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중간이라는 것은 없다. 스캔들도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을 혐오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든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감히 신에 대한 증오를 택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 하고 마침내 파늘루는 결론을 짓겠다는 어조로 말했다. "신을 사랑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적인 포기와 자기 인격의 멸시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만이 어린애의 고통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랑만이 그것을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저 바라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자 하는 교훈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보기에는 잔인하지만 신이 보기에는 결정결정적인 신앙인데, 우리는 거기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무서운 이미지와 어깨를 겨누어야만 합니다. 그 가운데서 모든 게 서로 융합하고 동등해져 정의가 아닌 것에서 진리가 솟아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 남부 지방의 수많은 성당에서는 페스트로 쓰러진 사람들이 벌써 수세기 전부터 내진(內陣)에 깔아놓은 돌 밑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그들의 무덤 위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이 선포하는 정신은 어린애들의 재도 한몫 낀 그 죽음의 재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성직자에겐 친구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야 하니까요."
열이 높아졌다. 기침 소리는 점점 더 쇠졌고, 온종일 환자는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신부는 마침내 저녁에 그의 호흡을 틀어막고 있던 그 솜방망이를 토해냈다. 그것은 새빨간 것이었다. 그런 발열 상태에서도 여전히 파늘루는 무관심한 눈빛을 유지했다. 이튿날 아침, 침대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죽어 있는 그의 눈에서는 아무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카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병명 미상.’
그러나 페스트는 이제 그 정점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기의 살인 일과를 착실히 관리하는 정확성과 규칙성을 과시했다.
박쥐들이 천막 위에서 푸드덕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전차 한 대가 담 너머에서 선로 위를 삐걱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붉은 머리털의 올빼미 씨하고 결말을 지어보고 싶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는 이른바 정치 운동을 하게 됐어요. 나는 결코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뿐이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라는 기반 위에 서 있으니, 그것과 투쟁함으로써 살인 행위와 싸우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형 집행을 구경한 그날까지 (그것은 헝가리에서의 일이었어요) 어린애였던 나를 휘어잡은 그 현기증이 어른이 된 나의 눈을 캄캄하게 만들었어요.
수형자가 두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가슴에 총부리가 닿는 것을 아시나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수들이 심장 근처에 집중사격을 가하면 저마다 굵직한 탄환들이 한데 뭉쳐서 주먹이라도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는 걸 아시나요?
인간의 잠이라는 것은 페스트 환자들이 생각하는 생명보다 더 신성한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악취미가 필요한데, 취미란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무렵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악취미를 버릴 수가 없었고,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늘 그 생각만 하고 지냈단 말입니다.
그때 나는 그야말로 내가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페스트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적은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몇천 명 인간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러한 죽음을 가져오게 한 그런 행위나 원칙들을 선(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조차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 붉은 머리털을 한 올빼미, 페스트균에 전염된 더러운 입이 쇠사슬에 매인 어떤 남자를 향해서 너는 죽는다고 선고를 내려 그로 하여금 여러 날 밤을 고뇌 속에서 뜬눈으로 보내며 살해당할 그날을 기다리게 해놓은 다음에, 결국 그가 죽을 절차를 마련하는 그 더러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할 일은 가슴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그래도 최소한 나로서는 그 진저리가 나는 도살 행위에 대해 단 하나라도, 오직 하나라도 논리를 부여하는 것은 절대로 거부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으며, 우리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날도 그 평화를 되찾아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누구에게나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꼭 해나가며,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편하게 만들어주며, 비록 인간을 구원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되도록 해를 덜 끼치고 때로는 약간의 선을 행하도록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그렇습니다, 리외,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피고 있어야지, 자칫 방심하다간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밖의 것, 즉 건강, 완전함,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훌륭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의 긴장을 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결코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해선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피곤해하지요.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다소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안 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해방구가 없는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정도를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화와 희생자가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 자신이 재화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에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 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큰 야심은 아닙니다.
"암요. 오늘날에 내가 알고 싶은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신의 도움 없이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의사가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덕성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리외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슬픔은 리외 자신의 슬픔이었고, 그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같이 나누고 있는 고통과 마주 섰을 때 느끼는 견딜 수 없는 분노였다.
그래서 리외가 읽었다. "5월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어떤 날씬한 여인이 눈부신 밤색 말에 몸을 싣고, 꽃이 만발한 사이를 뚫고 숲의 지름길을 달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과거 생활의 온갖 편의가 대번에 회복될 수는 없으며, 파괴하기란 건설하기보다 훨씬 쉽다는 생각에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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