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인들은 정말 온전한 인간인가? 사회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의문이 든다.”* *<노년The Coming of Age>,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20대에는 얼른 30대가 되고 싶었다. 나이 들기가 기대가 된 것이 아니라, 아는 것 적고 엉망으로 서투른데도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 하는 시절이 벅찼다. 어느 시간부터는…… 이만큼이라도 오래(?) 살아 다행이라고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실수와 무지를 알아볼 경험과 안목이 겨우 조금 생기는 듯했다.

 

도무지 깊어지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채로 늙어만 가는 중이라서, 책이 전할 통찰과 메시지가 왈칵 반갑다.



 

...........................

 

나이 들어가는 몸에 관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있다. 오래 많이 사용한 몸은 상하거나 다치거나 망가진다는 것이다. 노동 없이 평생 세심한 관리만 하는 몸이 아니라면, 노동의 경중에 관계없이 어딘가(여러 곳)가 아프다.

 

이 사실은 - 연민이든 과장이든 거짓이든 - 내가 느끼는 감정의 과잉을 얼마나 덜어내는 지와도 별개다. 하루 종일 스트레칭과 근력운동만 하며 보낼 형편이 아니라면 약간의 운동과 재활훈련과 치료로 회복하는 속도는 망가지는 속도와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시간이 온다.

 

그렇게 고통을 견디고 관리하며 살다 대개는 정확한 예고 없이 죽는다.

 

인생의 현 위치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신체적 한계에서 오는 좌절감, 어쩌면 노년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기존 문화를 부정하려는 생각이 모두 마음속에 밀려 들어왔다.”

 

물론 모두 다 부정적인 경험으로 채워지는 시간만은 아니다. 산다는 일과 그 시간을 담은 복잡한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은 해탈 영재가 아니라면 꽤 오래 살아야 깨닫게 된다. 호흡이 어떻게 두려움을 다독이고 평화로운 잠시를 가능하게 하는지도 숨을 오래 쉬어본 나이가 되어야 더 분명해진다. 체력은 약해져도 분류하기 어려운 삶의 면면을 마주볼 힘은 살아온 시간만큼 단단해진다.

 

나이가 든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 나이가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건 마침내 드러나는 우리 안의 노인이다.”

 

잠시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는 꿈을 삼키기도 했지만, 도무지 불가능한 목표 같아서 아직 늦지 않은 일들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후회와 회환은 산을 쌓을 수도 있을 지경이지만, 한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이 노력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반환점을 돈 삶의 시간은 섬광처럼 사라지고 기억조차 남기지 않는다. 조사가 더 많은 건 물론이고,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다.

 

내가 경험한 나이듦은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리는 일이다. 철학적 숙고를 통해 사유의 유의미함을 가리기 전에, 남은 시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헤아려 분류해준다. 어정쩡하게 나이든 오십대이기 때문일까. 반갑고 고마운 저자의 문장들을 친구 삼아 봄산책을 즐기면서도 미치지 못할 사색의 깊이가 적지 않았다.

 



아쉬움과 걱정이 앞서진 않는다. 5년 전만 되돌아봐도 나이듦에 대해 거의 전혀 이해가 없었다고 느끼니까. 계속 나이가 들 것이고, 이 책의 문장들은 통증과 깨달음의 한 순간에 다시 교차할 것이다. 나이 들어 좋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담백하게 다정한 책이다.

 

지구는 지금 나이든 이들에게는 위험한 곳이지만 나는 여기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 수 없는 확실성, 말조차 금지된 슬픔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

 

읽기 시작하니 호흡이 잦아들었다. 부친과 사별한 지 수개월 만에, 숙부도 갑작스럽게 떠나셨다.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 현실의 시간 속에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연의 시간이 어긋난 채로 흐른다.

 

삶과 죽음이 실은 양면의 가진 한 장의 종이일 뿐이라거나, 죽음은 실은 이러저러한 경험이라는 평생 배운 모든 철학적 숙고가 현실의 사별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특별한 상실은 영원히 새겨진 상흔처럼 뜨겁고 쓰라렸다.



 

알게 되면 이 사실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아직 십대인 아이들을 양육한 책임을 진 상주로서,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반복되는 지옥 같은 일상을 담담히 이어가야하는데, 정신은 불러도 대답 없는 부친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표표히 대기 중으로 날아갈 듯했다.

 

누군가 말리기 전까지 잠든 부친을 깨우려했던 무용한 몸짓처럼, 애도의 시간은 현실만이 아닌 시공간을 부유하며, 때론 잠든 밤 어두운 물 밑바닥으로, 때론 눈부신 한낮의 부연 대기 속으로 망상과 같은 되돌린 방법을 찾아 헤맸다.





 

불행한 영혼이 둘이냐, 하나냐의 문제였다.”

 

종이책은, 이토록 담담하고 차분하게 구원과 수치심과 안도감과 두통을 하나하나 다시 맛보고 헤어지게 하는, 이야기가 담긴 종이책은, 꽉 잡고 읽을 수 있다는 물성으로 위로가 되고, 외면과 망각이 아닌 마주봄으로 통증을 덜어낸다.

 

다가올 나이에 맞게 삶이 늘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납작한 직선이 아니고 간명하지 않아서, 문장들의 틈새에서 울다 쉬다 하소연도 위로 받았다. 기억하는 모든 사랑과 후회를 담고, 한 시간씩 산책을 하며 뻐근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작품도 있구나, 놀랍고 고맙다.

 

내가 더 가까운 혈육이라서 내 슬픔이 더 크다고 여겼는데, 함께 한 산책길에, 매일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한 큰 아이에게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네가 찾은 길은 나와 다를 지라도 도착까지 덜어낸 슬픔은 비슷할지 모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을 보고 그처럼 격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누가 처음 한 말인지 모르나, 어린 시절 이런 내용의 얘기를 듣고, 예술 감상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라고 믿어왔다.

 

열정적인 학습자는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예술 교양서를 읽었고, 그만 봐도 되겠다 싶게 자주 본 전시 주제나 예술가들도 생겼다. 그럼에도 매번 도슨트에게 배우는 게 많으니, 여전히 관련 지식은 적고 감상방식도 얄팍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참여형 현대예술만 재밌기도 했다.

 

더러 잊고 살고 대개는 그런 감상을 할 시간조차 없이 살다가 이 책을 만나 덥석 반갑다. 흔히 예술작품을 대상으로 두고 감상법을 설명하는 시점이 아니라, “본다는 것을 통해 느낀다는 것을 설명하는 소재가 예술이라 더 좋다.



 

설레며 기대한대로 전형적인(?) 과학적 설명과 분석을 객관적 조건으로 삼아 확장하는 설명 방식이라 아주 재밌다. 대상, 자극, 정보 수용, 능동적 해석인 감상이 몸의 기능으로 잘 설명되면서 예술이 가진 아름다움과 매력이 대비적으로 더 빛을 발한다.

 

! 그림 감상이 좋은 본질적인 이유들: 감각적 즐거움, 인지적 탐색과 통찰, 감정적 정화화 재충전, 긍정적 산만함.



 

내용이 풍성하고 문장이 쉬워서, 쉬지 않고 즐겁게 따라 읽을 수 있다. 적절한 이미지들이 설명을 돕고, 독서하는 동시에 예술 작품 감상을 하는 듯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심리학적 지식과 패턴에 대해 배우는 것도 재밌고, 그럼에도 고유하고 능동적인 행위 주체로서 개인이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것도 좋다.

 

“(...) 감상자가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림 감상은 수동적인 행위라기보다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또한 어떤 경험이든 개방성이 높은 것*이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오고, 우리 삶을 풍부하고 선명하고 즐겁게 만드는지를 짚어주는 점이 유용하다. 당장 숫자로 표시되는 성과만이 아니라, 감정을 흔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험을 하는 기회와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더 필요하다. * 경험 개방성 openness to experience

 

기법이나 미술사에 대한 지식 정보와 이해의 방식이 아닌, 감상 주체로서 내게 일어나는 멋진 경험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함께 배우고 찾는 예술심리학** 책이다. 참 즐겁게 읽었다. 덕분에 진행 중인 전시회 일정을 알아보고 싶어진다. ** 예술 경험 - 예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 - 을 다루는 학문. 경험미학, 실험미학이라고도 불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권으로 끝내는 지구과학 - 극변하는 지구의 미래를 해독하자
니나가와 마사하루 지음, 송경원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양계에는 지구와 비슷한 대기를 지닌 행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 외에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곳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리와 화학을 선택한 내가 배우지 못한 교과서 기초지식으로서의 지구과학을 이 책에서 만난다. 워낙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반가운 기분으로 학생처럼 차근차근 배워볼 수 있다. 2,000년도 더 전에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이 알려졌다는 내용은, 21세기에도 지구평면설을 신봉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맹신하는 이들을 과학적, 논리적, 물증으로 설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맹신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성장 과정에서의 과학교육과 교양으로서의 지속적인 과학 공부가 더 중요하다. 정보량보다 생각하는 방식을 제대로 훈련받는 것이 결정적이다.



 

지구에 관한 내용을 읽다보면 겸손한 기분이 더 커진다. “생존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요인들 - , 물질, 역학, 구조, 순환 등등이 섬세하게 작동해서 유지되는 중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지구내부구조를 배우면, 액체로 채워진 공의 껍질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더구나 그 껍질은 여기저기가 찢어져서 이동 중이다. 가라앉고 솟아오르고 충동하고 부서지고 하는 모든 순간이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들의 생사를 좌우한다. 오랫동안 업데이트 하지 않은 지진 등의 천재지변 시 사용할 생존배낭을 열어 담아 둔 품목을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일 종으로 최다 번식한 인류이지만, 그 문명이 지구 전체 규모로 일어나는 대기와 해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해를 끼치는 것이 새삼스럽다. 우리는 왜 완벽한 지구생태계를 거스르며순환하지 못하는 모든 쓰레기들을 만들어낸 것일까.

 

온난화라는 표현조차 정확하지 않은 지구 가열화heating의 시대 - 지표와 해수와 대기 모두가 끓어오르는boiling - 를 지금 살고 있다. 더 이상 아무도 미래의 일이라고 느긋할 수는 없다. 물론 지구평면설을 믿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여전히 기후문제가 거짓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 트럼프는 취임 1주일 만에 70개가 넘는 기후대응 정책을 전면 무력화시켰다.



 

다른 문제들처럼 기후 문제도 정확한 지식을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담담하고 간결하게 지식 정보를 제공하는 단정한 이 책이 기초지식을 배우고 현실 문제로 사유를 확장하는데 기분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우리 집 중2도 한번쯤 읽어 봐주기를 바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렌드 블랙슈가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미를 좋아해서 그런 류로 오래 마시다 구입해본 묵직하고 진한 맛... 매년 낯선 2월에 만나서 더 좋은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