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큰 종소리가 나더니, 총소리와 남자들의 외침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올리버는 울퉁불퉁한 땅 위를 빠르게 업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소음이 멀어지면서 차가운 죽음의 느낌이 가슴속에 스며들었고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었다.
(359/883p)

엄청나게 추운 밤이었다. 눈이 땅에 겹겹이 쌓여 두껍게 얼어 있어서 골목이나 모퉁이에 쌓인 눈더미만이 날카로운 바람에 울부짖듯 흩날렸다. 손아귀에 걸려든 먹이에 더욱 세차게 노여움을 쏟아내듯 바람은 눈을 거칠게 사로잡아 구름 속에서 안개 소용돌이를 만들어 공중에 흩뿌렸다. 이렇게 황량하고 암울하며 살을 에는 추위가 음습하는 밤에는, 번듯한 집에서 따뜻한 화롯가에 둘러앉아 있다는 사실을 하느님께 감사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집이 없는 사람들이나 굶주리고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기 십상이었다. 이런 날에는 굶주림에 지친 부랑자들이 수도 없이 텅 빈 거리에서 눈을 감는다. 이들의 죄가 무엇이건 이보다 더 쓰라린 세상에서 눈을 뜨는 일은 없을 터였다. (362/8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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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정을 쏟은 사람들은 전부 무덤에 묻혀 있지. 내 평생의 행복과 즐거움이 그 무덤에 함께 묻혀 있긴 하지만, 내 마음속 가장 값진 감정까지 묻어놓진 않았단다. 오히려 깊은 불행으로 인해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이 더 강해졌다고 할 수 있지
(223/883p)

무대 위 관습처럼 모든 극악한 멜로드라마에서는 비극적인 장면과 희극적인 장면이 베이컨의 켜켜이 쌓인 붉은 줄과 흰 줄 마냥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269/883p)

한 마디로, 이 교활한 유대인 노인이 올리버를 올가미에 얽어맨 셈이다. 맨 처음에 올리버를 고독하고 우울한 상태로 내버려 둠으로써, 이제 황량한 곳에서 혼자 슬픈 생각에 잠겨 있느니,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다는 간절함을 갖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페이긴은 서서히 올리버의 영혼에 암울한 독을 주입하면서 순수한 영혼을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
(301/883p)

유대인 노인이 돌아다니기에는 딱 맞는 밤 날씨 같았다. 이 추악한 노인이 벽과 문간 아래로 숨어서 미끄러지듯 걸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진흙과 어둠에서 만들어진 징그러운 파충류가 밤에 먹이를 찾아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303/883p)

올리버는 바닥에 놓인 후줄근한 침상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불안으로 하얗게 질리고 슬픔이 가득한 얼굴이라서인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 아니라, 막 숨을 거뒀을 때 보이는 모습 같았다. 어리고 부드러운 영혼은 방금 하늘로 날아갔지만,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에 아직 세상의 역겨운 공기가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 말이다.
(319/8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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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렇게 인간은 언제나 자기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은 심오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지닌 철학자들이 모든 대자연의 행위와 행동의 주된 원인으로 규정한 공리주의 법칙을 입증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철학자들은 아주 현명하게도 대자연의 절차를 공리와 이론의 문제로 좁혀놓았고, 대자연의 높은 지혜와 이치만을 단순하고 멋지게 칭찬함으로써 감정이나 너그러운 기분, 충동의 문제는 고려대상에서 치워버린 것이다. 비록 대자연이 여성에 비유되긴 하지만, 대자연은 여성의 약함이나 수많은 결점을 훨씬 넘어선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197/8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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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he spoke, he pointed hastily to the picture aboveOliver‘s head, and then to the boy‘s face. There was its living copy. The eyes, the head, the mouth; every feature was the same. The expression was, for the instant, so precisely alike, that the minutest line seemed copied with startling accuracy!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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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이 소리에는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상인은 계산대를, 짐마차 마부는 마차를 팽개쳤고, 푸줏간 주인은 쟁반을, 빵집 주인은 바구니를, 우유배달원은 우유통을, 심부름꾼 아이는 짐꾸러미를, 어린 학생은 구슬을, 포장 인부는 곡괭이를, 어린아이는 배드민턴채를 집어 던졌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허둥지둥, 성급하게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비명을 질러댔고,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행인들을 넘어뜨리고 개들을 깨우고 가축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거리와 광장, 골목이 온통 고함소리로 가득 차 울려댔다.

(163/883p)

노신사는 또다시 얼굴들을 이리저리 떠올려보았다. 여러 얼굴이 떠올랐지만, 세월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친구와 원수의 얼굴들이 보였고, 군중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거의 낯선 얼굴들도 보였다. 이제는 노파가 되어버린 젊고 화사한 소녀들의 얼굴도 보였고, 무덤에 묻혀 완전히 변해버린 얼굴도 보였다. 그러나 마음의 힘이 더 커서, 여전히 신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떠올리니, 강렬한 눈빛과 환한 미소, 육체의 가면을 뚫고 빛을 발하는 영혼과, 무덤 너머로 속삭이는 아름다움이 되살아났다. 그 아름다움은 죽음으로 변했지만 더 높아졌고, 땅에서 올라가 빛이 되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부드럽고 은은하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169-170/883p)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된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세상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했으며, 가장 선량하고 지혜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성과 모든 사려 깊은 정신의 경험이 그것을 확증한다.
(6/883p, 서문)

나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감히 주저 없이 말한다. 영어를 쓰는 작가들 가운데서, 적어도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후대에 존경을 받았던 작가들 가운데서, 이 까다로운 계층의 취향에 맞추려고 비굴하게 낮아진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13/883, 서문)

세르반테스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불합리를 보여줌으로써 스페인의 기사도 정신을 비꼬았다. 그보다는 비천한 배경의 작품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현실에서 실재하면서 거짓 광채로 둘러싸인 무언가에 대해, 그것의 추하고 역겨운 모습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14/883p, 서문)

우리의 보편적 본성에는 최상과 최악의 색조들이 뒤섞여 있다. 상당 부분이 추악한 색조를 띠지만,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이자, 변칙이며, 일견 불가능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그것이 의심받는다면 나로서는 도리어 기쁘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상황이야말로 그것이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얻기 때문이다.
(16-17/883p, 서문)

태양이 몇 번이나 뜨고 지고, 또 뜨고 졌다. 하지만 여전히 올리버는 불안한 상태로 침대에 뻗어 있었고, 약한 산성에 가장 강한 강철의 중심부가 좀먹어가듯 건조한 열병에 온몸이 차츰차츰 메말라갔다. 이렇게 살아 있는 육체를 느리게 기어다니는 열병이 사체를 뜯어먹는 벌레보다 더한 법이다.
(182-183/883p)

브라운로 씨가 깜짝 놀라며 급하게 올리버의 머리 위에 걸린 그림과 올리버의 얼굴을 번갈아 가리켰다. 그림 속의 눈과 머리, 입, 모든 부분이 올리버와 똑같았다. 표정도 한순간 너무 똑같아서 아주 세세한 윤곽마저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베껴 놓은 것만 같았다.
(195/8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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