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앙의 요체, 그것의 위세와 주된 영광은 그것이 합리적인 정당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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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청소라는 말은 원래 구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을 언급할 때 쓰인 것인데, 당시에도 동방정교회 소속의 세르비아인, 가톨릭계인 크로아티아인, 이슬람계인 보스니아인이 관여된 종교 청소를 가리키는 완곡어법이었다.

나는 전에 언론과 정부가 주최하는 공개 토론회에서 종교가 특권적인 지위를 누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성윤리나 번식윤리가 논쟁거리로 떠오를 때마다, 몇몇 종교 집단의 대표자들이 영향력 있는 위원회나 라디오(텔레비전) 토론회에 주요 패널로 참석한다. 나는 그런 인사들의 견해를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왜 우리 사회는 그들이 마치 철학자나 변호사나 의사에 필적하는 전문지식을 지닌 것처럼 그런 논쟁거리가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것일까?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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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의 반대편에서 우리는 종교라는 이름을 꺼리는 투쟁적인 분파들을 만난다. 북아일랜드에서 구교도와 신교도는 ‘민족주의자’와 ‘왕당파’라고 완곡하게 표현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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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의 반대편에서 우리는 종교라는 이름을 꺼리는 투쟁적인 분파들을 만난다. 북아일랜드에서 구교도와 신교도는 ‘민족주의자’와 ‘왕당파’라고 완곡하게 표현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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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흔히 인용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도 했다.
 
물론 당신이 내 종교적 확신에 관해 읽은 것은 거짓말, 체계적으로 되풀이된 거짓말이었다.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명확히 표현해왔다. 내 안에 종교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과학이 밝혀낼 수 있는 세계의 구조에 관한 무한한 찬탄이다.
 
아인슈타인이 모순된 말을 한 것일까? 논쟁의 양 당사자가 각각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인용할 만한 말을 그가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종교라는 말을 전혀 다른 의미로 썼다. 여기서는 초자연적 종교와 아인슈타인식의 종교를 계속 명확히 구별할 것이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신만을 망상이라 부를 것이다. - P51

나는 지극히 종교적인 불신자다. 이것은 다소 새로운 종류의 종교다.
나는 자연에 목적이나 목표 혹은 의인화라고 이해될 만한 것을 전혀 갖다 붙인 적이 없다. 우리는 자연을 매우 불완전하게만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생각하는 인간이 겸손으로 채워야 하는 장엄한 구조다. 그것은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진정으로 종교적인 감정이다.
인격신이라는 개념은 내게 아주 이질적이며 심지어 소박하게까지 보인다. - P52

1940년 아인슈타인은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을 정당화하는 유명한 논문을 썼다. - P53

그렇다면 그는 볼테르(Voltaire)나 디드로(Denis Diderot) 같은 이신론자였나? 아니면 그를 탄복시킨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처럼 범신론자였을까?
"나는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는 신이 아니라, 존재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 P60

이신론자는 신이 일종의 우주적 지성이라고 보는 반면 범신론자는 신을 우주 법칙의 비유적 또는 시적 동의어라고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범신론은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다. 이신론은 물을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다. - P61

"신은 심술궂지만 악의적이지는 않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선택을 했을까?"
같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들은 이신론적이거나 유신론적이지 않고 범신론적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만물의 핵심에 무작위성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
"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선택을 했을까?"라는 말은 "우주가 다른 식으로 시작되었을 수 있을까?"라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신을 순수하게 비유적인, 시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호킹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종교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물리학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폴 데이비스(Paul Davis)의 《신의 마음》은 아인슈타인식의 범신론과 모호한 이신론 사이를 떠도는 듯하다. - P62

아인슈타인이 한 말을 하나 더 인용함으로써 아인슈타인식의 종교를 종합해보자.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종교적이다.
"파악할 수 없는"이라는 말이 "영구히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조건을 달아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그 오해는 파괴적이다. - P63

세이건은 그런 상황을 멋지게 표현했다.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들을 의미한다면, 그런 의미의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신은 정서적인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 법칙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 P64

그러나 나는 물리학자들이 비유적인 의미로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물리학자들의 비유적 또는 범신론적 신은 성서에 나오는, 그리고 사제와 이맘과 랍비가 말하는 신 즉,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고 죄를 벌하고 기도에 답하는 신과 아득히 멀다.
둘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것은 지적인 반역 행위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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