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만 해도

우리는 여기서 기차를 타고 마리엔바트로 갔다.

그런데 이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 W.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중에서 -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65699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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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대조적이었다. 한 사람은 네발로 기다시피 하고, 또 한 사람은 부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젖힌 채, 그래도 거의 비슷한 속도로 두 사람은 아래층으로 향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03

잠자는 오래도록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모닥불을 쬐듯이 혼자서 그 온기를 조용히 맛보았다. 그러고는 마음을 정하고 일어나 검은 지팡이를 들고 계단으로 향했다. 다시 2층으로 가서 옷을 올바르게 입는 방법을 어떻게든 깨쳐보자. 그것이 우선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세계는 그의 학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1

한밤중 한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가 나를 깨운다. 한밤중의 전화벨은 언제나 거칠다. 누군가가 흉포한 쇠붙이로 세상을 깨부수려는 것만 같다. 인류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든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3

나를 지知와 무지無知의 중간지점에 데려다놓는 것, 아무래도 그가 의도하는 바는 그것인 모양이었다. 어째서일까? 내게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일까?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5

물론 그녀는 믿지 않았다. 내 목소리에 죽은 자의 기척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죽은 자가 불러일으키는 동요는 강력한 감염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미세한 떨림이 되어 전화선을 타고 와 말의 울림을 변형시키고, 세계를 그 진동에 동기화한다. 하지만 아내는 더는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둠 속에 누워 그곳에 깔린 정적에 귀를 기울이며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6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엠은 그 이후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세상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녀는 온갖 장소에 깃들어 있고, 온갖 시간에 깃들어 있고, 온갖 사람에 깃들어 있다. 나는 그걸 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9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25

정말로 소중한 것만은—우리는 그것을 이따금 ‘본질’이라고 부른다—잊어버리지 않고, 그밖의 부수적인 사실들 대부분을 그가 깨끗이 잊기를 기도한다. 자신이 그것을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대단한 일 아닌가. 세상에서 두번째로 고독한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그리고 만난 적도 없는) 남자를 염려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니까.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26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29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30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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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 위에서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2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이제 그레고르 잠자라는 이름을 가진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76

이런 것이 정말 나인가? 이렇게 불합리한, 그리고 간단히 손상될 듯한 몸뚱이로(방어할 껍데기도, 공격할 무기도 주어져 있지 않다) 과연 이 세계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78

호기심보다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다. 몸속에 똬리를 튼 이 준열한 공동空洞을, 한시라도 빨리 실속 있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그실속 있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잠자는 이제 자신이 갈 곳을 알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1

해안에 물이 차오르듯 서서히 포만감이 밀려왔다. 몸속의 공동이 서서히 메워지면서 진공의 영역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4

그는 왠지 모르게 그걸 알았다. 그것은 추측도 아니고 지식도 아닌 완벽하게 순수한 인식이었다. 그런 인식이 어디서 어떤 경로를 밟아 찾아오는 것인지 잠자는 알지 못했다. 그것 또한 순환하는 기억의 일부인지 모른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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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살 수도
너 없이 살 수도 없네.
Nec tecum possum vivere
네크 테쿰 포쑴 비베레
nec sine te.
네크 시네 테. - P20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어느 한 사람의 문제로 몰아가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 널린
쉽고도 흔해빠진 선택이었습니다.
Nes tecum possum vivere
nec sine te. - P25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내키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Qui quae vult dicit,
퀴 퀘 불트 디치트,
quae non vult audiet.
퀘 논 불트 아우디에트. - P26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창비, 2015)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 P29

친구들이 없다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Sine amicis vir non
시네 아미치스 비르 논
potest esse beatus.
포테스트 에쎄 베아투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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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maria 2023-12-01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니다. 지나다 마음에 닿아 들립니다.
 

<캐니언의 프러포즈>는 9년 전 여름 빌 모리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빌은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스냅사진 촬영 업체를 운영했는데 그 무렵엔 그에게 촬영을 의뢰하려면 최소 여섯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6월 15일부터 사흘간 그랜드서클 촬영을 예약한 커플은 빌의 삼백 번째 고객이었다. <캐니언의 프러포즈>가 6월 16일 새벽 4시에 찍힌 사진이어서 그들은 한동안 그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사실은 빌을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합류하겠다고 했던 삼백 번째 고객은 약속 시간이 임박했을 때 돌연 예약을 취소했다. - P7

사진 속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반쯤 굽혀 앉은 남자가 있었다. 얼굴이 명확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까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진이었다. 여자의 어깨에서부터 뒤로 드리워진 베일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흰 눈이 베일 가득 쏟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 은빛 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일한 조명은 달빛이었다. 사진에 담긴 어둠은 실제보다 더 화사하게 느껴졌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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