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여자들은 ‘여성적인 것‘이라는 신화를 뒤엎고 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독립성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확립하기 시작한다. 그렇긴 하지만, 그녀들이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자들에 의해 여성 세계의 내부에서 키워지는 그녀들의 통상적 운명은, 그녀들을 한층 남자에게 굴종시키는 결혼이다. 남성의 위신은아직도 빛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경제적·사회적인 공고한 기초 위에 든든히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의 전통적 운명을 면밀히연구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어떠한 식으로 그 신분을 수업(修業)하는가?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어떠한 세계 속에 갇혀 있는가? 여자에게는 어떠한 탈출법이 허용되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무거운 과거를 물려받아새로운 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여자들에게 어떠한 문제가 가로놓여있는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 혹은 ‘여성적‘ 이라는발을 사용할 때 나는 어떠한 원형(原型)도, 어떠한 불변 부동의 본질도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주장 중 대부분의 경우는 ‘현재의 교육과 풍습의 단계에서‘ 라고 이해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는 영원한 진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여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실존의 공통적 배경을 그려 보고자 한다. - P391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수컷이 사회 속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는 어떠한 생리적·심리적·경제적 숙명에의해서가 아니다. 문명 전체가 수컷과 거세체와의 중간 산물을 만들어내어, 그것에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타인이 끼여들어야비로소 ‘타자‘로서의 개체를 성립시킬 수가 있다. 자기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동안에는, 어린이는 자기가 성적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녀·소년의 경우 육체는 처음 얼마 동안은 주체성의발현이며, 외계(外界)를 이해하기 위한 기구(器具)이다. 아이들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눈이나 손을 통해서이지 생식기를 통해서 파악하는것은 아니다. 출생의 드라마는 물론, 이유(離乳)까지도 유아에게 있어서는 남녀 모두 똑같이 전개된다. 그들은 같은 흥미와 같은 쾌감을 갖는다. 우선 빠는 행위가 그들의 최초, 최대의 쾌감의 원천이다. - P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