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어떤 술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맥주를 좋아합니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약 5퍼센트쯤 됩니다. 디딤돌 효과가 맞다면, 제가 맥주를 몇 년 마시다 보면 맥주에 내성이 생겨서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 결국 맥주를 증류시킨 위스키(40퍼센트)에 손을 댔다가 중독이 돼야 합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면 소주중독자가 되고, 와인을 좋아하면 브랜디중독자가 돼야 하는 거죠.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가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90/374p)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금지론자들이 걱정하던 디딤돌 효과는 오히려 완전히 금지를 할 때 더 많이 나타납니다. 실제로 금주법 시행 전과 금주법이 폐기된 이후를 비교했더니, 독주 소비가 훨씬 많아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금주법 이전에는 도수가 낮은 술들을 마시다가, 금주법 동안 독주를 마시다 보니 그 술에 익숙해진 거죠. 이 수치는 금주법이 해제되고 한참이 지난 1980년대가 되어서야 금주법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92-193/374p)

중독의 대표적 이론은 ‘물질대사metabolism 불균형론’입니다.
마약은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이고, 몸에 흡수되면 여러 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마약이 특정 신경물질을 대체하기도 하고, 신경물질을 자극해 과하게 반응하게도 합니다. 이런 마약 작용이 몸에 익숙해지면, 마약을 하지 않았을 때 신경물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더 많은 신경물질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마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유지될 수 없게 되는 거죠. 단순히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마약을 갈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찾듯이, 마약 사용자가 마약을 찾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끊을 수 없듯이, 마약 사용자도 마약을 끊을 수 없게 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06/374p)

제대로 성장한 사람은 자아의 3요소(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가 조화롭게 기능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이 3요소가 서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12/374p)

UN 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 1년에 1회 이상 마약을 복용한 이는 대략 2억 5,500만 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약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의 5.3퍼센트에 해당합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한 달에 한두 번, 마약을 가볍게 복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가운데 마약중독이라 할 만한 이들은 대략 3,000만 명 정도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18-219/374p)

정확히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연간 3,000억 달러(350조 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위가 너무 커서 감이 안 오는 분들을 위해 비교를 하자면, 할리우드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시장 규모가 연간 1,000억 달러밖에 안 됩니다. 불법 마약시장이 전 세계 영화시장보다 세 배나 큰 거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19/374p)

미국은 겉으로는 마약에 강경한 입장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미국은 냉전시대 내내 전 세계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친미 조직들의 마약판매와 무기 구입을 용인했습니다. 중요한 건 체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3세계 국가의 공산화를 저지해야 했죠. 그래서 친미 성향의 반군 단체들이 제조한 마약을 미국 내에 유통하게 해주고, 그 돈으로 미국 무기를 구입하게 해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21/374p)

미국이 벌이는 ‘마약과의 전쟁’은 뜬금없게도 남미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콜롬비아는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세계 생물 다양성의 15퍼센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6 산림도 풍부해 지구의 허파 역할도 하죠. 그런데 미국의 마약시장이 거대해지면서 콜롬비아의 마약제조업자와 가난한 농부들이 숲에서 마약을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마약이 그나마 수익이 괜찮으니까, 그들은 공권력의 눈을 피해 숲속 깊이 들어와 숲을 밀어버리고 코카밭을 만듭니다. 콜롬비아의 산림 파괴 중 절반 이상이 이런 마약재배 때문에 일어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32/374p)

에스코바르가 그의 아들에게 해줬다는 조언으로 이 장을 마무리하죠.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그것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Valiente es el que no la prueba.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65/374p)

<레퀴엠> 마약 영화의 종결자

원제: <Requiem For A Dream>
개봉: 2000년
등장 약물: 엑스터시, 코카인,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대마초

※ 경고: 이 영화는 충격적인 장면과 보는 이의 기분을 바닥 끝까지 떨어뜨리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람에 주의하세요. 안 보셔도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썼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영화만은 찾아보겠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34/374p)

<카르텔 랜드> 마약범죄 아래에서의 삶

원제: <Cartel Land>
개봉: 2015년

현장감이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쓰러진 카메라 앞으로 진짜 총알이 날아다니죠. 제작진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통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영화에서 살아남은 이가 지나가듯 읊조리는 대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상황이 이 대사 같은지도 모르겠네요.

우린 운이 좋은 거예요. 일단은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51/374p)

우리 사회가 마약에 갖고 있는 태도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도핑을 검사하는 일을 하면서 불법적인 도핑을 도왔던 그리고리처럼, 국가의 통치 아래서 우리도 이런 이중성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휘어잡을 ‘마약은 아니지만 마약 같은 것’을 찾으려고 하고, 그 속의 개인은 ‘마약은 안 했지만 마약 한 것 같은 기분’을 꿈꾸죠.

영화 속에서 계속 인용되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가 거짓을 수용하면, 거짓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 진실이 된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56/374p)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61-362/374p)

빨갱이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헤겔의 『법철학 강요』를 비평하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이후 전 세계 공산국가에서 종교가 탄압을 받게 됩니다. 끔찍한 일도 많았죠.

하지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에서 아편은 마약이라기보다는 진통제로 보아야 합니다. 당시에 실제로 아편은 인민들의 진통제 역할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공산국가의 종교 탄압은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정책이었던 거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64/374p)

마지막 인사는 네덜란드 훌스만 보고서의 한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죠.

국가는 국민의 어떤 행위에 대해, 국가 권력이 생각하는 삶의 개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동의하지 못한다는 관점에 서서는 안 된다.

네, 그렇답니다. 우리의 국가는 그렇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국가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65-366/374p)

다음 책이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들 하는 건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함께 방송을 만들었던 지사, 준태, 멍부, PAIN, 길냥이, 스꿩크, 브람스, 무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들의 앞날이 코카인처럼 자극적이고, LSD처럼 환상적이길 바랍니다.

책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든 J와 M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책 한 권씩 강제로 보낼 테니, 냄비 받침으로 쓰세요. 언젠가 대마초 합법화되는 날, 한 모금씩 나눠 피워요.

또 (자식이 이런 책을 쓴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부모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딱히 효자는 아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마약성 진통제는 아낌없이 넣어드릴게요. 늘 건강하세요.

쏟아지는 원고 더미 속에서 이 글을 건지고 다듬어준, 하명성 에디터와 동아시아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히로뽕처럼 팔려나가서 출판 시장의 한 획을 그으시길 기원합니다. 그 외에도 몇 군데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는데, 함께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정말 며칠 밤을 고민했어요(그러니 제발 다음에 제 원고를 거부하지 말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이런 시시콜콜한 잡담까지 읽어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책을 구매하셨다면 두 번 전합니다. 제 글을 읽는 동안 마약 한 것 같은 기분이었길 바랍니다.

궁금한 사항이나 책 후기, 오류, 출판 문의, 강연 문의, 불우이웃 성금, 아르바이트 제의, 고백, 기타 잡담은 todayohoo@gmail.com으로 주세요. "마약 어디서 사요?" 같은 질문은 스팸 처리하겠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73-374/3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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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아편, 모르핀, 헤로인은 모두 양귀비가 기본 재료입니다. 양을 비교해보자면, 양귀비꽃 2,000개를 가공하면 아편 10킬로그램을 얻을 수 있고, 이 10킬로그램을 화학 처리하면 모르핀이나 헤로인 1킬로그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동물 마취제로 사용하는 에토르핀, 감기약에 들어가는 진통제 코데인, 그 외에도 옥시코돈, 하이드로몰폰 등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중증 진통제가 양귀비 계열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85-86/374p)

코카잎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코카인 성분은 1퍼센트뿐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비타민과 무기질입니다. 중남미 지역은 환경 특성상 비타민을 섭취하기 어려운데, 코카잎이 원주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거죠. 지금도 남미 여행 중에 고산병에 시달리면, 현지인들이 예방 차원에서 코카차를 마시라고 합니다. 실제로 코카차를 마시면 비아그라를 복용하지 않아도 고산병이 상당히 완화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86/374p)

코카인은 코카잎에서 추출한 마약입니다.
코카인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코카잎 250킬로그램이 필요하죠.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마약 흡입 장면 기억나시죠?
흰 가루를 평평한 판 위에 올려놓고, 카드로 톡톡 쳐서 일자로 만든 다음에, 지폐를 말아서 코로 쓱 들이마시는, 이게 바로 코카인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88/374p)

2009년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연구팀에서 30개국의 화폐를 조사했는데, 미국의 경우 유통 중인 지폐의 90퍼센트에서 코카인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16 놀라운 수치죠? 이 약쟁이들 같으니… 물론 90퍼센트 지폐가 모두 직접적으로 코카인 흡입에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은행의 지폐 계수기나 시장을 통해 돈이 돌면서 옮아간 거죠. 그래도 일본 지폐의 경우 12퍼센트 정도만 검출된 것을 감안해보면, 미국이 코카인을 아주아주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91/374p)

코카인을 베이킹파우더와 섞어서 가열하면 ‘크랙Crack’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코카인은 원래 가열하면 타버려서 담배처럼 흡연을 할 수 없는데, 크랙으로 만들면 흡연이 가능해집니다.

고가의 코카인은 중상류층 백인들의 사용이 많지만, 불순물이 다량 포함된 크랙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마약도 자본과 인종에 따라 나뉘는 더러운 세상이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93/374p)

히로뽕이나 필로폰이란 이름이 익숙하지만 정식 명칭은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간단히 ‘메스’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 감기약을 개발하다가 우연히 발명됐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95-96/374p)

히로뽕이란 이름은 ‘노동을 사랑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philoponus’에서 따왔습니다. 약 먹고 일하라는 뜻이죠. 노동이란 마약을 흡입하면서 해야 할 만큼 가혹한 겁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96/374p)

1939년 나온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아시나요?
순수한 꿈과 모험,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동화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도로시 역은 배우 주디 갈란드Judy Garland가 맡았는데, 빡빡한 일정에 그녀가 지쳐 쓰러지면 제작진은 그녀에게 메스암페타민을 먹이고 촬영을 강행했죠.
그녀는 결국 암페타민 과다복용으로 중독 증상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러자 제작진은 그녀에게 수면제인 바르비투르산을 권했습니다. 당연히 바르비투르산도 현재 마약으로 분류됩니다.
물론 당시 이런 약물들은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먹인 것 정도로 그들을 비난할 순 없겠죠. 더 심각한 문제는 당시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어린 나이에 주인공이 된 주디를 왕따시키고, MGM 스튜디오의 감독과 피디들은 그녀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겁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죠.
주디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지만, 그녀에게 쏟아진 돈과 관심은 그녀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47세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나죠. <오즈의 마법사>에 걸맞은 아주 동화 같은 스토리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97-98/374p)

전체 이름은 ‘메틸렌 디옥시-메스암페타민Methylene Dioxy-MethAmphetamine’, 줄여서 MDMA라고 합니다. 하지만 엑스터시란 이름이 폭넓게 사용되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01/374p)

1914년에 감기 증상을 완화하고, 식욕을 감퇴시켜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약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만, 현재는 금지약물입니다.
주로 파티용 마약으로 사용되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학구조는 각성제인 암페타민과 비슷하지만, 효과는 환각제에 가깝습니다.
복용하면 행복감, 안정감, 편안함, 자신감을 줍니다.
스킨십 욕구도 강해져서 ‘포옹 마약Hug drug’으로도 불립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02/374p)

메타돈 외에도 페티딘(pethidine), 모르피난(morphinane), 아미노부텐(aminobuten), 벤조모르판(benzomorphan), 펜타닐(fentanyl) 등이 모르핀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아직 양귀비 계열의 진통제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탁월한 제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04/374p)

공식 명칭은 ‘리세르그산 다이에틸아마이드Lysergic Acid Diethylamide’지만, 간단히 LSD 혹은 애시드Acid22라고 부릅니다. 가장 유명한 환각제죠. 환상을 보려면 LSD만 한 것이 없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06/374p)

사람의 마음은 크게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을 받습니다.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그리고 세르토닌이죠.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도파민은 쾌락, 정열, 성욕, 식욕 등 긍정적인 마음을 담당하고, 노르아드레날린은 반대로 불안, 스트레스 등 부정적 마음을 담당합니다. 세르토닌은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07-108/374p)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대부분 세르토닌 수치를 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세르토닌 수치를 올려서 우울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즉, 우울증 환자에게 LSD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08/374p)

비틀스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곡을 발표했을 당시 LSD를 찬양한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곡 제목에 들어간 단어의 첫 알파벳을 보세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10/374p)

당시 아프리카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 중이던 발굴팀이 우연히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화석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굴팀은 그 화석에 자신들이 즐겨 듣던 음악의 제목을 따서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물론 이게 그들이 마약 원숭이 가설을 지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모든 건 우연일 뿐이죠. 하지만 재미난 우연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11/374p)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 이분의 많은 글이 마약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멋진 신세계』에 ‘소마’25라는 가상의 마약이 등장하죠. 그는 임종 직전, 아내에게 LSD 한 대 놓아달라는 유언을 했고, 부인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죠. 그는 LSD를 맞고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12/374p)

프로포폴
고소해 보이는 우유주사.
일명 우유주사. 한국에서는 몇 년 전, 몇몇 연예인의 스캔들로 유명해졌습니다.
수면마취제의 일종으로 내시경 검사나 성형수술에 많이 이용됩니다.
가끔 호흡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지만, 다른 마취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어 의학적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16/374p)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프로포폴은 수면제가 아니라 기억중추를 마비시켜서 기억이 나지 않게 하는 약입니다. 그래서 잠을 잔 것처럼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 잠을 자는 건 아닙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17/374p)

‘해피 벌룬’을 아시나요?
풍선 안의 가스를 마시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풍선 안에는 아산화질소가 들어 있죠.
외국에서는 ‘웃음가스laughing gas’라는 속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19/374p)

1772년 처음 발견된 이후, 치과나 산부인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죠. 사용자가 의식을 잃지 않고 마취가 되기 때문에 치료에 쓸모가 많습니다. 또 카페에서 휘핑크림을 만들 때, 생크림을 넣고 가스를 충전하는데, 그 가스도 아산화질소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20/374p)

환각물질은 마약류로 분류되진 않지만, 마약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통제하는 물질입니다. 아산화질소 외에도 본드와 부탄가스, 시너 등이 포함되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22/374p)

① 각성제(흥분제)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사람을 각성시키는 마약입니다.

효과: 쾌락적 행복감, 도취감, 활발한 에너지, 흥분과 불안

종류: 코카잎 베이스(코카인, 크랙), 카트잎, 히로뽕, 니코틴(담배), 카페인(커피)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27/374p)

② 억제제(진정제)

각성제와 반대로 중추신경을 억제합니다.

효과: 나른한 행복감, 편안함, 수면, 마취

종류: 양귀비 베이스(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 물뽕(GHB), 케타민, 대마초35, 알코올(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27/374p)

③ 환각제

말 그대로 복용 시 환각을 보죠. 각성제나 억제제에 비해 신체적 의존성은 낮지만 정신적 의존성이 큽니다.

효과: 환각

종류: LSD, 아야와스카, 엑스터시36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28/374p)

모르핀의 상위 버전은 호프만 이전에 영국에서 개발된 적이 있지만, 당시에 이를 만든 사람은 그 가치를 몰라서 묻어버렸습니다. 반대로 바이엘사는 이 약의 가치를 알아봤을 뿐만 아니라 맹신했죠. 그래서 이 약의 이름을 ‘약 중의 영웅’이라는 뜻으로 ‘헤로인heroine’으로 짓습니다. 심지어 바이엘사는 헤로인을 아스피린보다 더 자랑스러워했고, 헤로인을 자신들의 주력 상품으로 밀었습니다. 지금 아스피린과 헤로인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41/374p)

첫 번째는 코카인이 들어간 포도주, ‘뱅 마리아니’입니다. 이 음료의 인기는 대단했는데요. 교황 레오 13세가 이 포도주의 애호가여서, 뱅 마리아니를 만든 이에게 바티칸 금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상 비슷한 걸 받은 거죠.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Jules Verne, 『목로주점』을 쓴 에밀 졸라Emile Zola, 『인형의 집』을 쓴 헨릭 입센Henrik Ibsen 역시 이 포도주의 애호가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 시대의 수많은 명작들은 술발 더하기 약발로 만들어졌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42/374p)

여기서 코카는 코카잎에서 추출한 코카인이고, 콜라는 콜라나무의 열매에서 추출한 카페인이죠. 이걸 합쳐서 코카콜라, 이름 짓기 참 쉽죠?

1885년, 미국 애틀랜타시가 알코올이 함유된 주류의 판매를 전면금지하면서 코카콜라는 대박이 터집니다. 금주법의 시대가 다가오는 거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43/374p)

시인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아편에 빠져 있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46/374p)

미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마리화나 중독자들에게 치료 목적으로 ‘마리놀’이라는 약품을 처방했습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마리화나와 비슷한 제품입니다. 마리화나보다 성능도 안 좋으면서 가격은 더 비싸고, 마리화나중독을 마리놀중독으로 대체해주는 약품이죠.1 하지만 마리화나는 불법이고 마리놀은 합법적인 치료용 의약품이니까, 환자는 마약에서 벗어났다는 행복을, 의사와 제약회사는 돈을 벌었다는 행복을, 국가는 마약중독자를 줄였다는 수치상의 행복을 누리니, 모두가 행복한 놀라운 창조경제였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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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평범한 지킬’의 다른 인격인 ‘광폭한 하이드’는 코카인 중독자를 은유한 캐릭터죠.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6일간 코카인을 대량 복용한 상태에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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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늘 열량 부족에 시달렸고, 높은 열량을 찾도록 진화했습니다. 단맛은 보통 열량이 높죠. 즉, 인류는 설탕을 좋아합니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에요. 또한 뇌는 포도당에서 에너지를 얻는데, 포도당은 탄수화물이 소화된 형태입니다. 그런데 설탕은 정제된 탄수화물이라 먹으면 뇌에 곧바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설탕은 마약처럼 뇌 속에서 도파민을 활성화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뇌는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단걸 찾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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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첫 글자는 과거에는 ‘대마, 삼 마(麻)’를 썼으나, 현재는 주로 ‘저릴 마(痲)’를 씁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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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마약류는 코카인, 아편, 헤로인 같은 ‘마약’과 LSD, 프로포폴, 히로뽕(필로폰)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 그리고 마리화나, 하시시가 포함된 ‘대마류’로 구분합니다. 마약류에 포함되진 않지만, 본드, 부탄가스, 아산화질소도 환각물질로 지정해 흡입을 금지하고 있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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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과 달라진 그 순간을 일종의 특이점이라고 해보죠. 인간은 어떻게 그 특이점을 넘어설 수 있었을까요?
미국의 학자 테렌스 맥케나Terence McKenna는 자신의 저서 『신들의 음식Food of Gods』에서 ‘마약 원숭이stoned ape’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합니다. 그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stoned ape를 직역하면 ‘(무언가에) 취한 유인원’ 정도지만,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마약 원숭이’로 표기합니다. 『마약의 역사』를 참고한 번역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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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마약 원숭이 가설은 정설이 아닙니다. 야생의 동물들도 환각 식물을 즐기는 경우가 있으니 인류의 조상도 섭취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때문에 인류가 진화했다고 주장하려면 훨씬 많은 증거가 필요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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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진화의 신체적 변화를 고려해봤을 때, 마약 가설보다는 화식火食 가설이나 육식 가설이 더 그럴듯할 뿐이죠.3 하지만 진화는 복잡한 과정이고, 중간에 어떤 원인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을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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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만 2,000년쯤부터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 같은 기초적 형태의 종교들이 생겨납니다. 학자들은 이때부터는 인류가 확실히 마약을 인식했다고 봅니다. 종교지도자인 샤먼이 주로 마약을 사용했는데, 이들은 의사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에 주변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주로 마약류 버섯이나 풀을 이용했겠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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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가 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마약은 단순히 주워 먹는 수준을 넘어 재배되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5,000년쯤 되면 천연 마약 중에 성능이 꽤 좋은, (지금까지 사랑받는) 대마초, 양귀비, 코카coca가 등장하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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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스모스』로 유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자신의 책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친구가 연구를 위해 원시 상태의 삶을 유지하는 피그미족과 한동안 함께 생활했는데, 수렵·채집으로 삶을 영위하는 피그미족이 유일하게 길러서 수확을 하는 작물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대마(마리화나)였다고 합니다. 식량이 아니라 마약을 먼저 재배한 거죠. 칼 세이건은 피그미족뿐 아니라 다른 원시 부족도 이런 방식으로 농업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마약 재배가 농업의 발견, 나아가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즉, 안정적으로 마약을 공급하기 위해 최초의 농경이 시작되었고, 그러다 ‘식량도 재배해볼까?’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죠.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칼 세이건은 대마초 옹호론자였습니다. 당연히 직접 피우기도 했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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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경이 되면 큰 문명이 생기고, 도시도 생기고, 문자도 생깁니다. 문자가 생긴 시점부터 바로 마약에 대한 기록이 발견됩니다. 즉, 그 이전부터 마약이 존재했다는 뜻이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양귀비, 인더스와 황허 문명에서는 대마, 마야 문명에서는 코카잎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마약식물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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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테르’라는 여신이 있습니다. 대지와 풍요의 상징이죠. 대지와 풍요는 곧 농업을 의미하니까, 농경사회에서 꽤 끗발 날리는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데메테르의 상징 중 하나가 양귀비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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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은 양귀비의 즙을 가공해 만든 마약입니다. 화학적인 과정이 없으니 당시에도 쉽게 만들 수 있었죠. 그리스신화 속에서는 아편을 데메테르 여신이 가져왔다고 되어 있는데, 대지와 농업의 여신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선물이 아편이라니, 칼 세이건의 추측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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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적 원리와 영적인 선이라…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가 키케온을 마시고 본 환각이라는 강력한 의심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철학이 갑자기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뭔가 큰 배신감이 드네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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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호메로스Homerēs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도 마약이 등장합니다. 보통 술에 아편을 섞은 형태로 나오는데,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걸린 이들에게 안식을 주고, 부상의 고통을 덜어주죠. 재밌는 건, 작품 속에서 아편이 간혹 ‘망각의 약’으로도 사용된다는 겁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헬레네는 병사들의 상처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술에 특별한 약(아편)을 첨가하는데, 그 술을 마신 이들은 부모와 형제를 잃은 슬픔을 망각해버립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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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Rome>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심심하면 마리화나를 피웁니다. 이를 담배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담배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문화로 유럽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에 다녀온 이후에 들어옵니다. 즉, 로마엔 담배가 없었죠.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도 마리화나를 즐겼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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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로마 시내에만 800개 가까운 아편가게들이 있었고, 로마 당국의 총 세입 중 15퍼센트가 아편에서 나왔다고 하니 그야말로 엄청난 수요였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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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과 마리화나 외에도 벨라돈나, 사리풀, 독미나리, 아코닛, <해리포터>에도 등장하는 맨드레이크 같은 독성식물들, 그 외 각종 환각 버섯이 이 시대에 마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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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Assassin, 암살자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사신حشّاشين’이라는 이슬람 단어에서 왔는데,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사신은 시아파 계열의 이스마일파 중 한 분파로, 극단적인 성향의 과격한 소수파였습니다. 이들은 지금의 테러 집단이 그러하듯 소수정예 암살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42-43/374p)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도 "나는 마녀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 모두를 불태울 것이다"라고 공공연하게 예고 살인을 천명하고 다녔습니다. 장 칼뱅Jean Calvin도 "모든 마녀는 말살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죠. 종교를 바로 세우자는 루터와 칼뱅 다 좋은데, 이 사람들이 한 일을 자세히 보면 다 미치광이 정신병자였습니다. 그래서 구교가 안정적으로 지배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마녀사냥이 별로 없었지만, 신교와 구교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독일, 스위스, 프랑스, 폴란드,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신교든 구교든 신나서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여댄 거죠.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마녀사냥으로 처형당한 사람은 약 5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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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교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시대에 마약은 다시 활성화됩니다. 르네상스의 모토가 ‘그리스·로마시대로의 회귀’이다 보니, 마약에 대한 인식도 중세의 부정적인 입장에서 과거의 중립적인 입장으로 돌아간 거죠. 많은 분이 르네상스를 이성의 시대로 생각하지만, 사실 르네상스는 이성의 시대라기보다는 반중세의 시대였습니다. 중세적이지 않은 모든 것, 가령 환상과 미신 같은 것도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죠. 그 반중세적인 것들 중 하나가 이성과 과학이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의 이성의 시대는 17세기가 되어서야 성립됩니다. 그래서 17세기를 과학혁명의 시대라고 부르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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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후를 배경으로 한 서양 시대극을 보면 귀족이나 왕족들이 향수병 비슷하게 생긴 병에 담긴 액체를 손수건에 적셔서 흡입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게 바로 로더넘, 아편팅크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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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커피보다 차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유일한 서유럽 국가입니다. 그러나 영국도 17세기 초까지는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커피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런던에만 3,000여 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죠.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유럽 커피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아라비아반도의 커피를 사들여 유럽에 판매했죠. 하지만 커피 수요가 점점 증가하자, 네덜란드는 커피 원두를 빼돌려 자신의 식민지였던 자바섬과 실론섬에서 직접 재배합니다. 그 결과 가격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시장을 압도하게 되죠.
결국 영국 동인도 회사는 주력 상품을 커피에서 홍차로 바꿀 수밖에 없었고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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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한국의 속담에 따라,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 지역의 논밭을 싹 밀어버리고 양귀비 밭을 조성합니다. 이 조치로 ‘벵골 대기근’ 때 300만 명이 넘는 인도인이 아사하게 되지만, 영국 입장에서는 알 게 뭔가요. 당장 그해에만 청나라에 판 아편 수입액이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요.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이겼기에 망정이지, 졌으면 지금 독일이 지고 있는 원죄는 영국이 지고 있을 겁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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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편 무역은 19세기 후반까지 100년 넘게 세계에서 단일 상품으로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됩니다. ‘불법’이었는데 말이죠. 거대한 국제범죄를 당시 최강국가가 체계적으로 후원한 셈입니다. 물론 네덜란드, 일본 같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숟가락을 얹었고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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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에는 모르핀이 개발됩니다.
모르핀은 아편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의사들은 주사기와 결합한 이 모르핀을 마구잡이로 투여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일단 모르핀부터 맞고 시작하는 거죠.
특히 미국의 남북전쟁, 오스트리아-프로이센전쟁, 프랑스-프로이센전쟁에서 병사들에게 막무가내로 모르핀을 투여합니다.
이 전쟁에 참여한 대부분의 병사가 전쟁 후 심각한 중독 현상에 시달리게 되죠. 군인 중독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핀중독을 ‘군인 질병soldier’s disease’이라고 불렀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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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이 제시하는 마약의 기준을 쭉 읽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되는데, 약물의 위험성과 의존성이죠. 그 기준에 따라 아편, 엑스터시, 헤로인, 대마초, 히로뽕, 코카인 등이 마약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알코올(술), 니코틴(담배), 카페인(커피)은 마약에서 제외됐죠. 법적으로는요. 이게 과연 합당한 걸까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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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건국의 아버지6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제지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공장에서는 종이를 대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문은 대마 종이에 인쇄되었죠. 미국의 건국 정신은 그야말로 대마와 함께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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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는 해외에서는 주로 마리화나로 불립니다.
마리화나marihuana란 이름은 스페인어 여성 이름 중 가장 흔하다는 ‘마리아Maria’와 ‘후아나Juana’를 합쳐 만든 합성어죠. 이것을 하면 ‘여성과의 성관계처럼 좋다’ 혹은 ‘여성의 품처럼 아늑하다’라는 뜻에서 시작된 단어로 보입니다. 단어의 시작부터가 은어인 거죠.
마리아의 ‘M’과 후아나의 ‘J’를 따서 ‘MJ’라 부르기도 하고, 영어권 국가에서는 이를 다시 은어화해서 ‘메리제인Mary Jan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팝 가사에서 메리제인이라는 여성을 찬양하거나 그리워하는 경우, 대마초를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검열 들어오면, "이거 사랑 노랜데, 왜? 뭐?" 이러는 거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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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라는 표현이 익숙해서 흔히 사용하지만, 공식 명칭은 ‘칸나비스cannabis’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canvas’와 철자가 비슷하죠? 캔버스라는 명칭이 칸나비스에서 딴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초기 캔버스는 대마로 만들어졌죠. 마리화나보다 칸나비스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만 사회적 금기가 늘 그렇듯 정식 명칭보다는 은어가 많이 쓰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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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까지 진통제와 마취제, 수면제로 탁월한 효과를 보여 널리 사용됐습니다. 당시에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길러졌지만, 현재는 전 세계에 유통되는 양귀비의 80퍼센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 외 나머지는 동남아시아 라오스, 미얀마에 위치한 ‘황금 삼각지대Golden Triangle’에서 합법 혹은 불법으로 재배됩니다. 키우기 어려운 식물은 아니어서 국내에서도 매년 100여 명이 텃밭에서 몰래 키우다가 검거되곤 하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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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에게 조금 전 놓은 수들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왜 자기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녀에게 이해시키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설명을 해 봤자 그녀에게 이 비극적인 일은 훨씬 더 잔인한 일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수로 맞이하게 된 죽음은 그녀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논리적 단계인 냉철한 이성의 산물로 맞이하게 된 죽음은 그녀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그들 모두가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모두 왕의 말들> (234/718p)

나무 조각 말고는 걸려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게임이었다면 그는 상대방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며 거기에서 게임을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걸고 게임을 하고 있는 지금은 가슴 아리고 거둘 수 없는 의심이 그림자를 드리워 그 결과를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모든 왕의 말들> (237-238/7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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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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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SF를 처음 공부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초광속 항법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글이다. 어떤 물질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우주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물리학자들과 작가들은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보통은 그 기술 중 하나를 채택해서 소설에 쓰곤 하지만, 초광속 항법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을 다루어보고 싶었다.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선을 기다리는 안나의 이야기는 ‘가짜 버스 정류장’에 대한 기사를 보고 떠올렸다. 독일에 있는 이 정류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데, 요양원 노인들이 시설을 나와 길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해가 저물고 노인들을 데려가는 것은 버스가 아닌 시설 직원이다.
(337-338, 작가의 말)

나는 사람이 물질에 기반을 둔 존재라는 것에 항상 흥미를 느꼈다. 화학을 전공했던 이유 중 상당 부분도 그 때문이었다. 감정의 물질성,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전환을 자주 생각하곤 한다. 사람들이 어떤 물질을 소유하고 그것으로부터 정서적 욕구를 충족한다면, 어쩌면 감정 그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된 글이 「감정의 물성」이다. 나중에는 이 주제로 긴 글도 써보려고 한다.
(338p, 작가의 말)

「스펙트럼」을 쓰던 시기에는 기술로 인해 변형된 인간의 감각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 교과서에는 늘 지식의 발견과 더불어 그 지식을 발견 가능하게 했던 도구, 장치, 실험 설계가 함께 제시된다. 우리가 여러 가지 도구들–망원경과 현미경, 현대 실험실의 주축인 실험장비들–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탐구하고 확장해왔는지를 생각하면 흥미롭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감각에만 익숙했던 한 과학자가,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세계와 타인을 만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가 궁금했다.
(349p, 작가의 말)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나누어 쓰는 기획 단편선에 참여했던 작품이다. 처음에 별 고민 없이 유토피아를 쓰겠다고 했다가, 유토피아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서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이 글을 쓰며 그런 질문을 거듭했다. 여전히 답은 내리지 못했지만, 계속 그 답을 찾아보고 싶다.
(339p, 작가의 말)

「공생 가설」은 가장 즐겁게 썼던 글이다. SF에서 인간이 외계인을 만나면 보통은 큰 갈등이 생기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공생 관계를 맺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339-340p, 작가의 말)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소설집에 수록하기 위해 새로 쓴 단편이다. 심각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편 실었으니 산뜻한 글을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글을 쓰던 시기에는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재경은 가상의 한 인물이지만,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쓴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정말로 재경이 심해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340p, 작가의 말)

언젠가 도서관 안에서 책이 분실되면 찾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메모에 ‘관내분실’이라는 제목을 달아둔 채 잊고 있었다. 공모전 마감을 앞두고 메모를 보며 구상한 글이 「관내분실」이다. 인간의 마음을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다는 발상은 SF에서 아주 흔히 쓰이는 소재이지만, 데이터의 분실을 실제 세계에서의 분실과도 연결 지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세상 어딘가 존재하지만 찾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과 같은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337p, 작가의 말)

나는 이모셔널 솔리드의 물건들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 치유 효과를 가진다는 아로마 오일이나 향초처럼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기분에 달린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왜 그런 물건들을 굳이 사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쪽이 나의 주된 의문이었다. 어쨌거나 ‘행복’, ‘침착함’ 같은 감정이 주로 팔리고 있다면 대중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여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도 잘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200p, 감정의 물성)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206p, 감정의 물성)

감정의 물성 제품들의 실체는 놀라웠다. 감정의 물성은 일반적인 생활용품들에 소량의 효능 물질을 섞은 것이었는데, 그 물질이 실제로는 향정신성 약물들과 유사한 새로운 종류의 화합물이었던 것이다. 재차 실시된 안전성 검증 실험에서, 추출된 화합물들은 생쥐의 혈뇌장벽을 쉽게 넘어 중추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208p, 감정의 물성)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214p, 감정의 물성)

은하는 고개를 돌려 공간 속으로 들어온 지민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해석할 수 없었다. 너무 사람 같다고 하던 사람들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지민은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는 죽었다. 여기에 있는 건 엄마가 아니다.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도, 용서를 빌 수도 없다. 모든 것은 끝난 뒤에 덧붙여지는 사족이다.
(270p, 관내분실)

은하는 지민이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은하는 자신의 물건들이 진열된 책장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민은 은하가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271p, 관내분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281p, 관내분실)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특수 캡슐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극도로 높은 중력가속도, 급격한 온도 변화, 외부 압력 변화를 버텨야 했다. 사이보그 그라인딩은 인간이 터널을 지나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체를 개조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을 터널 너머로 보내기 위해 인간 자체를 개조하겠다는 발상은 이 프로젝트가 강력한 비난에 직면한 이유이기도 했다. 우주 저편을 보기 위해서 인간이 본래의 신체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성취일까?
(281p,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심해를 유유자적 유영하는 재경 이모를 상상하는 것은 우주에 있는 이모를 상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쉬웠다. 심해로 내려간 재경 이모. 그건 너무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그려도 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이모는 새로 단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헤엄치겠지. 그러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한심한 일들을 마음껏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가윤은 그곳의 깊은 어둠이 우주와도 닮아 있으리라고, 그래서 이모는 망설임 없이 바닷속으로 떠났으리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가윤은 아직 한 가지가 궁금했다. 이모는, 우주의 저편을 보지 못한 것을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할까?
(313-314p,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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