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문은 마룻바닥에 밝은색 양탄자가 깔린 침실로 나 있을 것이다. 커다란 영국식 침대가 방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오른편에는 창문 양옆으로 폭이 좁고 높은 두 단짜리 선반에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 몇 권과 앨범, 카드, 작은 화분, 목걸이 같은 잡동사니가 놓여 있을 것이다. 왼편으로는 오래된 참나무 옷장, 나무와 동(銅)으로 만든 옷걸이 두 개가 세련된 줄무늬 회색 실크로 싼 낮은 안락의자와 화장대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침실에 딸린 욕실의 살짝 열린 문틈으로 두꺼운 목욕 가운, 백조 모양으로 구부러진 동 수도꼭지, 커다란 회전 거울, 영국제 면도기 한 쌍과 녹색 가죽 케이스, 갖가지 작은 병들, 뿔 자루가 달린 빗, 목욕 스펀지가 보일 것이다. 침실 벽에는 인도 사라사 벽지가 발라져 있고, 침대에는 스코틀랜드 양모 담요가 깔려 있을 것이다. 세공 무늬를 넣은 침대맡 탁자 위에는 옅은 회색 실크 갓이 달린 은촛대, 네모난 작은 추시계와 함께 장미 한 송이가 유리병에 꽂혀 있고, 탁자 아래 받침에는 신문, 잡지 몇 권이 놓여 있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침대 발치로 묵직한 가죽 풋스툴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창문에는 구리 커튼 봉에서 반투명 커튼이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리고, 두꺼운 회색 양모의 이중 커튼이 반쯤 쳐져 있을 것이다. 어슴푸레한 빛 가운데서도 방은 환할 것이다. 정리가 잘된 침대의 머리맡 벽에 알자스풍 작은 벽 램프 사이로 폭이 좁고 기다란 흑백사진이 걸려 있을 것이다. 창공으로 비상하는 새의 사진은 판으로 찍어낸 듯 완벽해서 선뜩할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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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우리에게 제공한 혜택은 셀 수 없고, 과학의 발명과 발견이 가져온 생산력으로 얻게 된 온갖 풍요로움은 비할 데 없다.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고, 더 완벽하고자 인간이 만든 경이로운 창작품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수정처럼 맑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새로운 삶이라는 샘은 고통스럽고 비루한 노동에 시달리며 이를 좇는 사람들의 목마른 입술에는 여전히 아득히 멀다.
맬컴 로리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8

먼저, 높고 좁게 난 긴 복도를 따라 깔린 잿빛 카펫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밝은색 패널을 이어 만든 벽에 구릿빛 꺾쇠가 반짝일 것이다. 벽에는 엡섬1)의 우승마 선더버드, 외륜선 빌`–드`–`몽트로호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를 찍어낸 판화 세 점이 줄지어 걸려 있고, 뒤이어 결이 훤히 드러난 짙은 색 굵은 나무 고리가 달린 가죽 걸개가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복도에 깔린 카펫 대신 노란색에 가까운 마루가 나타나고, 그 위로 빛바랜 양탄자 세 장이 군데군데 깔린 것이 보일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0

너비가 3미터, 길이가 7미터 됨 직한 거실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알코브2)처럼 보이는 곳에 낡은 검정 가죽 소파가 들여져 있고, 양옆으로 책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는 밝은 빛깔의 자작나무 책장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소파 위로 고해도(古海圖)가 한쪽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낮고 작은 테이블 너머에 비단 기도 걸개가 가죽 걸개와 쌍을 이루어 굵은 못 세 개로 벽에 걸려 있고, 그 아래 검정 소파와 각을 이룬 밝은 밤색 벨벳 소파를 따라가다 보면, 검붉은색으로 니스 칠한 미끈한 다리의 작은 3단 장식장이 나타날 것이다. 그 안에 마노, 석란, 코담뱃갑, 사탕 상자, 비취 재떨이, 진주조개 껍데기, 은 회중시계, 장식 유리잔, 크리스털 피라미드, 타원형 세밀화 액자 같은 자잘한 장식품들이 보일 것이다. 조금 멀찍이 방음을 위해 쿠션을 댄 문을 지나면 구석의 선반 위에 상자와 음반들이 놓여 있고 그 옆에 매듭 모양의 금속 버튼이 네 개 달린 닫아놓은 전축 위로 「카루젤 축제의 대행진」 판화가 걸려 있을 것이다. 흰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크레통 사라사풍 커튼 사이로 창문 밖 나무 몇 그루와 아담한 공원, 막다른 길이 보일 것이다. 작은 등나무 의자가 딸린 고풍스러운 책상에는 종이와 필통 들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을 것이다. 아테네 여신 모양의 받침대에 전화기, 가죽 수첩, 메모 용지가 놓여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문 너머에, 낮고 각진 회전식 책장 위로 흐드러지게 핀 노란 장미가 커다란 파란색 장식 화병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 위에 걸린 기다란 마호가니 거울을 지나 타탄체크의 긴 의자 두 개가 딸린 작은 테이블에 이르면, 아까의 가죽 걸개가 다시 보일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1

온통 갈색, 황갈색, 적갈색, 노란색이다. 공들여 배합한 색조 때문에 고풍스러운 분위기인 이곳에서 쿠션의 생생한 오렌지빛이나 장정한 책들 사이로 얼룩덜룩한 책 몇 권이 밝은 점처럼 도드라질 것이다. 너울지며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 아래 장미꽃 화병이 놓여 있어도 거실은 조금 침울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 방은 저녁에 더 어울리는 공간일 것이다. 겨울이면, 젖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몇 줄기 빛을 통해 책장 구석이라든가 음반꽂이, 책상, 소파 테이블, 거울에 어린 희미한 모습들이 보일 것이다. 길이 잘 든 나무, 묵직한 느낌의 화려한 비단, 크리스털 조각, 부드러운 가죽, 모든 사물이 빛을 발하는, 사방이 어둠에 잠긴 이 방은 분명 평화의 항구이자 행복의 땅일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중에서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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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길이 있는 종로구 체부동에 한옥을 짓고 산 지2년째다. 가족 구성원은 최진택과 한은화.10년 차 연인이고, 법적으로 동거인이다. 마당 있는 집을 찾다 어쩌다 한옥을 짓고 산다. 부부도 아닌,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집을 짓는다고 하니 주변으로부터 언제 결혼하느냐는 질문을 꽤 받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결혼식장(집)을 짓고 있다고 답해왔다. 집에서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식장은 완공됐고,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살고 있으며 여전히 결혼에 게으르다.

-알라딘 eBook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한은화 지음) 중에서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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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두려움은 분노, 비난, 시기와 곧잘 뒤섞인다. 두려움은 이성적 사고를 막고 희망을 독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협력을 방해한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32

결국 이와 같은 공포와 무력감은 이민자, 소수 인종, 여성들과 같은 외부 집단을 향한 비난, 혹은 ‘타자화othering’로 쉽게 전환된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부유한 엘리트들이 나라를 독점했다는 식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33

두려움에 굴복하는 것, 즉 그 흐름에 휩쓸리는 것, 회의적 사고를 거부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36

특히 두려움이 유전적·일상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감정이며, 분노와 혐오와 같은 감정으로 전염될 때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44

우리는 각각의 감정에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감정이 삶의 불확실성, 바로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44

절대 군주 국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죠. 복종을 가능하게 하는 두려움만 있으면 되니까요. 민주주의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선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 민주주의를 좀먹는 증오와 혐오와 분노에 맞서려는 결심입니다. 저는 이 증오, 혐오, 분노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45

철학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겸손한 마음을 바탕으로 진실하게 논쟁을 주고받겠다는 약속이다. 평등한 인간으로서 기꺼이 상대의 의견을 듣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찰하는 삶을 뜻한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47

두려움은 시간순으로도 인과적으로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53

여성 혐오는 보통 성차별주의에 뿌리를 두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주로 징벌적 분노, 성적 욕망, 양립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혐오, 여성들의 경쟁력 상승에 대한 시기에서 비롯되는 유독한 감정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54

각자의 소망이 위태로워지기 쉬운 일상에서, 목전의 두려움에서 한발 물러날 때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55

하지만 정치 철학이 크게 도약한 것은 18세기에 반 군주 정치를 외친 선구자이자 혁명가, 민주주의 초기 이론가인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가 유아기의 심리가 민주주의의 과제에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집필한 글 덕분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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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The Monarchy of Fear: A Phil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이며,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단연 ‘두려움fear’이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불안해지고, 계급과 계층 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난이 속출하고 있으며, 올해 초에는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인 팬데믹에 직면하게 되었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6

누스바움은 두려움이 증오, 혐오, 분노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절대 군주를 원한다. 군주의 강력한 통치에 복종한다면 작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7

특권을 가진 다수자들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 사회의 가장 취약한 존재들에게 혐오의 감정을 덮어씌우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 여성, 동성애자, 불가촉천민, 하층 계급 사람들이 바로 ‘육신의 오물로 더렵혀진 존재’로 상상되었고, 혐오는 이들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 활용되어왔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8

이러한 혐오의 동학이 극단으로 치닫는 때는 정치와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혐오가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8

마지막 대목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발전시켜온 ‘역량 접근법’을 소개한다. 전작인 『역량의 창조』에서 자세히 설명했던 개념으로, 모든 시민은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이 제시한 열 가지 역량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공동체와 국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타인에 대한 연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32893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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