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은 어떤 주장 A와 그에 반대, 또는 모순되는 주장 B가 있을 때 어느 쪽도 부정하지 않고 통합하여 새로운 주장 C로 진화해 가는 사고 과정을 말한다. 이때 통합과 진화는 직선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일어난다. 나선형은 옆에서 보면 지그재그로 상승하는 운동으로, 위에서 보면 원형의 회전 운동으로 보인다. 요컨대 발전과 복고가 동시에 일어나는 형국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김윤경 저

과거 철학자들이 마주해 왔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문제’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How의 문제’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직면한 문제는 다를지라도, 비즈니스맨은 철학을 배움으로써 자기 행동과 판단을 무의식중에 규정하고 있는 암묵적인 전제를 의식적으로 비판하고 고찰하는 지적 태도와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어서 일을 했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 설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열쇠는 ‘교양’에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현실로부터 과제를 선택해 끌어내려면 반드시 상식을 상대화해서 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의심하는 행위에는 사실 상당한 비용이 든다.
반면 혁신을 실행하려면 상식에 대한 의문이 필요하므로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 역설을 푸는 열쇠는 하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눈앞의 세계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객관적으로 고찰해 보자.
그럴 때 떠오르는 보편성의 부재, 거기에 그야말로 마땅히 의심해 볼 만한 상식이 존재한다.
그 상식을 교양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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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일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 그것은 나의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개인적인 운명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고, 다만 페스트라는 집단적인 역사적 사건과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갖가지 감정만이 존재했다.

물결이 높아져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해초와 소금 냄새가 올라왔다. 먼지로 인해 뿌옇게 되고 바다 냄새가 넘쳐흐르는 그 쓸쓸한 도시는 바람의 외침이 윙윙거리는 가운데 마치 불행한 하나의 섬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페스트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보면 형무소장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유죄였으며, 아마 처음으로 절대적인 정의가 감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처럼 외관상으로는 시민들에게 포위된 상태로서의 연대책임을 강요하고 있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을 파괴하고 개개인을 고독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페스트는 모든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상당수의 실업자를 내게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간부층의 충원 대상은 안 되었지만, 막일에 관한 한 그들 때문에 일이 쉬워졌다.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늘 볼 수 있었고, 일은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서 임금을 지불하게 마련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요컨대 그 시기에 그들에게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다. 페스트의 2단계에서는 기억력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그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이야기지만, 그 얼굴에서 살이 없어져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은 자기들의 사랑에 있어서 이제는 망령밖에는 상대할 수 없다는 데 슬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후 그들은 추억을 통해서 간직되어온 최소의 얼굴빛마저 잊어버림으로써 그 망령의 살이 더욱 깎이고 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길고 긴 이별을 치르던 끝에 그들은 마침내 둘이서 누리던 그 무르녹은 정분도 상상할 수 없게 되었으며, 또 언제든지 손을 얹을 수 있던 상대가 어떻게 자기 곁에 살고 있었는지도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현재가 되어 있었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가는 눈을 뜨고 잠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들이 실제로 그 운명에서 벗어나는 건 이따금 밤중에 겉으론 아물어 보이던 상처가 갑작스레 되살아나는 때였다.

우리 모두는 시의 문에서 울리는 총소리나 우리의 삶 또는 죽음을 구별하는 고무 도장 소리 한가운데서, 화재와 카드, 공포와 절차 속에서, 굴욕적이지만 등록된 죽음을 예약당한 채 무시무시한 연기와 구급차의 침착한 사이렌 소리 속에서, 우리는 똑같은 유배의 빵으로 요기를 하며, 무의식중에 어처구니없는 똑같은 재회와 평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건만 무용지물이 되어 지니고 다니기에만 무거웠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를 잃어 마치 죄악이나 유죄판결과도 같이 불모의 존재였다.

그 사랑은 이미 장래가 없는 인내와 좌절된 기대에 불과했다.

그것은 끝이 없는 동시에 착각도 없는 똑같은 체념과 똑같은 인내심이었다.

그래서 리외도 거기에 동의하면서, 다만 별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자기가 곁에 있으면 아내가 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아내는 정말 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고, 그랑의 물음에 대해서도 피하려는 듯 마지못해 대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심약해진 자신을 보고 리외는 자기가 얼마나 피곤한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의 감수성은 걷잡을 수 없었다. 대개의 경우는 엉겨서 굳어지고 메말라 있던 감수성이 때때로 풀어져서 억제할 수 없는 감정 속에 리외를 몰아넣곤 했다.
그의 유일한 방어는 그 경화(硬化) 상태 속으로 피신하여 자신의 내부에 형성되고 있는 그 매듭을 도로 단단히 졸라맸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견디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 피로 때문에 가지고 있던 환상마저도 빼앗겨버렸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기간에 자기가 맡은 역할은 이미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다. 발견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그리고 선고를 내리고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내라는 여자들은 그의 손목을 쥐고 울고불고했다. "선생님, 저 사람 좀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는 살려주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를 명령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증오심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결국 페스트는 그에게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페스트는 고독하면서도 고독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공범자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하나의 공범자이며, 그것도 기꺼이 그러기를 원하는 공범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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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 다 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고용주들에게 이 고다자 임계장들은 시급만 계산해 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없는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석 줄짜리 구인 광고를 내면 일자리를 원하는 노년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고용주는이 중에서 "고분고분한 자, 뼈와 근육이 튼튼한 자"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7p)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15p)

모든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단기 비정규직이었다.
"급여는 상담 후 결정" 이라 적은 곳은 최저임금 이하로 준다는뜻이었다. 화물차 운전직은 구인은 많았지만 경력이 필요했다.
택배 기사, 대리 운전, 오토바이 음식 배달, 주방 설거지와 김밥 말기, 두루치기, 회 뜨기, 밤 까기, 북어포 다듬기 등은 할 수있을 것 같았지만 대부분 최소 1년 이상의 경력자를 원했다.
"왕초보 환영" 이라는 곳은 주로 보험 관련 직종들이었다. 내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단순 노무직은 모두 "근골격이 좋으신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18p)

"버스를 운행하려면 운행 노선 1개당 배차원과 탁송원, 이렇게 최소 두 명이 필요해. 우리 회사는 운행 노선이 한 개뿐이지만 경력이 30년 넘는 나도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 근데당신네 회사는 운행 노선이 세 개 아니오? 아무리 적게 잡아도세 명이 필요한 건데 당신 같은 초짜가 배차랑 탁송까지 다 한다고? 어림없지." (25p)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저기 공동 화장실 가서 씻어요.
그 밥값으로는 수도 요금도 안 나와요. 배차 계장들이 무슨 밥을 저리도 많이 먹어 대는지 원." 그리고 숨기는 기색 없이 잔반을 상에 올렸다. 4000원짜리 밥을 먹는 몇 명의 군소 버스 회사 배차원들은 습관처럼 서로에게 물었다.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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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악은 거의 무지에서 비롯되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이며,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소 무식한 법이고, 그것은 곧 미덕 또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구원될 수 없는 악덕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사람을 죽이는 권리를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넋은 맹목적이며, 가능한 한 총명을 갖추지 않고서는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영웅적인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랑이 보건대의 서기 비슷한 역할을 맡기로 작정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랑이야말로 리외나 타루 이상으로 그러한 보건대의 일을 원활하게 하고 있던, 그 조용한 미덕의 사실상의 대표자였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그렇다, 인간이 이른바 영웅이라는 것의 전례와 본보기를 세워 놓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 한 사람 그런 존재가 꼭 필요하다면, 필자는 바로 이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영웅,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다소의 선량한 마음과 약간의 고운 마음씨와 표면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이상밖에 없는 그 영웅을 여기에 내놓는 바이다.

이 침묵, 이 색채와 움직임의 죽음은 재화에 의한 침묵과 죽음인 동시에 여름의 침묵과 죽음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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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의 목소리가 무디게 들려왔다. "5월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어느 우아한 여인이 훌륭한 밤색 암말을 타고 불로뉴 숲의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자 고민하는 도시의 분명치 않은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랑은 종잇장을 내려놓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눈을 치떴다.

황혼은 마치 회색 물결처럼 방 안으로 침노하고 있었고, 황혼의 장밋빛은 유리창에 반사되고 있었으며, 식탁의 대리석은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무기력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랑베르는 쓸쓸한 실내 한가운데서 짝을 잃은 유령처럼 보였다. 그래서 리외는 지금이 바로 그의 체념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도시에 감금된 모든 포로가 허탈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으므로 그 해방을 재촉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인가 해야만 했다. 리외는 돌아섰다.

그렇다, 그 시간에는 모두 잠을 잔다. 그리고 또 그 시간은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지없이 소유하고 싶다거나 또는 완전히 독점하기 위해서는 다시 만나는 날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깨어나지 않을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에 빠뜨려두고 싶은 것이 애처로운 애정의 거창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 첫더위가 매주 7백에 가까운 숫자를 보여준 희생자 수의 쏜살같은 상승과 일치했기 때문에 일종의 절망감이 우리 시를 휘어잡았다.

봄은 이미 시들어버렸고 가는 곳마다 잇달아 피어난 몇천 가지 꽃들 속에 기민맥진하여, 이제는 페스트와 더위라는 이중의 압력 밑에 차차로 짓눌려 오그라들는 것이 눈에 띄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타루는 페스트에 휩쓸린 우리 도시의 한 날에 대해 꽤 세세한 묘사를 꾀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이번 여름 우리 시민들의 관심사와 생활에 대한 하나의 정확한 생각을 알 수가 있었다. ‘주정꾼들 이외에는 아무도 웃는 사람이라고는 없다’고 타루는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 웃는다.’ 그러고는 그날의 묘사가 시작되어 있었다.

그 시간이 바로 아무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한길에 나가보는 때이다. 대부분은 자기네들의 사치를 늘어놓음으로써 페스트를 털어버리는 것을 일삼고 있었다.

질병이 확대되면 도덕도 역시 허물어질 것이다. 우리는 무덤 근처에서 벌어진 그 밀라노의 사투르누스 축제를 다시 보게 될 판이다.

2시경이면 이 도시는 차츰 한산해진다. 그 시각이야말로 침묵과 먼지와 햇볕과 페스트가 거리에서 서로 만나는 순간이다. 잿빛의 커다란 집들을 타고 끊임없이 더위는 달음질친다. 기나긴 감금의 시간은 인구의 출입이 많아 이 도시에 벌겋게 불이 붙는 시끄러운 저녁때가 되어야 끝난다.

그리고 거리는 7월의 붉은 하늘 아래 쌍쌍의 남녀들과 소음으로 가득 채워져 숨 가쁜 밤을 향해서 표류한다.

모든 사람은 그와 반대로 잘 알 수 없는 그 무엇, 아마도 신보다 더 긴요하게 여겨지는 그 무엇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낮동안 사람들의 얼굴에 그려져 있던 그 모든 고뇌가 스르르 풀어져서 뜨겁고 먼지투성이인 황혼 속에서 일종의 흉포한 흥분, 모든 민중을 열로 들뜨게 하는 서투른 자유에 싸이고 만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다. 그래, 어쨌단 말이냐! 나 같은 인간에게 죽음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근면한 일생이 그녀의 얼굴에 새겨놓은 침묵의 그 모든 것이 그때면 생기를 띠는 듯싶었다.

"이 세상의 모든 병이 그렇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중에서 진실인 것은 페스트에 있어서도 역시 진실입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될 수 있을 테죠. 그러나 병이 가져오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서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특이하게 보이지 않게 된 지 벌써 오래입니다."

의사는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않은 채 이미 대답을 했으며, 만약 자기가 전능의 신을 믿는다면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을 단념하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파늘루까지도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외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질서는 죽음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이상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우러러볼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그런 계산은 무의미합니다. 다 아시는 것 아닙니까. 백 년 전에 페르시아의 어느 도시에 페스트가 유행해서 모든 시민이 죽었지만, 시체를 씻기는 사람만은 살아남았답니다. 매일같이 자기 일을 멈추지 않고 해왔는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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