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는 잊힐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고 심각해 보이며, 버거운 결과로 보이는 것들, 바로 그것들이 잊히는, 더는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언젠가 엄청나고 중요하게 여겨질 일이나 혹은 보잘것없고 우습게 여겨질 일을 알지 못한다. (중략) 지금 우리가 우리의 몫이라고 받아들이는 오늘의 이 삶도 언젠가는 낯설고, 불편하고, 무지하며, 충분히 순수하지 못한 어떤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가 알겠는가, 온당치 못한 것으로까지 여겨질지도.

- 안톤 체호프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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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집니다.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은 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제 몸이 무거워 들어가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글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일상의 한 부분처럼 가까이하는 저에게 이미지가 형상으로 표현되는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입니다. 제게 없는 능력인지라 그림 앞에 서면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경탄이 절로 터집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림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떤 재촉 같은 것을 감지하지요. -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1960 - P4

그렇다면 저를 잡아당겨 세우는 그림은 어떤 것들일까요?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가만히 있는 저를 잡아당겨 세웁니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줍니다. 더욱이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줍니다. -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1960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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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자신이 가진 절대가치를 내려놓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일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이르면, 전에는 당연하고 상식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면하게 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어색한 환경에 당황하고 힘들어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왜 그런지 이해할 때 즈음 비로소 진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거짓말처럼 예전에 살던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남처럼 타자화他者化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

전통 한옥의 창문이나 방문에는 대체로 밖에서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사람은 드물다.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래된 한옥이나 산사의 담장은 고개를 들면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다. 제주도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민가에는 대문에 나무 막대만 걸쳐 놓고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렸다. 이런 예들은 한국의 전통 사회가 얼마나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3

잠깐 눈길을 본인 집의 현관 자물쇠로 돌려 보자. 1980~ 1990년대에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 현관문들이 아주 늦은 밤이 아니라면 닫혀 있되 (수동식 잠금장치라면) 잠겨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집 안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리고 지금 대낮이라면)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노트북이나 핸드백으로 자리를 맡아 두고 마음 편하게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이나, 아파트 현관 앞에서 온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택배 상자 같은 한국의 흔한 일상은 서구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신기한 일화로 종종 소개될 정도다. 서구의 관점에서는 믿기 어려운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이웃에 대한 무의식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 결과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낙관적인 도시관’이라 부른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4

다양한 사고방식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도시 공간에서 공존하려면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부터 품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한 나라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종교마저 다르면 ‘공동의 선’ 같은 형이상학적 공동체 가치는 희미해진다.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하고 문서로 명기되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생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구라 불리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그들의 문화를 계승한 미국 같은 나라가 겪어 온 도시 문화고, 이런 태도는 그들의 도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3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이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제시한 공간 개념. 개인과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선호하고 감내하는 거리가 각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것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라틴 문화권 사람들이 독일이나 미국 같은 앵글로색슨 문화권 사람들보다 서로 가깝게 모이려는 성향이 강하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6

도시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모든 문제에 대해 ① 발생하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방향으로 ② 설치와 유지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지속적이게 ③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 주체에게 그만큼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전략이 수립된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6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는 천만이 넘는 다수의 거대 도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가 탄생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18세기 말 서유럽의 산업혁명부터 촉발된 도시 집중화 현상은 한 세기 만에 지구상에 천만 인구의 서울보다 더 큰 도시를 20여 개나 만들었다. 보행자나 마차의 속도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던 도로는 자동차와 지하철에 맞게 재편되어야 했고,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 살던 사람들은 지상 수백 미터 상공의 유리 상자 위에서 살게 되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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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ront of another, a fat man in Bermuda shorts and a wifebeater sits in a lawn chair from Costco or Sam’s Club, drinking a beer and watching them go by. Times have been good in America for awhile now, but maybe that is going to change.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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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무대는 어쩌면 누구도 보아주는 이 없는 무대입니다. 박수갈채도 환호성도 없고, 화려한 옷도 뭇사람들의 칭송도 없습니다. 자신만이 고독하게 자신의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사람. 존재의 가장 깊은 바닥을 보는 곳. 그 바닥에서 자신의 약함과 한계, 외적 열악한 환경, 심지어 비난과 오해와 공격마저 훌쩍 뛰어넘어 참으로 자신이 닿아야 할 곳으로 도약하는 한 사람.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 독무대가 있습니다. 이 독무대를 발견할 때 이 아이처럼 거친 들판도 험준한 산악도 황량한 사막도 뛰어갈 수 있는 풀뿌리 같은 힘이 솟아납니다. -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63553 - P44

숲속에 들어가 보면 숲 바닥을 덮고 있는 썩어가고 있는 낙엽들로 가득합니다. 한때 자신의 몸이었던 잎의 죽음의 흔적으로 나무는 제 생명을 이어갑니다. 사람의 몸도 이런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아, 악인이든 선인이든 우리는 죽음을 맞고 우리의 몸은 자연으로 되돌아가 무엇인가를 먹여 살립니다. -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63553 - P54

생명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됩니다. 오직 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소중히 키우고 살찌워 아래 세대에게 물려줍니다. 내 것이 아니기에 전달할 뿐입니다. 생명을 전달하자면 늙고 찌그러들 수 없습니다. 아이의 생명과 눈 맞추기를 하는 것은 어른의 생명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임을 아는 이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63553 - P61

따지고 보면 소통이 쉬운 사람이란 없습니다. 소통이란 것 자체가 자신의 어떤 죽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통이 쉬운 상대를 찾을 일이 아니라, 자신이 소통하기 쉬운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63553 - P79

어른 관심이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아이답게 뛰어놀 수 있을 때 아이들은 학교나 세상에서 난리를 치지 않고 활개를 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꿈에 진지하게 응해 주는 어른 앞에서 아이는 꿈을 현실로 바꿔 갈 힘을 얻습니다. 어른이 함께 하면 아이들끼리 놀 때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몸으로 체득합니다.

-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63553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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