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혼네는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두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다. 달리 표현하면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다.
다테마에로 혼네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다테마에로 혼네를 에둘러 드러낸다는 해석이 더 어울린다. 그런 점에서 다테마에와 혼네의 문화는 속내를 감추는 이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반대로,
간접적이나마 속내를 분명히 드러내는 능동적인 방법이라고 할만하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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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愛]’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22

나한테 마침내 이야기할 사람이 생긴 거야. 나는 말이지, 너한테 내 언어를 가르치면, 내가 한때 사랑했지만 잃어버렸던 것들을 작게나마 다시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네가 처음 나한테 말을 했을 때, 우리 어머니랑 나랑 똑같은 억양의 중국어로 말을 했을 때, 난 한참 동안 울었단다. 너한테 처음으로 종이 동물을 접어 줬을 때, 그래서 네가 웃었을 때, 난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만 같았어.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34

"아뇨. 센틸리언은 고삐 풀린 알고리즘이에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 점점 더 많이 제공할 뿐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센틸리언은 우리를 조그만 거품 속에 가뒀어요. 그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은 전부 우리 자신의 메아리예요. 그래서 점점 더 기존의 믿음에 집착하고, 자신의 성향을 점점 더 강화해 가는 거죠. 우린 질문하기를 멈추고 뭐든 틸리가 판단하는 대로 따르고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고분고분한 양처럼 변해 가고, 털도 점점 더 복슬복슬해져요. 센틸리언은 그 털을 깎아서 더 부자가 되고 말이죠. 하지만 난 그렇게 살기 싫어요."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60

"봤지요? 틸리가 없으면 당신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자신의 삶조차 기억 못 하고,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못 겁니다. 이제 인류는 사이보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의식을 전자(電子)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아를 두뇌 속으로 다시 욱여넣기가 불가능합니다. 당신들이 파괴하려고 했던 당신의 전자 복제판은 문자 그대로 실제의 당신입니다.
이렇게 전자적으로 확장된 자아 없이는 살 수가 없게 된 이상, 당신들이 센틸리언을 무너뜨려 봤자 금세 다른 대체재가 등장해서 우리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이미 늦었다, 이겁니다. 거인은 이미 오래전에 램프에서 탈출했어요. 처칠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건물을 만드는 것은 우리이지만, 나중에는 그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돕는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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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 대꾸하지 마라. 너도 같은 사람이 되리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엔 같은 말로 대꾸해 주어라. 그래야 지혜로운 체하지 못한다.
― 잠언 26:4-5

-알라딘 eBook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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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틸다 스윈튼은 이례적인 경우다. 그는 영화가 신화의 지위를 포기한 이후, 현대 영화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피안彼岸을 상징하는 얼굴, 말하자면 우리가 소유한 적 없는 얼굴을 갖고 있다. 오래전 그레타 가르보와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점했던 자리에 ‘시대착오적으로’ 서 있다고 해도 좋다. 그를 묘사함으로써 나는 이 환영幻影 같은 배우의 소매 끝을 잡아보려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와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은 환각은 기묘하게 닮아 있는데, 이는 많은 글쟁이들이 걸려드는 끈끈이주걱이다.

-알라딘 eBook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중에서 - P46

틸다 스윈튼이라는 배우를 휘감은 백색은 많은 색채 중 하나라기보다 채색되지 않은 여백의 그것이며, 『모비딕』 이스마엘의 표현대로 "모든 색의 부재인 동시에 모든 색의 종합"으로서의 초월하고 포용하는 흰색이다(『색의 수수께끼』마가레테 브룬스, 조정옥 옮김, 세종연구원, 1999, 213쪽에서 재인용).

-알라딘 eBook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중에서 - P50

남성과 여성을 포괄하고 자유롭게 오가는 완전체를 뜻하는 앤드로지니는,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생식기관을 한 몸에 가진 사람을 일컫는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와 달리 추상적 개념이다. 그러나 앤드로지니가 영화 속에서 배우의 육체를 통해 제시되는 순간—예컨대 우리가 여성임을 아는 배우가 극 중에서 남성을 연기하고 화면 안에서 양성을 모두 매혹할 때—그것은 더 이상 투명한 관념일 수만은 없으며 특별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한다. 수전 손택이 썼듯이 "가장 정제된 형태의 성적인 매력, 그리고 가장 세련된 형태의 성적 쾌락은 자기 성에 역행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강한 남자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여성적인 면이고 여성스러운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남성적인 요소다"(「캠프에 관한 단상」에서).

-알라딘 eBook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중에서 - P52

말하자면 <The Maybe>는 "연기하는 순간 관객이 부재하는 공연"인 영화 연기의 본질에 대한 그의 사색이기도 했다.

-알라딘 eBook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중에서 - P59

그처럼 틸다 스윈튼은 본인의 비범한 몸을 남성과 여성, 게이와 스트레이트, 인간과 신성, 추상과 리얼리티 사이에서 관객이 주체적으로 교섭을 벌이는 장소로 제공하는 희한한 배우다. 평범한 화면 속에서도 연초점으로 촬영된 듯 미스터리를 안개처럼 두르고 있는 그의 ‘미친’ 존재감은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이 이혼을 논의하는 부모에게 던졌던 "내가(이혼의) 맥락이잖아!(I’m the context!)"라는 한마디와 짓궂은 우연처럼 들어맞는다. 틸다 스윈튼, 그가 바로 컨텍스트다.

-알라딘 eBook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중에서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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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가 ‘푸콘 그랜 호텔’ 글자가 새겨진 타월에 엎드려 있다. 모래는 곱고 거무스름하며 호수는 초록빛을 띠고 있다. 호숫가 솔숲의 초록은 더 짙고 상쾌하다. 흰 눈 덮인 비야리카 화산이 호수와 숲, 호텔과 푸콘 마을을 굽어본다. 화산추에서 거품처럼 연기가 일더니 파랗고 맑은 하늘로 흩어져 사라졌다. 해변의 파란 오두막집들. 모자를 쓴 것 같은 게르다의 빨강 머리, 노란 비치볼, 나무 사이로 천천히 다니는 시골 사람들의 전통 복장에 달린 붉은 띠.
게르다와 클레어는 모래를 털거나 파리를 쫓으려고 볕에 그은 다리를 께느른히 쳐들어 흔들곤 했다. 사춘기 소녀답게 주체할 수 없이 킥킥거릴 때는 여린 몸을 떨어가며 웃었다.
"콘치의 표정은 또 어떻고! 콘치가 생각 수 있는 말이라곤 ‘Ojala’●밖에 없었어. 참 뻔뻔스러워!"
● 스페인어로 ‘제발 그랬으면!’.
게르다의 웃음소리는 독일 개가 짧고 빠르게 짖는 소리 같았다. 클레어의 웃음은 고성이 잔물결치는 듯했다. "콘치는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인정하지도 않아."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20

처음 깔았을 때는 캐비아처럼 보이고 깨진 유리 같은 소리, 얼음 씹는 소리가 난다.
나는 포치 그네 의자에 할머니와 앉아 흔들거리면서 레모네이드를 다 마신 뒤 얼음을 씹어 먹곤 했다. 우리는 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업슨가街 도로를 포장하는 걸 구경했다. 십장이 머캐덤을 부으면 죄수들이 무거운 발로 율동감 있게 그것을 밟아 다졌다. 사슬에 묶인 죄수들. 머캐덤 소리는 박수갈채 소리 같았다.
우리 셋은 그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엄마는 우리가 사는 곳을 불결하다며 싫어해서 그랬다. 어쨌든 이제 우리 집 앞에도 머캐덤 길이 깔렸다. 외할머니는 깨끗한 환경을 무척 원했는데, 이제 길이 포장되어 먼지가 덜 나게 되었다. 바람이 불면 텍사스의 붉은 먼지가 늘 제련소에서 나오는 회색 분진과 함께 날아다녔다. 그 먼지가 집 안으로 새어 들어와 매끈하게 닦아놓은 현관 마루를, 마호가니 식탁을 모래밭으로 만들곤 했던 것이다.
나는 혼자 머캐덤을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나에게는 머캐덤이 친구 이름 같았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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