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위해서 묶어놓았던 힘을 피어나는 감정 속에서 하나하나 풀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렇다, 추상이 끝나는 대로 새 출발을 해야만 하리라. 그리고 재수가 조금 좋으면……. 그런데 마침 그때 그는 자기 방문을 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를 마중 나와서 타루 씨가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났으나 외출할 기력이 없어 이제 막 누웠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싸워보겠어요. 그러나 지는 판이면, 깨끗하게 최후를 장식하고 싶습니다."

타루는 꼼짝도 않고 투쟁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단 한 번도 고통의 엄습에 동요하지 않고 다만 그 육중한 몸과 철저한 침묵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자면 무언의 방법으로 더는 방심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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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테리 레녹스를 보았을 때, 그는 취해서 ‘더 댄서스’의 테라스 바깥에 세워놓은 롤스로이스 실버레이스 안에 있었다. 주차원이 차를 꺼내왔지만 테리 레녹스가 왼쪽 다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다리를 여전히 밖에 축 늘어뜨리고 있어서 문을 닫지 못한 채 붙들고만 있었다. 얼굴은 젊어 보였지만 머리카락은 백발이었다. 눈빛을 봐서는 머리꼭지까지 술에 취해 뻗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돈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술집에서 돈을 펑펑 써대는 야회복 차림의 멋쟁이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알라딘 eBook <기나긴 이별 (필립 말로 시리즈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중에서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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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중간이라는 것은 없다. 스캔들도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을 혐오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든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감히 신에 대한 증오를 택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 하고 마침내 파늘루는 결론을 짓겠다는 어조로 말했다. "신을 사랑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적인 포기와 자기 인격의 멸시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만이 어린애의 고통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랑만이 그것을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저 바라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자 하는 교훈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보기에는 잔인하지만 신이 보기에는 결정결정적인 신앙인데, 우리는 거기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무서운 이미지와 어깨를 겨누어야만 합니다.
그 가운데서 모든 게 서로 융합하고 동등해져 정의가 아닌 것에서 진리가 솟아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 남부 지방의 수많은 성당에서는 페스트로 쓰러진 사람들이 벌써 수세기 전부터 내진(內陣)에 깔아놓은 돌 밑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그들의 무덤 위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이 선포하는 정신은 어린애들의 재도 한몫 낀 그 죽음의 재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성직자에겐 친구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야 하니까요."

열이 높아졌다. 기침 소리는 점점 더 쇠졌고, 온종일 환자는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신부는 마침내 저녁에 그의 호흡을 틀어막고 있던 그 솜방망이를 토해냈다. 그것은 새빨간 것이었다. 그런 발열 상태에서도 여전히 파늘루는 무관심한 눈빛을 유지했다. 이튿날 아침, 침대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죽어 있는 그의 눈에서는 아무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카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병명 미상.’

그러나 페스트는 이제 그 정점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기의 살인 일과를 착실히 관리하는 정확성과 규칙성을 과시했다.

박쥐들이 천막 위에서 푸드덕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전차 한 대가 담 너머에서 선로 위를 삐걱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붉은 머리털의 올빼미 씨하고 결말을 지어보고 싶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는 이른바 정치 운동을 하게 됐어요. 나는 결코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뿐이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라는 기반 위에 서 있으니, 그것과 투쟁함으로써 살인 행위와 싸우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형 집행을 구경한 그날까지 (그것은 헝가리에서의 일이었어요) 어린애였던 나를 휘어잡은 그 현기증이 어른이 된 나의 눈을 캄캄하게 만들었어요.

수형자가 두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가슴에 총부리가 닿는 것을 아시나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수들이 심장 근처에 집중사격을 가하면 저마다 굵직한 탄환들이 한데 뭉쳐서 주먹이라도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는 걸 아시나요?

인간의 잠이라는 것은 페스트 환자들이 생각하는 생명보다 더 신성한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악취미가 필요한데, 취미란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무렵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악취미를 버릴 수가 없었고,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늘 그 생각만 하고 지냈단 말입니다.

그때 나는 그야말로 내가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페스트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적은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몇천 명 인간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러한 죽음을 가져오게 한 그런 행위나 원칙들을 선(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조차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 붉은 머리털을 한 올빼미, 페스트균에 전염된 더러운 입이 쇠사슬에 매인 어떤 남자를 향해서 너는 죽는다고 선고를 내려 그로 하여금 여러 날 밤을 고뇌 속에서 뜬눈으로 보내며 살해당할 그날을 기다리게 해놓은 다음에, 결국 그가 죽을 절차를 마련하는 그 더러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할 일은 가슴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그래도 최소한 나로서는 그 진저리가 나는 도살 행위에 대해 단 하나라도, 오직 하나라도 논리를 부여하는 것은 절대로 거부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으며, 우리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날도 그 평화를 되찾아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누구에게나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꼭 해나가며,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편하게 만들어주며, 비록 인간을 구원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되도록 해를 덜 끼치고 때로는 약간의 선을 행하도록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그렇습니다, 리외,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피고 있어야지, 자칫 방심하다간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밖의 것, 즉 건강, 완전함,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훌륭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의 긴장을 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결코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해선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피곤해하지요.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다소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안 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해방구가 없는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정도를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화와 희생자가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 자신이 재화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에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 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큰 야심은 아닙니다.

"암요. 오늘날에 내가 알고 싶은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신의 도움 없이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의사가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덕성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리외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슬픔은 리외 자신의 슬픔이었고, 그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같이 나누고 있는 고통과 마주 섰을 때 느끼는 견딜 수 없는 분노였다.

그래서 리외가 읽었다.
"5월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어떤 날씬한 여인이 눈부신 밤색 말에 몸을 싣고, 꽃이 만발한 사이를 뚫고 숲의 지름길을 달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과거 생활의 온갖 편의가 대번에 회복될 수는 없으며, 파괴하기란 건설하기보다 훨씬 쉽다는 생각에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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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게 아닙니다"라고 랑베르가 말했다. "나는 늘 이 도시나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 대로 다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싫건 좋건 간에 이 고장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일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서 몸을 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지요. 그런데도 나 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거기서 돌아서 있죠."

어린애는 임시 병원에 이송되어 침대 여섯 개가 설비되어 있는 옛 교실에 수용되었다. 약 스무 시간이 지나자, 리외는 아주 절망적인 케이스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 작은 몸은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병균에 침식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그러나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작은 멍울들이 가냘픈 사지의 마디마디에 퍼져 있었다. 이미 진 싸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외는 카스텔의 혈청을 그 어린애에게 시험해볼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그 무죄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언제나 그들에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로 보였다.

어린애는 마치 누가 위장을 잡아 뜯기라도 하듯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다시 몸을 구부렸다. 어린애는 한참 동안 그처럼 몸을 구부리고, 마치 그 연약한 뼈대가 휘몰아치는 페스트의 바람에 꺾이고 끊임없는 열풍에 삐걱거리듯, 오들오들 떨면서 경련적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 발작이 지나가자 몸이 약간 풀리고 열이 가시는 듯이 보였고, 헐떡거리면서 축축하고 독기 있는 모래사장에 내던져진 듯싶었는데, 편안해진 모습이 벌써 주검과 같았다.

타오르는 듯한 열의 물결이 세 차례나 밀려와서 몸이 약간 솟아오르더니, 어린애는 바싹 오그라들어서 그를 불태울 것 같은 불꽃의 공포에 싸여 침대 밑바닥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불을 차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뜨거운 속눈썹에서 솟아 나오는 구슬 같은 눈물이 납빛 얼굴 위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애는 그 발작이 끝나자 기진맥진해서, 뼈가 드러나 보이는 두 다리와 48시간 만에 살이 완전히 빠진 두 팔을 오그라뜨리면서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괴상한 자세를 했다.
타루는 몸을 굽히고 그의 두툼한 손으로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그 조그만 얼굴을 닦아주었다.

리외는 가끔가다가 별로 그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 자기의 무력한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린애의 맥을 짚어보곤 했는데, 눈을 감으면 그 요란한 맥박이 자기 자신의 피의 동요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고통받는 그 어린애와 한몸이 되었으며, 아직 성한 자신의 온갖 힘을 다해서 그 애를 지탱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일치되었다가도 두 사람의 심장 고동은 서로 엇갈리게 되어 어린애는 그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었고, 그의 노력은 허공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의 찰흙처럼 굳어버리고 만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마디의 비명,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롭고 어색한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그리고 마치 모든 인간에게서 동시에 발해진 듯싶을 만큼 비인간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외는 여전히 골이 난 태도로 몸을 돌리더니 격렬한 어조로 내뱉었다.
"허, 그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아닙니다, 신부님"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까지도 고통을 당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기란 죽어도 싫습니다."

"그야 뭐 어떻습니까?" 하고 리외가 말했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죽음과 불행입니다. 그것은 당신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든 원하시지 않든 간에 우리는 함께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며 그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리외는 파늘루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이렇게 그는 파늘루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하느님조차도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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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은 어떤 주장 A와 그에 반대, 또는 모순되는 주장 B가 있을 때 어느 쪽도 부정하지 않고 통합하여 새로운 주장 C로 진화해 가는 사고 과정을 말한다. 이때 통합과 진화는 직선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일어난다. 나선형은 옆에서 보면 지그재그로 상승하는 운동으로, 위에서 보면 원형의 회전 운동으로 보인다. 요컨대 발전과 복고가 동시에 일어나는 형국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김윤경 저

과거 철학자들이 마주해 왔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문제’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How의 문제’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직면한 문제는 다를지라도, 비즈니스맨은 철학을 배움으로써 자기 행동과 판단을 무의식중에 규정하고 있는 암묵적인 전제를 의식적으로 비판하고 고찰하는 지적 태도와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어서 일을 했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 설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열쇠는 ‘교양’에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현실로부터 과제를 선택해 끌어내려면 반드시 상식을 상대화해서 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의심하는 행위에는 사실 상당한 비용이 든다.
반면 혁신을 실행하려면 상식에 대한 의문이 필요하므로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 역설을 푸는 열쇠는 하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눈앞의 세계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객관적으로 고찰해 보자.
그럴 때 떠오르는 보편성의 부재, 거기에 그야말로 마땅히 의심해 볼 만한 상식이 존재한다.
그 상식을 교양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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