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448
그리고 그사이, 요즘 습관적으로 쓰이는 표현 사례 다섯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다음의 다섯 가지 문단은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더한 건 얼마든지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악습을 각각 잘 나타내주고 있기에 골라본 것들이다. 약간은 평균 이하인, 하지만 현실을 꽤 잘 반영해주는 샘플이기도 하다. 번호를 단 건 나중에 언급하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3
이 글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오류가 있지만, 문장이 아주 고약하다는 것 말고도 공통되는 특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유가 상투적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글 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든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영어 산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치적인 글은 거의 예외 없이 더욱 그렇다. 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자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은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조립식 닭장의 부품처럼 이어붙이는 ‘어구’는 늘어나는 식으로 산문이 이루어진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7
죽어가는 비유. 새로 만들어내는 비유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킴으로써 생각을 돕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기법상으로 ‘죽어버린’ 비유(예를 들어 ‘철석같은 결의iron resolution’)는 사실상 일상어의 지위로 되돌아가되 생기는 잃지 않으면서 널리 쓰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두 부류 사이에는 환기시키는 힘은 다 잃어버렸지만 직접 어구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이유만으로 쓰이는 상투적인 비유들이 숱하게 있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7
‘ring the changes on(분위기를 바꿔보다)’, ‘take up the cudgels for(편들어주다)’, ‘toe the line(정해진 대로 따르다)’, ‘ride roughshod over(마구 다루다)’, ‘stand shoulder to shoulder with(어려울 때 서로 돕다)’, ‘play into the hands of(누굴 이롭게 해주다)’, ‘no axe to grind(사심 없다)’, ‘grist to the mill(나중에 득 될 만한 무엇)’, ‘fishing in troubled waters(난국에 득을 보려는 짓)’, ‘rift within the lute(분열의 조짐)’, ‘on the order of the day(격에 맞게)’, ‘Achilles’ heel(유일한 약점)’, ‘swan song(생애 최후의 작품)’, ‘hotbed(소굴)’. 이런 비유들 중 상당수는 뜻도 모르고 쓰이며(이를테면 ‘rift’가 대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비유들이 자주 섞여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글 쓰는 사람이 자기 말에 관심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8
지금 유행하고 있는 비유들 중 일부는 쓰는 사람이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본래 뜻에서 파생돼 나온 것들이다. 예컨대 ‘toe the line’은 흔히 ‘tow the line’으로 쓰이곤 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는 ‘the hammer and the anvil(망치와 모루)’인데, 지금은 모루가 망치에 깨진다는 뜻으로 쓰인다. 실제로 깨지는 쪽은 언제나 망치이지 그 반대인 경우는 결코 없는데도 말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잠시 멈춰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이며, 본래의 뜻을 곡해하는 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8
기능어, 또는 언어적 의수족. 적절한 동사나 명사를 찾아내는 수고를 덜고, 동시에 문장마다 균형미를 주는 듯한 음절을 덧대는 경우를 말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9
‘render inoperative (무력화시키다)’, ‘militate against(방해하다)’, ‘prove unacceptable(용납하기 어렵다)’, ‘make contact with(접촉하다)’, ‘be subjected to(노출되다)’, ‘give rise to(초래하다)’, ‘give grounds for(근거가 되다)’, ‘have the effect of(효과를 내다)’, ‘play a leading part (role) in(주된 역할을 하다)’, ‘make itself felt(존재감을 드러내다)’, ‘take effect(효력을 나타내다)’, ‘exhibit a tendency to(어떤 경향성을 보이다)’, ‘serve the purpose of(목적에 부합하다)’ 등등. 이들 경향의 기조基調는 한 단어인 동사를 배제한다는 점이다. ‘break’, ‘stop’, ‘spoil’, ‘mend’, ‘kill’처럼 한 단어인 동사를 쓰는 게 아니라 ‘prove’, ‘serve’, ‘form’, ‘play’, ‘render’ 같은 다목적 동사에다 명사나 형용사를 붙여 ‘구句’를 만들어 쓰는 것이다. 게다가 가능한 한 능동태보다는 수동태를 사용하며, 동명사보다는 명사구를 (이를테면 ‘by examining’보다는 ‘by examination of’를) 쓴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89
그리고 동사의 사용 범위는 ‘-ise’나 ‘de-’ 같은 형식으로 축소하며, 진부한 표현엔 ‘not un-’ 같은 형식을 써서 심오한 듯한 인상을 준다. 또 간결한 접속사와 전치사보다는 ‘with respect to(∼에 관하여)’, ‘having regard to(∼에 관하여)’, ‘the fact that(∼라는 사실)’, ‘by dint of(∼에 의해)’, ‘in view of(∼을 고려하여)’, ‘in the interests of(∼을 위하여)’, ‘on the hypothesis that(∼라는 가설에 따라)’ 같은 구를 쓰려고 한다. 문장의 끝은 용두사미 같다는 인상을 면하려고 ‘greatly to be desired(바라 마지않는다)’, ‘cannot be left out of account(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a development to be expected in the near future(가까운 미래에 예상되는 발전)’, ‘deserving of serious consideration(심각히 고려해볼 만하다)’, ‘brought to a satisfactory conclusion(만족스러운 결론을 도출하다)’ 등등과 같이 여운이 있는 상투어를 구사한다. -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321715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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