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문을 타넘어 옆집 지붕 위로 뛰어내린다. 그러곤 앞만 보고 달렸다. 발밑으로 기왓장 부서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두두두둑. 형사들은 열심히 쫓아오고 있다. 야이 씨팔새끼들아, 내가 니네 형 죽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죽어라고 쫓아와? 좆같은 새끼들아. 그렇게 속으로 욕을 해대면서도 내 발은 계속 지붕에서 지붕으로 넘어다녔다. 다행히 타넘을 지붕은 얼마든지 있었다. 니미 씨팔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9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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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가 강조되는 시대다. 농장동물에게도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 그 시작은 일단 감금틀, 즉 스톨과 배터리 케이지 철폐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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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은 나무 유전자의 상당 부분이 연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계곡을 타고 숲으로 돌아온 연어를 곰이 잡아먹고, 그 곰의 배설물로 나무와 풀이 자란다. 곰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연어들은 숲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계곡 물에서 알을 낳는다. 그리고 생을 다한다. 다시 생명이 태어난다. 순환이 계속된다. 연어, 나무, 곰, 숲, 강, 바다는 ‘하나’인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12

자세히 보니, 커다란 연어의 배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형상이었다. 사람은 아기가 아닌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자연의 배 속에서 태어나는 자녀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Oneness’을 믿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마을 입구에 나무로 만든 작은 게시판이 있고 거기에는 ‘이삭isaak’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존경, 존중respect을 뜻하는 원주민 말이라고 했다.

"이삭, 이삭…."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에서 이 말이 맴돌았다. 존경, 그리고 존중.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13

돼지고기에서 돼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신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도마 위에 놓인 고기는 생명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출산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두 장면은 죽음(죽임)과 생명(살림)으로 충돌한다. 그 충돌에서 발생하는 낯선 느낌을 담고 싶었다. 출산 장면은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그들은 어차피 도살될 운명, 그러니까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생명들이다. 이 땅의 농장동물들이 짊어진 무거운 수레바퀴 같은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18

도입부에서는 도마 위의 붉은 덩어리를 ‘식재료’, ‘아이를 위한 반찬’, ‘동물성 단백질’로 바라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한때 나처럼 따뜻한 숨을 쉬던 한 생명의 삶과 죽음을 본다. 이 시선의 차이를 만든 것은 십순이, 돈수, 그리고 돼지를 찾아 떠난 몇 년간의 여정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20

육식을 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아니, 완전히 육식을 금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내 몸이 썩어 풀을 자라게 하고 그 풀을 짐승이 먹어 살찐 만큼만 육식을 하겠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26

자폐증을 극복하고 오히려 자폐인의 민감한 감각을 활용하여 동물학자가 될 수 있었던 템플 그랜딘은 ‘동물복지 도축장’을 설계했다. ‘소처럼 생각하는 여자’라 불릴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그녀가 왜 도축장을 설계했을까. 지금 당장 도축장을 문 닫게 할 수 없다면, 동물에게 공포와 고통을 최대한 덜 주는 환경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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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말은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밀림에서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사이 차츰 밀림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주인 없는 푸른 세계에 매료되어 마음속에 간직해 오던 증오심을 잊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82

다시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난가리트사 강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시간이 아마존 유역 어딘가로 달아나 버린 것 같은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무지막지한 문명이 서쪽으로부터 아마존의 거대한 몸집을 파헤치며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기계들이 길을 낼 때마다 수아르 족은 그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들은 이미 한곳에서 3년 동안 머물던 관습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3년이란 기간은 자연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였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들은 오두막을 철거하고 죽은 영혼들의 유골을 챙겨 여전히 처녀림을 간직하고 있는 은밀한 지역을 찾아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98

난가리트사 강 유역으로 이주민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이주 정책 초기와 달리 목축지와 임업지를 불하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일정한 목표도 없이 오로지 일확천금을 노리고 찾아 든 노다지꾼이나 술을 들여와 의지가 약한 이주민들을 타락시키는 사람들도 많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99

수아르 족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생활했기에 수아르 족이나 다름없던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만일 그가 백인인 노다지꾼에게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준 다음 독화살로 끝장냈더라면 죽은 백인의 얼굴에 그 용기가 남아 누시뇨가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지만 총을 맞았기에 백인의 얼굴이 놀라움과 고통에 일그러져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누시뇨의 영혼은 눈이 먼 앵무새로 날아다니다 나뭇가지에 부딪히거나 잠이 든 보아뱀의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어서 그들의 사냥을 방해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과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친구 누시뇨에게 영원한 불행을 가져다주고 말았던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06

밀림은 새로이 정착한 이주민이나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나워지는 것은 짐승들이었다. 조그만 평지를 얻고자 무차별하게 벌목을 해대는 바람에 보금자리를 잃은 매가 노새를 물어뜯고 번식기에 접어든 멧돼지가 사나운 맹수로 돌변하기도 했다.

코카의 원전 회사에서 근무하는 양키들까지 짐승들을 괴롭히는 것에 한몫 거들었다. 그들은 마치 큰 전투라도 치를 듯한 화기로 무장한 채 떠들썩하게 나타나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가차 없이 갈겨 댔다. 특히 살쾡이 사냥을 나설 때면 어미건 새끼건 가릴 것 없이 사살 ─ 무려 열 마리 이상을 죽인 적도 있었다 ─ 한 뒤에 그 가죽을 벗겨 말뚝에 걸어 놓고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짐승의 가죽은 누군가 그것을 강으로 던지기 전까지 그대로 썩어 갔고, 그사이 살아남은 살쾡이들은 마치 보복이나 하듯 황소들의 내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09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 것이 없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14

신부의 무릎으로 떨어진 책은 성 프란체스코의 전기였다. 그는 마치 어설픈 좀도둑이 된 기분을 느끼면서 슬쩍 페이지를 훔쳐보았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 한 단어 한 단어를 조합하며 책장을 들여다보다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기분에 빠져 들었고,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16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책 한 권 갖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우기를 보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고독이라는 짐승에게 잡혀 있음을 절감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쓸쓸한 강당에 찾아와서 하고 싶은 말을 몽땅 내뱉은 뒤에 유유히 사라지는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짐승 같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21

그는 기하학 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과연 그 책이 머리를 싸매고 들여다볼 만한 책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그 책 속에서 아주 긴 문장 하나를 기억했는데, 그것은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은 직각의 맞은편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따금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혼자 중얼거리게 되는 말이자 나중에는 엘 이딜리오 주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말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기이한 욕설이나 주문처럼 들렸던 것이다. 역사에 관한 책은 마치 거짓말을 꾸며 놓은 것 같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30

그는 기하학 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과연 그 책이 머리를 싸매고 들여다볼 만한 책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그 책 속에서 아주 긴 문장 하나를 기억했는데, 그것은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은 직각의 맞은편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따금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혼자 중얼거리게 되는 말이자 나중에는 엘 이딜리오 주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말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기이한 욕설이나 주문처럼 들렸던 것이다. 역사에 관한 책은 마치 거짓말을 꾸며 놓은 것 같았다. 팔꿈치까지 올라가는 긴 장갑과 곡예사처럼 착 달라붙은 바지 차림에 잘 말려 올린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끼는 그런 연약한 인물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런 자들은 파리 한 마리도 죽일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역사 이야기도 그가 좋아하는 책에서 제외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31

노인은 잠이 없는 편이었다. 다섯 시간의 수면과 두 시간 정도의 낮잠 외에 나머지 시간은 주로 소설을 읽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비를 찾거나 무대가 되는 곳을 상상하며 보냈는데, 파리니 런던이니 제네바니 하는 지명이 나오면 그 도시들을 상상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34

노인은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는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97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31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그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강가에 앉아 있었다. 보아뱀의 현란한 색깔로 온몸이 치장된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 그는 강가에 앉은 채 차츰차츰 밀려오는 환각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그의 눈앞에 펼쳐진 허공과 숲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깊은 강물 속과 고요한 수면 위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형태이자 동시에 모든 형태가 합쳐진 듯한 그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환각 상태에 있는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정지할 수 없을 만큼 쉴 새 없이 뒤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잉꼬로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입을 쫙 벌린 채 허공으로 솟아오르면서 달을 삼키는 금강앵무새메기로 바뀌었고, 금강앵무새메기로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물 위로 떨어지면서 인간을 향해 사납게 달려드는 수염수리매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딱히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떤 것으로 변하든 두 눈동자만큼은 노란빛을 띠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모습을 드러낸 수아르 족 주술사가 기력이 떨어진 그의 몸에 차가운 재를 바르며 입을 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64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74

일순 노란빛을 띤 두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던 노란빛을 띤 두 눈동자가 차츰 멀어지며 긴 초록색 지평선으로 빨려 들어가자,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 새들이 안락함과 충만함이 깃든 메시지를 전하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노란빛을 띤 두 눈동자가 먹구름 밑에서 다시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비가 되어 온갖 나뭇가지와 칡넝쿨로 뒤얽힌 밀림 위에 떨어졌고, 동시에 밀림을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노란 혀를 날름거리는 화마를 보는 순간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다. 악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설치류들이 그의 혀를 물어뜯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아다니는 실뱀들이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그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가고 싶었다. 벽에 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 곁에 머물고 싶었다. 화마에 휩싸인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나타난 노란빛을 띤 두 눈동자가 길을 막았다. 노란빛을 띤 두 눈동자는 그가 누워 있는 카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카누가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니 실제로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노인은 숨을 죽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66

노인은 상처 입은 수컷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컷은 눈꺼풀조차 들어 올릴 힘도 없는지 인간의 손길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고통스런 짐승의 최후를 반기는 것은 늘 그렇듯 흰개미들이었다. 노인은 수컷의 가슴팍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며 중얼거렸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60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지닌 짐승의 자태는 굶어서 야위긴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도저히 인간의 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73

루이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의 북부 오바예에서 출생했다. 그는 피노체트 군사 정권하에서 반독재 반체제 운동에 주도적으로 활동하다 수감되었으나 국제 사면 위원회의 도움으로 석방된 후 망명길에 올랐고, 주변국인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에서 연극 단체를 이끌며 유네스코 기자로 활동하다 1980년부터 독일에 정착했다. 지금은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77

그는 소설의 문체나 구조보다는 변덕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장르의 변화에 역점을 두는데, 실제로 그가 모색한 소설 장르의 실험은 짧은 기간에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리얼리즘에 마술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연애 소설 읽는 노인』(1989), 최초의 환경 소설로 평가받는 『지구 끝의 사람들』(1994), 역시 환경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동화 『어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1996), 자전적 여행 소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1995), 본격적인 흑색 소설에 추리 기법을 담고 있는 『귀향』(1994), 「감상적 킬러의 고백」(1996), 「악어」(1997)가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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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당나귀 배처럼 불룩한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 있고, 밀림을 휩싸고 도는 끈끈하고 칙칙한 공기가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폭풍우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미 우기에 접어든 날씨였다. 사위가 잔뜩 흐린 가운데 어디선가 불어 닥친 사나운 바람이 읍사무소 앞을 장식한 바나나나무를 흔들어 대며 땅에 떨어진 잎사귀들을 휩쓸어 갔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3

그들은 하나같이 추기경이 걸치는 가운 모양의 보드라운 보랏빛 융단 위에 가지런히 정렬된 틀니를 끼워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17

그러나 환자들 틈에서 절대자나 다름없는 치과 의사의 욕지거리를 들으면서도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종일 진료소 주위에 앉아 있던 히바로 족 ─ 스페인 정복자들이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붙여 준 별칭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인 인디오 ─ 원주민들로 북미의 아파치들처럼 백인들의 관습에 물들고 타락했다고 해서 같은 원주민인 수아르 족에 의해 쫓겨난 자들이었다. 수아르 족과 히바로 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비밀스런 아마존 유역에 대해 정통한 수아르 족이 콧대가 세고 자부심이 강하다면, 백인들의 누더기 옷을 걸친 떠돌이 히바로 족은 술이나 한잔 얻어먹을까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부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1

노인은 조심스럽게 틀니를 끼우고 혀를 끌끌 차더니 침을 뱉으며 아구아르디엔테가 가득 담긴 술병을 내밀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26

뚱보의 전횡이 심해질수록 주민들은 전임 읍장을 그리워했다. 실제로 뚱보에 비하면 전임 읍장은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임을 받았다. 그는 밀림에선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최선책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따지고 보면 엘 이딜리오에 배가 들어오고 우편집배원과 치과 의사가 정기적으로 들르게 된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노다지꾼들과 말다툼을 벌인 그가 이틀 후에 시체 ─ 밀림용 낫칼에 두개골이 열린 그 몸뚱이의 절반은 이미 개미들이 갉아먹어 형체조차 없었다 ─ 로 발견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38

젠장! 이 모든 게 저 불쌍한 양키 자식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입니다. 아시겠소? 이 가죽들을 잘 보시오. 손바닥만도 못 되는 걸 벗겨서 뭘 어쩌자는 건지! 우기가 들이닥치는데 사냥을 나서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 짓이오? 어린 짐승의 가죽에 뚫린 총구멍을 보시오. 당신은 수아르 족을 의심했지만 정작 욕을 얻어먹을 놈은 그들이 아니라 여기 뒈져 있는 양키 놈이오. 이 빌어먹을 백인은 사냥이 금지된 기간에 사냥을 나섰고, 사냥이 금지된 짐승까지 총으로 쏴 죽였단 말이오. 게다가 나는 수아르 족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53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나는 왜 여태까지 당신이 멋진 탐정이라는 생각을 못했지? 아무튼 영감은 오늘 위대한 뚱보 각하를 벙어리로 만들었소. 뚱보 자식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당했으니 당분간은 민망해서 고개도 들지 못할 거요. 사실 난 진작부터 히바로 족이 그 자식 배에 창이라도 꽂아 주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58

루비쿤도 로아차민은 노인이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자 처음에는 그저 아무거나 가져다주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고통과 불행을 겪다가 결국은 행복하게 되는 내용을 원한다는 노인의 독서 취향을 듣게 되자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과야킬에 있는 서점에 들러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 엔드로 끝나는 소설책을 주시오〉라고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보나마나 그를 주책없는 노인네라고 비웃을 게 틀림없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60

흑인 여자는 그 이유를 묻는 치과 의사의 질문에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와 똑같은 식으로 대답했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호세피나는 치과 의사의 침실 파트너와 문학 비평가라는 두 가지 역할을 번갈아 가며 담당했고, 6개월마다 한 번씩 나름대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다고 생각되는 두 권의 연애 소설을 골랐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61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글을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몰랐다. 그가 쓸 줄 아는 글자라고는 그의 이름이 전부였다. 하지만 선거철에 선거인 명부 같은 공문서에 기입하는 서명 외에 사용할 기회가 없다 보니, 글을 쓴다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고 이제는 그 글 쓰는 방법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 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68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리가 긴 탁자였다. 그것은 그가 난생 처음으로 등에 통증을 느끼던 순간에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절감하고서 가능한 한 의자에 앉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만든 식탁이자 책상이었다. 그는 강가로 난 창문을 통해 푸른 강물을 쳐다보며 그 탁자 위에 음식을 차려 선 채로 먹거나 연애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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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은 산간 지방 출신의 어떤 화가가 그린 젊은 남녀의 인물화였다. 그 속에 있는 남자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였다. 그는 오로지 초상화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다. 반면에 그의 여자인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는 그 당시에 존재했고, 지금도 뇌리에 둥지를 튼 고독의 등에처럼 노인의 기억 속의 한 귀퉁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의상과 장신구 차림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머리에 두른 청색 벨벳 수건과 두 갈래로 나누어 길게 늘어뜨린 뒤에 식물성 기름을 발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머리칼 그리고 귀에 달린 원형의 귀걸이며 목에 두른 여러 개의 띠 모양의 목걸이와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면서 자못 위엄 있게 보였다. 또한 그녀의 조그맣고 붉은 입술은 오타발로 지방풍의 화려한 색실로 자수가 놓인 가슴을 강조하는 블라우스 위에서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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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앞에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난 것은 모든 것을 운명에 내맡기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반쯤 벌거벗은 몸에 얼굴과 머리와 팔을 여러 가지 과즙으로 색칠한 그들은 그곳의 원주민인 수아르 족 인디오들이었다. 두 사람을 보다 못한 인디오들이 동정심을 느낀 나머지 구원의 손길을 뻗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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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두 사람은 사냥하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 폭우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오두막을 짓는 법, 먹을 수 있는 과일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밀림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술을 터득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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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는 두 번째 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녀는 말라리아에 걸려 뼈를 태울 듯한 고열로 신음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순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자신이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용서해도 실패만큼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곳에 남아서 사라진 기억들을 보듬고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저주받은 땅을 증오한 그는 그의 사랑과 꿈을 빼앗아 간 푸른 지옥의 세계에 복수하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아마존 밀림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이다 잿더미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가 밀림을 증오한 만큼이나 밀림을 모르고 있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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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밀림에서 5년을 지내고 나자 그곳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두 개의 이빨이 전해 준 메시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1530 - P85

그들은 축제가 끝나자 나테마를 권했다. 그가 생전 처음 마신 달콤한 그 액체는 야우아스카나무 뿌리를 삶아서 만든 일종의 환각제였다. 이내 의식이 몽롱해진 그는 그 상태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 되어 있는, 저 무한한 녹색 밀림 세계의 일원이 되어 있는, 마치 수아르 족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는 수많은 장신구와 사냥 도구를 몸에 걸친 노련한 사냥꾼이 되어 형체도 크기도 없는, 냄새도 소리도 없는, 오로지 두 개의 노란 눈이 번득이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동물의 발자국을 뒤쫓고 있었다. 결국 X뱀 사건은 그를 밀림의 세계에 머물게 만든 해독할 수 없는 암시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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