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빌리가 겉으로 멍해 보이는 것은 위장이었다. 겉보기에 멍한 모습으로 흥분하여 쉬익쉬익 번쩍번쩍 움직이는 정신을 감추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비행접시, 죽음의 하찮음, 시간의 진정한 본질에 관한 편지를 쓰고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 P236

반향언어증상이란 주위에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즉시 되풀이하는 정신적 질병이다. 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럼포드는 그냥 그래야 자신이 편하기 때문에 빌리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한 것뿐이다. 럼포드는 군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불편한 사람, 실리적인 이유에서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역겨운 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 P239

도살장에 도착했을 때 빌리는 마차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념품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빌리에게 인생의 행복한 순간에 집중하라고, 불행한 순간은 무시하라고 예쁜 것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그러면 영원한 시간이 그냥 흐르지 않고 그곳에서 멈출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선별이 빌리에게 가능했다면, 그는 수레 뒤에서 햇볕에 흠뻑 젖은 채 꾸벅꾸벅 졸던 때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 P242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지혜를 주소서. - P258

트랄파마도어에서는 예수그리스도에 별 관심이 없다, 빌리 필그림은 그렇게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트랄파마도어인의 정신으로 볼 때 가장 매력적인 지구인은 찰스 다윈이다-그는 죽는 사람들은 원래 죽게 되어 있으며, 주검은 나아졌다는 증거라고 가르쳐주었다. 뭐 그런거지. - P260

빌리 필그림이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것이 사실이라 해도, 즉 우리가 가끔 죽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영원히 사는 것이라 해도, 나는 그리 기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순간 저 순간을 찾아다니며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면, 멋진 순간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고맙다. - P260

빌리와 나머지 사람들은 어슬렁어슬렁 걸어 그늘진 거리로 나갔다.
나무들이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않았다. 거리를 오가는 것은 전혀 없었다. 탈것이라고는 딱 하나, 말 두마리가 끄는 마차가 버려져 있을 뿐이었다. 마차는 녹색에 관 모양이었다.
새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빌리 필그림에게 말했다. "지지배배뱃?"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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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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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심리학이 밝힌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를 토대로 실제로 세상을 더 낫게 바꾸는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놓은 책이 있다. 칩 히스, 댄 히스 형제가 쓴 『스위치』다. 이들이 이론적 토대로 삼은 것은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연구 결과들이다. 하이트는 인간의 감성적 직관적 측면이 거대한 코끼리라면 이성적 측면은 거기 올라탄 작은 기수라고 비유한다. 진행 방향과 관련하여 코끼리와 기수의 의견이 불일치할 때면 언제나 코끼리가 이긴다. 이성적인 기수가 제발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일을 코끼리는 선입견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저지르곤 한다. 이것은 대니얼 카너먼이 말하는 우리 뇌 속에서 벌어지는 시스템1과 시스템2, 즉 자동으로 작동하는 직관과 합리적 추론의 분업을 비유로 쉽게 설명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코끼리가 훨씬 강력한 엔진이고 합리적인 기수는 보조적인 제어장치 역할을 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그게 효율적인 생존장치니까 당연한 일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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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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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방법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 절차를 밟아 헌법 자체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찬성표를 던지겠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4

급변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자칫 좋은 의도로 최악의 결과만 낳을 수 있다. 지금 입시제도가 이렇게 복잡해진 것도 알고 보면 그런 결과가 층층이 쌓여서인지 모르겠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6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은 자칫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 있다. 공공의식이 부족한 엘리트는 사회에 오히려 더 큰 해악만 끼칠 수 있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87

1969년생 주변부 국가 소년이 1960년대 미국을 휩쓴 반문화, 히피즘에 향수를 느끼게 되는 기묘한 문화 현상(이것도 알고 보면 보편적인 일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나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청춘들같이)에 사로잡혀 있었다. 간접경험이 축적되다보니 마치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것 같은 대체 기억이 형성된 것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0

나 같은 경우가 80년대 NL 계열 학생운동권이 비판하던 전형적인 주변부 식민지 문화 종속의 예일 것이다. 그들이 뭐라 분석하든 소년 시절의 내게 120분짜리 공테이프에 정성껏 녹음하여 듣던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는 답답한 현실과 대비되는 그리스신화적인 영웅이었고, 혁명의 시대 반문화의 시대였던 미국의 1960년대는 불만 가득한 개도국 소년의 1980년대이기도 했다. 그게 예술의 보편성인 것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0

자본주의의 허위의식에서 깨어나 사회주의적 인간형으로 거듭나면 된다는 식인데 이건 종교일 뿐이다. 개미 연구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이 정확하다. "이론은 훌륭한데 종種이 틀렸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2

결국 나는 마음속으로 무거운 부채의식은 있지만 아무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책만 엄청나게 읽어대고, 영화제 다니고, 연애하고, 나이트 록카페 다니는 날라리 학생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3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공존하던 1930년대 독일사회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이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알라딘 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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