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액 내부의 단백질을 영상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통상적인 엑스선 회절回折 기법으로는 결정격자 샘플밖에는 조사할 수 없고, 그것이 보여주는 분자 배열도 생물학적으로 유의미한 수용성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새로운 기술의 열쇠가 되어준 것은 초음파 자극을 받고 반쯤 질서화된 액체상液體相 반응이었고, 컴퓨팅 분야에서 몇 가지 중요한 기술 혁신이 있었던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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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8

그리고 그사이, 요즘 습관적으로 쓰이는 표현 사례 다섯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다음의 다섯 가지 문단은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더한 건 얼마든지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악습을 각각 잘 나타내주고 있기에 골라본 것들이다. 약간은 평균 이하인, 하지만 현실을 꽤 잘 반영해주는 샘플이기도 하다. 번호를 단 건 나중에 언급하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3

이 글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오류가 있지만, 문장이 아주 고약하다는 것 말고도 공통되는 특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유가 상투적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글 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든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영어 산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치적인 글은 거의 예외 없이 더욱 그렇다. 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자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은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조립식 닭장의 부품처럼 이어붙이는 ‘어구’는 늘어나는 식으로 산문이 이루어진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7

죽어가는 비유. 새로 만들어내는 비유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킴으로써 생각을 돕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기법상으로 ‘죽어버린’ 비유(예를 들어 ‘철석같은 결의iron resolution’)는 사실상 일상어의 지위로 되돌아가되 생기는 잃지 않으면서 널리 쓰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두 부류 사이에는 환기시키는 힘은 다 잃어버렸지만 직접 어구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이유만으로 쓰이는 상투적인 비유들이
숱하게 있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7

‘ring the changes on(분위기를 바꿔보다)’, ‘take up the cudgels for(편들어주다)’, ‘toe the line(정해진 대로 따르다)’, ‘ride roughshod over(마구 다루다)’, ‘stand shoulder to shoulder
with(어려울 때 서로 돕다)’, ‘play into the hands of(누굴 이롭게 해주다)’, ‘no axe to grind(사심 없다)’, ‘grist to the mill(나중에 득 될 만한 무엇)’, ‘fishing in troubled waters(난국에
득을 보려는 짓)’, ‘rift within the lute(분열의 조짐)’, ‘on the order of the day(격에 맞게)’, ‘Achilles’ heel(유일한 약점)’, ‘swan song(생애 최후의 작품)’, ‘hotbed(소굴)’. 이런 비유들 중 상당수는 뜻도 모르고 쓰이며(이를테면 ‘rift’가 대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비유들이 자주 섞여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글 쓰는 사람이 자기 말에 관심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8

지금 유행하고 있는 비유들 중 일부는 쓰는 사람이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본래 뜻에서 파생돼 나온 것들이다. 예컨대 ‘toe the line’은 흔히 ‘tow the line’으로 쓰이곤 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는 ‘the
hammer and the anvil(망치와 모루)’인데, 지금은 모루가 망치에 깨진다는 뜻으로 쓰인다. 실제로 깨지는 쪽은 언제나 망치이지 그 반대인 경우는 결코 없는데도 말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잠시 멈춰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이며, 본래의 뜻을 곡해하는 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8

기능어, 또는 언어적 의수족. 적절한 동사나 명사를 찾아내는 수고를 덜고, 동시에 문장마다 균형미를 주는 듯한 음절을 덧대는 경우를 말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9

‘render inoperative (무력화시키다)’, ‘militate against(방해하다)’, ‘prove unacceptable(용납하기 어렵다)’, ‘make contact with(접촉하다)’, ‘be subjected to(노출되다)’, ‘give rise to(초래하다)’, ‘give grounds for(근거가 되다)’, ‘have the effect of(효과를 내다)’, ‘play a leading part (role) in(주된 역할을 하다)’, ‘make itself felt(존재감을 드러내다)’, ‘take effect(효력을 나타내다)’, ‘exhibit a tendency to(어떤 경향성을 보이다)’, ‘serve the purpose of(목적에 부합하다)’ 등등. 이들 경향의 기조基調는 한 단어인 동사를 배제한다는 점이다. ‘break’, ‘stop’, ‘spoil’, ‘mend’, ‘kill’처럼 한 단어인 동사를 쓰는 게 아니라 ‘prove’, ‘serve’, ‘form’, ‘play’, ‘render’ 같은 다목적 동사에다 명사나 형용사를 붙여
‘구句’를 만들어 쓰는 것이다. 게다가 가능한 한 능동태보다는 수동태를 사용하며, 동명사보다는 명사구를 (이를테면 ‘by examining’보다는 ‘by examination of’를) 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9

그리고 동사의 사용 범위는 ‘-ise’나 ‘de-’ 같은 형식으로 축소하며, 진부한 표현엔 ‘not un-’ 같은 형식을 써서 심오한 듯한 인상을 준다. 또 간결한 접속사와 전치사보다는 ‘with respect to(∼에
관하여)’, ‘having regard to(∼에 관하여)’, ‘the fact that(∼라는 사실)’, ‘by dint of(∼에 의해)’, ‘in view of(∼을 고려하여)’, ‘in the interests of(∼을 위하여)’,
‘on the hypothesis that(∼라는 가설에 따라)’ 같은 구를 쓰려고 한다. 문장의 끝은 용두사미 같다는 인상을 면하려고 ‘greatly to be desired(바라 마지않는다)’, ‘cannot be left out of account(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a development to be expected in the near
future(가까운 미래에 예상되는 발전)’, ‘deserving of serious consideration(심각히 고려해볼 만하다)’, ‘brought to a satisfactory conclusion(만족스러운 결론을 도출하다)’ 등등과 같이 여운이 있는 상투어를 구사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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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 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3

하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는 어느새 조잡한 자아도취적 분위기를 벗어나더니, 갈수록 내가 겪은 일이나 본 것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되어갔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5

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일 그 시절 내가 책을 쓰고 싶어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유의 책이었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결말이 불행하고, 섬세한 묘사와 빼어난 비유가 가득하며, 어느 정도 소리 위주로 단어를 구사한 현란한 구절 또한 가득한, 아주 묵직한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6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적어도 산문을 쓰는 데 있어서는 말이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7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8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8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9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39

먼저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버마에서 ‘인도 제국경찰’ 노릇을 했다) 그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권위에 대한 나의 타고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버마에서 일해본 덕분에 제국주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만으로는 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기에 부족했다. 그러다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내전이 발발하는 등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1935년 말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확고한 결단에 도달하지
못했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0

스페인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은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했고, 그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3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3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地上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好惡와,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4

내가 스페인내전에 대해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물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하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초연한 마음으로 형식을 고려하며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학적인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모든 진실을 말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6

『동물농장』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십분 자각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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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창조성이 있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읽기에 있는 것이며, 번역은 일차적으로 쓰기보다는 읽기의 문제다. 나는 번역의 쓰기도 창작의 쓰기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보는데, 창작의 쓰기는 쓰기가 쓰기를 이끌고 나가는 면이 강하다면, 번역의 쓰기는 기본적으로 읽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6

보즈 바이어는 애트리지의 말을 빌려 "창조성이란 단지 문학적 글쓰기의 한 양상일 뿐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의 특징인 문학적 읽기의 한 양상이기도 하다"(『문학의 번역』)면서, 문학 번역이 창조적인 것은 원문의 창조적 읽기가 필요하고 또 번역 결과물도 독자에게 창조적 읽기를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있는 그대로 번역한다’는, 언뜻 보기에 대단히 비창조적인 문학 번역의 노력은 창조적 읽기를 통해 창조적 읽기가 가능한 결과물을 내기 위한 것이라는, 역시 역설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7

따라서 언어는 성긴 것이고, 그 빈 부분은 읽는 사람이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8

촘스키에 따르면, 언어적 창조성은 언어의 ‘무한한 생산성’, 즉 유한한 언어 자원이 창조적 정신 과정을 수행하는 인간의 능력에 의해 무한해진다는 사실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문학의 번역』)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83

하지만 지식인들에게 닥친 문제는, 각 사회에 고착화된 표현이 지배하는 언어 공동체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주요한 기능은 현상을 유지하고 어떠한 변화와 저항도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이 문제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상투적 문구, 진부한 은유, 게으른 글쓰기는 ‘언어 부패’의 사례들이라고 오웰은 주장한다. 그 결과 인간의 사고는 경직되고 둔화되며, 부패한 언어는 슈퍼마켓의 배경 음악 효과처럼 인간의 의식을 장악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상과 의견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혹한다.(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84

번역의 언어는 독백의 언어가 아니다. 애초에 읽기에서, 대화에서 생겨난 언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은 언어의 사회적 성격, 구체적으로 언어적 창의성의 사회적 성격도 매우 예민하게 자각하고 있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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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한에 비하면 무(無), 무에 비하면 모든 것, 무와 모든 것 사이의 중간자다. 양 극단에 대한 이해로부터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기에, 만물의 끝과 시작은 기약 없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로 숨겨져 있다. 인간은 자신이 생성되어 나온 무도, 자신이 삼켜질 무한도 볼 수 없다."1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 <빅 히스토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7844 - P16

과거를 이해하는 양상은 20세기 중반부터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크로노미터 혁명(chronometric revolution)에 있다. - <빅 히스토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7844 - P17

크로노미터 혁명은 과거 사건들의 연대를 측정하는 신기술이 이끌었다. 연대 측정 방법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연대를 모르면 ‘역사’가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알지만 언제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 모른다면, 과거란 의미나 깊이, 구체적인 모습 없이 뒤죽박죽 쌓여 있는 사실들과 다를 바 없다. 연대 측정은 과거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지도에 담고’,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해준다. - <빅 히스토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7844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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