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걷다가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는데 어느새 머리 위에 우산이 씌워져 있었다. 흐린 회색 하늘에 느닷없이 올라온 새빨간 우산 덕분에 주위가 환해졌다. 그 밑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소녀와 아가씨의 경계에 선 것처럼 풋풋한 분위기. 부드럽게 웨이브가 진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 순간 현기증이 일어서 그만 지팡이를 놓치고 말았다. - <너를 찾아서>,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9231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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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섰다. 깊고 진한 네이비블루 컬러의 톰 포드 수트. 새하얀 와이셔츠에 로열 블루 넥타이를 매고, 베스트 위에 쓰리 버튼 재킷을 입었다. 잘 벼린 칼처럼 각이 맞아 날렵하게 떨어지는 수트가 공기처럼 가벼우면서도 갑옷처럼 안전하게 전신을 감싸 줬다. 입주 가정부인 박 여사의 살림은 흠잡을 데 없지만 특히 옷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지간한 세탁소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셔츠를 빨아서 각 맞춰 다려 놓고, 수트와 셔츠를 색깔별로 일사분란하게 정리해 둔다. 왠지 심란해질 때 옷장 속에 나란히 걸려 있는 색색 셔츠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 <너를 찾아서>,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9231 - P13

사고가 난 지 15년. 이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랄까,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길러졌다. 열린 차 문으로 빗물이 들이닥치는데도 기사는 빨리 내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말없는 배려가 고마워 거스름돈은 됐다고 말하고,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차 문을 닫았다. 비는 택시기사와 달리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쏟아졌다. - <너를 찾아서>,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9231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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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섰다. 깊고 진한 네이비블루 컬러의 톰 포드 수트. 새하얀 와이셔츠에 로열 블루 넥타이를 매고, 베스트 위에 쓰리 버튼 재킷을 입었다. 잘 벼린 칼처럼 각이 맞아 날렵하게 떨어지는 수트가 공기처럼 가벼우면서도 갑옷처럼 안전하게 전신을 감싸 줬다. 입주 가정부인 박 여사의 살림은 흠잡을 데 없지만 특히 옷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지간한 세탁소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셔츠를 빨아서 각 맞춰 다려 놓고, 수트와 셔츠를 색깔별로 일사분란하게 정리해 둔다. 왠지 심란해질 때 옷장 속에 나란히 걸려 있는 색색 셔츠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 <너를 찾아서>,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9231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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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철자법이 그렇죠?" 나는 말했다. "언어 진화에서 습득의 용이함은 1차 요인이 아니에요. 헵타포드의 경우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아마 굉장히 다른 문화적, 인지적 역할을 수행할 거예요. 그 때문에 별개의 언어를 쓰는 편이 같은 언어의 두 가지 형태를 쓰는 것보다 더 논리적인지도 몰라요."

-알라딘 eBook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중에서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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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을 통해) 저는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에게는 없는 온전한 경험의 영역이 있고, 그런 글이 쓸 가치가 있고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찾아 제대로 읽었어요. 그 뒤로는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에게 준 모든 책, 다른 여자들이 수백 년 동안 써온 책들을 읽었지요. 여자들이 여자처럼 글을 쓸 수 있고, 남자와는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왜 안 되겠어요? - P23

"나는 어떻게 경제학자들이 성장을 끊임없이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려 한다. 성장이란 그럴싸한 비유의 일종이다. 아기라면 어른의 몸집만큼 성장할 것이고 이후엔 성장이 안정감 유지와 항상성, 균형 잡기로 바뀐다. 아기의 몸집이 끝없이 커진다면 머지않아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 (…) 모든 경제적 성장은 부자들만의 이익으로 남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 P24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어른 탓을 하는 편이 훨씬 쉬운 법이다."
르 귄의 문장을 읽다 보니 촌철살인은 노년의 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긴 세월을 살면서 겪은 배반과 수치, 의심, 분노와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 가지는 회한 어린 희망이 바로 촌철살인의 짧은 문장을 낳는 건 아닐까.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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