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기억으로 우리 집은 항상 가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였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지속된 사업 실패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시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미국으로 혼자 이민을 떠나셨다. 그 후 여동생과 나를 포함한 가족의 생계는 어머니가 홀로 책임지셨는데, 그 자체로도 이미 위태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다고, 그해 여름 어머니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신장 문제로 쓰러지셨다. 그때는 병원비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터라, 어머니의 병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어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자선병원에 무료로 입원하실 수 있었지만, 집에는 고등학교 1학년인 나와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 이렇게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왜 내 삶만 이렇게 힘들까 하고 절망했다. 화가 났고 눈물이 흘렀다. 그저 이런 상황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그러고는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을 한 달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척 상심하셨지만, 아마도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더 깊은 나락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마음을 돌려 병원을 향했다. 병원은 방문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곳이었기에 방문 시간에 맞추어 병원을 찾았다. 병실에 계신 어머니를 보자 죄책감이 밀어닥쳤고,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어머니는 귤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귤을 사러 병원 밖으로 나가면 방문 시간 안에 다시 돌아오기 힘든 시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사정이라도 하면 병원에 다시 들어오는 것쯤은 문제없을 듯했다. 하지만 귤을 사고 병원에 들어서자, 경비 아저씨가 길을 막아섰다. 아무리 애원해도 그는 병원의 규정상 들여보낼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경비 아저씨에게 귤이라도 어머니 병실로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버스를 타려고 큰길로 나서자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주변의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 나는 몰래 흐느껴 울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어두웠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3
이렇게 ‘어떻게’라는 질문의 사슬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결국 무엇을 만나게 될까? 우리는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을 만나게 된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4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것은 파동wave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것은 파동이면서 입자particle다. 참고로, 이러한 현상을 전문적으로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이라고 부른다. 파동-입자 이중성과 같이 이상한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나타나는 것일까?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5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이 남긴 유명한 질문이 있다. "만약 어떤 커다란 재앙이 일어나, 모든 과학적 지식이 사라지고 단 한 문장만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가장 적은 낱말로 가장 커다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파인먼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5
아니, 사실 전자는 궤도를 돌지 않는다. 궤도는 순전히 고적역학적인 개념이다. 실제 전자는 파동처럼 공간에 퍼져서 진동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은 이러한 전자의 파동이 공명resonance을 일으킬 때 원자가 안정적인 상태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해준다. 비유적으로, 전자의 파동은 전자가 마치 구름처럼 원자핵 주변에 퍼져 출렁거리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전자의 구름이 공명을 일으키면 원자가 안정화되는 것이다. 참고로, 실제 물리학자들도 때때로 전자의 파동을 ‘전자 구름electron cloud’이라고 부른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8
따라서 공명이란 유리병 입구로 흘러 들어간 소리의 진동수가 유리병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게 되면 유리병이 크게 흔들리는 현상이다. 참고로, 공명을 일으키는 소리, 즉 파동을 ‘정상파standing wave’라고 부른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8
원자란 원자핵과 전자가 만들어 내는 공명 현상이다. 하나의 원자 속에 여러 개의 전자들이 들어 있다면, 모든 전자가 협동하며 화음을 만들어 낼 때 원자는 안정화된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8
파동 함수는 입자가 주어진 위치에 존재할 확률을 알려준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확률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상을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언뜻, 이는 양자역학의 한계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한계 덕분에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우리 우주가 놀랍도록 아름다워진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19
양자역학이 가진 아름다움의 핵심은 놀랍게도 파동 함수 자체가 확률이 아니라는 점에 기인한다. 파동 함수는 평범한 숫자로 이루어진 함수가 아니다. 여기서 ‘평범한 숫자’는 바로 실수real number를 의미한다. 파동 함수 자체가 확률이라면, 파동 함수는 0과 1 사이의 실수일 것이다. 그런데 파동 함수는 실수뿐만 아니라 허수imaginary number라는 숫자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 허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상상의 수’다. 허수가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제곱했을 때 음수가 되는 기묘한 성질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파동 함수는 실수와 허수라는 두 수로 이루어진 함수다. 이렇게 실수와 허수 성분을 가지는 특별한 수를 ‘복소수complex number’라고 부른다. 복소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복잡한 수’다. 그리고 확률은 복소수인 파동 함수의 실수와 허수 성분을 각각 제곱한 후에 합한 값이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20
우리 우주에는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이 있다. 바로 중력gravitational force,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다. 중력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가장 친숙한 힘이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은 앞서 원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짧게 언급했다. 아직 중력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지만, 이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은 모두 하나의 원리에 의해 기술된다고 믿어진다. 그것은 바로 게이지 대칭성gauge symmetry의 원리다. 거칠게 말해, 게이지 대칭성의 원리란 바로 앞서 언급한, 파동 함수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측정 가능한 것은 확률뿐이라는 원리다. 약간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파동 함수가 존재하되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원리다. 게이지 대칭성의 원리가 근본적인 힘의 원리를 정확히 어떻게 제공하는지는 앞으로 이 글을 통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21
게이지 대칭성의 자발적 깨짐을 전문적으로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이라고 한다.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21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양자역학은 참으로 묘하다. 모든 것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전자의 파동은 공명을 일으킴으로써 원자를 안정시킨다. 하지만 전자의 파동을 기술하는 파동 함수는 직접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실제로 측정 가능한 것은 파동 함수가 아니라 확률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바로 이 사실이 힘의 원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파동 함수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 않는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질량을 가지려면, 파동 함수가 단순한 확률이 아니라 복소수로 그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양자역학은 파동 함수의 존재라는 단 하나의 사실로부터 우리 우주를 지탱하는 모든 힘과 질량의 원리를 준다. 믿기 힘들 만큼 이상하지만 놀랍도록 아름답지 않은가?
-알라딘 eBook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지음) 중에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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