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에의 참가와 생식의 예속에서의 해방이란 두 요소의 합류로부터여성의 상황의 진화는 설명된다. 엥겔스가 예언한 바와 같이, 여성의사회적·정치적 신분은 필연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콩도르세에 의하여, 영국에서는 매리 울스톤크라프트에 의하여 그의 저서 여권의 옹호〉에서 발단되고, 19세기 초에 생 시몽 파가이를 계승한 여권 운동은 구체적인 지반(地盤)이 결여된 동안은 목적을달성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권리 요구가 그 중요성을 완전히 인정받게 되었다. 부르주아와 사회의 한가운데서도 그들의 소리는 무시할 수 없게끔 되었다. 공업 문명의 급속한 발달의 결과로 부동산은 동산(動産) 때문에 후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가족 집단 단위의 원칙은 그 세력을 잃어 가고 있다. 가동 자본(可動資本)의 소유자는 여태까지처럼 재산에 소유되는 대신에 그것을 일방적으로 소유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처분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여자가 실질적으로 남편에게매여 있던 것은 세습 재산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세습 재산이 폐지되면 부부는 1대 1의 관계가 성립되며, 어린애들까지도 이해(利害)의견고성에 비할 만한 견고성의 유대를 이루지 못한다. 이와 같이 해서개인은 집단에 대하여 자기를 확립하게 된다. - P191
가정은 사회의 기본 세포로 간주되며, 여성은 노동자인 동시에 가정 주부이다. - P202
우선 결론을 말한다면, 여성의 모든 역사는 남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 흑인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백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또 "반유태주의는 유태인의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인 것처럼" 여성의 문제는 항상 남자의문제였다. 어떤 원인에서 남성들이 출발점에서 육체적인 힘과 함께 정신적인 권위를 장악하였는가는 이미 본 바와 같다. 남자들은 가치 · 풍습·종교를 만들었다. 여성들은 이 점에 있어 남성들과 다툰 일이 한번도 없었다. - P202
여성의 운명을 늘 장악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남자들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여성의 운명을 여성의 이익을 위하여 이끌려고 하지는 않았다. 남자들이 존중한것은 자기네들의 계획이요, 자기네들의 염려요, 자기네들의 욕구였다. 남자들이 어머니인 여신을 숭배한 것은 자연(自然)이 그들을 두려워하게 했기 때문이다. 청동(靑銅)의 도구가 그들로 하여금 자연에 대항해서 자기를 주장하게 되자마자, 남자들은 곧 부장제(父長制)를 마련하였다. 그 때 이후로 여성의 운명은 가족과 국가의 항쟁이 결정해 갔다. 기독교도가 여자에게 지정해 준 조건 속에서 반영된 것은 신(神) 앞에서, 세계 앞에서, 자기 자신의 육체 앞에서의 기독교도의 태도였다. 중세에 "여성에 관한 싸움"이라고 불려진 것도 결혼과 독신을 둘러싼 남자 성직자와 속인 사이의 논쟁이었다. 결혼한 여자의 후견 제도를 가져온 것도 사유 재산에 기초를 둔 사회 제도였다. 그리고 오늘날 여성을 해방시킨 것도 남자들에 의하여 실현된 기술 혁명이었다. - P203
타자의 현존은 타자가 그 자신으로서 엄연히 존재한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즉 진정한 타성(他性)이란 나의 의식(意識)과는 별개의, 그러면서도 나의 의식과 동일한 의식의 타성이다. 각자를 그 내재성(內在性)에서 떼어 내서, 그 인간이 그의 참된 존재를 완성하고, 초월로서, 목적으로 향하는 탈출로서, 투기(投企)로서 자기 완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다른 인간의 실존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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