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 오리건주 주민 40명과 미시간주 주민 열 명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은 뒤 집단 식중독에 걸렸다. 원인은 장출혈성 대장균이었다. 1993년, 시애틀에 있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무려 732명이 집단 식중독에 걸렸고 그중 네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희생된 여섯 살 소녀 로렌 루돌프의 엄마는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라는 캠페인을 벌였고 "안전한 식탁이 우리의 최우선STOP : Safe Table Our Priority"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로렌 엄마의 노력으로 ‘식품 안전에 관한 로렌 법’이 제정되었고, O-157 대장균에 오염된 분쇄육의 판매가 중지되었다. 그러나 거대 식품회사들은 변함없이 오염된 분쇄육을 생산했고 식중독 사고는 되풀이됐다.
로버트 컨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푸드 주식회사>에도 똑같은 사례가 나온다. 만 두 살의 케빈은 장출혈성 대장균에 오염된 햄버거를 먹고 12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케빈의 엄마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음식을 위한 법, 일명 ‘케빈 법Kevin’s Law’ 제정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97

대장균E.Coli은 인간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다. 현재 사람의 몸과 대장균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대장균이 병원성 대장균으로 변한 데 있다. 소와 돼지는 배설물을 묻힌 채 도축장에 온다. 시간당 수백 마리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배설물이 고기에 섞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햄버거 패티 등 분쇄육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수많은 동물들의 사체를 분쇄하고 섞어서 하나의 패티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한 마리가 오염되면 수백 개의 패티가 오염될 수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99

싼 옥수수 사료의 대량생산은 싼 고기의 대량생산을 이끌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저자인 마이클 폴란은 영화 <푸드 주식회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평균적인 미국인 한 명은 1년에 200파운드(90.7kg)의 고기를 먹죠. 싼 사료를 먹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들은 옥수수를 먹도록 진화되지 않았어요. 풀을 먹도록 진화한 동물이죠. 옥수수를 먹이는 유일한 이유는 옥수수가 싸기 때문이고, 또 옥수수가 소를 빨리 살찌우기 때문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00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동물 영양학자 알렌 트렝클은 <푸드 주식회사>에서 옥수수 사료와 햄버거병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옥수수가 많이 포함된 사료 때문에 대장균이 산성에 내성을 갖게 된다는 연구가 있어요. 기존의 대장균이 더 해로운 대장균으로 변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대장균의 돌연변이가 일어나 병원성 대장균이 발생하고 햄버거병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01

국내에서 ‘인간광우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프리온 질환(크로이츠펠트야콥병Creutzfeldt-Jakob disease, CJD)’ 의심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15명, 2006년 19명이었는데, 이후 급증하여 2016년엔 289명, 2017년엔 32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묘하게도 이 증가 추이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재개한 이후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이 급증한 추이와 비슷하다.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주위에서 보기 어려운 것은, 잠복 기간이 수년 이상으로 길고 확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뇌 조직 검사를 통해서만 확진이 가능하다. 또 사망했을 경우엔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한 사인 분석이 가능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05

인간광우병 증상은 치매와 유사하다. 미국에서 알츠하이머(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 중 상당수를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vCJD) 환자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치매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치매’가 늘고 있다. 9년 사이에 50대 치매 환자가 2.4배 늘었고 40대 치매 환자도 같은 기간에 1.5배 늘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05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는 경쟁, 맹목적 성장, 소비보다는 협동, 공감능력, 생태 감수성, 버려지는 것들을 새롭게 업사이클링하는 능력, 자급자족, 적정기술, 일상의 예술 이런 가치들이 더 중요해질 거라 생각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09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1918년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14세기 흑사병을 능가한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H1N1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21세기 전염병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만나서 "재수 없는 형태로" 조합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언제든 가능한 이 조합이 현실이 되면 그 파괴력은 스페인 독감 때보다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 세계 구석구석 연결된 비행기와 수많은 여행자와 물류를 타고 바이러스가 빛의 속도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24

업체에서 이용하는 동물 중엔 놀랍게도 과일박쥐도 있었다. 박쥐는 에볼라, 메르스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숙주 동물로 추정되고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31

야생동물과 인간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가 이 거리를 자꾸 좁히고 있다. 그 결과 인류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에볼라, 사스, 그리고 에이즈의 공통점은 ‘인수공통전염병’, 즉 사람과 동물이 공통으로 걸리는 전염병이라는 점이다. 많은 질병들은 ‘종간 장벽’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간이 걸리는 질병과 여우가 걸리는 질병이 따로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막대한 생태계 파괴로 이 종간 장벽이 무너지고 전에 없던 많은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새로 생겨난 질병의 75%는 인수공통전염병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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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아이와 돼지 아이는 종의 장벽을 넘어 교감하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 대화하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10

십순이의 여덟 새끼 중 막내. 이름이 있고 삶이 있었던 아기 돼지 돈수는 그렇게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하고 고기가 되었다. 그리고 유기농 축산물을 취급하는 마트에 전시된 후 양질의 고기를 찾는 누군가의 식탁 위에 올랐을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30

육체적인 위험보다 더 나쁜 것은 정서적인 피해야. 스티커(도축장에서 동물의 목을 찌르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동물을 죽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돼. 도살장에서 걸어 다니는 돼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세상에, 이 돼지는 정말 귀엽게 생겼군. 애완동물처럼 쓰다듬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야. 도살장에 있는 돼지들은 내게 강아지처럼 다가와서 코를 문질러대지. 그런데 2분 후에 난 그 돼지들을 죽여야 해.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46

1906년, 미국 사회를 뒤흔든 한 편의 소설이 발표된다. 시카고 식육 공장 지대의 비인간적 상황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The Jungle》이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건장한 청년 유르기스가 그의 애인 오나,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신대륙이라 불리는 미국으로 이주해온 뒤 겪는 비극적인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도축장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동물 학대와 노동자 인권 유린, 그리고 경악할 정도로 불결한 위생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48

유르기스와 오나 가족의 비극적인 붕괴는, 그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이 자본주의의 메카인 시카고였기 때문이고, 그들이 얻은 일자리가 도축장이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이었기 때문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50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비교적 문턱이 낮은 일자리는 20세기 초인 그때나 21세기인 지금이나 도축장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50

<비포 선라이즈> 같은 로맨스 영화를 만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미국 식육 산업의 실태를 그린 <패스트푸드 네이션 Fast Food Nation>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에릭 슐로서의 동명의 책(국내에서는 《패스트푸드의 제국》으로 번역 출간됨)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픽션 영화는 햄버거 패티가 얼마나 먹을 게 못 되는지를 고발할 뿐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도축장과 육가공 업계의 민낯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52

도축장의 벽은 너무 높았고, 나는 돈수와 십순이를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었다. 축산 공장의 벽이 점점 더 투명해져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라면서. 옥자는 가상의 생명체이지만 한국에는 1,150만 마리의 십순이와 돈수가 공장에서 살고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58

지금 숨 쉬기 힘든 고통을 받는 건, 그동안 우리가 동물들을 공장에서 숨 막히게 하고, 땅에 산 채로 묻으면서 숨 막히게 한 업보, 카르마(Karma)인 것만 같아. 어느 지혜로운 부족이 이렇게 말했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이들에게도 일어난다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66

황선미 작가의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주인공 암탉 잎싹이가 목만 내밀고 갇혀 살던 곳이 배터리 케이지다.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곳. 잎싹이는 배터리 케이지를 빠져나오기 위해 죽은 척을 한다. 농장주는 잎싹이를 꺼내 구덩이에 던져버린다. 잎싹이는 그렇게 지옥 같은 배터리 케이지를 빠져나와 자유의 몸이 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84

배터리 케이지는 1930년대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수의 닭을 사육하고, 닭의 움직임과 사료 섭취량을 줄임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안됐다. 드라마틱한 생산량 증가는 닭의 고통도 드라마틱하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85

2014년 초,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터졌다. 2016년 11월 중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또 터졌다. 이 두 번의 전염병으로 정부는 대한민국 인구만큼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88

조류독감과 살충제 달걀은 전혀 다른 사안 같지만 원인은 똑같다. 그 둘은 닭의 습성과 복지를 무시한 채 오로지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닭들의 생명을 쥐어짜는 공장식 축산이 만들어낸 샴쌍둥이인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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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느낀 공장식 축산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그것은 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무정한, 혹은 비정한 산업이다. 유정有情한 생명체를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탐욕으로 무정無情하고 비정非情하게 사육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63

도영: 엄마, 돼지는 죽으면 뭐가 돼?

나는 어린 아들에게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말로 다 할 수 없어서 영화를 만든다. 만물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소, 돼지, 닭, 오리는 공장에서 고통받다가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사람의 욕심일 수는 있어도 우주의 법칙일 리는 없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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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돼지를 탐욕스럽고 더러운 동물로 여긴다. 이것은 네 번째 이상한 점과 맞물린다. 우리는 돼지를 먹고 돼지가 우리 몸의 일부가 되는데도 돼지를 멸시하고 혐오한다. 더럽고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한다. 실제로 돼지가 탐욕스럽고, 더러운 동물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돼지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더럽다고 욕하는 인간의 속성이 참 모순되게 느껴졌다. 돼지가 굉장히 다층적이고 희한한 동물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돼지가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점점 돼지를 주인공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8

한국에서 사육되는 1,000만 마리의 돼지들 중 두 돼지의 삶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공장식 양돈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돼지와 소규모 친환경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돼지. 이름 없이 ‘번호’만 있던 이들에게 각각 ‘돈오’와 ‘돈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2

돼지의 이름을 뭐라고 붙일까 고민하다가 ‘돈오’, ‘돈수’라는 이름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불교에서 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물론 ‘돼지 돈豚’의 발음을 살린 이름이기도 하다.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한다는데, 깨달음의 화신化身처럼 갑작스럽게 내 인생에 나타나 화두를 던진 돼지.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43

돈수가 태어난 날 원중연 선생님은 일기를 쓰셨다.

 돼지 영화를 촬영했다. 십순이가 여덟 마리 새끼를 순산했다. 기다림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 끝자락이 아름다운 것은 그 끝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눈이 온다. 모두를 축복하는 눈인가 보다. 내 안에서 또다시 발견된 십순이. 순산 과정에서 함께 얻은 희열. 태고부터 날마다 일상처럼 빚어지는 일들이 영혼과 순간, 그 모두를 아우른다. 어느 먼 훗날 오늘을 되짚어볼 때 기다림도 경이로움도 모두 내게 감동일 것이다.

가을날 국화꽃이 동토를 가르며 시작했듯 산고의 아픔을 통해 또다시 이어지고 피어나는 아름다움은 나와 돼지의 인연이었으리라.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76

가톨릭 신자들의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찌 감히 돼지를 성모마리아에 비하느냐고 하겠지만, 성녀와 인간 엄마와 돼지 엄마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생명의 힘, 사랑의 힘이다. 모든 탄생의 순간은 경이롭다. 온 우주가 도와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순간.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귀하며, 동등하다. 누구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점에서. 고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77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1794년에 쓴 《동물 생리학, 혹은 생물의 법칙Zoonomia or Laws of Organic Life》을 보면 다음과 같은 관찰 기록이 나온다.

 돼지들이 입에 지푸라기를 물고 시끄럽게 울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분명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거라는 신호다. 돼지들은 잠자리를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짚을 모으며, 시끄럽게 우는 것은 다른 돼지들을 불러서 함께 잠자리를 더 따뜻하게 하자는 뜻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82

돼지들은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장난을 좋아하고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것을 좋아하고 쾌적한 잠자리를 좋아하고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좋아한다. 사람과 똑같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96

어린 아들의 부드러운 이마에 입 맞추고 재우며 자장가를 불러주다 보면 돈수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까맣고 순진한 그 눈동자, 쌍꺼풀 진 동그란 눈, 기다란 속눈썹, 보송보송한 털… 사람 아기와 다를 바 없이 사랑스러운 돈수와 돈수의 형제들을 보며 나의 진짜 딜레마가 시작됐다. 더 이상 돼지를 돈가스나 삼겹살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98

"퇴비를 써서 비옥해진 땅에 작물을 기르고, 그렇게 키운 채소에서 나온 부산물을 돼지에게 주고, 돼지가 그걸 먹고 똥을 싸면 또 좋은 퇴비가 생기고. 순환이죠. 좋은 작물 먹고 건강하게 자란 돼지들의 똥이 밭으로 가면 또 거기서 최고의 균형이 맞춰진 무, 배추, 인삼이 나오는 거죠. 자연은 순환이 철칙이에요. 이 순환이 자꾸 단절되어서 문제지."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01

‘가축家畜’의 한자를 보면 ‘家(집 가)’는 지붕 밑에 돼지가 있는 형상이다. 즉, 지붕 밑에 돼지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었다. 다시 말하면 집에는 돼지가 있었다. 한자를 쓰는 농경 문화권에서 돼지는 집의 구성원으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畜(짐승 축)’은 ‘밭 전田’ 위에 ‘검을 현玄’을 썼다. 짐승은 퇴비로 밭을 검게, 비옥하게 만드는 존재다. 집에 살면서 밭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동물이 가축인 것이다. 가축은 이렇게 인간과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농경에 이로움을 주는 존재였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01

원가자농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유기농 경축순환 농장이다. 경축순환이란, 작물의 부산물을 가축이 먹고 가축의 퇴비를 작물 재배에 이용하는 순환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런 농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극히 소수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02

"똥, 땅은 원래 하나예요. 발음도 비슷하잖아요?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을 먹어서 똥이 더러워진 것이지, 올바른 음식을 먹으면 똥이 더러울 게 없지요. 똥이 땅으로 가고, 땅에서 난 것이 몸으로 와서 다시 똥이 되는 순환이 이루어지면 땅과 인간 모두 건강할 수 있어요."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03

현대의 모든 재앙은 순환의 깨짐, 단절에서 왔다. 가축의 분뇨는 땅과 강을 오염시키고, 남은 음식은 쓰레기가 되어 골칫거리가 되고, 빗물도 자원으로 순환되지 못하고 하수구로 흘러가버리고, 에너지도 방사능 폐기물을 남기는 핵에너지, 심지어 사람들의 혈관도 콜레스테롤로 막혀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재앙의 해결은 막힌 곳을 뚫고 끊어진 순환을 연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04

선생님의 책꽂이에는 가령, ‘돼지를 빨리 살찌우는 법’ 이런 책 대신, 제레미 리프킨의 명저 《육식의 종말》, 실천윤리 철학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환경운동가 니콜렛 한 니먼이 쓴 《돼지가 사는 공장Righteous Porkchop》 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돼지 농장주가 육식을 비판하는 책들을 읽고, 동물 해방 철학서를 읽는다니!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11

가축, 가축이 먹는 사료, 가축이 싸는 똥, 똥이 뿌려지는 땅, 그 땅에서 난 작물, 작물과 가축을 먹는 사람의 건강,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요. 사람복지, 동물복지가 다른 게 아니에요. 가축이 좋은 것을 먹고 편안하게 살면 사람복지가 자동으로 되는 거예요. 한 고리예요. 하나가 온전하면 나머지가 온전해지는 거예요. 하나가 그릇되기 때문에 다 사슬처럼 어그러지는 거예요.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17

내 자식, 남의 자식, 사람, 돼지, 흙, 작물, 야생초… 만물이 하나로 연결된 순환의 고리. 그러므로 모든 것을 귀하게 대하고 모든 것에 친절하라. 땅에서 땀 흘리며 배운 농부의 철학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19

팔리 모왓의 《울지 않는 늑대Never Cry Wolf》 같은 책이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늑대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포악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동물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20

서구 문화에서 늑대는 오랜 세월 부당한 박해의 대상이 되어왔다.
신화, 전설, 동화, 그림책, 영화에서, 늑대는 인간에게 해로운 잔인한 짐승, 죽여 마땅한 존재로 묘사돼 왔다. 《빨간 모자》,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양》, 《아기 돼지 삼 형제》, 《피터와 늑대》 같은 이야기에서 늑대는 착한 주인공들을 간교하게 속여 괴롭히고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착한 사람들이 못된 늑대를 잡아 가위로 배를 싹둑싹둑 가르고 돌을 집어넣고 다시 실과 바늘로 배를 꿰매 강물에 풍덩 빠트리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늑대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내재되고 문화로 전승된다. 이런 옛날 이야기들을 뒤집거나 재해석하는 작품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22

‘교활한 여우’, ‘미련한 곰’, ‘사악한 뱀’이라는 표현은 정당한가? 종교나 문화에서 전승된 이런 통념은 생태적으로 볼 때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비인간 동물에게 던져 그들에게 ‘누명’을 씌워왔다. 그래야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들의 가죽을 벗기거나 잡아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두 번의 죽음을 겪는다. 실제로 죽음과 멸종으로 몰리고, 문화 속에서는 인간을 해치는 포악한 가해자로 곡해됨으로써 또 죽는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24

대중문화에서 탐욕의 상징으로 돼지를 이용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부모를 돼지로 변하게 한 상투적 상징에는 실망했다. 그 영화에서 돼지가 된 부모는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는데, 실제 돼지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명예 훼손이다. 지구상의 동물계에서 토할 정도로 먹고 소화제를 먹는 동물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뿐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30

신선한 고라니 똥을 보다가 앨런 와이즈먼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세계 곳곳을 누비며 기술한 저서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이 떠올랐다.
인간이 사라지면 불과 1년 만에 야생동물들이 큰 혜택을 보게 된다.
고압전선에 부딪혀 매년 10억 마리씩 희생되던 새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던 코끼리는 인간이 사라지고 100년이 지나면 개체 수가 20배로 늘어난다.
인간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의 몸 구석구석을 집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충치균, 포도상구균, 대장균 같은 균들과 인간의 주거 공간에 세 들어 살아온 바퀴벌레들뿐일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36

뛰어난 후각을 가진 돼지가 자신들의 분뇨 위에서 먹고 자고, 신선한 공기 한번 마셔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돼지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 가혹했다. 그런 환경에서 온갖 약물을 투여 받으며 억지로 사육된 돼지를 먹는 우리의 삶도 그다지 나을 것은 없어 보였다.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의 창밖으로 숱한 고깃집 간판이 번쩍였다. 간판 속에서 요리사 복장을 한 돼지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42

약물과 스톨이라는 강력한 관리 도구를 통해, 이 많은 분만을 직원 몇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생명의 몸에 맞게 농장이 운영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목표 생산량에 맞춰 생명의 몸을 통제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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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의 눈금은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노력했다. 먹을거리는 물론 세제, 휴지 등 생필품을 생활협동조합(생협)에서 구입했다. 그것이 아이의 건강은 물론 땅과 강, 사람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26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Beyond Beef》. 교양인의 필독서로 알려진 책이라 사놓기는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아 책꽂이에 꽂힌 채 먼지만 쌓여 있던 책이었다. 책을 꺼내 펼쳤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1

세 번째 이상한 점, 돼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상징한다. 돼지는 예부터 풍요와 복의 상징이었다. 돼지꿈은 길몽이다. 오래된 식당이나 이발소에는 아직도 새끼 돼지들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돼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십이지신 중에도 돼지가 있다. 돼지신은 악귀로부터 집을 지키고 왕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426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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