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욕심의 순서와 위계를 정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거기서 나이가 더 들면 반대로 욕심을 계발하고 늘려나가게 된다. 데카르트는 세상의 이치가 아니라 자기 욕망을 다스리라고 했다. 하지만 욕망은 다스려졌다가도 은밀한 통로로 되돌아오려 하고, 아주 잠깐이나마 세상의 이치도 이겨낸다. 단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욕망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반드시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긴 채 섬세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타인의 동의를 교묘하게 얻어내야 하고, 프랑스 구체제 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작을 걸어야’ 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27

그동안 가치 체계가 뒤집히긴 했다. 플라톤은 지식의 단계도 나이를 따라간다고 보았기 때문에 50세가 넘어야만 선善을 관조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플라톤의 국가는 일종의 "입헌노인통치"1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연장자만이 정념의 혼란에 대비하여 시민을 고양된 인류의 수준으로 끌고갈 수 있다. 권력의 행사가 정신적 권위에 좌우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보다 훨씬 앞서서—옛날에는 "노인들이 흙에서 나와 생을 역순으로 살다가" 신생아의 상태로 돌아갔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을 생의 끝, 오랜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시작은 끝이었고, 끝은 시작이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9

사실, 나이는 우리가 비교적 기꺼이 따르는 협약이다. 이 협약이 사람들을 이런저런 역할과 입장으로 갈라놓았는데 과학의 발달과 수명의 연장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속박에서 벗어나 성숙과 노년 사이의 모라토리엄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삶의 기술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모라토리엄을 인생의 인디언 서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2

이 책은 지적 자서전이자 선언문으로서, 인생의 기나긴 시간이라는 한 가지 문제만을 다룬다. 우리는 50세 이후, 젊지 않지만 늙지도 않은, 아직은 욕구가 들끓는 이 중간 시기를 살펴볼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인간 조건의 중대한 문제들이 날카롭게 부상한다. 오래 살고 싶은가, 치열하게 살고 싶은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방향을 꺾을 것인가? 재혼 혹은 재취업을 하면 어떨까? 존재의 피로와 황혼의 우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나큰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까? 회한이나 싫증을 느끼고도 여전히 인생을 잘 흘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인생의 계절에서 가을에 새봄을 꿈꾸고 겨울을 최대한 늦게 맞이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바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2

인생이 무거운 권태와 쫓기는 듯한 속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 너무 짧아진 동시에 너무 길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생은 죽죽 늘어져 끝나지 않을 것 같다가 꿈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간의 수명은, 적어도 부자 나라들에서는 20~30년이나 늘어났다. 모든 사람은 성별과 사회 계급에 따라 운명으로부터 일종의 휴가증을 받는다. 의학, "우리의 유한성으로 무장한 이 형태"(미셸 푸코)가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을 우리에게 덤으로 주었다. 충만한 삶의 의지가 노년의 후퇴와 맞아떨어졌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진보인가.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5

50세가 되면 인생이 정말로 짧아지기 시작한다. 이때 인간이라는 동물은 서로 다른 두 시기 사이에 걸쳐진다. 예전에는 시간이 정신적 완성 혹은 자기 실현이라는 끝을 향해 가는 운동이었기에 방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두 시기 사이에 전에 없던 괄호가 펼쳐진다. 이 괄호가 도대체 뭐냐고? 인생을 여닫이문처럼 열어놓는 유예 기간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7

이제 원숙기와 노년기 사이에 새로운 인구층이 나타났다. 라틴어를 따서 ‘시니어senior’라고 부를 수 있는,2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나머지 인구보다 가진 것이 많은 세대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7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그래서 남아 있는 나날 동안 후회되는 부분을 바로잡거나 잘한 부분을 오래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다. 흐르는 매 순간에 욕심을 내게 된다. 50세를 넘으면 이런저런 욕구가 샘솟아 마음이 급해진다.5 언제 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더욱 그렇다. 르네 데카르트는 "지금의 나는 다음 순간에도 자신이 이러할 것이라고 보장하지 못한다"6고 했다.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은 17세기보다 결코 덜 비극적이지 않으며 매일매일의 덧없음을 상쇄해주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은 통계적 사실이지만 이것이 개인의 장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양쪽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능선에 올라와 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8

여기서 문법적 범주의 미래와 실존적 범주의 미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실존적 미래는 우발적이지 않은, 원하고 욕망했던 내일을 의미한다. 어떤 미래는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전자의 미래는 수동적이지만 후자의 미래는 의식적 활동이다. 내일은 춥거나 비가 올 수도 있지만 내일 날씨에 상관없이 나는 작정한 대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오래오래 그냥 살아 있기만 할 수도 있지만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하는 의미로 실존할 수도 있으려나?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언제나 미래에 기투企投하는 실존자를 구분한다.7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8

삶은 이제 탄생에서 죽음까지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선율적 지속(앙리 베르그송), 켜켜이 쌓인 시간성의 밀푀유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1

전례 없는 청춘, ‘오춘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꺾이는 나이가 되면 삶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계속 살던 대로 살든가, 슬슬 무너지든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래, 이 잔고를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1

키르케고르는 인생의 여정을 세 단계로 구별했다. 미학적 단계에서는 즉각적인 것을 좇는다. 윤리적 단계에서는 정신의 요구를 좇는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단계에서는 자기 실현을 좇는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2

이 안식년은 독이 든 선물이다. 오래 사는 만큼 병도 오래 앓는다. 건강한 상태에서의 생존 기간은 그렇게까지 늘지 않았다.14 의학은 장애와 치매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되었다.15 이미 너덜너덜해진 삶을 20년이나 더 살라니!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얼굴을 유지하거나 수술 한 번으로 뚝딱 되찾고 싶다. 노년은 신체와 정신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조건에서만 참을 만하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3

죽음에 대한 이 시대의 반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랜스휴머니즘은 이 반란의 주요한 기치다. 바꿀 수 없는 숙명(유한성과 사망)과 바꿀 수 있는 숙명(노화를 늦추고 생존 기간을 연장)이 점점 더 구분되지 않는 시대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4

생물학과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생명을 리모델링하겠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눈부신 약속들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듣기 좋은 공론, 디지털 언어로 다시 쓴 《파우스트》에 불과하다. 그 약속들은 프로메테우스적이긴 하지만 아직 실현이 멀기에 힐책 받을 만하다. 눈부신 미래를 제시하던 공산주의의 배턴을 이어받았으되 과학에 토대를 둔 약속들이라고 할까. 그래도 동일한 위안,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전지전능의 동일한 꿈이다. 신체라는 "이 시대착오적인 껍데기"(다비드 르 브르통)18를 청산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 힘입어 리모델링해야 한다. 썩은 고깃덩이, 내장 뭉치였던 우리는 사이보그, 실리콘 덩어리가 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5

늙는 것도 서러운데 노화의 슬픔을 부정하거나 노화를 없앨 수 있다고 약속하는 부조리까지 범하지는 말자. 우리의 대단하고도 가소로운 힘은 노화를 늦추고 손상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손쓸 수 있는 여지만큼이 우리 자유의 여지다. 인생의 이 시기에는 우울증이라는 검은 구렁이가 가장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들마저 집어삼키려고 틈을 노린다. 노인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의학의 진전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의 진전이 필요하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62

원래 노년은 평정심의 시간이었다. 손자의 일이라면 뭐든 이해하고 용서하는 애정 넘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간. 이 시간에 군더더기는 걸러지고 본질만 남는다. 신체의 수분이 빠지고 가장 중요한 것, 정신의 위대함과 영혼의 아름다움만 남는다. 생은 점점 감퇴하고 불꽃 하나만 남지만 바로 그 고고한 불꽃이 만인의 존경과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29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라. 어떠한 향락이나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불가능에 도전하라.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세상과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두어라. 요컨대, 흔들림 없이 자기 힘을 시험하라.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30

우리에게 생년월일을 지정해주는 것은 행정 서류다. 나이는 생물학적 현실에 기댄 사회적 관습이다. 관습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물론, 결국 우리는 쓰러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패배를 내면화하지 않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31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라.
어떠한 향락이나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불가능에 도전하라.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세상과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두어라.
흔들림 없이 자기 힘을 시험하라.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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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는 추한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

적어도 두 종류의 행복이 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행복과 아직도 뜨거운 행복. 전자는 괴로움이 없고 후자는 강렬한 만족을 추구한다. 한 사람 안에서도 그날그날, 시시각각 이 두 행복이 갈마든다. 어떨 때는 아무 긴장을 느끼지 않는 데서 안녕감이 온다. 또 어떨 때는 짜릿한 감각을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성숙, 후자는 혈기 왕성한 젊음과 결부된다. 그렇지만 "나이가 가져다주는 이 우발적인 뉘우침"(몽테뉴)이 청소년기에도 찾아올 수 있으며 노년기에도 후회 혹은 기적처럼 젊음의 기운이 돌아온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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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well-learned habit was to use online tools to connect with people far away; once we lived within walking distance on the same campus, we figured we no longer needed the e-group. Although one of the cofounders was studying computer science and another early member had already founded a successful tech startup, we made the flawed assumption that an online social network was a passing hobby, not a huge part of the future of the internet. - P8

I can’t think of a more vital time for rethinking. As the coronavirus pandemic unfolded, many leaders around the world were slow to rethink their assumptions—first that the virus wouldn’t affect their countries, next that it would be no deadlier than the flu, and then that it could only be transmitted by people with visible symptoms. The cost in human life is still being tallied. - P9

Calcified ideologies are tearing American culture apart. Even our great governing document, the U.S. Constitution, allows for amendments. What if we were quicker to make amendments to our own mental constitutions? - P10

This book is an invitation to let go of knowledge and opinions that are no longer serving you well, and to anchor your sense of self in flexibility rather than consistency. If you can master the art of rethinking, I believe you’ll be better positioned for success at work and happiness in life. Thinking again can help you generate new solutions to old problems and revisit old solutions to new problems. It’s a path to learning more from the people around you and living with fewer regrets. A hallmark of wisdom is knowing when it’s time to abandon some of your most treasured tools—and some of the most cherished parts of your identity.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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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re a firefighter, dropping your tools doesn’t just require you to unlearn habits and disregard instincts. Discarding your equipment means admitting failure and shedding part of your identity. You have to rethink your goal in your job—and your role in life. - P7

This book is about the value of rethinking. It’s about adopting the kind of mental flexibility that saved Wagner Dodge’s life. It’s also about succeeding where he failed: encouraging that same agility in others.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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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순정만화에는 몇 가지 진입 장벽이 있다. 우선 처음에 언급한 인물들의 얼굴 절반을 차지하는 눈과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과 턱이다. 물론 보다보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제는 지하철 신사역에 가득한 병원 광고판을 보면 놀랍게도 그때 그 순정만화형 얼굴이 현실 세계에도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꿈★은 이루어지는 법인가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78

나름 글재주를 발휘하여 아름답게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굳이 이런 걸 쓴 속내는 축제 때 올 다른 학교 여학생들에게 이걸로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여학생들은 브레이크댄스 추는 애들 보느라 정신없어서 나눠준 영자신문은 바닥에 깔고 앉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난파되어 표류한 선원 이넉이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아내는 재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아내의 행복을 위해 쓸쓸히 돌아서는 자기희생의 이야기인 『이넉 아든』에 대한 나의 심혈을 기울인 영작문은 여학생들의 아름다운 둔부를 바닥의 냉기와 더러움으로부터 안온하게 보호하는 용도로만 쓰였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0

결국 이야기란 각자의 욕망과 감정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접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의 주어는 대부분 남성에 편중되어 있었다. 여성 작가가 쓴 『제인 에어』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이 유독 새롭게 느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겨우 여성이 주어인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교사가 되는 것 정도가 꿈의 최대치인 세계 말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1

어쩌면 나는 동네 만홧가게의 초라한 순정만화 코너에 앉아 나도 모르는 채 세계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두 가지 성으로 간단히 분류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개인마다 욕망도 감성도 무지개 색깔의 스펙트럼이 미세하게 변화하듯 다양하다. 나와 반대로 만홧가게 안쪽, 공을 던지거나 차고 사람을 때리거나 걷어차는 만화들이 더 취향에 맞는 여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여학생은 순정만화 코너에, 남학생은 소년만화 코너에 일사불란하게 나뉘어 앉아 가끔 서로를 힐끔거리던 그때의 만홧가게가 떠오른다. 우리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2

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드라마 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 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7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 꼭 누구를 착취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부를 만끽하는 모습만 꼴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성취를 누리는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인 과시로 비쳐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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