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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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몇 번이나 더 누릴 수 있을까?”

 

흔들리는 오십……. 흔들리기만 할까. 갑자기 툭... ... 살면서 만들어둔 것들 중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내 자신의 일부가 바스스 손 쓸 도리 없이 헤지기도 한다. 몸도 다른 것도 거의 매일 아프다. 과장이 아니다.

 

삶의 반환점은 몇 해 전에 이미 돌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게 되지 않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로 읽는 책들도 대개는 첫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빠르게 닫히는 시간의 문 앞에서 무엇이든 반복은 사치가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모든 걸 뒤집어버리기엔 우리 인생에 너무 깊이 매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 평온함은 이내 고통스러운 마비 상태로 변한다.”

 

그런 약화(?)를 알아차리면 무분별하게 사용한 자신을 돌보거나, 잘 모르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거나, 살라는 대로 살아온 삶 말고 다른 삶을 찾거나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시도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령의 부모와 아직 미성년인 자녀들이 있는 경우, 아프든 괴롭든 의무와 책임은 막강한 과제처럼 버티고 있다. 그 괴리가 중년을 더 아프게 한다. 그 결과로 드러나는 거의 모든 비명을 갱년기 증상이라 부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혀 바꿀 수 없는 나의 생물학적 운명, 유전자는 봐주지 않고 일회용인 몸을 노화시키고, 내가 바꿀 수도 있지만 무책임한 선택이 되거나 사랑하는 이들을 엄청나게 힘들게 할 사회적 운명, 역할은 변화를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살다보면 앞으로 남은 삶에 남은 마지막 이벤트는 장례밖에 없다. 행동이 어려우니 중년에게는 제목처럼 철학이 유일하고 간절한 존재 방식이 될 지도 모르겠다. 뭐든 각자가 이해 가능한 정리가 필요하니까.

 

우주의 추정 나이가 약 137억 년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은 찰나에 불과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분하게 사색을 이끌어주고 함께 산책을 나선 듯 다정한 책을 읽는 동안, 시시한 성과물도, 막연한 미래도 불안해하지 않고 잊을 수 있었다. 중년에 느끼는 감정들을 쓸데없다고 혼내지도 않고, 감동을 주거나 낙담시키지도 않는다.

 

중년이라서 가질 수 있는 작은 반짝임 같은 통찰을 과장 없이 얘기하며, 그렇지 않냐고 조용히 묻는다. 읽다 보면 저자의 고백을 내가 듣는 것인지 내가 고백을 털어놓는 것인지 분간이 흐려진다. 공허함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삶의 허무함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 이런 식으로 우리는 (...) 우리 안의 무언가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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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 - 똑바로 볼수록 더 환해지는 삶에 대하여
박광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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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단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남을 뿐입니다. (...) 어떠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참 다정한 책이다. 부친의 사망진단서를 건네주며, 아주 많은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고인이 고통 없이 편안히 가신 것을 볼 수 있다고, 위안의 말을 건네던 고마운 의사선생님이 다시 생각났다.

 

탈상이 무용해 보이는 상주의 심정으로 힘들고 복잡한 감정을 껴안고 사는 중이라서 공부가 하고 싶지만 책에서라도 죽음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용기를 내길 잘했다. 부친의 사망과 상례를 겪으며 경험한 과정들에 합치되는 내용들이 많아서 덕분에 다시 이해하고 일부 정리가 된다.

 

죽음이라는 숙제는 오로지 나만이 풀 수 있다. 하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고 없고는 삶의 엔딩을 또 다른 쪽으로 쓰게 한다.”

 

나는 비교적 젊은 20대에 유서쓰기, 장기기증 등에 관심이 있었고, 미리 등록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찾아 해두었다. 이 책에도 사례와 함께 잘 소개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까지. 그래도 늘 준비가 부족한 기분이라 불안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남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치료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둘러봐도 현재 더 준비할 것이 없다 싶으면, 종교도 없으면서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부디 필요한 말, 해야 하는 말, 하고 싶은 말을 더 열심히 전할 수 있기를. 부디 존엄성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한국에서 죽을 권리는 없다. 여기서 죽을 권리는 적극적 안락사를 말한다.”

 

책을 읽은 덕분에 논쟁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례와 주장과 고심들을 배울 수 있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의 형편을 섬세하게 살펴서, 인간의 죽음이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연결된 사람 관계처럼 죽음도 끝이 아니다. (...) 당신의 아름다운 작별 인사는 무엇인가.”

 

두려움과는 달리 행복한 공부를 했다. 이토록 다정하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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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예찬
앙리 라보리 지음, 서희정 옮김 / 황소걸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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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라는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난 글, 사상의 자유를 빨리 보장받은 사회공동체에서 사회화된 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시에, 자기검열에 익숙한 한국사회의 움츠러듦이 생각나니,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발화에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읽는 재미는 확실하다. 화가 치미는 시절에, 이 책은 내게 책 속으로의 즐거운 도피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더불어 쿠데타 상황에서 영리하게 도피하고 용감하게 맞선, 그래서 비극적 희생이 없는 상황이 새삼 안도가 된다.

 

물론 외과 의사이자 신경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가 예찬하는 도피는 물리적 도망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이 투장과 억제와 도피이며, 사회가 물리적 투쟁을 금지하는 동시에 도피를 반사회적인 것으로 억제시키는 행태에 대해 지적하니 현 상황에도 시의적절 했다.

 

자기를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 상당수가 개인과 집단, 계급, 국가, 국가연합 등을 막론하고 지배 구조를 구축하려고 궁리하면서도 정상을 유지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한, 도피는 자기 자신에 비춰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영민하고 통쾌한 문장들이 많아서 일일이 다 소개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블랙코미디나 시니컬하게 반짝이는 과학 지성을 좋아하는 분들은 자주 웃으며 즐길 수 있다. 과학과 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자를 따라가는 게 조금 버거워질 수도 있으나, 최대한 즐기시길. 독서란 시험에 들게 하는 함정이 아니다.

 

중추신경계 기능은 우리가 하는 모든 판단과 행동의 근간이 되기에 (...) 중추신경계에 대한 지식을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습득하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읽는 시간에는 현실을 잊고 웃었다. 저급한 인간이 저지른 최하질의 국가적 범죄 처벌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한 시간에, 아주 다른 시선과 태도로 세상의 여러 당연한 것들을 뒤집어 보는 책과의 안전한 시간이 큰 위안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아무 메아리도 없는 절망적인 비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깨달았다.”

 

저자가 선택한 주제어들 중에도, 우리 인간이 저항과 도피라는 수단을 아예 사용하지 못할 상황들도 있고, 그런 면에서 우리의 운명은 생물학적일 뿐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생은 영원히 매혹적일 테지만, 더 유용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어떤 내용으로 살 것인가이다.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해야 한다. 우주는 자연법칙에 따라 예외 없이 작동하고 있지만, 인간 사회는 아무리 강고해도 지배 시스템에 틈이 있고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벌려 구조물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도 가능하다. 계기가 무엇일지는 사건event 발생 전에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완전히 절망하고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 책은 개별 존재인 우리 자신을 생물학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그리고 철학적 주체로 생각해보는 유쾌한 공부를 돕는다. 그리하여 온갖 모순과 갈등과 경쟁과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좀 더 이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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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무래도 내가 너를 - 나태주 한서형 향기시집
나태주.한서형 지음 / 존경과행복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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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척에는 익숙하지만, 정신도 기분도 다잡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에도 익숙하지만, 공황이 코앞에 다가온 듯 심장이 뛰고, 아무 데서나 광광 울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올 해는 특히 더 그렇다.

 

병마(病魔)와 사별과 간병과 양육과 살림과 업무의 좁은 틈 사이에서 살아가는 매일이 체력도 정신도 녹슬게 한다. 어느 순간 바스스 부서져서 사라질 것만 같다.

 

특히나 실패한 내란 수괴와 주동자들을 구속 처벌도 못하고 지나는 매 시간은 불안과 고통을 가중시킨다. 집중이 어려워서 자꾸만 SNS를 뒤적이게 되니 더 괴로웠는데, 책이 도착하니 향이 퍼지고 고단한 정신은 그 향에 달라붙는다. 비로소 차분히 안정이 된다.



 

책 자체에도 향이 스며있고, ‘사랑꽃 향 갈피에도 향이 난다. 한 장씩 넘겨가며 읽으니 손가락에도 향이 물드는 듯하다. 향이 진하면 불편한데,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거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몇 개의 시를 천천히 다시 읽는다. 이제는 익숙해진 향이 가만 읊조려보는 시구들과 함께 내 기억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호흡도 편안해지고, 덕분에 불안이 가라앉는다.

 




<잠시향>으로 처음 만난 한서형 작가님이 만든 향이 반갑고 고맙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 친필 시를 써서 액자로 보내주신 나태주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두 분이 문답을 주고받은 책 말미의 몇 장도 고운 시들처럼 다정하게 들린다.

 

아직 손끝에서 향이 희미하게 난다. 오늘은 이 향기시집을 가까이에 두고 잠을 청할 것이다. 시처럼 향처럼 곱고 아름다운 일들이 늘어나는 날들을 희망하고 상상하면서. 운이 좋으면 그런 꿈을 행복하게 꾸는 선물 같은 밤을 바라면서.

 

12월이란 갖가지 생각을 더 복잡하게 하고, 때론 무척 힘든 기분이 들게 한다. 짐작보다 힘이 센 향이라서 더 좋다. 불안하던 정신을 붙잡아주다니. 시집과 향 모두를 즐기시는 이들에게 선물로 드리거나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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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 진짜와 허상에 관하여
에밀리 부틀 지음, 이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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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만화도 아닌데도 읽고 나니 아쉽고 허전해서 재독을 할까 싶었다. 마치 자장면으로 통일!”이라고 외치는 회식의 무한 굴레에 갇혀 있다가 비상구로 탈출한 기분이다. “어디에나있는 진정성에 만성 체증이 나던 참이었다.

 

삶의 목표를 제공하고 자기 성찰을 교리로 삼는다는 점에서, 진정성은 세속의 종교를 닮았다.”

 

행동주의를 앞세운 종교와 상업자본주의가 만든 개념일까 싶었는데, 1700년대 후반 처음 등장했다니 놀랍다. 이후로 계속 생존하고 강조되고 다양하게 활용된 개념이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에 힘입어 전파력이 넓고 강력해졌을 뿐.

 

진정성은 자신을 소유하는 것, 자기 소유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는 하나의 이상이었다.”

 

이 주제로는 1000페이지 벽돌책도 반갑겠지만, 저자는 개념과 사상 말고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인식을 다루었다. 시의성과 전달력은 좋지만 풀세트 무기를 갖추고 싶은 독자로서 더 많이 깊이 읽고 배우고 싶어서 아쉬웠다.

 

진정성은 자본주의에 포섭되면서 그 의미를 잃었고, 전통적인 성공의 개념에 영합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더 당신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제품들만 양산했다.”

 

누군가의 진정성이 진짜인지 알 방법은 없다. 말과 행동을 통해 판단해볼 수는 있지만. 그러니 우리는 공감으로 타협한다. 따라서 진정성이든 공감이든 객관적인 정의도 측정도 불가능해진다. , 믿을 순 있겠지만 알 수도 있을까.

 

공감하면 이해하는 걸까, 한 번의 공감으로도 충분할까, 아니면 얼마나 반복해서 공감해야 진정으로 이해한 걸까. 고백의 형식을 갖추면 다 진정한 것일까. SNS에 표출된 콘텐츠들의 연출 여부와 진짜real는 항상 구분 가능할까.

 

누구의 삶이든 주체가 속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발생한다. 나는 고립이 아닌, 자신만의 진실에 따라 자립해서 생존하는 자연인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성은 포장일 때 100% 진짜 같고, 진짜라고 우길수록 가짜 같다.

 

브랜드에도 인간과 동일한 진정성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진정성은 자아실현을 의미했다.”

 

모든 존재는 공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독자인 내게, 진정성과 정체성 논의, 정체성 정치로의 논의 전개는 흥미진진했다. 다만 요령있게 요약 전달하지 못하는 능력 부족이 안타까울 뿐이다.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진정성을 요구하는 정체성은 한 가지 버전의 진실을 강요할 가능성이 크므로, 다른 존재를 제압하고 침해하고 말살하고 부정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는, 아니 이미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을 만든다는 점이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하나의 유형에 맞추고, 하나의 입장을 취가호, 이분법적 결정의 과정을 거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해서 외부인이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최종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당위와 구별 불가능한 개념에서 비롯된하나인 가치 실현보다 에도 불구하고자유롭게 자신을 만들고 찾고 변화하는 삶이 간절하다. “저마다의 진실은 모두 다른 모습일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논의와 토론과 협의가 가능할 것이란 신뢰 구조가 필요하다.

 

진정성 논의는 자기 돌봄과 마케팅과의 연관을 꿰뚫어보면서 더 흥미로워진다. 줄친 내용을 간략하게도 못하고, 졸고를 줄이지도 못하는 감상문이 진정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강추는 외쳐볼 수 있다. 이것저것 가능한 모른 척 살고 싶던 반백의 독자의 눈도 반짝 뜨이게 해주는 반가운 책!

 

온라인에서 우리는 내가 진정성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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