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 달을 제외한 23년이 정치적인 것에서 어떤 행복도 얻지 못했던, 희망 없이 흘러간 시간처럼 여겨졌다. 마치 무언가 우리들의 청춘을 훔쳐간 것처럼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 모든 시간을 보내고 이전의 실패를 지운 5월의 안개 낀 어느 일요일 저녁, 우리는 젊은이, 여성, 노동자, 교사, 예술가와 동성연애자, 간호사, 우체부, 사람들과 무리 지어 역사 속으로 함께 되돌아왔다. 우리는 역사를 새로 쓰길 원했다. 그것은 1936년, 부모들의 인민 전선이었고 해방이었으며, 성공했어야 하는 68년이었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203

숫자는 숙명과 결정론을 제외한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207

우리는 경제위기라는 이 모호하고 형체 없는 정보가 언제부터 모든 것의 시초이자 세상만사의 원인이 됐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카프카의 『소송』의 문과는 다르지만 분명 그 문을 떠올리게 하는, 웅장하고 높은 자본의 문이 천천히 열리는 동안, 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이브 몽탕이 『리베라시옹』의 ― 확실히 더 이상 사르트르의 신문이 아니었다 ― 지지를 받으며 경제위기를 위한 기적적인 치료법이, 후에 민간자본 개시를 찬양하는 수에즈 은행 광고 속 카트린 드뇌브의 이미지와 목소리로 모든 종말론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게 될, 기업이라고 설명했을 때 이미 경제위기는 그곳에 있었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207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아이들을 화나게 만들까 봐 무서워서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들의 태도와 침묵에 어머니로부터 딸이 물려받은 은밀한 감시를 실행하며, 우리가 누리기를 원했던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내버려 뒀다. 우리는 그들의 자율과 독립을 놀라움과 만족감으로, 세대의 역사 속에 승리한 무언가로 지켜봤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213

그들은 우리에게 관용을, 반인종차별주의를, 평화주의와 환경보호를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그들은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모든 보편적인 질서에 대한 말들을 받아들였다. 내 친구를 건드리지 마는 그들을 위한 슬로건이었고 에티오피아의 기아들을 위해 음반을 샀으며 레뵈르들의 행진에 동참했다. «다를 수 있는 권리»에 주목했고 세상에 대한 윤리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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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욕망과 은행, 주택적금으로 이어진 정부의 욕망에 따라, 우리는 «집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이 실현된 꿈, 이 사회적인 실현은 시간을 수축시켰고 부부의 노화를 앞당겼다. 그들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살 것이다. 직장, 결혼, 아이들, 그들은 이제 20년 상환 어음으로 단단히 봉인된 재생산 여정의 끝에 이른 것이다. 집수리와 페인트칠을 하고, 벽에 직물을 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193

헤어짐을 결심하기 전에는 몇 달 동안 또 다른 부부싸움과 지겨운 화해, 친구들과의 대화가 필요했고, 결혼할 때 우리 집에는 이혼이란 없다고 경고했던 부모님들에게 집안의 불화를 용의주도하게 알려야 했다. 이혼 과정에서 나눠야 할 가구와 전자제품 목록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왔음을 알렸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195

카페의 테라스에서 그녀는 서른다섯에서 오십대 사이로 보이는 여성들만을 바라보며, 그녀들의 얼굴에서 행복과 불행의 징후를 찾는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199

80년 여름 동안, 그녀에게 청춘의 시간은, 그녀가 모든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시간으로 품은, 빛이 가득한 무한한 공간처럼 보였다. - <세월>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18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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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산을 가진 미혼남이 틀림없이 아내를 원하리라는 것은 널리 인정받는 진리다.
그가 이웃으로 이사 온다면 그의 취향과 견해에 대해 알려진 게 하나도 없음에도 이웃들이 워낙 이 진리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는 이들의 딸 하나가 마땅히 차지할 재산으로 여겨진다.
- <오만과 편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0955 - P7

"듣기 좋은 말이네요. 내가 한때 미모를 뽐내기는 했지만 지금은 대단한 티를 안 낸답니다. 다 큰 딸을 다섯이나 둔 엄마가 자기 미모를 앞세우면 어떡해요." - <오만과 편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0955 - P9

베넷 씨는 번득이는 재기와 냉소적인 유머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과 변덕스러움이 뒤섞인 독특한 사람이고, 부인은 이십삼 년을 같이 살고도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인은 알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이해력이 부족하고 아는 게 없고 기질이 불안정했다. 불만이 있을 때면 예민해졌다고 생각해 버렸다. 삶의 목적은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고, 삶의 위안은 이웃을 방문해 수다를 나누는 것이었다.
- <오만과 편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0955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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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왈롱 지방에서 만들어진 세종은 여름철에 마시기 위해 제조된 맥주라고 한다. 효모에서 오는 매캐한 스파이시함에 오렌지, 레몬과 같은 시트러스한 맛이 섞여 있으며, 과일향이 나는 밀맥주보다 드라이한 것이 특징이다. 맥파이의 세종은 레몬향이 강하고 도수가 4%로 다소 낮은 편이라서 푹푹 찌는 한여름에는 그야말로 물처럼 마실 수 있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20

선택한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이었다. 신성일 배우의 숱한 주연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휴일〉은 여자친구의 낙태 수술비를 구하러 다니는 남자의 하루, 정확하게는 일요일을 그린다. 영화는 군사정권기 검열의 제재로 제작 당시에는 개봉도 하지 못한 채 묻혀 있다가, 2005년 영상자료원의 수장고에서 발견되어 제작된 지 37년만에 대중을 만나게 되었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24

‘노매딕 브루잉’도 2년여 전, 영화제를 잠시 벗어나 한옥마을을 둘러보다가 만난 곳이다. 미시간 출신의 미국인 대표 존 개럿이 운영하는 곳으로, 2019년 4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한옥마을에 위치한 브루어리답게 노매딕 브루잉의 공간 역시 새로 지은 한옥이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28

내가 마신 맥주는 ‘한옥스테이’라고 부르는 블론드에일(BlondeAle)이었다. 시트러스한 향이 나는 상큼한 에일이었는데 뒷맛이 부드럽게 달아서 빈속에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맥주였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29

〈경마장 가는 길〉은 지식인 남녀의 추잡하고 가증스러운 대화로 가득찬 영화다. 관객은 두 시간여 동안 R이 J에게 끊임없이 섹스를 구걸하고 J가 한결같이 거절하는 끝없는 사이클을 목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촌극이 싫지 않은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영화의 신랄하고 통쾌한 시선 덕분이다. 영화는 이들을 향한 조소를 숨기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32

따라서 영화는 돈을 받고 논문을 대필하거나 박사학위를 돈으로 사는 행위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그 치졸한 거래들, 즉 욕망이 돈으로 환원되거나 돈이 욕망으로 환원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32

부산 페일에일은 강한 오렌지향과 쓴맛이 주를 이루는 화려한 에일 맥주다. 역시 4.3%의 낮은 알코올 도수가 불만이기는 하지만(왜 한국의 브루어리들은5% 이하의 낮은 도수를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한낮에 느긋하게 즐기기에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맥주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39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가 한국에 방문해 행여라도 고릴라 브루잉을 찾는다면, 그에게 ‘트리플 IPA’를 추천하고 싶다. 고릴라의 라인업 중에서 10.5%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가장 ‘센’ 맥주이기도 하고 IPA가 품고 있는 시트러스한 과일향에 강한 몰트의 향과 맛이 풀 바디로 장착된 묵직한 맥주이기 때문이다. 과연 ‘풀 바디’의 표상,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닮은 맥주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40

탄산을 주입하기 전의 ‘춘천 IPA’를 맛보았는데, 마치 방금 짜낸 오렌지주스처럼 신선하고 향긋했다(IPA본연의 쓴맛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음식은 산지의 공기 맛이 반"이라고 말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은 맥주에도 완벽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42

내게 〈생활의 발견〉은(아직까지도) 홍상수의 최고작이자, 2002년에 개봉한 주옥같은 영화들(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등)을 모두 제친 걸작이다. 춘천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모두가 경멸하지만 모두가 경험해본, 혹은 경험중인 모순과 수치의 순간으로 빼곡하다. 영화는 ‘생활’을 연명하는 인간들의 교집합을 경수가 겪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44

합정역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서울 브루어리는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다. 벽, 천장, 테이블 모두 나무로 지어서 그런지 사방의 일관성에서 시간을 초월한 듯한 고고함이 느껴진다. 브루어리 내부는 넓지 않지만 공동 식탁이 놓여 있어 공간 활용 역시 효율적이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47

대신 ‘샐린저 호밀 IPA’가 눈에 띄었다. 남이 시킬 때 맛보는 한두 모금이 아니고는 좀처럼 마시지 않는 IPA지만 J. D. 샐린저●의 이름을 가진 맥주를 어떻게 경험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망설임 없이 샐린저 호밀 IPA를 주문했다. 다만 그의 소설 제목, 『호밀밭의 파수꾼』을 따서 작명을 할 거면 IPA가 아니라 밀맥주를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 J. D. Salinger. 『호밀밭의 파수꾼』을 지은 미국의 작가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49

샐린저를 떠나보내고 선택한 나의 두번째 맥주는 ‘골드러쉬 캘리포니아 커먼’이라는 맥주였다. 진한 갈색이 특징인데 레드라거처럼 순한 맛은 아니고 몰트향과 쓴맛이 매우 강한, 독특한 맥주다. IBU●가 44로 서울 브루어리의 웬만한 IPA보다도 높은 편이니 쓴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피하는 것이 옳지만 그럼에도 미련이 있다면 355ml의 작은 사이즈로 시켜서 위스키처럼 홀짝홀짝 즐겨도 좋겠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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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시작된 ‘화수 브루어리’가 주 거처를 경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꼭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본점이 울산이기는 하나, 경주에 있는 화수 브루어리는 체인이 아닌, 창업자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이자 오너가 상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13

이때 등장하는 ‘스트로스 보헤미안 맥주(Stroh’sBohemianBeer)’는 필스너(Pilsner)다. ‘보헤미안 맥주’라는 이름은 사실 미국에서 필스너를 소개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필스너’라는 용어는 체코의 옛 명칭인 보헤미아의 한 도시, 플젠에서 만들어진 맥주라는 뜻을 지닌다. 플젠 사람들은 원래 방법대로 맥주 위에 이스트를 얹어 발효하는 대신, 맥주 아래에 이스트를 까는 방식으로 조금 더 투명하고 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냈다. 필스너는 미국식 라거(Lager)의 원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한 스트로스 보헤미안 맥주는 1850년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맥주 브랜드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16

경주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7.5%로 IPA(IndiaPaleAle) 수준의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의 맥주들이 많은 ‘밀맥주’다. 바나나향이 나서 달큰할 것 같지만 단맛보다는 홉의 쓴맛이 약간 더 두드러지는 ‘생즙’ 느낌의 맥주로 상상하면 된다.

-알라딘 eBook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김효정 지음) 중에서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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