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을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소행성대를 기준으로 태양 가까이 있는 지구형 행성들은 ‘이너 플래닛inner planet’, 더 바깥쪽에 있는 목성형 행성들은 ‘아우터 플래닛outer planet’이라고 한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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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은 크게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으로 나뉜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 지구형 행성에 속하는데, 암석이 주를 이루고 대기는 조금 있으므로 ‘암석형 행성’이라고도 한다. 덩치가 작고 온도가 높은 영역에 있어서 처음 형성될 때 기체를 더 많이 잡아두지 못한 행성들이다. ‘목성형 행성’은 덩치가 더 커서 기체도 많이 가지고 있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다. 겉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된 두터운 기체 덩어리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밀도가 높아져 액체 상태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깊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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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두 명의 전쟁 영웅,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사이의 경쟁이 서사의 중심에 있다.
이 둘은 판이한 성격의 영웅이었다. 아이아스는 말 그대로 전사 중의 전사였다. 위압적인 체구에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무장으로,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뛰어난 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지략과 전술의 대가로, 전투 외에도 전쟁중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에 적재적소의 기지를 발휘하며 위기를 막았다. 실제 전쟁이라면 두 사람 모두 꼭 필요한 유형의 인물이었다. - P120

이기는 법은 이미 충분히 배웠다. 이제 아름답게 지는 법을 배울 차례다. 그것이 나를 진정한 삶의 강자로 만들어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과거의 처절했던 승리와는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승리를 이루는 날도 올 것이다. - P127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지금은 ‘여신‘이라 불리는 최고의 셀럽들이 그 이상을 대변한다면 유럽 역사에서는 ‘진짜 여신‘이 오랫동안 그 역할을 도맡았다. 바로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였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너스의 이미지는 시대마다 뭇 남성들이 사모하고 여성들이 동경하는 미의 기준이 되었다. - P130

고대 그리스인들은 ‘좋은 몸의 소유를 매우 중시했다. 이들의 사고관에서 육체는 정신의 거울이었다. 그래서 신처럼 아름다운 몸은 그의 정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표지라고 믿었다. 반대로 뚱뚱함은 외관상의 추함만이 아니라 정신적 불균형까지 의미하는 결함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다이어트에 힘썼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비만을 여러 질병의 원인으로 꼽으며, 비만인들에게 엄격한 식단 관리, 강도 높은 운동, 심지어 구토를 추천하기도 했다. - P134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영향으로 신체를 향한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 고대세계에서 인간의 몸은 신과 그 형상을 공유하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중세인들에게 육신은 죄의 근원이자 타락의 결과물이었다. 육신 자체가 영혼 구원의 방해물로 정죄되자 뚱뚱함은 아주 속되고 불경한 상태가 되었다. 고대와는 사뭇 다른 이유로 비만은 중세 유럽에서도 악으로 남았다. - P139

변화된 신체관은 식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대인이 아름다운 몸을 위해 절제된 식습관을 추구했다면, 중세인은 성스러움을 위해 금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음식은 종교적 수행을 저해하고 육신을 태만과 정욕으로 이끄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성직자들은 늘 굶주림의 고행을 통해 영적인 충만함을 유지하려 했다. 물론 금식은 평신도에게도 해당했다. 중세 말에는 공식 지정된 금식일만 약 150일에 달할 정도였다. - P139

중세 말 근대 초, 인간의 몸은 다시 예술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는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단연 르네상스의 역할이 컸다. 부활, 재생을 뜻하는 ‘르네상스는 14~16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문예부흥운동을 일컫는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재탐구가 이루어지며 다시금 인간성을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스 예술의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화가들은 인체를 형이상학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로 다루었다. 예술 향유층의 다양화도 중요한 변화였다. 교회는 여전히 강력한 예술 후원자였지만, 경제적으로 성장한 부유한 평신도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예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성속에 걸친 다방면의 작품이 제작되자, 그 안에서 인간의 몸은 상품가치를 띠게 되었다. - P141

이 시기에 비너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중세 내내 터부시되고 성모마리아의 이미지에 감춰져 있던 비너스는 다시금 나체의 모습으로 인간 앞에 나타났다.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탄생」이었다. 서양화 최초의 여성 전신 누드화로, 금욕적인 중세 천년을 보낸 15세기인들의 ‘동공 지진‘을 일으킬 만한 작품이었다. 이것이
‘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제 예술가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를 비너스라는 이름 아래 자유롭게 표현했다. 회화·조각·연극·오페라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 P141

그러나 비너스 같은 몸매를 원하는 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의 먹거리가 풍족해지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는 대부분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도입된 쌀, 감자, 옥수수 등 고칼로리 작물 덕분이었다. 염장 기술의 발전으로 고기와 생선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된 점도 한몫했다. 이때부터 유럽은 과거보다 훨씬 더 ‘잘 먹는‘ 사회로 나아갔다. 여기에 중세인을 굶주리게 했던 종교적 규율도 완화되어 근대인은 더 자유롭고 균형잡힌 식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 P144

역사를 보면 호모사피엔스들은 미에 관해서만큼은 참 변함이 없었다. 그들에게 외면은 항상 중요했고, 늘 모두의 신체를 선악의 구도에 넣어 선의 잣대로 악을 평가했다. 역사가 정말로 진보한다면, 그 역사의 연장선에 살고 있는 우리는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더 나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뾰족한 수는 없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 P150

창작물 속 ‘나‘는 나의 여러 모습 중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를 취사선택한 결과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진솔하고 담담하게 풀어가느냐였다. 나의 전체를 담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내가 아니어서도 안 됐다.
온갖 감정과 생각을 토로하며 지나치게 솔직하고 싶지도, 과도한 연출로 행복하고 멋진 나를 꾸며내고 싶지도 않았다. 양극단의 선을 넘는 즉시 내 모습이 민망하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 P15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그림을 볼 때면 작가의 자기표현과 관련해 많은 귀감을 얻는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초중반 바로크시대에 활동한 흔치 않은 이탈리아 여성 화가이다. 예술가길드인 아카데미아 디 아르테 델 디세뇨Accademia di Arte del Disegno의 높은성별의 벽을 넘은 첫 여성 회원이었다. 여성은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예술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미술가로 인정받을 만큼 그녀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 P153

젠틸레스키의 시대는 ‘자아‘와 ‘개인‘의 개념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때였다. 이러한 흐름은 14세기 말에서 15세기를 거치며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 시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의 신학적·철학적 권위에서 벗어나 보다 주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했다. 이들에게는 자기 자신도 객관화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깊은 자아성찰을 통해 자기라는 존재를 뚜렷이 인지하려 했다. 그 결과 자서전,
일기, 편지, 소설 등 개인의 삶과 감정을 기록하는 작업이 활발해졌다. - P158

미술계에서도 개인을 주제로 삼은 예술이 부상하며 초상화의 시대가 열렸다. 15세기 이래 군주부터 부유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존재를 역사에 영원히 새기기를 원했다. 이들에게 초상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자신의 권력, 명예, 아름다움, 성격,
취향 등을 개성껏 표출하고 불멸의 상태로 각인하는 수단이었다. - P158

이렇게 개인의 인생을 담을 만큼 정교한 초상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회화 기법의 획기적 발전이 있었다. 바로 유화의 등장이다. 중세 미술에서 주로 쓰인 프레스코나 템페라는 원료가 빠르게 굳고 수정이 불가하다는 치명적 단점으로 인해 화가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상을 묘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 15세기 초 얀 반에이크에 의해 유채의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미술계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건조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추가 수정까지 가능한 유채의 발견은 그야말로 회화법의 혁신이었다. 덕분에 화가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보는 세상을 자기 실력만큼 정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 P158

젠틸레스키가 여러 번 반복해 그린 여성 중에는 구약성서 외경 유디트서의 주인공 유디트가 있다. 유디트는 조국을 정복한 아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미인계로 유혹하고, 그의 목을 칼로 베어버린 신화적 여성이며, 카라바조를 비롯한 저명한 화가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주제이다. 그중에서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연출로 유명하다. - P160

피렌체에 정착한 첫해에 젠틸레스키는 첫번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완성했다(두 버전이 제작되었는데, 하나는 1612년, 다른하나는 1614~20년 사이에 그려졌다). 작품을 본 이들은 백이면 백, 유디트에 화가의 자아가 이입되어 있다고 믿었다. 홀로페르네스는 젠틸레스키가 당한 폭력의 실체를 표현하고, 유디트는 그 폭력을 직접 심판하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혔다. - P164

상이한 방식으로 젠틸레스키를 표현하는 ‘유디트‘와 ‘카타리나‘이지만, 두 여인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오히려 스스로 고통을 처단하고 억제하는 통제자의 모습이다. 고통을 이기고 전설로 남은 것은 그녀에게 고통을 준 대상이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아마 이것이 젠틸레스키가 말하고 싶은 바였을 것이다. "내게 고통을 안긴 이들에 나는 굴하지 않아 두고 봐, 고통을 꺾고 전설이 될 나의 모습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품이자 그녀 삶의 투지를 표명하는 대변인이었다. - P166

왜 작품의 제목이 ‘회화의 상징으로서의 자화상인지부터 살펴보자. ‘회화‘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당시 ‘회화를 의인화하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통용되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탈리아 도상학자 체사레 리파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다음은 그의 책 『도상학Iconologia』(1603)에 등장하는 ‘회화‘의 외형에 관한 설명이다.

‘회화‘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의 머리는 완전히 검고 부스스하며 여러 갈래로 꼬여 있다. 창의력을 보여주는 반달 같은 눈썹을 지녔고, 그녀의 입은 귀까지 연결된 천으로 덮여 있다. 그녀의 목에는 가면이 달린 금목걸이가 걸려 있다. - P169

자기 취향을 좇는 일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덕질은 큰 몰입과 기쁨을 선사하는 동시에 예기치 않은 물리적·정서적 출혈도 수반한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덕질이 아니라면 없었을 감정 소모도 발생한다. 그래서 덕후 주변에는 그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철없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덕후 이전에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마니아 mania, geek 등의 표현에도 그들을 향한 비호감의 시선이 깔려 있다. - P174

오스트리아 화가 요제프 하우저Josef Danhauser의 「피아노 치는 리스트」라는 작품은 그 부제를 ‘리스트와 덕후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리스트의 음악에 흠뻑 빠져든 청중을 묘사하고 있다. 리스트를 포함한 그림 속 인물은 모두 동시대를 산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다. 워낙 유명인사들인지라 이들이 실제 한자리에 모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상상력을 토대로 그려진 그림이다. - P176

단하우저는 저명한 문학가들이 책을 떨군 채 리스트에 빠져드는 모습을 통해 리스트의 실력을 치켜세우고, 리스트의 인기가 문학계를 능가할 만큼 엄청났음을 보여주었다. 그 시대 문학의 성과도 대단했지만, 예술계 전체의 가장 큰 화두는 리스트였고, 리스트야말로 스타 중의 스타였다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 P178

이런 흐름과 함께 ‘비르투오소Virtuoso‘의 시대가 열렸다. 본래 ‘덕망높은‘ ‘능력 있는‘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였던 비르투오소는 19세기부터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솔로 연주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연주회는 더이상 궁중이나 교회가 아닌, 유럽 도시의 콘서트홀에서 성행했다. 유명 연주자들은 도시를 순회하며 연주회를 열었고,
여기서 벌어들이는 티켓값이 그들의 주수입원이 되었다. - P179

1832년 4월 20일, 처음으로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관람한 스무 살청년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리스트는 각종 클래식 명곡을 기교 넘치는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파가니니의 곡에는 더 심혈을 기울였다. 리스트가 1838년에 발표한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은 "도저히 인간이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만큼 끔찍한 난도를 자랑했다. 비판을 수용한 리스트는 난도를 대폭 낮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을 1851년에 새로 발표했다. 지금 우리가 많이 듣고 연주하는 리스트의 파가니니 곡이다. 그중 3번 곡 라 캄파넬라는 광고나 대중음악에 자주 등장하며 ‘가장 세련된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 P181

하지만 리스트는 피아노 공연이 마치 연극과 같다고 생각했다. 연주자는 음계만 정확히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 선율에 따른 감정적 체험까지 선사해야 했다. 그러니 연극배우가 대본을 숙지하고 무대에 오르듯, 피아니스트도 곡 전체를 체화한 상태로 공연에 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피아니스트 최초로 과감히 악보 없이 무대에 올라 바흐에서 쇼팽에 이르는 장대한 레퍼토리를 완벽히 소화했다.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관객은 없었다. - P183

오른쪽 그림은 폴란드 역사화가 얀 마테이코 Jan Matejko가 그린 코페르니쿠스다. 작품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 이 그림이 자아내는 신비감에 단번에 매료되면서도 동시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신과의 대화‘라는 작품 제목 때문이었다. - P192

코페르니쿠스는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 정통의 천체관이 부정확하다고 판단하고, 그것이 어떻게 섭리를 오해하게 하고 어떤 실질적 불편을 야기하는지 지적했을 뿐이었다. 잘못된 진리가 있다면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신의 뜻에 더 부합한다고 코페르니쿠스는 생각했다. - P195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출간 후 73년이 지난 1616년에야 로마 가톨릭의 공식 금서로 지정되었다. 때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시데레우스 눈치우스』(1610)을 통해 태양중심설을 강력히 지지한 이후였다.
갈릴레이는 앞선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과 몇 가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최초로 망원경을 이용해 태양중심설의 증거들을 실제 관측했다. 그랬기 때문에 태양중심설을 단지 수학적 도구가 아닌 물리적 현실로 믿었다. - P201

앞으로 나이가 들어 새로움이 귀찮아지고, 익숙함에 안주하게 될때마다 나는 이 그림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보려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주변에 있을 코페르니쿠스들을 상기하며 타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설령 그것이 나를 향한 도전이 될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토론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다. - P207

모네에게 런던에서의 나날은 본의 아니게 동료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화풍을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모네와 피사로는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들의 신념에 더 큰 확신을 얻었다. 모네는 터너의 몽롱하면서도 과감한 빛과 안개 처리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 P217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같은 화풍을 공유하는 화가들과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873년 12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세잔, 드가 등이 모여 ‘화가·조각가·판화가 익명 협회‘를 설립하고 그들의 스타일을 보여줄 독립 전시회를 준비했다. 1874년 4월,
드디어 첫 전시회가 열렸다. 루키들을 향한 혼재된 반응이 존재했으나모네에게는 특히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인상‘이라는 단어를 따와 모네와 동료들을
"인상파"라고 조롱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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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카데스Giuseppe Cades 의 그림 <아이아스의 자살>은 고대 그리스 비극 아이아스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중앙에 자살을 감행하는 남자가 극의 주인공 아이아스다. 한눈에 봐도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비극적 정서가 느껴진다. - P113

『아이아스』는 고대 아테네의 시인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이다. 『오이
디푸스왕』 『안티고네』 등으로 유명한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꼽힌다. 모두 기원전 5세기 아테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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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모습 때문에 에두아르는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계획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말자고 생각했었고, 그러기에는 지금은 어림도 없었다. 더구나 그동안 작업한 것들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했고, 또 지금 알베르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함께 논의할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비밀을 최대한 나중에 밝히자는 원래의 결정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0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한 것은 친구가 너무도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가면일 뿐,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그는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아이의 옆모습을 묘사한 데생을 완성한 이날 오후부터 그는 몸이 잔뜩 달아 있었다.

그러니 좋은 결심이고 뭐고 없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1

여기서 에두아르는 강렬한 순간을 맛보았다. 승리의 순간이었다. 알베르에 대한 승리는 아니었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의 삶이 망가진 후 처음으로 스스로의 힘이 느껴지는,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되는 승리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1

에두아르가 쓴 마스크, 거의 실물 크기에 가까운 그것은 말 대가리였다.

에두아르가 지점토로 빚은 거였다. 모든 게 거기에 있었다. 군데군데 어두운 색들이 어른거리는 갈색, 아주 보드라운 감촉의 밤색 곰 인형을 뜯어 만든 듯한 약간 거무스름해진 털의 결, 아래로 처진 야윈 볼, 이마에서부터 구덩이처럼 벌어진 콧구멍에까지 이르는 각진 등성이……. 그리고 솜털로 덮여 반쯤 벌어져 있는 큼직한 두 개의 입술까지, 그것은 환각이 일 정도로 실제의 말과 흡사했다.

에두아르가 눈을 감자, 말 자체가 눈을 감았다. 바로 그 말이었다! 알베르는 지금껏 한 번도 에두아르와 그 말을 연결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친구를, 형제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3

이 그림들은 거기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미지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 이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고결한 이미지들임에 틀림없지만, 약간 지나치게 과시적이었다. 알베르는 성격이 수줍은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들이 끊임없이 과장되고 있었다. 마치 형용사들을 듬뿍듬뿍 발라 놓은 것 같았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8

지금 알베르가 느끼는 슬픔은 ─ 이 순간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 이 불쌍한 에두아르가 이 전쟁에서 모든 것을, 심지어는 그의 재능마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거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9

애국적 회상



우리의 영웅들과

승리한 프랑스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비, 기념물 및 조각상


카탈로그

* * *

「자네, 전사자 기념비를 팔겠다는 거야?」

맞아. 바로 그거야. 에두아르는 자신이 찾아낸 것이 너무도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목구멍으로 그 끼르르르륵 하는 소리를 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 그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지만, 듣기에 유쾌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소리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2

「그냥 팔기만 하는 거라고……!」

가장 고대하던 일은 종종 느닷없이 찾아온다. 알베르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거였다. 미칠 듯한 기쁨에 사로잡힌 에두아르는 첫째 날부터 알베르를 끈질기게 괴롭혀 온 그 질문에 갑자기 대답하고 있었다. 그가 웃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목구멍에서 울리는 웃음, 높은 음색의 여성적인 웃음, 트레몰로와 비브라토가 있는 진짜 웃음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6

에두아르의 웃음이 두 번째로 폭발했다. 아까보다 훨씬 거세게.

「돈을 들고 튀는 거야!」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7

피곤해서 이럴 수도 있다. 한밤중에 출발해야 했고, 그의 몸에서 정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 내는 그 유대 계집년은……. 사실 그는 유대인들을 끔찍이 싫어했지만(도네프라델 가문은 중세 때부터 반(反)드레퓌스 파였다), 그 종족의 계집들은 그 짓을 할 때면 얼마나 기가 막힌지……!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9

에두아르 생각에 이 모든 것은 알베르가 적당한 시일 내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느냐에 달려 있었다. 왜냐면 기막힌 아이디어는 금방 상하는 식품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문들을 열심히 읽으며 그는 예감했다. 시장이 기념비들의 공급으로 포화되면, 이 수요에 모든 예술가들과 주물 공장들이 몰려들면,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린다는 것을.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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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장밋빛 전망에 즐거이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헤엄치며 그것을 들이마셨으며, 그의 존재 전체가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말썽꾼으로서의 쾌감들과 도발적인 본성을 되찾으며 그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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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과 부르주아들 간의 영원한 싸움이 여기서 다시 거듭되고 있었다. 아버지와 맞붙어서 그가 패배한 전쟁의 반복이었다. 예술가는 몽상가이고, 따라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야! 알베르가 하는 말 뒤에 이 문장이 들리는 듯했다. 아버지 앞에서도 그랬지만 알베르 앞에 있으면 자신이 무슨 구호 대상자, 무익한 짓들에 시간을 허비하는 쓸데없는 존재로 폄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그와 알베르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단순한 의견의 불일치가 아니요, 문화의 차이였다. 그는 알베르가 하찮고, 쩨쩨하고, 옹졸하고, 야심도 광기도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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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마야르는 마르셀 페리쿠르의 변종일 뿐이었다. 돈만 없을 뿐 그와 똑같았다. 확신에 사로잡힌 두 사내는 에두아르가 가진 가장 생기발랄한 것을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그를 죽이고 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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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본 에두아르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등이었다. 선뜻 떠날 결심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배낭을 꾸리는 그의 등 말이다.

온종일 등에다 광고판을 메고 대로를 걸어다니면서 알베르는 서글픈 생각들을 곱씹었다.

그날 저녁, 단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고마워, 모든 게.〉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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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는 홀로 흐느꼈다. 알베르가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들의 이야기를 써본다면 책 한 권은 나오리라. 지금 흘리는 눈물은 절망의 눈물로, 자신의 삶을 생각하면 슬픔의 눈물이 되었고, 미래를 생각하면 오싹한 공포의 눈물이 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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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는 옷장으로 뛰어가 말 대가리 마스크를 꺼냈다. 그는 마치 귀중한 골동품을 다루듯이 조심해 가면서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러자 곧바로 어떤 안전한 곳에 들어온 듯한,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 그는 쓰레기통에서 그나마 큰 거울 조각을 꺼냈지만, 그걸로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창유리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말이 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즉시 두려움이 가라앉았고, 어떤 포근한 따스함이 그를 감쌌으며, 근육은 스르르 이완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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