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섰다. 깊고 진한 네이비블루 컬러의 톰 포드 수트. 새하얀 와이셔츠에 로열 블루 넥타이를 매고, 베스트 위에 쓰리 버튼 재킷을 입었다. 잘 벼린 칼처럼 각이 맞아 날렵하게 떨어지는 수트가 공기처럼 가벼우면서도 갑옷처럼 안전하게 전신을 감싸 줬다. 입주 가정부인 박 여사의 살림은 흠잡을 데 없지만 특히 옷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지간한 세탁소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셔츠를 빨아서 각 맞춰 다려 놓고, 수트와 셔츠를 색깔별로 일사분란하게 정리해 둔다. 왠지 심란해질 때 옷장 속에 나란히 걸려 있는 색색 셔츠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 <너를 찾아서>,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9231 - P13
사고가 난 지 15년. 이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랄까,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길러졌다. 열린 차 문으로 빗물이 들이닥치는데도 기사는 빨리 내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말없는 배려가 고마워 거스름돈은 됐다고 말하고,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차 문을 닫았다. 비는 택시기사와 달리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쏟아졌다. - <너를 찾아서>,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9231 -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