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란 무엇인가.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고.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7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8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슬픈 꿈을 꾸었느냐?"

"왜 그리 슬피 우느냐?"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13

한밤에 눈 뜨고

죽음과 팔뚝씨름을 한다.

근육이 풀린 야윈 팔로

어둠의 손을 쥐고 힘을 준다.

식은땀이 밤이슬처럼

온몸에서 반짝인다.

팔목을 꺾고 넘어뜨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어둠이

팔뚝을 걷어 올리고 덤빈다.

그 많은 밤의 팔뚝을 넘어뜨려야

겨우 아침 햇살이 이마에 꽂힌다.

심호흡을 하고 야윈 팔뚝에

알통을 만들기 위해

오늘 밤도 눈을 부릅뜨고

내가 넘어뜨려야 할

어둠의 팔뚝을 지켜본다.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28

"이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고 가정해보게나. 컵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지?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비어 있어야겠지. 빈 컵이 아니면 제 구실을 못 할 테니. 비어 있는 것, 그게 void라네. 그런데 비어 있으면 그 뚫린 바깥 면이 어디까지 이어지겠나? 끝도 없어. 우주까지 닿아. 그게 영혼이라네. 그릇이라는 물질은 비어 있고, 빈 채로 우주에 닿은 것이 영혼이야. 그런데 빈 컵에 물을 따랐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30

"(눈을 빛내며)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겠네. 태초에 빅뱅이 있었어. 물질과 반물질이 있었지. 이것들이 합치면 빛이야. 엄청난 에너지지. 그런데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으면? 빛이 되다 만 물질의 찌꺼기가 있을 것 아닌가. 그게 바로 우리야. 자네와 나지. 이 책상이고 안경이지. 이건 과학이네. 상상력이 아니야. 우리는 빛이 되지 못한 물질의 찌꺼기, 그 몸을 가지고 사는 거라네. 그런 우리가 반물질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빛이 되는 거야."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34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때 인간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가르쳤던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 그토록 오래 죽음에 훈련된 사람도 보통의 인간들처럼 부정과 분노로 출발해서 똑같은 절차를 거쳐갔다니. 철창 속의 호랑이와 철창 밖의 호랑이라는 말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죽음 앞에 인간은 얼마나 몸서리치게 작은가.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531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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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Eric Hoffer는 1951년에 발표한 저서 《맹신자들》에서 이렇게 썼다.
 
선전·선동은 이미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통할 뿐이다. 생각을 주입한다기보다는 이미 받아들인 사람들의 원래 있던 생각을 한번 더 표명하고 옹호할 뿐이다. 재능 있는 선동가는 청중의 마음속에서 부글거리던 생각과 열정을 폭발 직전으로 추어올린다. 그는 사람들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눌려 있던 감정이 메아리치게 만든다. 생각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믿게 만들 수 있다.7
 
호퍼는 선전·선동이 통하는 대상이 주로 ‘좌절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59

초두효과(primacy effect)란 처음 접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한 정보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마스크에 대해 부정적인 첫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스크에 대한 스스로의 잘못된 초기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가짜 뉴스’만 비난한 정부의 책임은 작지 않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64

유럽은 다르다. 마스크는 결핵이나 폐암 같은 병에 걸린 환자가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스페인 친구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인이 마스크를 예방 목적으로 쓰기까지는 넘어야 할 ‘정신적 장벽(mental barrier)’이 존재한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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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시아를 뭉뚱그려 하나의 집단으로 보는 유럽인들은 이 같은 일반화에 익숙하다. 김정은 얘기만 꺼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은, 적어도 동아시아 어딘가에 중국, 일본, 북한 말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조금 늘었다는 점이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33

철저한 분석과 디테일을 무시한 채 ‘바이러스=중국=아시아’라는 간단한 도식을 만들어내고 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건 ‘악의적 게으름’일 뿐이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33

비슷한 일이라도 미국에서 일어나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유럽에서 일어나면 조용히 묻힌다. 미국의 흑인과 유럽의 흑인은 가진 목소리의 크기가 다르다. 미국의 노예제도로 상징되는 흑인 차별의 ‘정통성’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파워 때문이기도 하다. "‘블랙 아메리카’는 ‘블랙 디아스포라diaspora’에 헤게모니적 권위를 갖는다. 비록 소외된 존재라 할지라도 미국에 있다는 건, 다른 지역의 어떤 흑인 그룹과도 비교가 안 되는 범위에 있는 것이다."4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유럽이 미국보다는 낫다’고 하는 건 인종 문제의 ‘내로남불’이 아닌가.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39

이런 사건은 인종차별의 열매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자라는 토양은 일상에 스며든 차별이다. 무지, 무관심, 체념은 이 토양에 주는 비료다. 사소하다고,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고 옆으로 밀쳐둔 사이 일상 곳곳에 편견의 뿌리가 뻗어 내려간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39

무어인을 뜻하는 스페인어 모로moro는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짙은 색, 악마, 이교도, 순수하지 않은 것 등이 다 ‘모로’와 엮였다. 세례받지 않은 아이도 모로, 물을 타지 않은 진한 와인 원액도 모로라고 불린다(물을 뿌리는 신성한 세례 행위를 받지 않았다는 뜻에서). 스페인 속어로 ‘모로에 내려간다(bajarse al moro)’는 건 ‘마약을 거래하러 북아프리카에 간다’는 뜻이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42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Othello〉는 당시 무어인이 유럽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됐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 오셀로는 무어인으로,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아내를 죽인 뒤 자살한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43

슈무츨리라는 캐릭터가 스위스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백인 산타와 흑인 시종’이라는 유럽의 오랜 전통과 관련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흑인 시종은 유럽에 침입한 북아프리카 무어인에 대한 공포와 증오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맥락을 도외시하면 편하긴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스위스의 ‘전통’이라는 이 행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 <오래된 유럽>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4186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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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야기했다.

"눕지 못하면 실외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40

무언가를 규정지을 때 쓰이는 경계선.

어린 나는 이런저런 나라들의 국경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46

그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남자가 되고 싶어 하나?’였다. 내 눈에 멋져 보이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닮고 싶은 것은 죄다 남자들이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 ‘특이한 여자애’라는 것은 ‘여자애답지 않은 여자애’라는 말과도 같았다.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48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특이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특이하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던, ‘특이하다’는 것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가 아닐까.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48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 다르다. 지구에 사는 인구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모두가 특별하다. 우월감이야 뭐, 어떤 분야에서건 피해야 하는 위험한 감정이고.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49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에게는 특이한 사람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특이하다’, ‘평범하다’라고 굳이 나누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냥 사는 거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나는 액자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도, 바깥에 나와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예전에 한참 유행하던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그림 같은 거다.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49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그렇게 수많은 상자가 필요할까?

나는 국경에 살고 싶다.

밤하늘이 천장이요, 잔디밭이 장판이라 여기며.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50

아무튼 인생이란… 그 뭐냐, 그거다. 청소가 되지 않은 너저분한 길을 운동화 달랑 하나로 밑창이 다 뜯어질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 같다. 껌을 밟을 때도, 은행을 밟을 때도, 압정을 밟을 때도 있는 것이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다시 걸을 수는 있지만 흔적은 남는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쯤 발을 내려다보면, 신발은 진작 사라져 있고, 신발 밑창이라고 믿고 있던 것은 발바닥의 굳은살인 것이다. (나, 지금 엄청나게 멋진 비유를 해낸 것 같아.)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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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산책하고 밥 먹고 커피 내려 마시면서 책도 읽고, 간식 먹으면서 만화며 드라마를 보고, 때에 따라 낮잠도 자고,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목욕재계한 후 공부도 하고. 하루가 모자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런 조바심 없이 그런 매일 매일을 보내는 것이 나의 꿈이다. - <안 일한 하루>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4361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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