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고, 위계적인 ‘갑질’ 관계를 일상화하고, 자칫 자신도 이 경쟁 속에서 죽임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타인을 짓밟기를 서슴지 않는다.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공적 가치를 믿지도 않고 내면화해본 적도 없기에, 논리보다는 기분에 좌우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로비와 강짜와 아첨에 의존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신념하에 고성을 지르다가 가끔 보게 되는 타인의 전락만이 그 와중에 지쳐버린 자신의 마음을 달래준다. 바위와 함께 굴러떨어지는 동료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산비탈의 시시포스처럼.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0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학에 성공한다고 해서 갑자기 대단한 선물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급 학교 진학에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사회적 대가는 혹독하다. 삶의 노역이 대물림되는 상태, 즉 노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 교육과 부동산 투자는 계층 간의 이동을 촉진하기보다는 계층을 고착화한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1
그리하여 남는 것은 스펙이요, 남지 않는 것은 실력이다. 방학이 되면 유복한 집 자녀들은 해외에 인턴을 하러 가지만, 가난한 집 학생들은 동네 레스토랑 부엌에서 단무지를 썬다. 부모의 경제력 순으로 학점이 나온다고 믿게 된 이들은 부모의 얼굴도 마주하기 싫어지고, 성실한 시민이 되기도 싫어지고, 마침내 목전의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2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 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설파하는 사이비 지식인이나 종교 지도자나 독재자가 번성하게 된다. 장기적인 것, 공적인 것, 엄정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말초적인 욕망의 충족과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와 근거 없는 인정 욕구가 남발하게 된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3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별이 될 수는 없지만, 시선을 시궁창의 아래가 아니라 위에다 둘 수는 있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3
이미 존재하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나아가 보다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것이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야 비로소 비방과 조소를 넘어서는 논리와 수사학의 힘을 빌려 공적 영역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읽고 쓰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능한 인간의 변화에 대해 믿게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3
똑같이 ‘사랑해’라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말에 각기 다른 의미를 담는다. 감정이 석류처럼 풍부한 A가 ‘사랑해’라고 하면, 그것은 당신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자는 말이다. 성욕이 성게알처럼 흘러넘치는 B가 ‘사랑해’라고 하면, 그것은 당신과 격렬한 성교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반지를 손에 쥐고서 C가 애걸하듯이 말하는 ‘사랑해’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다. 생활고에 지친 D가 내뱉는 ‘사랑해’라는 말은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으니 제발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A, B, C, D는 별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 생애 주기의 여러 국면에서 사랑의 의미를 달리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사랑이라는 단어가 극히 고매한 뜻을 담을 수도, 극히 저열한 뜻을 담을 수도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19
이처럼 일견 모호한 표현에 높은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을 경우, 그것은 그 사회의 마음 상태에 대한 의미심장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22
철학자들은 일찍이 말한 바 있다, 명료함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고(Clarity makes people angry).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22
"반짝임은 대머리의 부수 현상일지는 몰라도 대머리의 정의(definition)는 아니겠죠. 대학생이 되었는데, 아직 셰익스피어도 안 읽었나요?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라는 말도 있죠. 반짝인다고 다 대머리는 아닙니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25
말이 재정의되는 일은 한 사회의 마음이 변화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28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깨닫는다고 하여, 사회적 현실이 곧 변하지는 않지요. 변화란 쉽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인간의 열망에 호소할 수 있을 때만 변화가 가능하겠죠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28
완벽한 직선이란 실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하게 일관되고 통합된 삶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마련. 모순 혹은 긴장으로 가득한 자신의 존재를 그럭저럭 거두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일이며, 자신의 모순이나 긴장을 빙자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31
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이러한 모순, 긴장, 혹은 혼란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34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한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35
이처럼 예술에서 모호함은 중요하다. 모호함이야말로 다양한 해석을 증폭시키며, 그 예술을 둘러싼 논의를 풍부하게 만든다. 예술의 모호성은 예술 향수자의 적극적 참여를 부추긴다. 관건은 그 모호함이 심미적인 차원을 가진 풍요로운 모호함이냐의 여부일 뿐이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40
말이 구체적일수록 그 말의 청자(audience)는 제한되고, 말이 모호할수록 청자는 포괄적이 되는 법. 그래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말은 모호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야만 할 때가 왔을 경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무마해야 할 필요가 정치인에게는 종종 있다. 그러한 필요에 둔감했다가는 자칫 나중에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은 한층 더 막연하고 모호해진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41
권력을 쥔 정치인이나 예술가와는 달리, 논술문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명료한 표현을 통해 공적으로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논술문에서 모호한 표현을 자제하는 훈련은 민주주의의 덕목 함양과 무관하지 않다.
-알라딘 eBook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중에서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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