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드 매터스*에게


하느님이 맺으라고 명령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야생화와 바람의 자녀들이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아, 여전히 누이와 나에게

금작화 꽃잎 북쪽 우리나라에서 볼품 있게 피었으리라.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존 니컬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0881 - P8

변호사 어터슨 씨는 누그러져 미소를 짓는 법이 절대 없는 험한 표정의 사내로, 말을 할 때는 냉랭하고 썰렁하고 어색해했고, 감성은 뒷전에 밀어 두었으며, 깡마르고 훤칠하고 먼지 끼고 삭막했으나 그래도 어딘가 호감 가는 면이 있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내놓은 와인이 취향에 맞을 때는 뭔가 명백히 인간적인 면이 눈에서 빛을 발했는데, 이것이 그가 하는 말에까지 연결되어 표현되는 경우는 없었고, 식사 후 표정에 나타나는 말 없는 신호들로 전달하거나, 더 흔하게는 그가 살면서 하는 행동들을 통해 더욱 큰 소리로 표명되는 경우들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엄격했다. 고급 포도주를 탐닉하는 자신을 견책하려고 혼자 있을 때는 진을 마셨고, 비록 연극 무대를 즐기기는 했으나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극장 문을 들어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인정해 주는 태도를 보였다. 때로는 그들이 그릇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 기분이 강렬하게 고양될 수 있을까 부러워하는 듯이 바라보았고, 어떤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질책하기보다는 도움을 주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나는 카인의 이단 교리* 쪽으로 기우는 편일세"라는 기괴한 말을 그는 이따금 했다. "나는 내 형제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악마한테 가도록 내버려 두거든." 이런 입장을 취하다 보니, 그는 타락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내세울 만한 친구가 되어 주거나 마지막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운명이 된 적이 빈번했다. 막장으로 가는 이런 사람들이라도 그의 거처에 들르는 한, 별다른 기색 없이 그들을 대했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존 니컬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0881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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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전날 홍대 타투 숍에 가서 왼쪽 손목에 그것을 새겼다. 무서워서 타투는 못 하고 헤나 레터링으로 했다. Last meal for you. 이제 고결한 돼지처럼 고독사할 준비는 끝났다.

-알라딘 eBook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중에서 - P13

"저는 이런 사람들이 좋아요."
공대규의 지원서를 보며 조 부장이 말했다.
"별 볼 일 없이 살다가도 고결한 돼지처럼 죽을 수 있다고 믿는 거 보세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이렇게 속물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들, 자기혐오와 자기 구애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마침내 고독사에 이르는 법이거든요. 저는 말입니다, 고독사란 결국 인간의 존엄이랄지 위엄에 대한 절박한 구애의 형태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알라딘 eBook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중에서 - P14

혼자 알 수 없는 이유로 격앙되어 토하듯 말을 뱉다가 갑자기 그만두는 건 조 부장의 버릇이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법에 서툰 사람 특유의 혼자 보내 온 시간의 밀도가 묻어나는 말투였다. 실은 그래서 오 대리는 조 부장의 부장님식 농담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나는 중얼거림이 싫지 않았다. 고독사란 이런 사람이 하는 겁니다라고 온몸으로 증명하는 조 부장을 보고 있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누렇게 바랜 헌책 냄새를 맡을 때처럼 쓸쓸한 안도감이 들었다. 같이 있어도 1인분의 존재감이 아니라 0.5인분의 존재감만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심야코인세탁소’라는 수상한 성인 전용 사이트를 만들어 고독한 이들을 위한 고독사 워크숍 같은 걸 진행할 터였다.

-알라딘 eBook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중에서 - P15

조 부장이 고독사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전까지 운영하던 ‘심야익스프레스’에서는 주로 세 가지 이사 업무를 다뤘다고 한다. 심야 포장 이사와 야반도주, 그리고 자발적 실종자들을 위한 잠적.

-알라딘 eBook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중에서 - P18

그 후 심야 이사의 핵심 사업은 실종자로 신분을 바꾸고자 하는 성인들의 자발적인 잠적과 증발, 실종을 돕는 일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중에서 - P19

고독사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 혹은 자기 부정의 상태에 있는 30~40대 남녀들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독사라면 일찌감치 자신의 고독에 안부를 묻고 친밀해지는 연습을 하며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대상인 거죠. 내 죽음이 누구에게도 슬픔이나 죄가 되지 않는, 얼룩 없는 클린한 고독사가 되도록 말입니다.

-알라딘 eBook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중에서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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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사체는 그녀에게 바친 진혼의 꽃다발.
솔직히 기뻤다. 다만 그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목표를 이룬 그를 침묵과 함께 축복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정상이 아닌 이 살인범을 제멋대로 굴게 두고 싶지 않다.
본성이 고개를 내민 듯 느껴졌다. 이 두 가지 감정 모두 자신의 솔직한 사랑 방식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뜻이 같은 동료와 사냥감. 전부 기요하루고, 어느 쪽이든 매력적이었다. 마음이 끌렸다.
억지로 답을 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멀리서 지켜볼까? 아니면 목숨을 건 사냥을 시작할까?
마음이 고요하게 흔들렸다.

-알라딘 eBook <머더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중에서 - P465

이 작품은 ‘법이 심판하지 못한 자들을 단죄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문장만 보면 선악 대결 구도로 이어지는 히어로물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법이 심판하지 못한 자’일뿐, 일방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저 제각각 자아를 표출할 뿐입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집념과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인물들. 살인자에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 주인공인 점도 매력적이고 착한 인물 하나 등장하지 않는 점도 참신합니다.

-알라딘 eBook <머더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중에서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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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의 작품과 삶을 보면 존경하는 두 명의 예술가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마이어와 비슷하게 거리 사진을 찍은 헬렌 레빗이고, 또 한 사람은 청소부로 일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 사망한 후에야 작품이 알려지면서 아웃사이더 예술가로 불리게 된 헨리 다거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10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그녀의 존재감을 느낀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12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았고, 평생 그 일에 몰두했다. 음악가의 수업을 빗대어 말하자면 이론상 우리도 마이어가 보았던 세상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13

사진은 세상을 바라보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필수 수단이 되었다. 1951년 미국으로 돌아온 마이어는 브라우니 카메라 대신 보다 정교한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진가로서 시선이 깊어지고 기술도 성숙해졌다. 코닥걸은 성장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22

롤라이플렉스는 정밀함과 신뢰성, 편리성 등으로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진가 모두가 좋아하던 독일제 카메라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23

하지만 가장 생기 넘치고 독창적인 작품은 뉴욕의 거리 사진이다. 마이어는 뉴욕 거리에서 도시의 모습과 생활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 도시 특유의 문화를 찍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24

평생을 미혼의 보모로 살았지만 몹시 지적이었던 마이어는 늘 특권, 젠더, 인종, 정치, 죽음 등의 주제에 민감했다. 그녀가 찍은 행인들과 삶이 망가진 사람들, 5번가와 바우어리 거리, 모더니스트가 지은 예술적인 건물들과 빈민가 공동 주택, 그리고 공원, 배, 지하철이 드리운 그림자 사진에는 한 여성의 기민한 정서와 쉴 새 없이 관찰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25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이어는 1956년 시카고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보모, 관리인, 가정부 등으로 여러 집에서 일하며 1990년대까지 거주했다. 마이어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하일랜드 파크였다. 1956년부터 마이어는 그곳에서 낸시와 애브론 겐스버그의 아이들 존, 레인, 매튜를 돌봤다. 겐스버그 자녀들이 자라자 마이어는 윌멧 지역에 있는 월터와 마저리 레이몬드의 집에서 1967년부터 1973년까지 그들의 딸 잉거의 보모가 되었다. 1975년에는 유명 방송인 필 도나휴의 집에서도 잠시 일했다. 마이어는 이후에도 여러
집에서 보모로 일했다.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는 장애인과 노인을 간병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0

항상 방심하지 않고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 그녀의 직업이었다면 주의 깊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사람과 공간을 관찰하는 일은 특별하고도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1

색상도 화려해졌고 노출도 많아졌지만 마이어는 늘 수수한 옷을 고수했다.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던 마이어는 주로 헐렁한 남자 셔츠, 구식 블라우스, 단순한 디자인의 중간 길이 치마를 입었다. 소매는 걷어올렸고 스타킹은 돌돌 말아 내려 신었다. 끈을 묶는 튼튼한 신발을 자주 신다 보니 이웃집
꼬마들에게 군인 장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마이어가 보모로 일하던 당시 아이였던 사람들과 마이어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마이어의 옷차림을 수녀, 소비에트 연방의 공장 노동자, 여자 교도관, 레즈비언이라고 표현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2

시대에 뒤떨어진 옷차림을 고수하던 마이어는 장신구나 화장도 하지 않았는데 모자만은 여러 개를 번갈아가며 썼다. 모자를 쓰지 않을 때는 머리를 뒤로 넘겨 핀으로 고정시켰다. 늘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걸어 다니거나 엔진이 달린 소형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운전면허는 없었다. 어쨌든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온 듯한 마이어의 차림새와 외모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3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옷차림과 행동은 그녀의 말과 표현에도 드러났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직설적이며 무뚝뚝한 성격 탓에 가까이하기 꺼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의 억양은 상당히 독특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3

1950년대 시카고 대학교의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리스먼은 자신의 저서 《고독한 군중》에서 미국인을 ‘타자 지향적’이라고 규정한다. 전쟁 후, 인간관계와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교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내부 지향적’ 개인들은 보다 대담하게 자신의 본능을 따르고 관습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마이어처럼 호기심이 많고 단호한, 예상 밖의 유형은 내부 지향적 인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5

마이어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정기적으로 영화도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마이어가 그곳에 자주 갔음을 알 수 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6

마이어는 늘 남성들을 경계했고 남성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오면 어김없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녀가 보살폈던 아이들은 마이어가 남성들의 공격적이고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었다고 말한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7

사진을 찍는 작업은 고립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과 세상과의 유대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내밀함이 불편했던 마이어에게 사진은 어쩌면 더욱 생산적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편안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9

마이어도 그랬다.
덧없이 사라지는 순간들과 사람들을 붙잡아두려는 노력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전에 존재했던 것’을 붙잡는 것이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40

마이어는 여러 대의 카메라로 작업했지만 25년 이상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였다. 전문가용 2안 반사식으로 6×6cm의 정사각형 사진을 만들어내는 이 카메라는 마이어의 시각을 형성하고 사진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930년대 롤라이플렉스는 ‘명성을 얻은 사진가들이 언제나 사용하는 카메라, 여러분을 최고의 사진가 반열에 올려줄 카메라’라는 광고와 함께 정밀한 광학, 직관적인 조작 등으로 전문가와 아마추어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얻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50

동시대에 나온 더 작은 크기의 35mm 카메라들과 달리 중형인 롤라이플렉스는 카메라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찍는 방식이 아니라 목에 걸거나 팔에 매달아 가슴과 허리 중간쯤 몸의 중심에 놓고 찍는다. 뷰파인더는 피사체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여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이다. 찍고자 하는 대상에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 집중해야 한다. 1초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명상의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50

롤라이플렉스에는 20세기 중반 사진가들을 매료시킨 또 다른 기능들이 있다. 35mm 네거티브 필름에 비해 필름 크기가 더 커서 더욱 세부적이고 정밀한 묘사가 가능했다. 마이어가 사용했던 12초 타이머 기능은 보다 계획적인 사진을 찍기에 용이했다. 게다가 뷰파인더를 내려다보고 찍기 때문에 피사체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거나 눈이 직접 마주쳐서 발생하는 마찰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51

하지만 롤라이플렉스의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면은 정사각형 결과물이다. 주제와 구성을 활기차고 균형 있게 유지하면서 정사각형 특유의 틀에 박힌 이미지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수평 방식의 35mm 필름은 역동적인 피사체나 이야기들을 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정사각형 모양은 막혀 있고 제한적이며 자칫 정적으로 보이기 쉽다. 우아하지만 네모반듯한 공간을 어떻게 잘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진가에게 구체적인 시각과 노련한 기술을 요구한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52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적 수행이다. 사진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색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이며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세상과 가장 깊이 공감하는 매력적인 행위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55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여성이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모습, 거리 위 풍경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이어의 사진은 여성에게 특히 마이어의 표현대로라면 ‘특정 연령대 여성’에게 초점을 둔 사진들이 꽤 있다. 마이어의 사진 속 여성들은 중년에서 노년의 여성들이었다. 마이어는 그 여성들 바로 뒤에서 혹은 비스듬하게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마이어는 욕구, 성격, 계급, 연령 등을 알려주는 단서로 몸매, 화장, 헤어스타일, 망사 달린 모자, 털, 여우꼬리, 값비싼
신발 혹은 너덜거리는 신발 등 시각적 지표들을 관찰하며 하나씩 점검해 나갔던 것 같다. 또한 자신과 그들 모두 가진 선택권과 그들에겐 없고 자신에게만 있는 선택권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개중에는 경계의 눈초리로 불편해하거나 예기치 않은 감시에 불쾌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는 사진들도 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58

마이어가 초창기에 찍은 뉴욕의 거리 사진들은 나중에 찍은 시카고 풍경보다 더 밝고 낭만적이다. 1952년 A. J. 리블링은 <뉴요커>에서 시카고를 ‘가진 자들과 가지지 않은 자들’을 경제적으로 지리적으로 구분하는 도시라고 말했다. 마이어는 나무가 무성한 교외와 도시 사이의 경계를 주목했다. 그 차이는 도시의 기반 시설에까지 뻗어 있었다. 마이어가 찍은 시카고 거리는 21년간 시카고 시장이었던 리처드 달리의 공격적인 건축 경기 부양책으로 역동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62

마이어의 사진, 필름, 테이프는 세상을 기록하는 행위가 그녀 삶의 중심임을 말해준다. 다양한 기록 저장 장치와 특히 사진을 통해 마이어는 자신을 인생의 관찰자 위치에 둘 수 있었다. 마이어의 사진에는 모순을 포용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가까워지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74

마이어에게 사진은 이미지의 즐거움에 관한 행위이자 개념화 작업이었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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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평생 독신이었던 마이어는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하였다.
그녀는 큰 키에 마른 체형으로 늘 헐렁한 남자 셔츠, 구식 블라우스 등 단순한 옷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독특한 억양과 직설적이며 무뚝뚝한 성격 탓에 가까이하기를 꺼려했지만, 주변인들은 그녀가 가식 없고 지적인 사람이었다고 평한다.
마이어는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2009년 죽는 순간까지 아무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말년의 그녀는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었다. 2007년 15만 장의 필름을 보관해둔 5개의 창고는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에 부쳐졌고, 사진은 역사가 존 말루프의 손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이어의 사진은 2년 후 말루프가 우연히 가치를 발견하기 전까지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이 범상치 않다고 느낀 말루프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고, 놀랍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언론 또한 천재적이나 불운했던 이 무명의 사진가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녀는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유명해졌다.
현재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뉴욕 타임스>, <보그>, <뉴요커> 등에 소개되었고, 미국 전역은 물론 스웨덴, 영국,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 전 세계에 걸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녀의 미스터리한 삶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베를린 영화제, 선댄스 영화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국제 영화제의 수상작으로 뽑혔고, 2015년에는 오스카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중 가장 깊이있는 작품 235점을 선별해 한 권에 담은 사진집이다. - <비비안마이어 나는카메라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564480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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