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인 시그프리드André Siegfried는 프랑스 문화의 특성을 삼중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문화는 대서양적인 것과 대륙적인 것과 지중해적인 것이 삼중으로 중첩되어 있다. - P639
프랑스 사람이나 프랑스 국민은 있어도 프랑스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부와 동부의 주민은 게르만족이고 서부와 중앙 고원 지방의 주민은 켈트족이며 남부의 주민은 지중해인 즉 라틴족이다. - P640
따라서 프로테스탄트를 포함한 부르주아는 가톨릭의 울트라몬타니즘에 반대하고 교육과 결혼 문제를 가톨릭교회가 관장하려는 교권주의Clericalisme에 반대하였다. 교권주의는 교육과 결혼, 이혼 문제를 국가가 관장하는 세속화laïcisation에 반대하고 교회가 그것들을 도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P650
교권주의와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e의 싸움은, 위에서 말한 가톨릭교 안에서 일어난 울트라몬타니즘과 갈리카니슴의 싸움과 함께, 정치적·사상적으로 19세기 프랑스의 특이한 역사를 장식하게 될 것이었다. - P650
파리 조약은 프랑스의 국경을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당시의 것으로 환원하였다. - P664
그 헌장은,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재능에 따르는 취업의 자유, 재산에 비례하는 납세, 관권의 자의적인 억압과 체포로부터의 자유, 종교와 출판 및 언론의 자유, 소유권의 불가침성 등을 보장하였다. - P665
왜냐하면 유럽 정치 문화의 전통에서는 외국인을 왕으로 추대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듯이 영국 왕실은 독일 하노버 왕가의 조지 1세George I에서 시작했고, 영국의 명예혁명에 의해 군림한 오렌지 공 윌리엄 3세William Ⅲ of Orange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조지 1세나 윌리엄은 영어를 모르는 완전한 외국인으로서 국민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했지만 곧 쉽게 친근해질 수 있었다. - P673
나폴레옹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하여 벨기에에 주둔하고 있는 웰링턴 휘하의 영국군 9만 6,000명과 블뤼허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 휘하의 프로이센군 12만을 먼저 치기로 하였다. 그는 6월 6일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6월 18일 워털루에서 결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나폴레옹의 참패였다. 그는 두 빈 손을 내밀며 "쓰러진 용사들이여, 나는 패하고 내 제국은 유리처럼 깨졌다"고 소리질렀다. - P685
유배지에서 나폴레옹과 생활을 함께한 역사가 라스 카즈Emmanuel de Las Cases와 구르고Gaspard Gourgaud 장군 및 몽톨롱Charles Tristan de Montholon 장군이 남긴 나폴레옹 전기들은, 1815년 이후의 반동 체제에 대한 반발과 낭만주의의 안개 속에서 문학적인 나폴레옹 전설을 프랑스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죽지 않고 프랑스에 살아남았다. 약 100만의 생명을 군신에게 바친 나폴레옹에게 19세기의 프랑스인은 증오의 비碑를 세우지 않았다. - P687
그의 조카 샤를 루이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이념Des ideés napoléoniennes》(1839)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백부의 정치 이념만이 프랑스를 구제할 수 있다고 선전하더니, 드디어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 이어 제2제국의 황제가 되어, 전설적인 나폴레옹의 구현자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나파르티슴은 프랑스의 19세기 역사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 P688
복고 왕정의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프랑스 혁명을 승인하는 오를레앙 공을 새 왕으로 추대하는 7월혁명은 별 저항 없이 쉽게 성공하였다. 새 왕은 부르봉의 왕들과는 달리 "신의 은총에 의한 프랑스 왕 필리프 7세"가 아니라 "신의 은총과 국민의 의사에 의한 프랑스 국민의 왕 루이 필리프"였다. 필리프 7세가 아닌 루이 필리프라는 왕호는 그의 7월왕정이 자유주의적·시민적 왕국임을 분명히 말해 준 것이었다. 새 왕은 바로 국민의 왕이었다. 새 왕은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국민의 대표자로 추대된 것이다. 주권은 왕에게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67
7월왕정이 삼색기를 국기로 제정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색기는 어떠한 정치체제 아래에서도 계속 프랑스 국기로 남아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68
사실 7월혁명은 부르주아가 내세운 민권 사상의 승리였으며,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통하여 이미 수립된 바 있었던 부르주아의 정치적·사회적 우월권이 재확립된 사건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69
어쨌든 7월혁명을 정치혁명에서 그치게 하여 더 큰 변화를 막으려는 저항파parti de la résistance와 계속 더 전진시키려는 운동파parti de mouvement가 7월왕정에서 서로 대결하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3
더구나 7월왕정 시대는 프랑스의 산업 혁명기로서 근대 공업 노동자계급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들의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은 부르주아적 7월왕정에 불만을 품게 하고 공화국의 수립을 열망하게 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7
그러나 그는 1846년에 탈옥에 성공하여 영국으로 도망하였다. 1848년 2월에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서 국회의원에 선출되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 3년 후에는 쿠데타에 의해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폴레옹 3세라고 칭하게 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8
이렇게 하여 7월왕정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정치적·이념적으로 최소한 네 줄기가 뚜렷한 형태로 각축하기 시작하였다. 극우의 정통주의, 극좌에 공화주의, 그 중간에 입헌군주주의로서의 오를레앙주의, 그리고 현대 프랑스에 특이한 보나파르티슴. 이 넷은 1789년에 시작하여 나폴레옹이 실각할 때까지 이미 뚜렷한 형태로 나타난 일이 있었고, 프랑스 국민이 실컷 경험한 바였다. 그런데 프랑스 국민은 이제 1815년 이래 대혁명의 경험을 한 바퀴 더 되풀이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79
어떤 정치조직도 불신하는 프랑스 특유의 생디칼리슴Syndicalisme이라는 노동운동의 씨앗이 이때 배태하기 시작한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85
파리 폭동의 진압을 ‘트랑스노냉 가의 학살’이라고 부른다. 이 학살은 1848년 6월 폭동과 1871년 파리 코뮌의 선례가 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87
그러나 토크빌Alexis Tocqueville은 기조 시대의 프랑스 정치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주주들이 활동하는 주식회사 같다고 평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695
무릇 산업혁명은 산업자본주의를 급속히 발전시키고 산업자본주의의 발달은 산업자본가 계급을 크게 성장시키는 동시에 근대 공업 노동자계급을 급속히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이 산업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리고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새로 창조된 부의 불평등한 분배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00
미슐레Jules Michelet 《민중Le peuple》과 《프랑스 혁명사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라마르틴의 《지롱드당의 역사Histoire des Girondins》를 비롯하여 루이 블랑의 열두 권짜리 《프랑스 혁명사》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06
7월혁명에 의하여 양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는 2월혁명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다. 두 혁명은 사흘 동안의 시위와 소규모 시가전에 의해 민중의 힘으로 혁명을 실현한 점에서 외관상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혁명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985128 - P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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