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안해하며 눈을 떴다. 거실로 나오니 연기가 자욱했다. 주방으로 가 자신이 연기에 둘러싸인 줄도 모르는 엄마의 등을 끌어안았다. 뼈대가 가늘고 몸집이 작은 엄마의 아랫배에 몰린 부드러운 살이 만져졌다. 엄마는 화들짝 놀랐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하곤 그제야 다행이라는 듯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7

나는 차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러다가 다시 차 쪽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창문을 내리고 무슨 일이냐 물었다.
"생크림 케이크로 사. 버터 싫어. 우리 집 앞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통신사 할인받으면 삼십 프로 싸게 살 수 있어."
아빠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래도 못 미더웠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1

언니의 생일과 기일은 사흘 간격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부턴가 언니의 생일만 챙긴다. 언니는 그래도 생일을 축하받고 떠났다. 그게 엄마의 유일한 위안이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1

하지만 나는 소화가 안 된다는 핑계로 점심시간에 자주 혼자 있다. 친구들은 내 말을 잘 믿어 준다. 그럴 거라고, 쉽게 수긍하는 듯했다.
가끔은 내 몸의, 혹은 마음의 이상(異狀)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2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음습하고 불길하게 느껴진다. 나부터가 나라는 존재를 너무 이용하니까.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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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내뱉은 그 말은 사사가와를 아득히 먼 존재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거부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어둠에 숨어들려는 신호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미한 후회도 느꼈다. 나는 그 방에서 사사가와의 마음을 무시하고, 내 입장에서 멋대로 말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정의감을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75

더 이상 그저 음침한 느낌의 회사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이름에는 사사가와의 뒤틀린 마음이 배어 있었다. 어두운 밤의 밑바닥에서 슬픔과 함께 살아갈 각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됐다.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76

"케이스케는 말이야, 요코가 죽은 그날 밤에 아직 남겨져 있어. 그래서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손을 놓지 않아줬으면 해. 전 부인이 하는 작은 부탁이야."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84

"아니야. 계속 살아가다 보면 해파리라도…… 언젠가 다시 태어나거든. 소중한 걸 만나서…… 뼈가 있는 해파리로."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85

"밤의 어둠 속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다고? 그런 말은 누가 못 해. 그럼 누가 그 어둠 속에 발을 집어넣고 사사가와의 손을 잡을 건데? 그럴싸한 말을 아무리 늘어놓아도 아무것도 안 돼. 그런 말을 할 시간 있으면 네 손을 어둠 속으로 뻗어야지."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87

도로에 신문 배달 오토바이가 달려간다. 주변엔 맑은 공기가 느껴지고, 군청색 하늘에 희미한 주황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거리가 깨어나는 기척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88

나는 계속 그 전자사전에 의지하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기만 했던 말들.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시시한 삶이 소중한 나날로 변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429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결국 죽음은 그냥 ‘점’인 거야. 반대로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도 그냥 ‘점’인 거지. 중요한 건 그 ‘점’과 ‘점’을 묶은 ‘선’이야. 즉 살아 있는 순간을 하나하나 거듭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하지만 나는 요코의 죽음에 뭔가 의미를 찾고 싶어서 그 작은 ‘점’을 계속 혼자 바라보고 있었어."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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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살아 있으면 되는 거야. 살아가다 보면 너처럼 현재 막막한 사람도 언젠가 소중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6004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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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셰익스피어처럼 쓰지 않으려고요. 그러느라 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단어 철자를 길게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거든요. 따뜻한 날씨의 오데사에서 또 다른 하루. 하늘에는 수평선조차 가리지 않는 완벽하게 반듯한 연회색 구름층이 높이 떠 있어요. - P203

"우리 문학은 당신네 월터 스콧의 동시대인인 푸시킨에서 시작되었지요." 그가 내게 말했어요. "푸시킨 이전의 러시아는 진정한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행정구역이었어요. 귀족은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관료는프로이센 사람들이었지요. 농민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러시아인들이었는데, 통치자와 관료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경멸했어요. 그러다 푸시킨이 민중의 한 사람인 그의 유모로부터 민간 설화들을 배웠죠. 그의 소설과 시 덕분에 우리는 우리 언어에 자부심이 생겼고, 우리의 비극적인과거 - 우리의 기묘한 현재 우리의 수수께끼 같은 미래를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는 러시아에 어떤 심적 상태를 만들어 주었고 - 그것을 실현시켰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당신네 디킨스만큼 위대한 고골과,
당신네 조지 엘리엇보다 더 위대한 투르게네프, 그리고 당신네 셰익스피어만큼 위대한 톨스토이를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당신네에겐 월터스콧 이전에 이미 몇백 년의 셰익스피어 시대가 있었죠." - P204

친애하는 갓, 우리는 다시금 열정적인 바이런이 사랑하고 노래했던 그리스 섬들 사이를 지나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이곳의 소녀들이 더 이상 노예들에게 젖을 먹이지 않아도 되어서 매우 기뻐요. 114

114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George Gordon Byron(1788-1824) 그리스 섬들의 도입부와 결구 부분. "그리스 섬이여, 그리스 섬이여!/열정적인 사포가 사랑하고 노래했던곳," "그러나 홍조 띤 처녀들을 하나하나 응시하노라면/노예들에게 젖을 먹여야 할그들 생각에/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앞으로 노예로 자라게 될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는 (노예) 처녀들‘은 1829년에 독립하기 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상황을 가리킨다. - P222

"진정하게, 맥캔들리스. 그녀 입장에서는 플라토닉 연애였어.
그것이 그녀의 정신적 성장을 도왔다는 사실은 어느 순간 작고 고르고 곧아진 글씨에서, 표준 사전과 빠르게 일치해 가는 철자법에서 항목과 항목을 나누는 장난스럽게 일렬로 늘어선 별들이 직선의 가로줄로 대체되는 것에서 보이네. 하지만 그녀의 성장은 성찰의 질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나 지금부터 이어지는 그녀의 성찰에는 동양 현자의 영적 통찰에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분석적 예리함이 융합되어 있어. 집중하게!"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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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폐기물 센터‘로 가서 우리의 ‘인간 폐기물‘ 무게를 단다. 서류 작업과 요금‘이라는 딱지가 붙은 상자에 서류와 요금을 낸다.
쓰레기는 ‘쓰레기‘라는 딱지가 붙은 쓰레기통에 던지고 ‘인간 폐기물‘은 ‘주의 인간 폐기물‘이라는 딱지가 붙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마티와 지닌 때문에 마음이 안 좋다. 특히 아이 때문에 마음이 안 좋다.
넬슨이 쥐가 가득한 어두운 보일러실에 갇히는 걸 상상해본다.
게다가 이제 우리 ‘외딴 지역‘들은 어디에 가서 담배와 민트와 케이오를 구해야 하나? - P74

나는 천천히 한다. 천천히 하면서 그녀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속도로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기 위해 내 속도를 관찰한다. 그렇게 하는 게 신중한 것 같다. 내 말은 그녀가 하는 것과 똑같이 내가 하면 내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는 방식을 그녀가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머리를 들이밀지 않는다. - P91

하얏트의 조명을 끈 회의실에서 여든 명이 대량 생산된 종이 모자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모자‘는 ‘시작을 시작하고 있었다. ‘분홍 모자‘는 ‘시작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초록 모자‘
는 ‘아주 확실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황금 모자‘까지 올라가는 먼길을 향해 ‘삶에 통달한 ‘황금 모자‘는 ‘간식 테이블‘ 주위에 모여서서 아래 등급 모자를 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소곤거리고 의논하고 팔꿈치로 서로 쿡쿡 찔렀다. - P95

"내가 방금 한 거 봤어?" ‘황금 모자‘가 말했다. "‘너‘를 ‘내적 평화‘로 가지 못하게 막는 자들로부터 방금 해방해준 거야. ‘너‘한테는 아주 잘된 일이지! 문제는 이거야, 과연 ‘너‘가 계속 해방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 어쩌면 ‘너‘는 계속 내적으로 일깨워주는 게 필요할지도 몰라. 만트라 계속 내적으로 일깨워주는 게 바로 만트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어? 이 가운데 혹시 ‘너‘와 공유할 수 있는 멋지고 산뜻한 만트라 있는 사람?" - P97

오늘 나는 여러분을 이끌고 나의 ‘핵심 삼 단계’를 통과할 거야.
찾아내기, 막기, 대면하기.
첫째, 우리는 여러분의 개인적인 진을 찾아낼 거야.
둘째, 우리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상징적인 오트밀에 정신적으로 비유적인 ‘막‘을 치도록 도울 거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진과 ‘대면하여 그 남자에게 또는 그 여자에게 여러분의 오트밀이 앞으로는 접근 금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방법을 보여줄 거야. - P101

오, 이 사람아, 세상이 아빠한테 똥을 싸질렀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림없을 것이다. 절대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이 그가 스페인놈들한테 아내의 젖통을 조롱당하는 동네에 살 거라고 생각한다면, 가족에게 베이컨 기름 범벅인 빵을 먹게 하면서 그걸 ‘품팔이의 낙樂‘ 이라고 부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이 틀린 거다. - P115

그는 더 빨리 납땜을 했고, 이것이 그 책이 ‘힘의 충천‘ 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었다. 그 책은 ‘위대한 성공자‘들은 ‘힘의 충천‘에 ‘힘의 충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이어가려면 어떤 주어진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다고 느끼는 바로 그 일을 확신을 품고 기쁘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는 깨달았다. 그가 지금 막 하려고 하는 일이다, 윙키를 쫓아내는 일! - P116

그는 힘이 세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고, 그저 다른 모두와 똑같을 뿐이었다. 아니 다른 모든 사람보다 약했다. 다른사람은 결혼을 하고 진짜 일자리를 갖는다, 다른 사람은 들러붙는 뚱뚱한 여동생과 살지 않는다. 그는 패배자이고 남은 인생 내내 패배할 거다, 한 번도 기회를 얻은 적이 없기 때문에, 나쁜 아빠와 나쁜 엄마와 나쁜 여동생이라는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변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새로 출발하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밀려 차 냄새가 나는 집안으로 들어갈 때 그의 상상 속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세월이 기쁨 없이 황량하게 펼쳐졌고, 가슴이 갑자기 분노로 미어졌다.
"닐-닐." 그녀가 말했다. "무슨 문제 있어?"
그는 그녀를 후려갈기고, 모욕을 주고, 정신 차리게 할 만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계속 자기 방으로 움직이며, 나지막이 그녀에게 끔찍한 욕을 해댈 뿐이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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