영상조차 흥미를 끌지 못하면 1분도 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읽을 수 없는 텍스트가 됩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91

이름하여, 니은 낭독회! 마스터 북텐더는 두 시간 안에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의 책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함께 읽을 사람을 모집합니다. 이런 문구로 홍보했습니다. "혼자서 책 읽기 힘드시죠? 단 두 시간만 투자하시면 책 한 권을 읽어내고 뿌듯함을 얻을 수 있는 니은 낭독회!"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92

서로는 서로를 견제합니다. 자극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눈길로, 목소리로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서로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동료애를 느낍니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습니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두 시간이 흘렀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93

그렇게 니은서점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서로에게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을, 이옥남 할머니의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를, 슈만과 이설리스의 《젊은 음악가를 위한 슈만의 조언》을 함께 읽었어요.
낭독회가 끝났습니다. 문득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가 떠오릅니다. 보통은 두 시간 동안 읽어낼 수 있는 책으로 낭독회를 했지만, 언젠가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마라톤 낭독회도 하고 싶습니다. 그때 니은서점에 와주세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94

제가 자주 펼쳐보는 책은 〈파리 리뷰〉에 실렸던 작가들의 인터뷰를 모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는 이런 말을 했어요. "밤에는 절대로 안 씁니다. 밤에 쓴 글을 믿지 않아요. 너무도 쉽게 써지기 때문이지요. 간밤에 쓴 글을 아침에 읽어보면 결코 좋지 않더라구요."● 밤에 쓴 글을 그다음 날 아침에 다 지워버린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귄터 그라스의 고백에서 위안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 파리 리뷰, 권승혁 김진아 김율희 옮김, 《작가란 무엇인가》, 다른, 2019, 759쪽.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97

짧든 길든 그 "우물 밑바닥"에서의 고독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오웰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라고 표현했던 과정을 거쳐야만,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쓸 때 "마지막 페이지는 서른아홉 번을 다시 쓰고야 만족"했다는 시지푸스의 고통을 넘어서야만 원고가 완성됩니다.
*노승영 박산호,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 세종서적, 2018, 99쪽.
*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 출판, 2010, 300쪽.
*파리 리뷰, 권승혁 김진아 김율희 옮김, 《작가란 무엇인가》, 다른, 2019, 417쪽.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98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른바 ‘내로남불’의 법칙은 수집에도 적용될 수 있어요. 콜린의 눈에 책은 보석과 다를 바 없으나, 다른 사람은 책을 그저 쓰잘데기 없는 물건으로 보겠지요? 무엇인가에 ‘꽂혀’ 그것을 탐닉하고 수집하는 열정에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207

습관적으로 책을 사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면 콜린이 왜 그런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책을 사는 기쁨은 책을 읽는 기쁨 못지않은 기쁨입니다.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서가는 습관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에겐 책을 사며 누렸던 기쁨의 기억 전시장과도 같습니다. 고수들은 읽으려고 책을 사기도 하지만, 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책을 사기도 합니다. 물론 산 책을 다 읽지는 못하죠. 저 역시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었냐"는 질문을 꽤 자주 듣습니다. 대답하기에 살짝 까다로운 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먼저 "설마요!"라고 한 뒤에 "책은 읽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누가 제일 먼저 이 근사한 답을 생각해냈는지 모르지만 책을 수집하는 사람을 위한 정말 환상적인 자기방어 논리 아닌가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208

제가 독보적인 니은서점의 츤도쿠였는데요. 서점 문을 연 지 8개월 무렵 새로운 츤도쿠가 등장했습니다. ‘뉴 페이스’ 츤도쿠는 서점 근처에 산다는 지리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시로 니은서점에 들렀고, 수시로 책을 사갔습니다. 마스터 북텐더는 책을 많이 팔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곧 뉴 페이스 츤도쿠가 마스터 북텐더의 절대지존 츤도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 같아 긴장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경쟁자에게 지지 않으려고 책을 더 사들였습니다. 눈치챘는지 뉴 페이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살짝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사들이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언젠가 돈이 부족해서 츤도쿠를 그만두면 어쩌지? 그래서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궁금하시다구요? 곧 아시게 될 겁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209

서점은 애초에 예상했던 대로 ‘지속가능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적자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비록 ‘지속가능한’ 범위라 하더라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서점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244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출세지상주의로부터의 독립, 시장만능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독립 서점의 정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245

로또만 되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건물을 능가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을 텐데, 도통 당첨되지 않네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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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적 세계의 틀은 근대 생물분류학을 창시한 18세기 스웨덴의 자연학자 카를 폰 린네(Carl von Linné)에게서 빌려 온 것이었다. 린네의 분류 체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다. 일단 식물과 동물의 표본을 종(種)으로 분리한다. - P31

그럼 좀 더 상위의 분류군으로 올라가 보자. 거기에서는 유사한 속들이 하나의 과(科)로 뭉치고 그 과는 목(目)으로, 목은 강(綱)으로 그리고 마침내 강은 분류군의 최정상에 있는 계(界)에 다다른다. 이 계는 다시 식물계, 동물계, 균계, 원생생물계, 모네라계(monerans) 그리고 시원세균계(archaea)로 세분된다. - P32

앨라배마의 모든 개미를 분류해 보겠다는 나의 엄청난 목표를 잠시 동안 듣던 그는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의 1942년 책인 『계통분류학과 종의기원(Systema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자네가 진정한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하네." 라고 말했다.
단조로운 파란색 표지로 덮여 있던 그 얇은 책은 19세기의 다윈진화론과 현대 유전학을 한데 묶은 새로운 종합(宗合, synthesis)이었다. 자연사에 이론적인 구조를 덧입힌 그 책은 린네의 기획을 넓게 확장시킨 역작이었다. 한 줄기 빛이 내 마음의 한구석을 비추기 시작했고 신세계를 향한 문이 열렸다. 나는 이내 매혹되고 말았다. 생물의 진화가 분류학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학 분야들에 대해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철학은 물론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함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진화와 다른 모든 것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되었던 것이다. - P33

나는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에 걸린 것이다. 이 표현은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럴드 홀턴(Gerald Holton)이 처음으로쓴 말로서 통합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을 뜻한다. 즉 세계는질서 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단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식의 가정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깊은 확신이다. 이런 확신의 뿌리는 기원전 6세기의 이오니아에 살았던 밀레투스의 탈레스(Thales of Miletus)로 거슬러 올라간다. 2세기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전설적인 철학자를 물리과학의 아버지로 추앙했다. 물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탈레스는 모든 물질이 궁극적으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비록 그의 생각이 종종 고대 그리스의 사유가 가진 소박함을 보여 주는 예로 인용되기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생각이 세계의 물질적 기초와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을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34

물리학의 거대한 통합을 시도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골수 이오니아 인이었다. 그런 꿈이야말로 그의 가장 위대한 힘이었을 것이다. 친구였던 마르셀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에게 쓴 초창기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직접적인 관찰로는 매우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현상들이 실제로는 통합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황홀함을 느낀다오."라고 적었다. 여기서 그는 브라운 운동을 다루는 미시적인 물리학과 중력을 다루는 거시적인 물리학을 성공적으로 합치시켰던 일을 말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모든 것을 단 하나의 검약적인 체계, 즉 공간을 시간과 운동에, 그리고 중력을 전자기력과 우주론에 묶어 보려고 했다. 그는 가까이 가기는 했지만 성배를 잡지는 못했다.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모든 과학자들은 손에 닿을 것처럼 보이나 결국 잡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탄탈로스(Tantalos,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로 배가 고파 과일을 따먹으려고 손을 뻗으면 과일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버리는 징벌을 받았다. - 옮긴이)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원자가 모든 운동을 멈추는 절대 0도에 근접하기 위해 지난 몇십 년간 온갖 노력을 다해 온 열역학자들과 흡사하다. 열역학자들은 1995년 절대 0도보다 몇십억 분의 1도 정도 높은 온도까지 접근하여 보스아인슈타인 응집물(Bose-Einsteincondensate)을 만들어 냈다. 이 응집물은 기체, 액체, 고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물질 상태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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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겔이 전자책과 종이책을 비교하면서 전자책에 대한 사랑이 플라토닉하다면 종이책에 대한 사랑은 에로틱하다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그 문구를 읽으면서 ‘와, 절묘한 표현이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종이책의 물성을 이것만큼 잘 표현해주는 문구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거든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45

책의 물성에는 종이책과 우리가 맺을 수 있는 내밀함이 분명 있습니다. 마치 연인이 공유하는 내밀한 비밀처럼요. 그리고 연인 사이에만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속살처럼,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르는 나와 그 책 사이의 그런 관계는 책이 비물질적인 전자 파일로 존재할 때가 아니라,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종이책일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죠. 물론 책을 정보와 지식을 저장하는 기능적인 측면에만 국한해서 본다면 전자책은 종이책을 뛰어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완전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47

조지 오웰을 아주 좋아합니다. 조지 오웰은 한때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었다고 하죠. 그가 쓴 에세이 중에서 〈책 대 담배〉라는 글이 있어요. 오웰은 책값이 비싸서 책을 사지 않고 독서도 하지 않는다는 세간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려고 이 에세이를 썼다고 합니다. 책이 비싸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던 단골 핑계 레퍼토리였나봐요. 애연가였던 오웰은 자신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지불하는 총 비용과 책에 지출한 비용을 한번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900여 권이고 총 금액은 165파운드 15실링인데, 이것은 오웰이 15년간 모은 결과이니 1년 평균으로 계산하면 11파운드 1실링을 책 사는 데 지불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자, 그럼 그는 담배에 얼마나 지출을 했을까요? 계산을 해보니 금액은 40파운드 정도였습니다. 맥주는 1년에 20파운드였구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54

책 읽기는 능동적인 지적 훈련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남들은 하지 않았던 능동적인 두뇌 사용법을 익힌 사람은 그 ‘티’가 납니다. 어디서 나냐구요? 저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의 고상함과 정확함 그리고 어휘의 풍부함에서 그 ‘티’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보다 더 정확한 흔적은 그 사람이 쓴 글에 나타나죠. 저는 좋은 글은 예쁜 글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쁜 글, 이른바 미문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저는 예쁜 글보다는 진실을 표현한 글을 더 좋아합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63

입심은 타고난 재능일 수 있지만,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그 사람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즉 글을 이해하는 훈련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여했는지에 따라 좌우되거든요. 말과 글은 그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64

필사로만 글 쓰는 법을 배우면 심각한 경우 글쓰기를 아예 망치기도 합니다. 인용으로 점철되거나, 혹은 남의 글을 인용하지 않으면 글을 아예 쓰지 못할 위험이 매우 높아집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읽은 책을 주로 써먹는 방법은 논문 쓰기인데, 논문은 상당 부분 다른 책의 인용과 인용된 책의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죠. 그러다보니 이런 글의 문체는 속칭 ‘박사체’가 되고 이보다 더 나빠지면 ‘교수체’로 추락하기도 합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65

책 읽은 시간이 많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역동적인 두뇌 활동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 투자의 결과는 땅으로 꺼져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책 읽은 사람의 몸에 스며들지요. 책 읽는 사람의 몸으로 스며든 ‘책 읽은 티’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성으로, 배려 있는 말투로, 설득력 있는 어조로, 쓴 글의 논리성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읽는 사람에게 감정이 전달되는 전파력으로 ‘티’가 나지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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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은평구에 있는 니은서점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녹색만 슬쩍 벤치마킹했습니다. 거기에 니은서점의 감성을 더해 우리가 ‘니은녹색’이라 부르는 예쁜 녹색을 만들어냈죠.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니은서점은 포르투의 렐루서점과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벤치마킹한 서점입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59

전 서재 같은 서점을 상상했어요. 저의 집에 ‘책이 있는 방’이 있는데, 가끔 그 방을 뭐라 불러야 할지 난감해요. 서재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공부방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넘치는, 서재와 공부방 그 사이에 있는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니은서점을 설계할 때 누군가의 서재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서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60

역설적으로 자본 규모가 있는 대형 서점은 위탁판매 방식을 취하고 니은서점처럼 영세 서점은 현매 방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영세 서점에 책을 많이 전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71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도 독립적인 우주이지만, 한 권의 책이 어떤 책 곁에 있는지에 따라 그 책의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서점은 한 권의 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책 곁에 또 다른 책이 있는, 즉 책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지요. 서가를 구성하는 것은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의미의 맥락을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72

그래서 니은서점은 도서관식 책 분류가 아니라 니은서점만의 고유한 맥락으로 서가를 구성했지요. 책은 맥락별로 분류되어 있지만 중간중간 인물별로 분류되어 있기도 합니다. 저는 나름 그 분류 방식을 ‘니은서점 명예의 전당’이라고 부르는데요. 그 인물들은 제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칼 마르크스, 에리히 프롬, 발터 벤야민, 수전 손택, 강상중, 우치다 다쓰루, 다치바나 다카시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분들입니다. 문학 쪽에서는 제발트, 스가 아쓰코, 오에 겐자부로, 조지 오웰, 오노레 드 발자크, 줄리언 반스, 레이먼드 카버, 베른하르트 슐링크, 필립 로스, 주제 사라마구, 프리모 레비, 나쓰메 소세키, 박완서, 슈테판 츠바이크가 니은서점이 사랑하는 작가이지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74

니은서점은 ‘북텐더 서점’이어야 하고, 그것이 니은서점의 시그니처이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니은서점은 책만 파는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전문 서점이 되었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82

사회학에서는 은폐 요인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응답할 때 사실을 그대로 밝히는 게 아니라, 선택한 응답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었을 경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를 신경 쓴다는 거예요. 설문조사의 결과는 당연히 익명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한 개인의 태도가 확인되는 게 아님에도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솔직한 대답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도 창피하지 않은 답을 선택하는 거죠. 그러니 독서와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독서가 취미라고 대답할 가능성을 우리는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93

독서 경험이 입시와 관련된 책 읽기의 경험과 완전히 일치하는 한, 한국에서 교육을 오래 받은 사람은 독서를 싫어하게 될 동기가 더 많은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독서를 싫어해요. 지겹거든요. 대학에 가려고 책을 읽었고, 대학에 가서는 취업하려고 책을 읽었고, 취업한 이후에는 승진하려고 책을 읽었기에, 책 읽기는 쾌감의 감정과 결합한 행동이 아니라 인내, 절제, 끈질김, 참을성, 강제, 이런 단어와 결합된 행동이었으니까요. 가학 피학적 성향이 아니라면 나를 즐겁게 하는 독서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독서를 좋아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평균적인 한국인은 더 이상 독서를 강요받지 않는 지위를 얻으면 독서를 하지 않아요.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99

읽는 인간, 즉 호모 레겐스homo legens가 된 것입니다. -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135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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