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안에서 활짝 열렸다. 빛이 문간으로 뛰쳐나왔다. 감옥으로부터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탈출해 나왔다. 중년의 영국인 쉰 명이 밖으로 행진해 나왔다. 그들은 <펜잰스의 해적>에 나오는 <만세, 만세, 패거리가 여기 모두 모였네>를 부르고 있었다. - P121

초와 비누만 독일에서 만든 것이었다. 희끄무레하게 유백광을 내는 것이 둘이 비슷해 보였다. 이 영국인들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초와 비누는 유대인과 집시와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국가의 적들의 지방을 녹여 만든 것이었다.
뭐 그런 거지. - P125

로즈워터는 언젠가 과학소설이 아닌 책에 관하여 빌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삶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다 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로 충분치가 않아." 로즈워터는 말했다. - P131

책은 킬고어 트라우트가 쓴 『4차원의 미치광이들』이었다. 이것은 병의 원인이 모두 4차원에 있기 때문에 정신병을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3차원의 지구인 의사들은 그 원인을 전혀 알 수 없었고, 심지어 상상하지도 못했다.
트라우트가 한 말 가운데 로즈워터가 무척 좋아하는 한 가지는 뱀파이어와 베어울프와 고블린과 천사 등등은 진짜로 있는데, 다만 4차원에있다는 것이었다. 트라우트에 따르면 로즈워터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윌리엄 블레이크도 마찬가지였다. 천국과 지옥도 마찬가지였다. - P135

킬고어 트라우트의 『우주에서 온 복음』이었다. 우주에서 온 방문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방문객은 트랄파마도어인과 아주 흡사했다. 우주의 방문객은 기독교를 진지하게 연구했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질 수 있는 이유를 알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는 적어도 문제 가운데 일부는 신약의 이야기가 너무 엉성한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처음에는 복음서들의 의도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낮은 자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제로는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그가 연출이 시원찮은지 확인해라.
뭐 그런 거지. - P140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어요-" 가이드가 말했다.
"거기에 지구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요. 지구도 사라져버린다는 것 말고는."
"어떻게-도대체 우주가 어떻게 끝납니까?" 빌리가 말했다.
"우리가 터뜨려버리죠. 우리 비행접시의 새 연료 실험을 하다가요.
트랄파마도어의 어떤 시험 비행사가 시동 단추를 누르고, 그 순간 우주전체가 사라집니다." 뭐 그런 거지. - P150

행렬은 껑충거리며,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며 드레스덴 도살장 정문으로 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도살장은 이제 혼잡한 곳이 아니었다. 독일의 발굽 달린 동물은 거의 모두 인간들, 그 가운데서도 주로 군인들이 죽이고 먹고 배설했다. 뭐 그런 거지.
미국인들은 정문 안의 다섯번째 건물로 이끌려갔다. 시멘트벽돌로 지은 네모난 단층 건물로, 앞뒤에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곧 도살당할 돼지들을 가두어두려고 지은 건물이었다. 이제는 미군 전쟁 포로 백명을 위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집 역할을 할 것이었다. 안에는 침상들,
배불뚝이 난로 두 개, 수도꼭지 하나가 있었다. 건물 뒤는 변소였는데,
가로장 하나짜리 담 밑에 들통들이 놓여 있었다.
건물 문에는 커다랗게 번호가 적혀 있었다. 5였다. - P191

그들의 주소는 ‘슐라흐토프 - 윈프 Schlachthof-fünf‘였다. 슐라흐토프는 도살장이란 뜻이었다. 핀프는 너무나도 친근한 5였다. - P192

영국과 미국 폭격기가 드레스덴 공격에서 135,000명을 죽인 일은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나는 지난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지 기억하며 나치즘을 완전히 물리치고 철저히 파괴하려는 불가피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연합군 5,000,000명 이상을 잃은 것을 훨씬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뭐 그런 거지.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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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 마지막 순간, 나는 내 이기심과 에스트라벤의 침묵에 의해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던 것을, 그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깨달았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344

다만 그에 대한 내 사랑에 대답하듯, 침묵의 잔해와 마음의 동요를 헤치고,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한 번, 또렸하게 외쳤을 뿐이다. <아렉!> 그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345

카르히데에서 비밀이란 지극히 신중하고 합의되고 양해된 침묵의 영역으로, 질문의 생략일 뿐 답의 생략은 아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349

하지만 이들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남자와 여자로 나뉜 이들은 내게 너무도 낯설었다. 이들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낮거나 너무 높았다. 확연히 구별되는 두 개 종으로 된, 커다랗고 낯선 동물들로 이루어진 곡예단 같았다. 지적인 눈이 있는 유인원, 모두가 발정이 나고 케메르에 든 거대한 유인원이었다. 그들은 내 손을 잡고 만지고 끌어안았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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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것이 우리를 감쌌다. 따뜻함이었다. 죽음과 추위는 다른 곳, 밖에 있었다. 증오도 밖에 두고 왔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99

에스트라벤은 우리 세계의 문명과 외계의 존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마음의 언어는 그런 그에게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나는 끝없이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사실, 어쩌면 우리가 겨울 행성에 꼭 주어야 할 것도 그것뿐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내가 문화 수출 금지령을 어긴 동기가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에스트라벤에게 진 빚을 갚은 게 아니었다. 그러한 빚은 언제까지고 남아 있는 법이다. 에스트라벤과 나는 단지 우리가 나누어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나누는 단계에 이른 것뿐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300

그리고 나는 그토록 보게 될까 두려워했던 것, 에스트라벤에게서 보고도 애써 못 본 척해 왔던 것을 다시금 보고야 말았다. 그가 남자인 동시에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성은 두려움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마침내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에스트라벤을, 그의 진정한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게센에서 나를 믿는 유일한 사람이며 또한 내가 불신하는 유일한 게센인이라던 에스트라벤의 말이 옳았다. 에스트라벤은 나를 인간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준 유일한 이였던 것이다. 그는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으며 내게 개인적으로 충실했다. 따라서 내게도 같은 정도의 인정과 받아들임을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여자인 남자, 남자인 여자 에스트라벤에게 신뢰와 우정을 주고 싶지 않았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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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명의 타고난 특성인 진화의 성향을 의식적으로 확대하려는 거였군요. 그런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탐험이지요."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59

제 삶을 사랑하는 만큼, 저는 에스트레 영지의 언덕을 사랑합니다. 그런 종류의 사랑에는 증오의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제가 무지하기를 바랍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60

한다라에서 무지는 추상에 대해 무지하고 실체를 확실히 잡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태도, 추상과 관념에 대한 거부와 주어진 것에 대한 순종에는 어딘가 여성적인 면이 있었고, 나는 그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60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케메르를 맹세한 연인처럼,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86

"우리도 이원론자입니다. 이원론은 본질적이지 않나요? ‘나’와 ‘타인’이 있는 한 말입니다."
아이가 말했다. "나와 당신. 네, 결국 그게 성보다 더 넓은 걸 포함하니까요……."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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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과 특권을 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며, 모든 이가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의 남성들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남성들도 없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6

다음이 내 최종 결론이다: 게센인을 만나면 양성 사회에서 하듯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행동은 같은 또는 반대 성 사이에 양식화되거나 가능한 상호작용을 상대에게 기대하고 그에 일치하는 역할을 상대에게 적용하여 남자 또는 여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적・성적 상호작용이 보여주는 전체적인 양상이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센인에게 그러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게센인들은 타인을 남자나 여자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 우리가 맨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7

하지만 게센인을 중성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게센인은 중성이 아니다. 그들은 잠재적으로 양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도 갖고 있다. 카르히데에서 소메르에 든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인칭 대명사가 우리에게는 없기에, 초월신을 일컬을 때 남성 대명사를 쓰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는 ‘그’라는 대명사를 쓴다. ‘그’는 중성이나 여성 대명사보다 덜 규정적이며 덜 명확하다. 하지만 이 대명사를 사용하다 보면 내가 마주하는 카르히데인이 남자가 아니라 남자여자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7

주목과 인지하는 방식이 얼마나 간접적이고 미묘한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겨울 행성에서는 그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는 오직 하나의 인격체로만 존중되고 판단된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7

소메르-케메르의 주기는 하등동물의 발정주기로 회귀함으로써 인간을 기계적인 동물의 발정에 종속시키는 어리석은 결과, 즉 퇴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실험을 행한 이들은 아마도 지속적인 성적 능력을 갖지 않은 인간이 지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가능성이 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8

가상의 실험 목적에 대한 또 다른 추측: 전쟁의 제거. 고대 헤인인들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지속적인 성적 능력과 조직화된 사회적 공격성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투마스 송 안고트처럼 전쟁을 순전히 남성의 배설 행위, 즉 대규모의 강간 행위로 보고, 그들의 실험에서 강간하는 남성성과 강간당하는 여성성을 영원히 제거하려 한 것일까? 신만이 그 답을 알고 있으리라. 사실 (명성을 얻으려 경쟁하기 위해 제공된 정교한 사회적 매개체들 의해 입증되는 것처럼) 게센인들은 매우 경쟁적이긴 하지만 아주 공격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적어도 전쟁이라 부를 만한 것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서로 한두 명씩 죽이는 일은 있지만 열 명, 스무 명씩 죽이는 일은 드물다. 수백, 수천 명을 살육하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왜일까?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9

나는 평화로운 치페와르 출신의 여자다. 또한 폭력이 지닌 매력이나 전쟁의 본성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아니다. 이 문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생각해보아야 할 터다. 그러나 겨울 행성에서 겨울을 보내고, 빙원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승리니 영광이니 하는 따위를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29

나는 그해 여름, 모빌이라기보다는 조사원이 되어 카르히데의 도시와 도시, 영지에서 영지를 다니며 보고 들었다. 모빌이 주민들에게 두렵고 이상한 괴물로 취급되며 쇼의 구경거리처럼 여겨지던 초기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방의 화로와 마을들에서 나를 묵게해준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곤 했다. 그들 대부분은 라디오에서 나에 대해 조금 들었고, 그래서 내가 누군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좀 더 궁금해했고, 어떤 이들은 좀 덜 궁금해했다. 나를 두려워하거나 내게 이방인 혐오증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카르히데에서의 적은 이방인이 아니라 침략자이다. 잘 모르는 낯선 이는 손님이다. 당신의 적은 바로 당신의 이웃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30

겨울 행성은 살기 어려운 세계이다. 일을 잘못 처리한 것에 대한 처벌도 확실하고 신속하다. 추위에 얼어 죽거나 아니면 굶어 죽는 것이다. 그 어떤 여지도, 유예도 없다. 개인은 자신의 행운에라도 기댈 수 있지만, 사회는 그럴 수 없다. 게다가 만약 문화가 일정한 방향 없이 무작위로 변한다면 상황은 더욱 불안정할 터였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느리게 발전했다. 성급한 관찰자라면 그들 역사의 어느 한 순간을 지목해 그때 모든 기술적 진보와 확산이 끝났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급류와 빙하를 비교해보라. 둘 모두 결국 자기 목적지에 닿게 된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31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부드러운 태도가 특히 인상 깊었다. 아주 정중하고, 효과적이며, 아이에 대한 소유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성’ 본능이라 부르는 것과 다른 점은 아마도 그 무소유의 태도일 것이다. 모성과 부성 본능을 구별하는 것은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아이를 보호하고 도와주려는 부모의 본성이 반드시 성과 관련된 특징은 아닌 듯하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32

그리고 그는 방금 내게 좋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즉 시프그레소는 윤리적 수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능수능란한 이가 이긴다는 점이었다. 그는 두 가지 점에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40

나는 ‘친교’, ‘친교체’라 번역되는 오르고레인 단어를 적절히 정의할 수가 없다. 이 단어의 어원은 ‘함께 식사를 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오르고레인의 국가/정부 기구 모두에, 국가부터 33개의 주 또는 지구에서 위성 주, 도시, 공동 농장, 광산, 공장 등과 그것을 이루는 모든 것에 쓰였다. 이 단어가 형용사로서 쓰일 때는 위의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또한 ‘친교인’이라는 단어는 오로그린의 대친교그룹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구성하는 33인의 수장을 의미했다. 하지만 또한 이 단어는 친교그룹의 시민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어의 일반적인 용법과 특수 용법 사이에 구분이 없거나 전체와 부분 모두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국가와 개인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과 같이 부정확하고 이상한 용법 속에 이 단어의 가장 정확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43

나는 그 점이 맘에 들었다. 상대를 선동하지 않고 안정시키는 자세, 늘 차분하면서도 심지 굳은 모습이야말로 내가 게센인들에게서 늘 높이 사는 점이었다. 질서는 유지될 터였다. 나는 정신 분열증에 걸린 임신한 왕과 자아도취에 빠진 섭정관에 의해 무력과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불협화음의 땅 카르히데를 떠난 게 새삼 기뻤다. 고른 잿빛 하늘 아래 끝없이 곧게 펼쳐진 논밭 이랑 사이로 시속 25마일로 천천히 차를 몰아 질서가 유지되리라 굳게 믿는 정부의 수도로 향하는 게 기뻤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48

카르히데 이야기. 고린헤링에서 토보르드 코르하와가 구술하고 겐리 아이가 기록.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를 기초로 해 만들어진 연극 <하벤>은 카르가프 동부를 순회하는 극단이 즐겨 하는 공연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60

다른 이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한 사람만 있었다. 그는 얼어서 갑옷처럼 되어버린 에스트라벤의 옷을 벗겼고, 털가죽으로 몸을 감싸준 뒤 자신의 온기로 에스트라벤의 발과 손, 얼굴의 한기를 녹여냈고, 뜨거운 에일을 마시게 했다. 마침내 언 몸이 풀리고 기운이 회복되자 젊은이는 자기를 돌봐준 사람을 바라보았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61

그는 젊은이 자신만큼이나 젊고 낯선 이였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잘생겼고 골격이 튼튼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늘씬하며 피부가 검었다. 에스트라벤은 상대의 얼굴에서 케메르의 불길을 보았다.
그가 말했다. "저는 에스트레의 아렉입니다."
다른 이가 말했다. "저는 스톡의 세렘입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61

나는 그를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게 했고 아침 에일을 권했다. 그는 거절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67

하지만 테라인이나 에큐멘 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해 폭넓은 질문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에스트라벤만이 예외였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73

예전에 정해진 문화 금지법은 현 단계에서 분석하고 모방할 수 있는 기계 반입을 금하고 있어서 나는 우주선과 앤서블, 사진 상자, 내 신체의 특징과 보여줄 수 없는 정신적 특성 말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74

에큐멘은 우리 테라 용어입니다. 공용어로는 ‘가족’이라 부릅니다. 카르히데어로는 ‘화로’라고 하겠지요. 오르고레인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이곳 말을 잘 알지 못하거든요. ‘친교그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친교 정부와 에큐멘 사이에 분명히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요. 하지만 에큐멘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화적 기구와 정치적 기구를 재통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74

이곳 게센에서 고대의 테라 정부와 유사한 정부 형태, 즉 군주제와 만개한 관료제를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환상적인 일이었다. 이 새로운 발달 형태 역시 환상적이기는 했지만 흥미는 덜했다. 덜 원시적인 사회일수록 더 못된 특징이 있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84

마치 그림자 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약간 과장된 사색은 내 임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만약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나는 모빌 자격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헤인에서 이에 대한 공식 훈련을 받았다. 헤인에서는 이를 ‘심추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것은 더러 도덕적 실체의 직관적 인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논리정연한 말보다 ‘은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절대 심추론에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오늘 밤 나는 아주 피곤했기에 내 직관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위안을 구했다. 하지만 샤워를 할 때조차 애매한 불안감이 찾아왔다. 마치 따뜻한 물이 현실이 아니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러한 불안감이.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87

그의 시프그레소는 우리와 다른 것에 근거를 두고 구성되고 유지되는 게 틀림없다. 난 그를 아주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내가 교활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90

어떤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그리고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 이는 긴장과 어둠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93

사르프는 내가 알았던 것 이상, 또는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언론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 그 가능성은 무서운 것이다. 카르히데에서 왕과 쿄레미는 국민의 행위에 대해 많은 통제를 가하지만 국민의 귀에 들어가는 정보는 거의 통제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은 전혀 통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정부는 국민의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 타인에게 그럴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는데 말이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194

900년 전 북부 오르고레인에서 편찬된 요메시 경전에 있는 투훌메 최고 사제의 설교에서.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04

시체까지 포함해 모두 26명, 13의 두 배였다. 게센인은 13, 26, 52식으로 묶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쓰는 일정한 날수로 된 달력의 근원이자 이들의 성 주기와 대략 맞아떨어지는 달의 주기가 26일인 것에 기인한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12

한낮이 되면 발효되지 않은 곡물로 양조한 오르시를 한 잔씩 주었다. 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다시 수용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야채죽과 맥주가 나왔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18

나는 게센인의 성 주기에서 성적 가능기를 감소시키거나 제거하는 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약은 편의를 위해서나 약품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금욕이 요구될 때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약을 사용하면 몇 번의 케메르 정도는 부작용 없이 건너뛸 수 있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했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이에게 강제로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20

사회적 목적을 위해 성적 욕망을 억제시키는 모습을 본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성의 억제가 아닌, 성의 삭제였으며, 긴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좌절감과는 다른, 뭔가 그보다 더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바로 수동성이었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21

"저는 당신이 원하는 그걸 원합니다. 저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가 동맹을 맺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44

겨울 행성에서는 맥주가 없는 곳엔 오르시가 있다. 맥주와 오르시가 없는 곳엔 사람도 없다.

-알라딘 eBook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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