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 그러니까 토성의 고리와 아버지의 결혼반지, 해 뜰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구름, 포름알데히드 병에 담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뇌, 그 유리병의 유리를 구성하는 모든 모래알과 아인슈타인이 그 뇌에서 떠올린 모든 생각, 내 고향 불가리아의 릴라Rila 산맥에서 들리는 양치기 처녀들의 노랫소리와 그네들이 모는 양 떼의 모든 양, 챈스(영화 <머나먼 여정Homeward Bound>에 등장하는 개 — 옮긴이)의 복슬복슬한 귀에 난 모든 털과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의 땋아 내린 붉은 머리칼과 몽테뉴Montaigne가 키운 고양이의 수염, 내 친구 어맨다의 갓난쟁이 아들의 투명한 손톱,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우즈강에 투신하기 전 외투 주머니에 채워 넣은 모든 돌, 인간이 만든 것 중 처음으로 성간우주에 진입한 물체에 실린 디스크를 구성하는 모든 구리 원자,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분노의 발작을 일으키다 쓰러져 청력을 잃고 만 그 마룻바닥에 깔린 떡갈나무 지저깨비, 무덤가에서 흐른 모든 눈물과 그 무덤을 찾아와 슬퍼하는 이들을 지켜본 모든 까마귀의 노란 부리,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퉁퉁한 손가락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와 그 손가락이 가리킨 목성의 위성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체와 티끌 분자, 내가 사랑하는 이의 북두칠성 모양 주근깨와 내가 그녀를 사랑할 때 부드럽게 진동하는 축삭돌기의 모든 떨림, 우리가 끊임없이 현실을 파악하고 바꾸는 도구로 사용하는 모든 사실과 환상. 이 모든 것은 138억 년 전 한 점에서 폭발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시작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여는 음표보다 조용했고, 자아(I)의 대좌에서 내려와 작아진 나(i) 위에 떠 있는 점보다 작았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19

우리는 평생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머지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우리는 존재의 동시성에서 삶의 정지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영원, 조화, 선형성이라는 환상에, 고정된 자아와 이해의 범위 안에서 펼쳐지는 인생이라는 환상에 기댄다. 그러면서 줄곧 우리는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한다. 어떤 사물에 붙인 이름과 형식을 그 사물 자체라 착각한다. 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판단과 우연의 난파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 불과한데도.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21

시작과 끝이 무로 장식된 찰나적인 존재인 우리는 어떻게 존재의 완전함에 도달하는가?
아름다운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23

케플러의 인생은 과학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는 "테세우스Theseus의 배"라고 알려진 플루타르코스Plutarchos의 사고실험 속 자아의 변화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27

견고하고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습관, 신념, 사상은 살아가는 동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사회적 환경 또한 변화한다. 우리 몸의 세포 또한 대부분 교체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으로 남는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28

가장 먼 곳을 보는 예언자일지라도 자신이 속한 시대의 지평 너머까지 볼 수는 없지만, 인간의 정신이 외부로 시선을 돌려 자연을 이해하고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기존의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면 그 하나하나의 변혁이 쌓이면서 지평선 자체가 변화한다. 우리는 자연과 문화로 팽팽하게 조인 확실성이라는 체로 세계를 거르지만, 아주 가끔 우연의 결과든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든 망이 느슨해지면서 변혁의 씨앗이 그 사이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29

케플러의 시대보다 세 세기 전,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는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영국과 이탈리아에 등장한 새로운 시계에 경탄을 표했다. "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며 다른 톱니바퀴를 움직인다." 이 기술과 시의 결합에서 시계태엽 우주에 대한 은유가 탄생했다. 계몽운동의 사상적 중심에 선 뉴턴이 물리학에서 시계태엽 우주의 은유를 사용하기 전에 이미 케플러가 시와 과학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첫 저서인 《우주 구조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에서 케플러는 시계태엽 우주의 은유를 빌려와 여기에서 신학적인 면모를 모두 걷어낸 다음, 시계공 신의 존재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천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힘을 대입했다. "천계의 기계는 신이 창조한 생물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의 추로 모든 톱니가 움직이는 시계장치라 할 수 있다." 천계의 기계 안에서 "이 복잡한 운동 전체를 통괄하는 힘은 단 하나의 자력이다." 이 힘은 단테가 썼듯이 "태양과 다른 별을 움직이는 힘인 사랑"이 아니다. 이 "하나의 자력"은 훗날 뉴턴이 공식화하는 중력이다. 이 힘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이 바로 케플러였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35

1609년 케플러는 최초의 SF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 책은 이야기의 중심에 과학을 놓고 그 주위로 풍부한 상상력을 펼쳐낸 작품이다. 《꿈Somnium》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달나라로 항해를 떠난 어느 젊은 천문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학적 장치와 극적인 상징이 넘쳐나는 이 작품은 문학적 상상력이 빛나는 걸작인 한편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한 과학 문서이기도 하다. 케플러가 더 대단한 점은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하기 전에 이 책을 썼다는 점이다. 케플러 자신은 망원경이라는 것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38

케플러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잊곤 하는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낼 때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38

훗날 뉴턴은 중력의 기초가 되는 기본 힘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강력한 미적분학을 바탕으로 케플러의 세 가지 행성운동법칙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21세기를 25년 앞두고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은 케플러의 법칙을 이용하여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킬 궤적을 계산한다. 케플러의 법칙은 또한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최초로 성간우주로 나갈 보이저호Voyager의 길을 안내하는 데에도 적용되었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41

진실을 조작함으로써 무언가를 손에 넣으려는 이들은 종종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이들을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 <진리의 발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6529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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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을 아쉽게 떠나보내고 개혁에도 ‘때’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개혁은 한순간에 몰아치듯 다가오지만 그때를 놓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라앉기도 합니다. 개혁의 때를 놓치면 개혁의 새순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짓밟히기도 합니다.
개혁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제때 해갈하지 못한다면 개혁을 열망하는 민심이 더는 인내하지 않습니다. 기대를 접거나 결국 냉랭하게 돌아설 것입니다. 개혁의 순간을 외면하거나 회피한다면 개혁의 동력은 고사하거나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은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친구 로즈마리가 제게 잊지 말라고 일깨우고 간 듯해 오늘 밤 텅 빈 거실에서 더욱 그립습니다.
- <추미애의 깃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001 - P8

촛불시민이 만들고 싶은 나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나라입니다. 민주공화국은 인간의 존엄성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촛불시민은 생업을 걸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 <추미애의 깃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001 - P15

검찰개혁에 가장 필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첫째, 견제와 균형·분권의 원리입니다. 둘째, 용기입니다. 셋째, 생각입니다. - <추미애의 깃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001 - P19

검찰은 조직문화 속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다면 언론은 의식 속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양대 개혁은 당연히 필요한 개혁인데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 고비를 잘 넘겨서 국민적 에너지를 이제는 소모하지 말고 미래에 집중해야 합니다. - <추미애의 깃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001 - P22

끝까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자칫 검찰개혁을 하는 척만 한 것이 되고 여기저기 찔러만 놓은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참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빈센조」를 보면, "악의 부활은 더 큰 악이 된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게 맞는 말이에요. 악은 더 커져버렸습니다. 세게 쳐내지 못하면, 검찰로서는 자기를 지켜내는 기술이 더 정교해지게 됩니다. - <추미애의 깃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001 - P33

제가 고2 때 선생님이 제 좌우명을 물으셔서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어요. 후회는 자기 성찰의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변명이에요. 후회를 하느니 차라리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러면 변명이 필요하지 않아요. 후회는 살아 있는 사람의 지옥이라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지옥 속에 있지는 않아요. 제 마음은 지옥이 아니에요. 다시 가시밭길을 가라고 해도 갈 거예요. 왜냐하면 촛불을 들라고 하면 다시 드는 시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 <추미애의 깃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5001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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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갈 신(愼)’에 ‘홀로 독(獨)’. 국어사전에는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53

며칠 후 좋아하는 편집숍에 가서 그 공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눈길을 사로잡는 묘한 그린색의 컵 하나를 구매했다. 그저 평범한 물컵일 뿐이었는데, 4만 원이 넘었다. 그래도 샀다. 내가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그 컵을 바라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을 감시하는 감각이 아닌, 느슨하고 편안하게 대해 줄 방법을 궁리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것 같다고. 진정한 자긍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시간이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56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동네의 엄마들 네트워크란 무서워서 다른 친구들 집에서도 생식이 시리얼을 대체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생식, 이 무자비한 시리얼(serial)-시리얼(cereal)-킬러. 그렇게 시리얼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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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마주하는 여러분의 첫 식사가 조금은 달리 보이길 바랍니다. 부디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닌 나를 챙기는 따뜻한 감각으로 자리하길 빕니다. 결국 모든 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니까요.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8

토마토를 맛있게 먹으려면 대체로 요리를 해 먹는 게 유리하다. 생으로 먹을 때보다 맛이 훨씬 깊고 풍부해진다. 때로는 토마토가 어떤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토마토는 기름으로 요리를 했을 때 몸에 좋은 성분인 라이코펜의 흡수율이 높아지는데, 그 맛도 어쩜 올리브 오일과 찰떡궁합이다.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만 있으면 이렇게 편하고 맛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이 탄생한다니, 자취인의 희망이 따로 없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15

서양권에서는 만드는 방식과 이름이 조금씩 다른 토마토 수프들이 있다. 헝가리의 굴라쉬, 이탈리아의 미네스트로네, 러시아의 보르쉬 등등.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17

겨울에 뜨끈한 토마토 수프가 있다면 여름에는 가스파초가 있다. 스페인의 냉 토마토 수프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너무 더워 기력이 없을 때 오이냉채나 냉면처럼 먹는 편이다. 스페인의 여름 보양식이랄까.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18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 날에는 브리 치즈나 카망베르 치즈를 사다가 6등분해서 마른 팬에 살짝 굽는다. 치즈가 살짝 녹으면 접시에 옮겨 담고 그 위에 견과류를 얹고 꿀을 뿌린다. 먹는다. 감탄한다. 와인을 딴다. 천국! 애용하는 치즈 사이트에서 알게 된 방법인데 몇 년째 우울한 날의 특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22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일요일 낮이고, 나는 냉장고에 있는 뮌스터 치즈와 미몰레뜨 치즈, 그라나파다노 치즈를 뚝뚝 떼어가며 낮술을 하고 싶은 생각에 침을 꿀꺽 삼키고 있다. 그거면 돌아오는 한 주도 조금 더 힘을 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 모두 힘내서 오늘 하루도, 치-즈.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23

고소하고 달달한 종류의 식재료라면 무엇이든 넣어도 좋다. 요거트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은 재료들을 너르게 안아준다. 나는 그런 요거트의 너그러움을 좋아한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25

그리스의 ‘차지키 소스’다. 그릭 요거트에 다진 마늘과 다진 오이, 올리브 오일, 레몬즙, 소금, 후추를 섞는 소스로, 오이의 아삭함과 마늘의 알싸함, 올리브 오일의 부드러움, 요거트의 산뜻함이 중독적이다. 진짜 맛있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25

다양한 묽기와 형태와 종류로 수많은 식재료를 부드럽게 품에 안는 요거트가 대책 없이 좋다. 이 요지경 세상 속에서도 요거트만 있으면 조금 더 든든하고 건강하고 너그럽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좋아, 내일 아침도 역시 요거트 볼이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27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요리를 즐기는 유형과 차라리 설거지를 택하는 유형.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38

부엌에 재고가 바닥나면 조마조마해지는 식재료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바나나다. 매거진에 칼럼까지 쓰며 프루테리언임을 선언할 만큼 과일을 신봉하던 시절, 나의 메인 디시는 바나나였다. 검은 반점이 적당히 피어오르기 시작한 바나나가 집에 있다는 걸 떠올리면, 냉장고에 한우나 보리굴비가 가득 차 있는 것 못지않게 만족스러웠다. 잘 익은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면 감탄부터 나온다. 어쩌면 이렇게 포근하고 달콤할 수 있을까. 가히 천국의 맛이다. 그냥 까 먹어도 맛있지만, 스테이크처럼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서 먹기도 하고, 로메인이나 방울토마토를 곁들여 먹기도 하고, 심심하면 구워 먹기도 했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42

지인들은 나를 바나나에 미친 괴짜 정도로 취급했지만, 바나나를 메인으로 한 과일을 주식 삼으며 좋았던 건 ‘오늘 뭐 먹지’의 강박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었다는 점이다. 옷과 가방, 책만 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삶 전체가 진정한 미니멀리즘의 경지로 접어드는 것 같았다. 완전 신세계였다. - <요즘 사는 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9042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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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넘은 여성들에게 뭐가 남지? 비탄에 젖은 19세기의 과부들, 과거의 올드미스들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지만 안쓰럽기로는 뒤지지 않는 고독이 남는다. 이 고독은 1960년대 성 풍속 혁명 이후에 등장한 것이다. 성 해방은 쾌락의 평등을 약속했지만 실상은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차고 넘치는 관능이 모두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직도 제2의 성 대다수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행 아니면 처절한 사막밖에 없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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