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상대할 때는 나의 안정에 필수적인 권위를 느낄 수가 없어. 그런데, 아이는 바로 그런 권위를 찾아서 나에게 와.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3
충족과 소유의 느낌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가지지 못하는 걸까? 원하는 것을 얻고 있는 순간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있어. 그 안에는 평화가 없고 있을 수도 없어. 우리 나이와 피할 수 없는 가슴 저미는 느낌 때문에. 우리 나이 때문에, 나는 쾌락을 누리지만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나? 없었어. 그전엔 예순두 살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 나는 인생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있지 않아. 하지만 그 단계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4
젊은 남자가 그런 아이를 발견하고 낚아채 가겠지. 나에게서. 내가 아이의 감각에 불을 지르고,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아이의 해방에 촉매가 되어주었는데, 다 그 녀석을 위해 아이를 준비해놓은 꼴이 되는 거야. 젊은 남자가 아이를 낚아채 갈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까? 내가 한때 그런 짓을 할 만한 젊은 남자였기 때문이지.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5
물론 질투는 계약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지. 남자들은 이런 말로 질투에 대응해. "다른 누구도 저 여자를 갖지 못해. 내가 저 여자를 가질 거야—나는 저 여자와 결혼할 거야. 그렇게 저 여자를 잡아둘 거야. 관습으로." 결혼이 질투를 치유해.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애써 결혼을 하려는 거야. 그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여자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하는 거야.나는 이런저런 걸 하지 않겠다, 하는 계약서에.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5
자유 시장 섹스라는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사회에서 무엇을 대신 제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때부터 포르노그래피가 시작되는 거야. 질투의 포르노그래피. 자기 파괴의 포르노그래피.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5
나는 황홀했고, 나는 매혹되었지만, 나는 틀바깥에서 매혹되었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밖에 내놓는 걸까? 나이지. 나이의 상처.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6
고전적 형식의 포르노그래피는 오 분 내지 십 분 정도 톡 쏘는 자극을 주다가 약간 희극적인 것이 되고 말아. 그러나 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이미지들이 극히 고통스러워.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질투를 미화해. 괴로움을 제거해버리지.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6
보는 사람이 그 행위의 보이지 않는 공모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제거되는 반면 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그대로 유지돼. 나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신물날 정도로 자신을 잔뜩 채운 사람이나 얻는 사람이 아니라, 얻지 못하는 사람, 잃는 사람, 잃어버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6
젊은 남자가 아이를 발견하고 낚아채 가겠지. 그 남자가 보여. 나는 그 남자를 알아. 그는 스물다섯 살의 나, 아직 아내도 자식도 없을 때의 나여서, 나는 그 남자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 그는 날것의 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한 일을 하기 전의 나야.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6
다만 포르노그래피 영화에서는 내가 아니야. 그 남자야. 한때 나였지만 지금은 내가 아닌 남자. 아이를 지켜보는 그 남자를 지켜보면서, 나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세세하게 알고 있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세세하게 알고 또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하자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석을 하련만, 도무지 그쪽으로는 생각을 할 수가 없어. 모든 사람이 이 아이에게 강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모든 사람이 이 아이를 이런 식으로 느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보다는, 아이가 어디든 가는 걸 상상할 수가 없어. 아이가 거리에, 가게에, 파티에, 해변에 간다고 상상하면 반드시 그 남자가 그늘에서 나타나. 포르노그래피적인 괴로움이지. 한때 자신이었던 다른 남자가 그러는 걸 지켜본다는 건.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47
이 아이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아마 역사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완전히 몸을 맡긴 첫 세대 미국 젊은 여자들일 거야. 수사修辭도 없고 이념도 없고 오로지 대담한 자들을 향해 활짝 열린 쾌락의 놀이터만 있었지. 가능성이 무엇인지 깨닫고, 더는 감시를 받지 않는다는 것, 더는 낡은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또 어떤 체제하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그 대담함은 점점 발전해나갔어.
-알라딘 eBook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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