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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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은행나무에서 출간하는 새로운 해외문학 시리즈 두 번째 장편소설 <마녀들>. 우리() 경험, 우리() 목소리, 우리() 이야기, 우리() 언어, 우리() 마법, 우리() .





 

네게는 언어가 있어. 펠리시아나, 너는 언어의 치유자란다. 네가 책의 주인이기 때문이야.”

 

잘 읽고 싶어서,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반듯하고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지만, 어휘, 문장, 메시지 분석 같은 태도는 곧 버려두고, 이야기의 흐름따라 몸이 흘러갔다. 조금 웃고, 자주 울 듯하고, 차분히 내내 분노하고, 문득 절망하며, 책 속과 현실 사이를 오가기도 했다.

 

팔로마가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세상 모든 시계가 같은 시각을 가리켰고 단 하나의 언어가 있었을 뿐이지요. 팔로마가 살해당했다, 내게는 그 말이 유일한 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결말이 있을까, 설득력 있는 확실성은 있을까, 현실의 해피 엔딩은 뭐가 있었을까, 기억도 기대도 희미해서, 어둑해지는 창밖의 흐릿하고 누구의 것들인지 모를 불빛들을 한참 보기도 했다.

 

사람들의 앞날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언어인 까닭입니다. 때때로 과거와 미래가 현재 안에서, 언어 안에서 돌아다니는 까닭입니다.”

 

아버지, 친척, 오빠에게, 전남편 현남편에게, 전남친 현남침에게, 아는 남자 모르는 남자에게,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배에 품고서, 모부(부모)가 보는 앞에서도 여성들을 맞고 살해당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전쟁의 값싼 무기이자 공격방식으로, 폭행당하고 살해당한다. 원인이자 가해자인 남성들이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해결이 까마득하다. 싹도 못 틔운 희망이 시든다.

 

언어가 나를 영혼의 깊은 바닷속으로 데려가주었으니까, 이미 약초를 알고 약초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았으니까, 몸의 병을 치유하는 약주를 만드는 법을 알았으니까 말입니다.”

 

거듭 실패하는 세상이란 점은 같아도 현실보다 문학 속에 머무르는 편이 안전하다. 문학 쪽이 더 다정하고 매력적이다. 복잡하고 복합적이라서, 다큐 속 인물처럼 생생한 이들의 삶을, 나눠가며 쪼개가며 천천히 읽었다.

 

책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집전한 의식으로 내 동생을 치유해던 그날 밤, 나는 내가 산자들보다 죽은 자들에게 더 많이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언어는 죽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언어가 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병만 말고 그 사람의 모든 것, 연결된 모든 것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들여다보기가 인간이 가진 지구상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들여다봐야 문제와 갈등을 바로잡고 치유도 가능하다고.

 

멕시코 마녀들은 언어가 약초 안에 깃든, 들여다보게 해주는 아이 버섯들에 깃든 자연이라고, 이 책에서 주문을 거듭 외운다. 그 언어를 내면에 지닌 작가들은 마녀 의식을 직접 집전하지 않아도 마녀들인 것이다. 그 언어들을 만나는 이들의 눈을 뜨이게 하는 이들이다.




 

고단을 이유로 눈을 반쯤 감고 살고 싶어도, 이 언어들을 갖춘 마녀들이 쓴 책들이 눈을 뜨게 한다. 읽기 전보다 조금 더 세상을 바로 보게 한다. 괴롭고 고맙다. 환상하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길, 그들의 언어가 널리 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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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삶의 해를 구하는 공부
카를 지크문트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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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생존과 문명을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에는 수학이 필요했지만, ‘삶의 해를 구하는 공부이란 부제가 나는 시도한 적 없는 수학 접근법이라 설렌다. 그 공부에도 공식들이 있을까, 여전히 논리적일까. 수학에 대한 고백서처럼 새롭고 신기할 듯한 내용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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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관심이 있거나 수학이 조금은 익숙한 분들은 1, 2부의 내용도 재밌게 만날 것이다. 공리와 정리에 대해서, 즉 수학논리이자 건축의 기초 같은 개념들을 얼마 만에 이렇게 오래 읽는지 모르겠어서, 나는 조금 감동을 받았다.

 

실체는 다소 미화된 향수일 수도 있지만, 두통이 심할 때, 감정이 복잡하게 엉킬 때, 심지어 최루탄을 너무 많이 마셨을 때도, 나는 그날을 정리하며 수학문제, 아니 수리물리학mathematical physics 문제들을 한참 풀곤 했다.

 

차근차근 논리를 따라 을 찾아가는데 몰입하다보면,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아픔이 옅어지곤 했다. 어쩌면 답 없어 보이는 현실도 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긍정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이 다루는 수학의 깊이는 문제풀이가 아닌, “, 도형, 기호를 가지고 하는 철학인 수학이다. 수의 체계의 확장을 보며 수가 이 세상의 참모습인지, 아니면 인간의 발명품인지묻는 무척 두근거리는 사유다. 수학이 왜 창조적 학문인지를 역사서처럼 철학서처럼 탐미해보는 내용이다.

 

나의 수학적 문해력(?)으로는 어차피 답을 못 찾아갈 가능성이 더 높아서인지, 나는 질문들에 더 설레며 읽었다. 수학적 질문들에 스토리가 조금 가미되면 물리학의 질문들과도 닮아서, 일상을 견디는 중년 자아를 잠시 잊고, 세상의 비밀을 막 배우는 젊은 학생인 된 듯 그저 즐겁게 읽었다.

 

Science가 과학이 아니라 학문이던 시절, 수학자와 철학자와 과학자와 예술가와 건축가와 정치가 등등 모두가 다른 종처럼 구분되지 않던 시절, 세계사와 철학사와 문학사에서 만난 인물들을 이 책에서 많이 만난다. 개중에는 1차 서적을 읽은 이들도 있어서 향수는 더 깊어진다. 사유들이 섞이고 만나는 역사를 보다보면, 영어 제목 - The Waltz of Reason - 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1, 2장을 그렇게 새롭고 재밌게 읽으시다가, 3, 4부로 넘어가면 더 재밌고 친밀한 내용들이 푸른 바다처럼 시원하게 펼쳐진다. 언뜻 듣기는 했지만, 자세히 모르던 사회 이론과 이슈들에 수학과 수학자가 어떻게 자리하는지를 살피는 퉁찰은 때론 구원과 희망처럼도 읽힌다.

 

평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요구할 수는 있었다. 가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자명한 진리라고 당돌하게 선포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공리가 존재하는 곳 어디든, 멀지 않은 곳에 수학자가 있다.”*

 

* 사회 수학mathematiques sociaies라는 콩도르세의 개념.

 

위대한 지성들의 이야기를 홀린 듯 따라 읽다보면 밑줄과 필사가 넘쳐난다. 모두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처음 하는 게임처럼 즐겁게 읽기를 바란다. 부디 입시수학처럼 미리 포기하지 마시기를! 수업시간에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수학이야기들이 있고, 전혀 모르던 수학의 정체(?)도 만나게 된다.

 

수학철학자로서 그(비트겐슈타인)의 임무는 이(언어)게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하는 것이었다. (...) 수학을 하나의 대상이나 하나의 방법으로 뭉뚱그릴 수는 없다. 수학은 잡동사니다.”

 

내게 수학은 처음부터 늘 언어였다. 예외가 없어서 걱정 없이(?) 배울 수 있는, 약속이 아닌 법칙 언어. 수학은 학문분야이자 자체로 언어인 것이다. 수학이 유일무이한 보편 언어(알랭 콘)”이며,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였다(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견해에 늘 동의했다.

 

수학은 특수하지만 역시 언어라서,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진화한다.” 인간끼리 사용하는 구어적 수학어mathese”는 물론, “수학자의 상호 이해에 적합하게 자연적으로도 진화한다. 세계어이자 우주적이다.

 

우리가 외계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수학 말로 무엇을 쓸 수 있겠는가?”

 

수학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지만, “무언가에 대해말하는 경우에는 언제는 수학이 일조할 수 있다. 수학은 부정확성을 불가능하게만드는 언어이다(비트겐슈타인).





 

헤아리기 어려운 일들은 그래서 재미있다.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는 수학과 현실 세계에 대한 질문들을 그런 의미로 품고 풀어낸다. 함께 생각하는 즐거움을 문제풀이 없는 수학이야기를 통해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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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와 새 친구
옥희진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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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의식적으로 그림책 권수를 정해두고 읽고 기록하기도 했는데, 또 언제 다 잊고 살았는지, 오랜만에 그림책을 앞에 두고서야 잊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첫 장부터 가만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원근법에 감동 받는 사람이 드물 듯이, 매끈하고 사진과 구분이 안 가는 AI가 생산한 그림들에도 나는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손으로 천천히 태어난 선들, 맑은 색감, 인간의 표정이 가득한 그림에 힘주며 산 어깨가 풀린다. 거울이 앞에 없지만, 내 표정은 빙글빙글 웃고 있을 것이다.

 

채색화도 좋지만, 내용은 더 좋다. 잃어버린 어릴 적 일기장처럼 즐거웠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운이 좋아서, 친하지 않아도, 처음 봐도, 잘 어울려 놀던 시절을 어린이로 살았다. 이름을 묻지 않고도 신나게 같이 놀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그렇게 우연히 무작위로 함께 놀던 이들 중에는 동년배가 아닌 이들도 있었고, 철봉을 어려워하며 연습을 하고 있으면 열심히 방법을 가르쳐주던 한두 살 많던 언니 오빠들도 있었다.

 

모든 계절마다 집 앞에서, 동네에서 함께 놀던 이웃 친구들과 다른 학교 친구들도 있었고, 누구도 어느 하루도 외모를 지적하거나, 무슨 옷을 입었는지, 부모 직업이 무엇인지, 집값이 얼마인지를 묻지 않았다. 같이 놀 친구가 늘어나면 더 즐거웠다. 새로운 친구가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면 더 신이 났다.

 

낯설다고 해서 홉스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방식으로 살 필요가 정말 있을까. 삶이 오징어게임식이어야 할까.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낯선 바이러스가 생존에 치명적인 조건도 아니고, 작은 나라, 작은 동네, 멀지 않은 학교를 다닌다는 차이만 있다면.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서 내 기억도 그럴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잘 모르고도, 함께 어울려 놀고 살았던 경험을 했다고 기억한다. 매번 돌아봐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그렇게 살 수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가 늘 도와준 기억도 아주 많다. 친절한 어른들의 도움을 받은 기억도 많다. 사고 난 차량에서 꺼내 준 분, 기절한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준 분도 있다. 어릴 적 나는 사람과 세상을 온전히 신뢰했다.

 

그런 기억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일렁이며 다가와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림책을 보는데 함께 노느라 즐거운 여러 목소리들이 들렸다. 행복했다. 기분이 간질간질해서 아주 조금 울고 싶기도 했다. 다시 그림책을 찾아 봐야겠다.

 

외모 강박에 획일성에 전체주의적 말과 행동이 강력한 한국사회, 차별과 혐오와 폭력 말고, 이런 보드랍고 다정하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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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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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바꿔야한다고 하는 것들: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방식,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방식, 정치적인 실천을 하는 방식, 성공을 대하는 방식, 우리 자신을 대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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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을 pdf파일로 받았다. 구경하러 열었다가 빼곡한 책과 논문 목록이 몇 쪽이나 이어지니 기분이 묘하다. 참고도서 잔뜩 쌓아두고 공부하던, 하루 종일 하나의 주제로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시절이 훅 그립다.

 

완독 전이지만, 저자의 다른 책, 제목부터 끌리는 <사람을 안다는 것>이 궁금하다. 연구가 어떻게 이어지고, 혹은 어떤 다른 중점을 둔 내용인지 기대된다. 순차적으로, 혹은 병렬 독서로 함께 읽고 공부해도 좋을 듯하다.

 

책의 분위기를 따라 나는 각 장의 내용을 생각해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학구적(?)으로 읽어나갔다. 1부에서는 의식보다 무의식(감정)에 중점을 둔 인간 행동과 소통을 명확히 예시해서 설명하는 방식이 아주 쉽다.

 

감정 전달의 90퍼센트가 비언어적으로이루어지므로, 몸짓이 곧 언어가 된다. 우리가 삶 속에서 내리는 결정판단기본적이고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의 일이 된다.

 

인간은 의사 결정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사회적인 풍경 속을 걸어가는 방랑자다.”

 

제목이 제시하듯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오래된 질문이고 다양한 통찰이 있다. 관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이 타인들을 보고 배우는 학습능력을 진화시킨 것은 진화론적 사실이다(. 거울뉴런 등).

 

결국 인간을 이해하려면 뇌를 배워야한다. 특히 모두가 가진 독특한 신경망은 지문보다 더 구체화된 고유한 회로다. 걸음걸이, 말투, 반응방식이 모두 신경망이 지닌 독특한 특성이다.

 

뇌는 인생을 기록한 기록물이며, 신경망은 사람의 습관, 개성, 기호가 물리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뇌에 있는 신경망이라는 물질로 구체화되는 정신적인 존재다.”

 

한국이 아닌 미국사회지만, 문제를 보는 시선에는 동의하고 배울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목소리가 작거나 없는 가난한 아이들의 환경은 필요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어야지하나만 바꾼다고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

 

반복적인 연습과 꾸준함은 늘 그렇듯 능력발휘의 비밀이고, ‘인간만이 가진 특수한 환경인 문황에 대한 분석과 지능에 대한 시대적 차이와 분류도 유용하다. 즉 외부 환경과 반응에 따라 인간은 매순간 변화하는 존재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생물학적 뇌의 계산 범위를 훌쩍 넘어설 수 있는 공간인 설계자 환경designer environments’을 만들어낸다.”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남성과 과소평가하는 여성을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 강렬한 낭만적인 감정이 사랑이라는 연결 욕구,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상호 관계와 연결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나 친밀함에 대한 갈망은 갈등과 함께 발현된다.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모형들을 받아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내가 가진 정신적 헤게모니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켜내려고 애쓰면서 보낸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이 맥락으로부터강력한 영향을 받으며, 도덕적 감정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셜 애니멀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가 위태로울 때 혼자 달아나는 행위를 칭찬하는 사회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 감각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더 사회적인 사람이 더 도덕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바람직한 사회는 계층 간 이동이 쉬운 건강한 상태여야 한다.

 

구체적 인물의 일대기처럼 구성된(완전 순차는 아님) 인문학 책이라 읽기 쉽다. 한국사회에는 개인과 단면에 대한 섣부른 낙인과 비난이 시끄러운 시절이라서, 맥락과 전체를 보는 시선과 분석이 좋은 휴식이자 힘이 되는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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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바버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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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 좋다. 단편을 읽는 재미를 여러 해 전에 겨우 배웠지만. 긴 이야기 속에 파묻히는 그 세계로 이동하는, 한참을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 그래서 설레는 간만의 벽돌책,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날은 수요일이었다. 나쁜 수요일로 예정된. 슬픔 등등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을 시작하게 한 질문은 무엇일까. 내가 발견할 질문은 무엇일까. 요즘은 문득... 멸종이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내가 아는 세상은 벌써 끝난 것도 같다. 벽돌집처럼 단단하다고 생각한 것들, 생물종으로서, 인류로서, 시민으로서 합의한 생존 조건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어떤 아침에는 내가 지키는 규칙이 아직도 적용되고 있는 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 살고만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장대한 작품이 더 든든하다. 오래 붙잡고 있으려고 100쪽 남짓만 매일 읽을 결심을 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이게 끝은 아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읽게 될 것이다.”

 

100쪽만 읽었을 뿐인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내 주인공 아이가 너무 고단하다. 숨을 몰아쉬기를 몇 번이나. 나는 가본 적 없는 온갖 위협이 가득한 세상에서 아직 살아간다. 커가고 있다. 잠시 내 목의 통증도 잊혔다. 제목을 다시 보았다. 이제 이름(Demon Copperhead)이 주는 느낌이 선명해진다.




 

그 다음엔 쪽수를 세지 못하고 계속 읽게 되었다. 이 아이가 빨리 자라서 힘을 가지게 되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죽어라죽어라 하는 것들을 다 물리치길 바라기도 하고, 요령 있게 피해서 모두 비웃듯 신나게 살기를 바라기도 하고, 어쨌든 죽지 않기를 응원하는 심정이 되었다.

 

대체로 내게 자란다는 건 계속 살아남는다는 뜻이었다.”

 

데몬은 죽지 않았지만, 엄마는 죽었다. 데몬도 학교를 다니고, 재능을 찾고, 하고 싶은 욕구를 발견하고, 당연한 권리처럼 주어졌어야 하는 평범한 일들이 데몬의 이전 삶과 대비되어 독자인 내 눈이 잠시 부셨다. 뒤틀린 시스템과 짐스러운 구조가 그리 쉽게 누군가를 놓아줄 리가 없는데, 살짝 유치해도 좋을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되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의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소설 속 인물을 응원하며, 나는 파멸을 막는 조력자와 같은 심정으로, 이제까지 읽은 분량만큼이 데몬의 생존기가 되어, 그 기록의 힘이 생존 이상의 삶을 만들어내기를 바랐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는 행복의 내용은 무엇도 맞지 않았지만, 작은 선물 같은 일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조금 더 간절해졌다.

 

다른 누군가가 나의 행복을 바란 적이 있을까? 그랬다면 나를 아주 잘 속여 넘긴 셈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마음 졸인 것이 작가에게 미안한 작품의 마무리를 만난다. 소설의 세계가 마지막 문장들 덕분에 책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쭉 발을 뻗는 느낌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 걸까, 얼마나 넓은 세계일까. ‘생존자인 모두를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을 결심을 다시 한다. 서로를 그렇게 봐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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