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05년 8월 5일, 금요일,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 북녘 해안, 날씨는 기가 막힐 정도로 말끔하게 개어 있다. 구름 한 점 없다. 지금으로서는 구름이라는 개념의 암시조차 없다. 이곳을 찾아온 것은 7월 말, 늘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콘도를 빌려, 아침나절의 선선할 때에 책상에 앉아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이 글을 쓰고 있다. 달리기에 관한 자유로운 문장이다. 여름이기때문에 물론 덥다. - P17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북동쪽에서 쉬지 않고 불어오는 무역풍이 하와이의 여름을 얼마나 시원하게 해주고 있는가를, 아보카도의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를 하거나 문득 생각이 날 때면 그대로 남태평양의 후미진 해변으로 수영을 하러 갈 수 있는 생활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차게 해주는지를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 P18

소설가라는 직업에 - 적어도 나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 - 이기고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 P26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 오히려 그저 평범한 주자라고 할 만한 그런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P27

특히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정도의차는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酸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위험성을 나 나름대로 (아마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 P41

그렇게 해서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잔다고 하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활동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것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이른 아침의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에너지를집중해서 중요한 일을 끝내버린다.
그 뒤의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거나 그다지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을처리해 나간다.
해가 지면 느긋하게 지내며 더 이상 일은 하지않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편히 쉬면서 되도록 빨리 잠자리에 든다.
대체로 이런 패턴으로 오늘날까지 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덕택에 20년 정도 매우 효율성 있게 잘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나이트 라이프 같은 것은 거의 없어져버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틀림없이나빠진다.
화를 내는 사람도 생긴다. 어딘가를 가자, 뭔가를 하자, 는 권유가 있어도 전부 거절하게 되기 때문이다. - P65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 P77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강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 P122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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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런트 업무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돈 관리, 즉 꿈값에 관한 업무는 아직 서툴렀다. 무엇보다 ‘드림 페이 시스템즈’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가장 까다로웠다. 달러구트도 그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여태껏 손님들이 후불로 낸 ‘꿈값’을 관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웨더 아주머니의 몫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030 - P114

"그러니까 ‘드림 페이 시스템즈’가 훌륭하다는 거야! 일종의 IoT 기술인 거지. 사물인터넷 말이야. 우리 금고와 손님들, 그리고 이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고, 손님들이 꿈값을 내면 금고로 들어오고 우린 그 데이터를 컴퓨터로 볼 수 있지…. 페니, 자니? 알아듣는 척이라도 좀 해주렴."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030 - P115

"핵심은 손님들이 스스로를 ‘망각의 동물’이라고 인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객관적으로 자신들을 파악하고 있어요. 심지어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정보가, 있는 그대로의 실제 사실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재입력된 정보라는 것까지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모든 경험이 잊힐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이 한 번뿐이라는 것을 더 절절하게 느끼게 하죠. 그 점이 바로 손님들이 느끼는 감정과 그들이 지불하는 꿈값에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030 - P122

페니가 일을 시작한 지도 3개월째에 접어든 7월의 맑은 아침. 거리에는 장사를 시작하려는 상인들과, 사람들이 아무 데나 벗어놓은 대여용 가운을 수거하러 다니는 녹틸루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페니는 카페에서 산 두유라떼를 홀짝홀짝 마시며 출근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게 앞에 다다랐을 때, 오늘은 꽤 일찍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030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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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에서 괴물 게리온이 나타나고, 단테는 제8원으로 내려가기 전에 제7원의 셋째 둘레에서 벌받고 있는 고리대금업자들을 본다. 그들은 뜨거운 모래밭에서 각 가문의 문장(紋章)을 상징하는 주머니를 목에 걸고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게리온의 등을 타고 제8원으로 내려간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35

하지만 나는

각자의 목에 특정한 색깔과 표시가 있는

주머니[7]가 매달려 있음을 깨달았는데,

그들 눈은 그것에 흡족해하는 듯했다.

그들 사이를 둘러보면서 가던 나는

어느 노란색 주머니 위에 푸른 사자의

얼굴과 형상[8]이 그려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계속 시선을 돌리다가

피처럼 빨간 다른 주머니를 보았는데

아주 새하얀 거위[9]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살찐 푸른색 암퇘지가 그려진

하얀 주머니[10]를 매단 영혼이 말했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38

제8원에 들어선 단테는 그곳의 구조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곳은 열 개의 〈악의 구렁〉, 즉 말레볼제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째 구렁에는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으로 맞고 있으며, 둘째 구렁에는 아첨꾼들이 더러운 똥물 속에 잠겨 있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43

단테는 셋째 구렁에서 돈을 받고 성직이나 신성한 물건을 거래한 죄인들을 본다. 그들은 구렁의 바위 바닥에 뚫린 구멍 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으면서, 발바닥에 불이 붙어 타는 형벌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단테는 교황 니콜라우스 3세와 이야기를 나누고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한탄한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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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랑한 시간은 모두가 잠든 시간입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이 굳이 잠들었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떠올리지 않고, 거창한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이 잠들 시간을 고대하지 않으며, 하물며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자신의 현재가 깊이 잠들어있음을 채 깨닫지 못하는데, 부족한 제가 어찌 이 딱한 시간을 다스려보겠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030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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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술사 좀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트레첸토, 콰트로첸토, 친퀘첸토로 르네상스를 시기적으로 나눕니다.
이탈리아어로 트레첸토는 300을, 콰트로첸토는 400을, 친퀘첸토는 500을 뜻하죠.
즉 14세기의 르네상스는 트레첸토 르네상스, 15세기는 콰트로첸토 르네상스, 16세기는 친퀘첸토 르네상스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르네상스 작품들은 15세기 콰트로첸토 르네상스 때 나온 작품들이에요.
그런데 피렌체에서는 트레첸토 르네상스가 콰트로첸토 르네상스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경제 부흥은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의 피렌체를 만들어낸 중요한 토대가 되거든요. - P205

중세 피렌체의 경제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중해 중계무역입니다.
피렌체는 내륙에 위치했지만, 나름대로 주변의 항구들을 이용해 지중해 무역에 뛰어들어 상당한이윤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는 섬유 산업입니다.
피렌체 장인들은 비단과 모직물을 생산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죠. 게다가 산업 규모도 상당했어요. 모직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만 3만 명이었으니 웬만한 중세 도시국가의 전체 인구보다 많았습니다.
세 번째는 앞서 주목했던 은행업입니다.
피렌체는 유럽 은행의 중심이었어요. 당시 돈이 필요한 사람은 피렌체로 가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 P207

그렇죠. 피렌체뿐만 아니라 당시 이탈리아 전체에서 워낙 은행업이번창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금융 용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자기 앞에 조그만 테이블을 놓고 손님을 상대했는데, 테이블은 중세 이탈리아어로 ‘방카Banca‘라고 합니다. 은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뱅크Bank‘는 여기서 유래한 말이죠. 또 은행이 파산할 때 이 테이블을 부숴버렸다고 해서 ‘뱅크럽트Bankrupt(이탈리아어로는 방카 로타Banca rotta)‘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 P207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라 할 만한 피렌체는 11세기부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했고,
상공인들의 조합인 길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했다.
피렌체 사람들은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구성원들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환경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자부심은 피렌체의 각종 거대한 건축물에 잘 드러난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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