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라고 한 가브리엘 마르셀은 타당하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동정한다는 것은, 그 순간 그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이다. 당신은 죽지 않아도 돼! 신형철에 따르면, "마르셀의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살리겠다는 뜻인 동시에 너를 살리기 위하여 나도 존재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존재해야만 해! 즉 이사랑은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맹자 역시 이러한 동정심의 실현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야 할 이유라고 생각했다. - P81
재아가 물었다. "인자의 경우, 누군가 ‘우물 안에 사람(혹은 인)이 있다‘라고 하여도 우물에 따라 들어가겠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그가 그럴수 있겠는가? 군자는 우물에 갈 수는 있지만, 빠질수는 없다. 속일 수는 있지만, 무턱대고 속일 수는없다." 宰我問曰, 仁者雖告之日井有仁,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歎也, 不可因也. 『논어』 「옹야」 편중 - P87
기만 없이 정확히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힘들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투사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상대의 정확한 모습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상을 사랑한 대가는 혹독하다. 사랑의 파국은 대개 상대와 자신에 대해서 부정확했던 사랑의 파국이다. - P89
"어떤 문장도 삶의 진실을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파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 P90
미움의 파국은 대개 상대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속에서 자신의 막연한 앙심을 투사했던 미움의 파국이다. - P91
『논어』에 묘사된 공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비판하는 일에 대해 사뭇 당당하다. 실로 『논어』에는 많은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실려 있다. 『논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어떻게 모든 이를 사랑할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 라는 정교한 미움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92
공자의 입장은 단호하다. 못된 사람들에게 무조건 잘해주거나 화해를 도모하려 하지말라. 원수에게는 잘해줄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갚음을 해주어야 한다. 공자의 이상형은 이토록 무골호인無骨好人과 거리가 멀다. 그는 무골호인이 아니라 유골호인有骨好人이다. - P93
『논어』에 따르면,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이들이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 낫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제대로 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미워할 뿐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공자는 어설픈 평화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저 사람처럼 모나게 살지 마라" 하고 말하지 않는다. "저 사람처럼 모나게 살지 마라" 에서 "저사람"을 맡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공자이다. 공자에 따르면, 비타협적으로 살 때라야 비로소 악한 일에 가담하지않을 수 있다.(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 - P94
공자는 말한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고.(唯仁者, 能好人, 能惡人) - P95
안정복은 『천학문답天學問答』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덕으로 원수를 갚고 원한으로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데…… 군주나 아버지의 원수를 두고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면 정의를 해치는 바가클 것이다."(天主敎士, 以德報讐, 不以讐報讐… 若以君父之讐, 而以此爲敎, 則其害義大矣.) - P96
자공이 물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만 가지고는 아직) 안 된다." "그 지역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만 가지고는 아직) 안 된다. 그런 경우들은, 그 지역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그 지역의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경우만 못한 것이다."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논어』 「자로」 편중 - P97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이나 『논어』의 편집자는 유려한 예식의 집전자로서의 공자만큼이나 현실에서 실패한 선생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결국, 기적과는 인연이 멀었던 사람,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을 사랑했던것 같다. - P106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구나!" 자공이 말했다.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범속한 것을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고매한 곳에 이르니, 나를 알아줄 것은 아마 하늘이런가!"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논어」 「헌문편」 중 - P108
뛰어난 소수만이찬란한 악행을 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발리오니의 행태는 뛰어난 덕성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우유부단함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인간 대다수는 대단한 선행뿐 아니라 대단한 악행도 할 능력이 없다. 강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얌전하게 굴면서, 약해 보이는 상대가 나타나면 지분거리며 하루하루를 소일할 뿐이다. ‘찬란한‘ 악행을 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발리오니 역시 보통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오직 뛰어난 소수만이 찬탄을 자아낼 만한 악행을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를 창설하기 위해 폭력을 서슴지 않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고귀한 거짓말(noble lie)을 서슴지 않았던 건국자들이 그 드문 소수들이다. 그들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경배받는다. - P120
『논어』에서는 바로 그러한 덕성을 중용中庸이라고 불렀다. 중용은 종종 오해를 부르는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기에 번역조차 다양하다. ‘The mean’ (평균성)이라는 영어번역은 ‘중용‘을 이음절어로 본 결과이다. ‘Centrality and commonality (중심성과 평범성)라는 영어 번역은 중용을 ‘중中‘과 ‘용庸’이라는 개별 단어가 병렬해(and) 있다고 본 결과이다. ‘Focusing on the familiar’ (일상적인 것에 집중하기)라는 영어 번역은 중용을 ‘중‘이라는 동사와 ‘용‘이라는 목적어가 결합했다고 본 결과이다. - P123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중도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얻어 함께할 수 없다면, 반드시 뜻이 높은 사람이나 소신을 지키는 자와 함께 하겠노라! 뜻이 높은 사람은 진취적이고, 소신을 지키는 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為也. 『논어』 「자로」 편 중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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