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이야기는 성장하고 발달하고기억하며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겉모습은 이따금 변한다. 땅과 문화와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다듬기에 한 이야기가 널리 전파되고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이따금 한 대목만 공유되어 목적에 따라서는 여러 면을 가진 이야기의 한 면만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 P7
손을 내밀어보세요. 갓 뽑아 마치 방금 감은 머리카락처럼 하늘거리는 향모 한 다발을 올려드릴게요. 윗부분은 황금빛 감도는 반짝거리는 초록이고, 땅과 만나는 줄기는 자주색과 흰색 띠를 둘렀어요. 향모다발을 코에 대보세요. 강물과 검은 흙의 내음에 얹힌 꿀 바른 바닐라향을 맡아보세요. 그러면 향모의 학명이 왜 Hierochloe odorata(향기롭고성스러운 풀)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희 말로는 윙가슈크 wiingaashk 라고해요. 감미로운 향기가 나는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이에요. 향모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 잊은 줄도 몰랐던 것들이기억나기 시작하죠. - P10
윙가슈크의 주인은 윙가슈크자신이에요. 그 대신 우리와 세상의 관계를 치유할 이야기 한 드림을드릴게요. 이 드림은 세 가닥으로 엮었어요. 한 가닥은 토박이 지식, 한 가닥은 과학 지식, 한 가닥은 둘을 한데 모아 가장 중요한 일에 기여하려 애쓰는 아니시나베크웨Anishinabekwe 과학자의 이야기랍니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영성과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어요. 하나로 어우러진 옛 이야기와 새 이야기는 우리와 대지의 부서진 관계를 치료하며, 치유 이야기의 처방전은 다른 관계를, 사람과 땅이 서로에게 좋은약이 되는 관계를 상상하게 해준답니다. - P11
향모를 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땅에 직접 묻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식물은 세월과 세대를 가로질러 손에서 대지로 전해진다. 향모는 볕이 잘 들고 물이 풍부한 초원을 좋아하며 풀숲 사이 빈 땅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 P14
초록의 대지가 눈의 담요를 덮고 쉬는 겨울은 이야기의 계절이다. 맨 먼저 이야기꾼은 오래전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들을 불러낸다. 우리는 전달자일 뿐이므로, 태초에 하늘세상이 있었다. - P15
"진흙이 쏟아지지 않게 내 등에 얹어줘." 하늘여인이 몸을 숙여 진흙을 거북 등딱지에 펴 발랐다. 여인은짐승들의 특별한 선물에 감동받아 감사의 노래를 부른 뒤에 발로 흙을 어루만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인이 감사의 춤을 추는 동안거북님 등딱지의 한 줌 진흙이 점점 커지더니 온 대지가 창조되었다. 하늘여인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뭇 짐승의 선물과 그녀의 깊은 감사가 어우러진 연금술의 결과였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거북섬(북아메리카 대륙을 가리킨다. 옮긴이)으로 알려진 우리 보금자리가 생겨났다. - P17
세상의 한쪽에는 뭇 생명의 행복을 위해 텃밭을 만든 하늘여인을통해 생명의 세계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또 다른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에게도 텃밭과 나무가 있었다. 하지만그녀는 열매를 맛보려다 텃밭에서 쫓겨났으며 그녀의 뒤로 철컹 하고 문이 닫혔다. 이 인류의 어머니는 예전에는 가지가 휠 정도로 매달린 달콤하고 촉촉한 열매로 입안을 채울 수 있었으나 이제는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이마에 땀을 흘려야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녀는배를 채우려면 황무지를 정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 P21
사람도 같고 대지도 같았지만 이야기는 달랐다. 창조 이야기는 우리에게 정체성의 원천이자 세상을 대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창조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아무리 의식識에서멀어졌다 해도 우리는 창조 이야기를 통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한이야기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세상의 너그러운 품에 안기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그 세상에서 추방된다. 한 여인은 우리 농부의 조상이요, 후손의 보금자리가 될 선한 초록 세상의 공동 창조자다. 다른 여인은 추방당한 자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낯선 세상을 통과할 뿐 그녀의 진짜 보금자리는 하늘에 있다. - P21
이 명령들을 생각할 때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늘여인이 이곳에 왔을 때 홀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면 손자 손녀가 세상을 물려받을 것임을 알았기에 여인은 자신의 풍요를 위해서만 일하지 않았다. 본디 이민자이던 여인이토박이가 된 것은 호혜의 행위, 주고받음의 행위를 땅과 나눴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은 자녀들의 미래가 여기 달린것처럼 살아가는 것, 우리의 물질적·정신적 삶이 여기 달린 것처럼땅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 P24
에덴에서 쫓겨난 가련한 이브의 유산을 보라. 땅은 착취적 관계로멍들어 있다. 부서진 것은 땅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와 땅의 관계가 부서졌다는 사실이다. 게리 냅핸Gary Nabhan 말마따나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기re-story-ation‘ 없이는 회복restoration을, 의미 있는 치유를 해나갈 수 없다. 말하자면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땅과의 관계를 치유할 수 없다. 하지만 누가 이야기를 들려줄까? - P25
서구 전통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열이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진화의 정점이자 창조의 총아인 인간이 꼭대기에 있고 식물은 밑바닥에있다. 하지만 토박이 지식에서는 인간을 곧잘 ‘창조의 동생으로 일컫는다. 우리는 말한다. 인간은 삶의 경험이 가장 적기 때문에 배울 것이 가장 많다고. 우리는 다른 종들에게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 그들의 지혜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들은 본보기로 우리를 가르친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대지에 머물렀으며 세상을 파악할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땅 위와 아래에서 살며 하늘세상을 대지와 연결한다. 식물은 빛과 물로 식량과 약을 만드는 법을 알며 그렇게 만든 것을 대가 없이 내어준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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