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이 소리에는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상인은 계산대를, 짐마차 마부는 마차를 팽개쳤고, 푸줏간 주인은 쟁반을, 빵집 주인은 바구니를, 우유배달원은 우유통을, 심부름꾼 아이는 짐꾸러미를, 어린 학생은 구슬을, 포장 인부는 곡괭이를, 어린아이는 배드민턴채를 집어 던졌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허둥지둥, 성급하게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비명을 질러댔고,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행인들을 넘어뜨리고 개들을 깨우고 가축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거리와 광장, 골목이 온통 고함소리로 가득 차 울려댔다.
(163/883p)
노신사는 또다시 얼굴들을 이리저리 떠올려보았다. 여러 얼굴이 떠올랐지만, 세월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친구와 원수의 얼굴들이 보였고, 군중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거의 낯선 얼굴들도 보였다. 이제는 노파가 되어버린 젊고 화사한 소녀들의 얼굴도 보였고, 무덤에 묻혀 완전히 변해버린 얼굴도 보였다. 그러나 마음의 힘이 더 커서, 여전히 신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떠올리니, 강렬한 눈빛과 환한 미소, 육체의 가면을 뚫고 빛을 발하는 영혼과, 무덤 너머로 속삭이는 아름다움이 되살아났다. 그 아름다움은 죽음으로 변했지만 더 높아졌고, 땅에서 올라가 빛이 되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부드럽고 은은하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169-170/883p)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된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세상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했으며, 가장 선량하고 지혜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성과 모든 사려 깊은 정신의 경험이 그것을 확증한다. (6/883p, 서문)
나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감히 주저 없이 말한다. 영어를 쓰는 작가들 가운데서, 적어도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후대에 존경을 받았던 작가들 가운데서, 이 까다로운 계층의 취향에 맞추려고 비굴하게 낮아진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13/883, 서문)
세르반테스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불합리를 보여줌으로써 스페인의 기사도 정신을 비꼬았다. 그보다는 비천한 배경의 작품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현실에서 실재하면서 거짓 광채로 둘러싸인 무언가에 대해, 그것의 추하고 역겨운 모습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14/883p, 서문)
우리의 보편적 본성에는 최상과 최악의 색조들이 뒤섞여 있다. 상당 부분이 추악한 색조를 띠지만,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이자, 변칙이며, 일견 불가능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그것이 의심받는다면 나로서는 도리어 기쁘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상황이야말로 그것이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얻기 때문이다. (16-17/883p, 서문)
태양이 몇 번이나 뜨고 지고, 또 뜨고 졌다. 하지만 여전히 올리버는 불안한 상태로 침대에 뻗어 있었고, 약한 산성에 가장 강한 강철의 중심부가 좀먹어가듯 건조한 열병에 온몸이 차츰차츰 메말라갔다. 이렇게 살아 있는 육체를 느리게 기어다니는 열병이 사체를 뜯어먹는 벌레보다 더한 법이다. (182-183/883p)
브라운로 씨가 깜짝 놀라며 급하게 올리버의 머리 위에 걸린 그림과 올리버의 얼굴을 번갈아 가리켰다. 그림 속의 눈과 머리, 입, 모든 부분이 올리버와 똑같았다. 표정도 한순간 너무 똑같아서 아주 세세한 윤곽마저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베껴 놓은 것만 같았다. (195/8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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